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theby’s
미술시장은 기이합니다. 실용성이라곤 없는 미술품에 천문학적 금액이 붙여지고, 같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도 여러 요소가 작품 가격을 결정하죠. 해마다 수조 원이 거래되는 경매시장에서는 작품 하나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 그건 어떤 욕망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사람들은 왜 작품을 두고 경쟁하고, 돈을 쓰고, 소장하려 하는 걸까요?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본 미술품 컬렉팅
경제학과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에서는 미술품 컬렉팅에 ‘감정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이 드문 시장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온전히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감정적인 선택을 한다고 이야기하죠.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유효과(Endowment Effect)에 따르면, 경제 주체들은 본인이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에 특별한 애착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물건에 객관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부여한다고 이야기하죠. 내가 구매할 수 있거나 구매한 물건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 더하는 겁니다. 이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죠.
보유효과가 가능한 것은, 컬렉터들이 미래 가치보다 현재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에서 비롯됩니다. 이를 시간 선호(Time Preference)라 부르는데요. 시간 선호를 통해 컬렉터들은 수년 후의 가치보다 매일 독대하며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손님과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가치를 더 크게 치게 됩니다. 내 손안에 들어와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 즉 보유효과는 컬렉터의 열정, 그림을 가지려는 노력에 객관적 가치 이상의 것을 부여하며, 그림을 구매하는 데 강력한 명분으로 작용하죠.
경매회사의 치열한 심리전
10년 넘게 운영되는 미술시장 유료 뉴스레터 서비스, The Baer Faxt의 발행인 조시 베어 © Whitewall Magazine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경매회사입니다. 통상 경매회사의 거래내역은 가장 투명한 지표로 여겨집니다. 개인간의 거래나, 갤러리 거래는 수치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경매는 다릅니다. 공식적으로 진행되어 어떤 작품이 몇 차례 경합을 거쳐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지표를 모두 확인할 수 있죠. 하지만, 일반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건 최신의 내역뿐입니다. 그마저도 공개하지 않으려는 경매회사도 있고요. 최근 5년 정도의 기록만 공개하거나 더 적은 기록만 공개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경매회사에서는 모든 것이 숫자로 기록됩니다. 작품의 추정가부터 낙찰가, 작품을 두고 경쟁한 횟수를 의미하는 경합 수까지. 이곳에선 작가 없이 작품으로만 비즈니스가 이뤄지기 때문에, 숫자가 많은 선택을 좌우하기 마련입니다. 숫자의 직관성이 곧 작품을 이해하는 지표가 되는 것이죠.
숫자는 이성적 판단에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미술품을 구매하는 건, 앞서 살펴보았듯 감성의 영역이 크게 작용하죠. 때문에 경매회사는 이성적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주는 지표들을 되도록 공개하지 않습니다. 미국 미술시장에서 10년 넘게 유료 뉴스레터를 쓰는 평론가, 조시 베어 Josh Baer는 “옥션이 없었더라면 미술시장은 지금 같은 경제적 가치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라면서, ‘동시에 경매회사가 모든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에, 미술품 뒤에 존재하는 환상이 팔릴 수 있었다'라고 보았습니다.
미술품은 무조건 우상향이라고?
크리스티 홍콩의 경매 모습 © Christie’s
10년, 20년 전 경매회사의 카탈로그를 보면 지금은 거래되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큰 가치를 지녔다 여겨지는 작가들 중 상당수가 10년 안에 아무 가치도 없다 여겨질 수 있는 것이죠. 옥션은 환상을 팝니다. 내가 구매한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고 경매장에서 높은 금액에 재판매될 거라는 환상. 하지만 모든 작가가 우상향을 그리진 않고, 어떤 작품은 종이 한 장만도 못한 가치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경매회사의 오랜 데이터는, 이런 환상을 방해합니다.
미술품은 시간이 지나면 우상향을 그린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런 인식 속 옥션은 든든한 판매처입니다. 내가 감정적으로 작품을 구매했든 이성적으로 따져가며 구매했든, 미술품이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유동성을 가진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죠. 옥션은 거의 모든 미술품을 팔 수 있다는 환상을 줍니다. 작품이 우상향을 그린다면, 우리는 이로 시세차익을 얻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조시 베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유동성 시장은 주식 시장 같은 곳이며, 많은 이들이 주식을 산다. 하지만 미술품은 다르다. 사람들은 주식 사듯 미술품을 사지 않는다. 미술품 가격이 상승의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막연하게 믿는다면, 옛날 옥션 카탈로그를 보라. 사람들의 기억력이 짧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감정을 앞세워 작품을 구매하고 남들은 인정하지 않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본인의 몫이고, 이성적으로 따지고 수치를 분석하며 구매하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죠. 조시 베어 같은 소수의 진솔한 미술시장 종사자도 있지만, 많은 관계자들은 터지기 전까진 버블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경매회사는 작품이 아닌 환상을 팔고, 갤러리는 작가를 내세워 작품 판매 예약 리스트를 받죠. 앤디 워홀이 남긴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생각하는 행위보다 구매하는 행위가 훨씬 더 미국적인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나도 꽤 미국적이다.” 구매를 부추기는 분위기 속 이성과 냉정함은 잊혀져가는 시장. 미술품의 가치는 결국 본인이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 Sotheby’s
미술시장은 기이합니다. 실용성이라곤 없는 미술품에 천문학적 금액이 붙여지고, 같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도 여러 요소가 작품 가격을 결정하죠. 해마다 수조 원이 거래되는 경매시장에서는 작품 하나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 그건 어떤 욕망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사람들은 왜 작품을 두고 경쟁하고, 돈을 쓰고, 소장하려 하는 걸까요?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본 미술품 컬렉팅
경제학과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에서는 미술품 컬렉팅에 ‘감정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이 드문 시장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온전히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감정적인 선택을 한다고 이야기하죠.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유효과(Endowment Effect)에 따르면, 경제 주체들은 본인이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에 특별한 애착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물건에 객관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부여한다고 이야기하죠. 내가 구매할 수 있거나 구매한 물건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 더하는 겁니다. 이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죠.
