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들은 무엇으로 컬렉팅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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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영국왕립미술관의 전시 풍경. 작품 판매도 병행되었다. © Royal Academy of Arts


컬렉터는 미술시장의 3대 권력이라 불립니다. 미술관, 경매회사, 그리고 컬렉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들은 작가나 작품이 명성을 갖고, 시장에서 가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 작가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미술관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존재하고, 경매회사는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컬렉터는 무엇을 위해 컬렉팅 하는 걸까요?

미술품을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을 소장해 감상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투자수단으로써의 미술품도 주목받고 있죠. 2000년대 초반부터 미술품은 투자수단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유명 작가는 일종의 종목처럼 불리기도 합니다. 앤디 워홀 마켓 Andy Warhol Market, 쿠사마 야요이 마켓 Kusama Yayoi Market 등으로 불리며 작가의 작품이 시장에서 어떻게 거래되는지 지표로 기록되죠.

거래량이 늘어나며 작품은 시세차익을 안겨주는 투자수단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 컬렉팅의 이유는 개개인마다 점점 다채로워졌습니다.



컬렉팅을 하는 전통적인 이유

[1] 미술이 삶을 윤택하게 해 주기 때문에


데이비드 게펜 © CNN / 키스 타이슨 © The Telegraph

총 자산 9조 9천억 원의 현대미술 컬렉터, 데이비드 게펜 David Geffen은 "행복하기란, 돈 벌기보다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근대미술 작품을 사들이며 비로소 행복감을 느꼈다"라고 덧붙였죠. 뻔한 이유이지만 컬렉팅을 하는 오랜 이유 중 하나는 미술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한 결과물인 작품은, 우리의 관점을 다채롭게 만들어줍니다.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도 이에 공감합니다. 2002년 미술계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터너상 Turner Prize를 수상한 작가, 키스 타이슨 Keith Tyson은 사람들이 미술품을 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술품은 금이나 다이아몬드와는 다르다. 미술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미술이 아닌 것들은 당신에게 뭔가 다른 걸 팔려고 하지만, 미술은 당신의 가치를 만들어준다. 그게 다른 점이다. 미술이 있어 인생이 살만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2] 구매를 넘어, 후원을 하기 위해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화와 그의 사진. 왼쪽 위부터 세잔, 피카소, 르누아르가 그려준 그림이다. © Wikipedia Commons


예술이 우리 인생에 가치를 더해준다는 믿음은 곧 작가 후원으로 이어집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시작된 예술 후원의 역사는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단순히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컬렉팅 하는 것을 넘어, 작가가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커리어를 만들어주기도 하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를 가진 남자라 불리는 앙브루아즈 볼라르 Ambroise Vollard는 세잔, 피카소, 르누아르, 샤갈 등 유명 화가들이 무명시절을 겪을 때 후원해준 미술상입니다. 그는 작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림을 사주고, 전시회를 열어주고, 작가를 다룬 책을 출판하며 후원가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볼라르 덕분에 오늘날 대가로 불리는 작가들은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죠. 피카소는 볼라르에 대해 언급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보다도 많은 초상화를 가진 남자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볼라르의 후원을 받은 작가들이 감사를 표하며 많은 초상화를 그려준 덕분이죠.

작가 후원은 오늘날 개인 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 정부차원에서도 이어집니다. 1966년 체이스 맨해튼 은행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록펠러는 '기업예술후원회'를 발족해 작가와 문화예술 전반을 후원했죠. 우리나라는 1994년에 '한국메세나협의회'를 세워 작가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개인이 작가를 후원할 때 보다 더 큰 자본으로 후원이 가능해졌죠. 



현대미술이 시작되고, 컬렉팅 이유는 더 다양해졌다

[1] 투자 포트폴리오를 위해


파인아트펀드 CEO 필립 호프먼 © Art Domains

0.01%만이 살아남는다는 아트펀드 시장에서 연평균 수익률 47%를 달성한 유일한 기업, 파인아트펀드 FineArtFund. 파인아트펀드의 CEO 필립 호프먼은 작품을 구입하는 이유에 대해 "예술 애호의 차원이 아니라, 철저히 수익을 위해 작품을 사고판다"라고 말했습니다. 삭막한 아트펀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파인아트펀드만의 여러 전략이 있지만, 기저에는 예술작품을 철저히 투자수단으로만 바라보았기에 가능했다는 시각도 있죠.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 중, 독점 소유가 가능하고 재판매까지 할 수 있는 장르는 미술이 유일합니다. 연극, 무용, 음악 등의 장르는 한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져 Flow형 예술이라 불립니다. 반면 미술은 실물이 있고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어 Stock형 예술이라 불리죠. 시간이 흘러 예술가의 가치가 높아지면 작품은 투자수단이 되어 물질적 이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작가 이름에 + Market을 붙여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실제로 투자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수단으로 보는 겁니다.

