ArtReview POWER 100 순위 살펴보기 | 낸 골딘, 히토 슈타이얼,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등

조회수 578

2024년 어떤 예술가가 잘나갈까요? 이걸 살짝 엿볼 수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아트리뷰의 POWER 100이죠. 아트리뷰는 1949년 설립된 현대미술 매거진이에요. 그리고 2006년부터, 매년 연말마다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선정합니다. <POWER 100>이라는 이름으로요. 


여기엔 예술가뿐만 아니라 갤러리스트, 소설가, 사회운동가, 아트페어 대표, 컬렉터, 연예인까지 다양한 인물을 선정해요. 심지어 인물이 아니라 사회 운동이나 키워드가 선정되기도 하죠. 덕분에 예술계 트렌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답니다. 올해 선정된 인물 1, 2, 3위와 순위에 포함된 한국인 예술인 세 명을 정리했어요.



1위: 낸 골딘 Nan Goldin (다큐멘터리 감독, 사진작가) b. 1953

Nan Goldin, Nan and Brian in Bed (1983) © Aperture


1위에 오른 건 낸 골딘(Nan Goldin)입니다.  이름은 낯설지만, 이 작품은 한번 쯤 본 적 있을 거에요. 이 사진은 낸 골딘이 자신과 자기 친구를 찍은 겁니다. 골딘과 친구들은 당시 파티와 마약을 즐겼고,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사랑하고, 싸우고, 이별하곤 했습니다. 골딘은 이를 사진으로 담아내며 당시 젊은이들이 느낀 사랑과 상실, 공허한 감정을 표현했어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마치 일기장과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연인이나 친구같이 가까운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오묘한 감정을 잘 담아낸 사진들은, 당시 활동하던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Nan Goldin,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2022) © HBO


낸 골딘이 이번에 1위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2022년 낸 다큐멘터리 덕분입니다.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라는 두 시간 분량의 다큐인데, 다큐인 만큼 당연히 실화를 담고 있어요. 


미국에 유명했던 제약회사, 퍼듀 파머(Purdue Pharma)의 이야기입니다. 퍼듀 파머는 자사의 진통제, 옥시코돈, 오피오이드 등의 약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려 왔어요. 그리고 이 약물들은 심각한 중독을 일으켰죠. 하지만 퍼듀 파머는 이 약물의 오남용을 묵인하며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 때문에 역사상 최악의 마약상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퍼듀 파머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은 가장 사악한 가족이라 불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새클로 가문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자연사 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거액을 기부하며 미술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퍼듀 파머의 미술계 퇴출 시위 중인 낸 골딘 © Getty Images


골딘은 이들이 미술계에서 퇴출당할 수 있게 힘을 보태요. 새클러 가문 사건 이전에도 골딘은 마약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들 때문에 이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오곤 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재단을 설립해 제약회사 퍼듀 파머의 미술계 퇴출에 힘을 보탰죠. 오늘날엔 미술계에서 퍼듀 파머, 새클러 가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회사도 파산했죠. 그 과정을 담은 게 이 다큐멘터리에요. 이 작품은 202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예술성도 인정받았습니다.


골딘은 실제로 예술계 내부자로서 비윤리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고발자 역할을 자처해왔어요. 마약이 만연하던 시기, 이를 생생하게 기록한 기록자이자 산증인이었던 과거 예술세계를 넘어, 더 나은 예술계를 위한 그의 고발이 널리 인정받은 덕에 이렇게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2위: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미디어 아트 예술가, 수필가) b. 1966