보유효과가 가능한 것은, 컬렉터들이 미래 가치보다 현재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에서 비롯됩니다. 이를 시간 선호(Time Preference)라 부르는데요. 시간 선호를 통해 컬렉터들은 수년 후의 가치보다 매일 독대하며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손님과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가치를 더 크게 치게 됩니다. 내 손안에 들어와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 즉 보유효과는 컬렉터의 열정, 그림을 가지려는 노력에 객관적 가치 이상의 것을 부여하며, 그림을 구매하는 데 강력한 명분으로 작용하죠.
경매회사의 치열한 심리전
10년 넘게 운영되는 미술시장 유료 뉴스레터 서비스, The Baer Faxt의 발행인 조시 베어 © Whitewall Magazine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경매회사입니다. 통상 경매회사의 거래내역은 가장 투명한 지표로 여겨집니다. 개인간의 거래나, 갤러리 거래는 수치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경매는 다릅니다. 공식적으로 진행되어 어떤 작품이 몇 차례 경합을 거쳐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지표를 모두 확인할 수 있죠. 하지만, 일반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건 최신의 내역뿐입니다. 그마저도 공개하지 않으려는 경매회사도 있고요. 최근 5년 정도의 기록만 공개하거나 더 적은 기록만 공개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경매회사에서는 모든 것이 숫자로 기록됩니다. 작품의 추정가부터 낙찰가, 작품을 두고 경쟁한 횟수를 의미하는 경합 수까지. 이곳에선 작가 없이 작품으로만 비즈니스가 이뤄지기 때문에, 숫자가 많은 선택을 좌우하기 마련입니다. 숫자의 직관성이 곧 작품을 이해하는 지표가 되는 것이죠.
숫자는 이성적 판단에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미술품을 구매하는 건, 앞서 살펴보았듯 감성의 영역이 크게 작용하죠. 때문에 경매회사는 이성적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주는 지표들을 되도록 공개하지 않습니다. 미국 미술시장에서 10년 넘게 유료 뉴스레터를 쓰는 평론가, 조시 베어 Josh Baer는 “옥션이 없었더라면 미술시장은 지금 같은 경제적 가치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라면서, ‘동시에 경매회사가 모든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에, 미술품 뒤에 존재하는 환상이 팔릴 수 있었다'라고 보았습니다.
미술품은 무조건 우상향이라고?
크리스티 홍콩의 경매 모습 © Christie’s
10년, 20년 전 경매회사의 카탈로그를 보면 지금은 거래되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큰 가치를 지녔다 여겨지는 작가들 중 상당수가 10년 안에 아무 가치도 없다 여겨질 수 있는 것이죠. 옥션은 환상을 팝니다. 내가 구매한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고 경매장에서 높은 금액에 재판매될 거라는 환상. 하지만 모든 작가가 우상향을 그리진 않고, 어떤 작품은 종이 한 장만도 못한 가치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경매회사의 오랜 데이터는, 이런 환상을 방해합니다.
미술품은 시간이 지나면 우상향을 그린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런 인식 속 옥션은 든든한 판매처입니다. 내가 감정적으로 작품을 구매했든 이성적으로 따져가며 구매했든, 미술품이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유동성을 가진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죠. 옥션은 거의 모든 미술품을 팔 수 있다는 환상을 줍니다. 작품이 우상향을 그린다면, 우리는 이로 시세차익을 얻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조시 베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유동성 시장은 주식 시장 같은 곳이며, 많은 이들이 주식을 산다. 하지만 미술품은 다르다. 사람들은 주식 사듯 미술품을 사지 않는다. 미술품 가격이 상승의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막연하게 믿는다면, 옛날 옥션 카탈로그를 보라. 사람들의 기억력이 짧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감정을 앞세워 작품을 구매하고 남들은 인정하지 않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본인의 몫이고, 이성적으로 따지고 수치를 분석하며 구매하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죠. 조시 베어 같은 소수의 진솔한 미술시장 종사자도 있지만, 많은 관계자들은 터지기 전까진 버블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경매회사는 작품이 아닌 환상을 팔고, 갤러리는 작가를 내세워 작품 판매 예약 리스트를 받죠. 앤디 워홀이 남긴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생각하는 행위보다 구매하는 행위가 훨씬 더 미국적인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나도 꽤 미국적이다.” 구매를 부추기는 분위기 속 이성과 냉정함은 잊혀져가는 시장. 미술품의 가치는 결국 본인이 판단하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