물론 이런 관점은 예술적 가치만을 보고 구매하는 애호가적 컬렉터에겐 모욕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흥 부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데 매우 민감하고, 현재까지 미술품을 대체할 만한 매력적인 투자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여기에는 미술시장이 경제상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미술시장이 너무 작고 배타적이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현실감각을 느끼기 어려운 시장'이라 불리기도 하고요.



[2] 컬렉션을 더욱 다채롭게 꾸리기 위해서


새 작품을 컬렉팅할 때 언제나 전략을 짜 작품을 팔고, 사는 나마드 가문 © Looted Art


투자 목적의 작품 구매시, 재판매는 당연한 고려대상입니다. 현금화를 통해 수익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술시장이 생긴 후 오래도록 컬렉터들은 '작품 재판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컬렉터가 작품을 팔아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 (3D)라 불립니다. 사망 시 Death, 빚을 탕감하기 위해 Debt, 그리고 이혼 Divorce. 모두 부정적 이슈이기 때문에,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분위기가 바뀌어, 4D라 불립니다. Dealing이죠. 딜러들이 자산을 회전시키듯, 많은 컬렉터들이 컬렉션을 회전시키는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나마드 Nahmad 가문입니다. 나마드 가문은 한때 개인소장된 피카소 작품 중 20%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들은 작품을 구매할 때 절대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작품을 팔아 새 작품을 사죠. 가문의 컬렉션을 흐름에 맞게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 감수도 필요합니다. 여전히 작품을 재판매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작품을 구매하는 것 보다 파는 일이 더 많이 알려질 경우, 1차 시장인 갤러리에서는 작품 공급과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해당 컬렉터에게 판매를 꺼릴 수 있습니다. '작품을 팔아치우는 컬렉터'라는 불명예스러운 인식이 생길 수도 있고요. 때문에 전문가들은 구매 후 10년 이상 지나서 작품을 판매하길 권합니다.



[3] 사교적인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컬렉터라 불리는 찰스 사치 © The Spectator


"나는 돈을 위해 미술시장에 뛰어든 게 아니며, 남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서 컬렉션을 구축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컬렉터, 찰스 사치 Charles Saatchi는 작품을 구매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사교적인 이유로 작품을 구매하곤 합니다. 이런 흐름은 아트페어나 옥션, 미술계 행사가 잦아지며 더 많아졌죠. 오프라인 행사자리에서 주로 나누는 대화는 어떤 작가가 핫한지, 어떤 작품을 누가 샀는지입니다.

소더비의 한 스페셜리스트는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이 점점 옷을 구매하는 것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패션을 소비하듯 쉽게 사고, 과시하기 위해 산다는 것이죠. 이는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품 유형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날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작품'이 아닌, '즉각적인 호소가 있는 작품', '지금 트렌드를 반영하는 작품', '와우 포인트가 있는 작품'이라 말합니다. 미술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짧아지고, 임팩트를 추구하는 형식으로 변한 것이죠. 보는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과시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앤디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의 저자, 리처드 폴스키와 앤디 워홀 © RichardPolskyArt


<나는 앤디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의 저자 리처드 폴스키 Richard Polsky는 평생 앤디워홀 작품 수집을 위해 미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는 미술품 컬렉팅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어떤 사람들은 미술이야말로 마지막 럭셔리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좋은 미술가의 작품은 내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내가 한 수 앞서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된다. 돈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것, 심미안과 교양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미술품 투자 시작을 고려한다면, 가장 많이 권유받는 건 판화다. 앤디 워홀의 판화 작품 © MyArtBrocker

미술이 시작된 후 윤택한 삶을 위해, 후원을 위해 컬렉터들은 작품을 구매했습니다. 이후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2000년부터는 투자 수단으로써 미술품이 컬렉팅 되었고, 이런 흐름 속 작품 재판매는 예전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죠. 예술계 행사가 다양하고 잦아진 오늘날에는 과시 목적도 컬렉팅을 하는 당당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컬렉팅을 하는 이유는 다양해졌지만 컬렉팅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구매해 작가가 더 오래도록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작품 가격은 종종 컬렉팅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는 작가를 향한 무조건적인 후원이 있었습니다. 컬렉터들의 구매와 후원이 예술가와 예술의 생명력을 더 오래도록 유지시켜준 것이죠. 우리가 다양한 컬렉팅을 존중하고, 의미 있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문헌
세라 손튼, <걸작의 뒷모습>, 세미콜론, 2008.
문웅, <수집의 세계>, 교보문고, 2021



✍🏻 예술가들의 컬렉팅 비하인드가 궁금하다면 '1세대 컬렉터들이 컬렉팅을 했던 이유'를 살펴보세요. 컬렉팅과 관련된 자세한 팁이 필요하다면 '미술품 컬렉터들의 컬렉팅 팁 10가지'도 함께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초보 컬렉터라면, '판화도 투자가치가 있을까?' 글도 도움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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