Hito Steyerl © DW


현대미술관에 가면 자주 접하게 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인류세, 디지털 기술, 사회 권력, 언론의 역할 같은 것들. 맞아요, 어렵습니다. 일단 이런 작품들 이해하려면 사회적으로 어떤 논의가 진행 중인지, 기반지식이 있어야 하기에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어요. 또 이런 주제 다루는 작품 대부분은 ‘넌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져서 관객에게 지적 노동 요구하죠. 그런데 이걸 텍스트가 아닌 시각적인 정보로 전달하면서 이해 자체를 어렵게 합니다. 이해도 어려운데, 기반지식 필요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노동도 들어가는 작품들은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부류의 작업을 하는 작가 중, 대중과 미술계 모두의 인정을 받은 게 히토 슈타이얼이에요. 슈타이얼은 전 세계에 업로드 되는 다양한 디지털 사진, 영상을 활용해 미디어 아트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인데요. 그의 작품엔 뉴스 영상부터 게임, 건축, AI 등등 다양한 소스를 활용됩니다. 이 자료들은 실제 온라인에서 얻은 것도 있고 슈타이얼이 직접 제작한 것도 있어요. 이를 뒤섞어 샘플링하며 어떤 때에는 다큐멘터리처럼, 어떤 때에는 영화처럼 본인 작품을 변주하죠.


Hito Steyerl, Liquidity Inc ©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영상 자체가 매우 트렌디하기 때문에 담론이나 기반 지식 없이 시각적인 요소들만 즐기기에도 충분한 작가입니다. 동시에 실제와 가짜가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관객의 부담도 덜어주죠. 그렇다면 메시지가 희석되는 것 아닐까? 생각할 때쯤, 명확한 메시지를 넣어 관객의 사유를 독려합니다. 또 퍼포먼스를 결합한 강의도 진행하며 본인 작품에 대한 이해를 직접 돕기도 해요.


Hito Steyerl, Green Screen (2023) © Mark Blower


슈타이얼은 파워 백에 자주 선정된 작가인데요. 이번에 선정에 도움을 준 작품은, 2023년 선보인 <Green Screen>이에요. 이 작품 역시 미디어 아트인데, 스크린에서는 꽃의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실제 식물이 있죠. 우리가 오랜 시간 소비하는 모니터 화면 뒤 존재하는 실제 세상은 보는 사람에게 다양한 주제를 떠올리게 해요. 


누군가는 모니터로 자연을 소비하는 현대 사회를 떠올릴 수 있고, 누군가는 이 때문에 생겨나는 환경 오염을 떠올릴 수 있죠. 또 누군가는 기술 발전으로 자연마저도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술 옹호론을 펼칠 수도 있고요. 어떤 주제이든  간에, 우리가 모두 직면한 문제죠. 가장 동시대적인 매체를 활용해 관객이 사유하게 하는 작가, 히토 슈타이얼은 2위를 차지했습니다.



3위: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Rirkrit Tiravanija (관계미학 예술가) b. 1961

관객을 위한 요리를 준비 중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사진 제일 오른쪽) © David Zwirner


미술관이 뭐하는 곳일까요? 작품을 감상하는 곳입니다. 아무리 현대미술이 난해해져도 이건 불변의 진리였죠. 하지만 이 인식마저 깨버린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죠. 이름이 매우 낯설지만,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개인전도 했습니다. 미술관 안에서 탁구치고, 해먹에 누워있고, 전시하는 티셔츠를 가져가게 했죠.


티라바니자는 이전에 관객을 위한 음식을 대접한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어요. 1990년 선보인 <팟타이>인데요. 이 작품에서 그는 전시 방문객을 위해 요리하고, 음식을 제공합니다. 기존 예술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죠. 전통적인 미술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은, 관객으로 하여금 전시 공간에 대한 가치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이는 오랜 미술관의 권위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를 가져요.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전시 전경 © 신세계갤러리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관객이 작품을 단순히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걸 넘어, 직접 교감하게 한 관계 지향적인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이에요. 이런 새로운 감상 방식은 관객과 작품, 1:1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이 감상하는 모습도 감상하게 하면서 관객과 관객 간의 관계도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티라바니자가 보여준 관계 미학은 코로나 이후,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흐름 속에서 더 큰 가치를 가져요.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모두 다른,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이들을 하나의 행위에 참여하게 초대하는 트라바니자의 작업은 ,다른 작품이 줄 수 없는 따뜻함을 느끼게 하죠.




