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도 투자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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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스크린 판화 제작 모습 © artpirntsa


판화도 투자가치가 있을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단, 몇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판화는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복제품'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죠. 때문에 판화의 가격 형성 요인을 잘 살펴보고, 높은 가치를 지니는 판화의 종류를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판화의 종류

판화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원본을 찍어내는 판'을 통해 복제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제된 작품에 작가의 손때가 많이 묻을수록, 높은 가치를 지니죠. 판화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중 목판화, 석판화, 에칭, 리소그래피 등은 전통적인 판화 기법으로 여깁니다. 판을 만드는 것 자체에 많은 수고가 들어가기 때문에, 때로는 원화에 버금가는 가치를 평가받기도 하죠. 수백 장을 찍어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판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작품 퀄리티가 일정하기도 어렵고요. 



리소그래피 판 제작 모습 © artpirntsa


디지털 인쇄와 실크스크린은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새로운 판화 기법입니다. 최근 시장에 나오는 판화의 대부분이 이 두 기법으로 만들어지죠. 전통적인 판화와 달리 판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단순하고 힘이 덜 듭니다. 또 복제된 작품의 퀄리티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고요. 최근에는 3D 프린팅을 활용해 원본 작품의 두께감, 재질까지 구현해내기도 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스레 작가는 판화 제작의 수고를 덜게 되었습니다. 또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해졌고요. 이에 따라 판화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판화만큼 예술가의 수고가 들어가지 않고, 단순 복제품이라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이에 예술가들은 판화작품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한정수량 판화와 작가 서명


리미티드 에디션 판화 작품에 서명하는 우고 론디노네 © 1stDibs


판화는 리미티드 에디션과 오픈 에디션으로 나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정판과 무한정 찍어내는 것으로 나뉘죠. 오늘날 대부분의 예술가는 판화를 한정판으로 제작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며 얼마든 판화를 찍어낼 수 있게 되었지만, 작품의 희소성을 유지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인쇄 번호를 작품 하단에 표시하죠. 

'15/70' 이런 방식으로 인쇄 번호가 표기됩니다. 70은 만들어진 판화의 총 장수, 15는 제작된 순서를 의미합니다. 인쇄 횟수가 적을수록 작품 수량이 적은 걸 의미합니다. 그만큼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우므로, 인쇄 번호가 작은 작품이 더 비싸게 평가받습니다. 대개 100개 미만이 높은 가치를 지녔다 평가받죠.

또 제작 순서 역시 그 숫자가 작을수록 비싸게 평가받습니다. 이는 과거, 전통적인 판화 제작 방식의 영향인데요. 목판화나 석판화 등 판에 대고 찍어내는 판화의 경우, 여러 번 찍어낼수록 판이 망가지기 마련이었습니다. 때문에 뒤로 갈수록 원본과 멀어지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앞 번호에 제작된 작품을 선호하게 되었고, 그 흐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 번호일수록 예술가의 작품성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고 론디노네의 서명과 인쇄 번호가 연필로 적힌 모습 © 1stDibs


작가가 살아있을 경우, 직접 판화에 인쇄 번호와 서명을 적습니다. 대개 연필로 적고, 작품 하단에 적죠. 앞서 판화가 복제품임에도 비싼 가치를 평가받는 조건에서, 예술가의 손때가 많이 묻은 것이 좋다 언급했는데요. 작가가 연필로 직접 인쇄 번호와 서명을 적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반면 오픈 에디션은 한정판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된다고 해도, 수량에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희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오픈 에디션의 경우 작가 서명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오픈 에디션은 작가나 작가의 재단이 직접 제작하기보다, 다른 업체에 대행을 맡겨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작가의 손때 묻은 작품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죠. 이에 따른 작품 가격은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수십수백 배도 차이가 납니다. 



판화 가격은 왜 오를까?


한화 약 2천 8백억 원에 낙찰된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노란 호박 시리즈, 1990년 작 © Ravenel International Art Group


우리에게도 익숙한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는 판화 작품도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됩니다. 그리고 쿠사마 야요이는 판화 가격이 시장에서 높게 평가받는 이유를 모두 보여줍니다.

첫째로, 시장에서 원본을 구하기 어려울 경우: 작가의 작품이 이미 너무 많은 유명 컬렉터의 손에 들어가거나,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을 경우 일반 컬렉터는 그 작품을 구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평범한 개인 컬렉터들은 판화 작품을 찾게 되죠. 리미티드 에디션 판화의 경우, 더 이상 추가 제작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그 가격이 높아지게 됩니다. 

둘째로, 작가의 전성기 작품이나 대표작을 담고 있는 판화의 경우: 대표작은 점점 가격이 오르기 마련입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시리즈는 너무나 유명한 야요이의 대표작이 되었는데요. 2019년, 야요이의 노란 호박 시리즈 중 한 작품은 한화 약 2,822억 5천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장에서 야요이의 노란 호박 판화 작품은 1억 7천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죠. 



© Artsy


셋째로, 전 세계에 시장이 고루 형성되었을 경우: 판화 역시 원화처럼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격이 자연스럽게 오릅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일본 등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시장이 형성된 작가입니다. 때문에 어떤 시장에 내놔도 잘 거래되죠. 아직까지 아시아 시장과 영미 시장을 아우르는 작가가 많지 않기에, 야요이 작품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죽음 전후: 대부분 작가가 사망하면 그 이후에 작품 가격이 빠르게 치솟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죠. 이를 노리고 작가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작품을 전략적으로 구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씁쓸한 사례이지만 바스키아는 사망하기 1년 전부터 '곧 죽을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는데요. 당시 이 소문에 뉴욕에서는 바스키아 작품 거래량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야요이는 1929년 생으로, 93세의 고령입니다. 야요이가 사망할 경우 오르게 될 작품 가격을 고려해 많은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이죠. 

정리하면, 큰 시장에서 이미 대표작의 원본을 구하기 힘든 상황일 경우, 판화로 만들어졌을 때에도 높은 가격대로 오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판화의 투자 가치 보는 법, 정리


판화 작품 인보이스 © maggiemorton.com

1. 판화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들어진 목판, 석판, 에칭, 리소그래피와 최근 기법인 디지털 인쇄, 실크 스크린으로 나뉜다.

2. 전통적인 기법의 판화는 작가의 수고가 많이 들어가, 판화의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됐다. 

3. 오늘날에는 대부분 디지털 인쇄나 실크스크린 기법의 판화가 주로 판매된다.

4. 이런 기법의 판화에는 리미티드 에디션이 많으며, 작가가 직접 인쇄 번호와 제작 순서, 서명을 적어 넣는다.

5. 인쇄 번호와 제작 순서는 숫자가 작을수록 좋다. 희소성, 원본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6. 서명이 없거나 오픈 에디션으로 제작된 판화는 작품으로서의 가치, 시장에서 가치가 모두 낮다. 

7. 판화는 작가의 대표작 원본을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울 경우 빠르게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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