이렇게 1위부터 3위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작가, 미디어 아티스트, 관계 미술 작가로 모두 장르는 다르지만, 동시대 화두가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나머지 97명의 인물도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룰 수 없어 순위에 포함된 한국인만 간단히 소개해 드려보려고 합니다.



24위: 한병철 (철학가) b. 1959

© Byung-Chul Han


한병철은 한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 중인 철학가인데요. 이전에 <권력이란 무엇인가>, <피로사회> 같은 책을 출간했어요. 피로사회는 국내에서 8개월 만에 4만 권이 팔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2023년에는 <내러티브의 위기 Die Krise der Narration>가 출간되었어요. 이 책에서 한병철은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이 상품화된 사회를 분석합니다. 오늘날엔 많은 것이 스토리텔링된 상품처럼 유통돼요. 심지어 사람도 마찬가지죠. 퍼스널 브랜딩 같은 걸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쉬운데요. 한병철은 이런 자기광고형 스토리텔링이  남용되며 오히려 순수한 의미의 스토리텔링의 위기가 다가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사유한 한병철의 비판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24위에 올랐다고 해요.



71위: 양혜규 (작가) b. 1971

© Cheongjjin Keem


양혜규 작가는 꾸준히 파워 백에 이름을 올려온 인물입니다. 2017년에는 85위, 18년에는 73위, 19년에는 36위까지 올랐고 올해는 71위에요. 작년과 재작년, 프리즈 아트페어가 한국에서 열리면서 한국 예술가들에 관한 관심이 커졌을 때, 꾸준히 언급되던 한국 대표 작가이기도 한데요.


양혜규 작가는 조각과 설치 작업을 주로 진행합니다. 실이나 조명, 선풍기 같은 일상적인 사물을 활용하는데, 이점에서는 개념미술 같기도 하지만, 여기에 냄새나 소리 같은 다양한 감각의 재료를 활용하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기존 개념미술과 달리, 관객의 감상을 감각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죠


Haegue Yang, When the Year 2000 Comes © 국제갤러리


양혜규 작가는 71년생으로 50대이지만 벌써 1천 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였을 정도로 다작하는 작가입니다. 또, 국내외를 넘나들며 꾸준히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올해 71위에 올랐어요.



92위: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 Art Basel


이현숙 회장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꾸준히 이름을 올린 인물이에요. 그간 국제갤러리에서 서양과 동양의 블루칩 작가들을 함께 선보인 시도가 높게 평가받아 왔죠. 또, 박서보 작가로 대표되는 단색화 사조를 세계화한 데 공을 인정받기도 했고요.


작년에는 이우환, 아니쉬 카푸어, 양혜규 등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는데요. 동서양 예술의 큐레이션을 여전히 섬세하게 진행해왔다는 점에서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국제갤러리 전시 전경 © Art Basel


이렇게 ArtReview의 POWER 100, 올해의 순위를 살펴봤어요. 예술가뿐만 아니라 갤러리스트나 예술 관련 기업 CEO들도 있어서, 예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나 예술계 종사를 꿈꾸는 분들이라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예술은 정량화 할 수 없어 순위를 매기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어떤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습니다. 순위에 오른 인물들이 전개하는 이야기를 꼭 한 번 주목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이 링크에서 POWER 100의 나머지 인물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드린 작가들의 더 많은 작품이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통해서도 확인해보세요 :) 



Collecting TIPS

수많은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시장,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정보와 이야기를 정리했어요.



Our society is evolving into this very specialist world. Everybody is good at one cery specific thing. 

That’s particularly clear in the art market. People want to be able to classify you.


우리 사회는 고도로 전문화되어 간다. 모두가 한 가지 매우 특정한 일에 능하다. 

그것은 특히 미술시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세상은 당신의 가치를 분류하길 원한다.

- 프란시스 알리스 Frnacis al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