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영국의 한 미술품 복원업체가 피카소 그림 속 또 다른 피카소 그림을 찾아냈습니다. X-Ray를 통해 드러난 그림은 형태가 분명했지만, 색깔이나 디테일한 묘사는 보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은 기대에 차올랐어요. 피카소의 공개되지 않은 그림이라니! 비록 그 모습이 불분명할 지언정, 관객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죠.
그러던 중, 한 기업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작품을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AI를 활용해 피카소의 필체와 작품 스타일을 학습하고, 이 그림에 입혀 만들어낸 것이죠. 이 소식은 많은 담론들을 만들어냈어요.
① 작가의 동의 없이 미공개작을 공개해도 되는가?
② 미공개작을 기술을 통해 복원하는 것이, 작가의 예술세계를 헤치지는 않는가?
💙 사건을 이해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피카소는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입체파의 거장, 천재 예술가, 예술가들의 예술가 등 많은 별명이 있죠. 한편, 이름은 익숙하지만 우리가 피카소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도 있습니다. "천재로 불리는 피카소도 처음부터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니었다는 것." 피카소는 네 다섯살 정도 되는 나이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던 화가인데요. 그와는 별개로 초기에 돈을 잘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 돈을 잘 버는 화가는 달랐기 때문이죠.
피카소의 작업 초기, 가난했던 그 시절엔 그의 우울함을 담아낸 그림이 많습니다. 이 그림들은 대부분 파란 빛으로 그려져, '청색시대(1901~1904)' 작품이라 불리죠. 청색시대 그림은 거의 판매되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이번에 발견된 그림 역시, 청색시대 그려진 그림 아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The Blue Room, 1901
청색시대 작업의 특징은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사회적 약자였다'는 점입니다. 맹인, 거리의 부랑자, 가난한 노인, 몸을 팔아 돈 버는 여인 등이 대부분인데요. 피카소가 이처럼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그린 이유는, 본인이 그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천재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을 거쳐 화가가 되었지만, 누구도 피카소의 작품을 사지 않았죠. 팔리지 않는 작품을 바라보며 피카소는 "영양 부족으로 실명하게 되진 않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The Blind Man's Meal, 1903 © CNN
이번에 그림 속 그림이 발견된 작품도 청색시대 그려졌습니다. 제목은 <맹인의 식사>.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손으로 식탁을 더듬거리며 식사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이는 실명에 대한 피카소의 공포가 극에 달한 심리를 드러냅니다. '맹인'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그려낸 것이죠. 그리고 이 그림 아래, 여인의 누드화가 X-Ray를 통해 발견됐습니다.
X-Ray는 작품에 손상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작품 표면 아래를 잘 볼수 있기 때문에 많은 작품에 활용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작품의 진위여부를 밝히기 위해 쓰이는데요. 예술가들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가난한 시기 그려진 것이 많아, 그림 아래 또 다른 그림이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 역시 가난했던 청색시기 작업인 만큼, 캔버스를 재활용한 것으로 추정되고요.
© CNN
X-Ray를 통해 발견된 첫 모습입니다. 흑백이지만 작품의 형태는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죠. 청색시대 작품임을 미루어 보아, 아마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성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앞서 우리가 본 <맹인의 식사> 작품을 들어내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긁어내거나, 벗겨내거나, 작품에 손상이 최대한 덜 가는 방법으로 천천히 진행해야 했죠. 작품 복원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도 들어갈 만큼 어려운 작업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이 작품의 모습을 구현한 기업이 등장합니다.
바로, 영국의 미술품 복원 업체 '옥시아 팔루스(이하 팔루스)'였죠. 팔루스는 X-Ray를 통해 그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작품에 활용해보기로 합니다. AI에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을 학습시켜, 피카소 화풍대로 그림에 채색을 진행한 것이죠. 이전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렘브란트 등 유명 예술가의 그림을 기계가 그려낸 사례가 있었습니다. 진짜 렘브란트 그림 사이 놓인 AI 작품은 정말 완벽했죠. 이번에도 같은 원리로 작품 채색이 진행된건데요. 팔루스 측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3D 프린터를 활용해 작품을 실물로 만들기로 했죠.
The Lonesome Crouching Nude, © Oxia Palus
인공지능이 제공한 정보는 생각보다 다채로웠습니다. 어떤 물감이 어떤 비율로 섞여 색이 표현된건지, 물감과 기름의 비율은 어느정도인지, 물감이 쌓인 두께는 어떻게 달라지는 지 등 다양했죠.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3D 프린터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렇게 발굴된 작품엔 이름까지 붙었습니다. <외롭게 웅크린 누드>. X-Ray를 활용해 숨겨진 작품을 발견하는 건 너무나 흔한 사례였지만, 이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채색하고, 3D 프린터를 이용해 구현해낸 건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담론이 치열하게 펼쳐졌죠.
① 작가의 동의 없이 미공개작을 공개해도 되는가?
② 미공개작을 기술을 통해 복원하는 것이, 작가의 예술세계를 헤치지는 않는가?
> 작가의 동의 없이 미공개작을 공개해도 되는가에 대해 찬성파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적 사료로 보고 복원하는 것이 맞다', '이제 기술을 활용한 예술작품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피카소가 숨기려고 애쓴 흔적이 없다. 괜찮다',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 계기다'.
> 반면, 반대파의 입장도 첨예합니다.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 행위다', '단순 복원이 아닌 재창조라고 봐야한다. 피카소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것이 정말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알기 위함인지, 옥시아 팔루스라는 기업의 이름을 알리기 위함인지 알기 어렵다'
© Oxia Palus
각 주장은 날카로운 대립각을 만들어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작품 복원이 시작된 건 19세기, 본격적인 연구와 복원이 병행된 건 2000년입니다. 미술의 역사에 비해 복원의 역사는 짧은 셈이죠. 현재까지의 작품 보존은 '최소한의 개입', '최소한의 조치'를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또 작품을 ‘어떻게’ 복원하느냐보다 ‘왜’ 복원하는가에 의미를 두고 복원을 진행하죠. 단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재의 방향성은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편, 이번 발굴을 진행한 옥시아 팔루스는 '연구 목적'으로 작품을 복원했다는 의견을 계속 피력하고 있습니다.
Self Portrait, 1901
작가의 예술세계를 둘러싼 복원 논란. 최소한의 개입이 맞을지, 연구 목적의 발굴이 맞을 지, 빠르게 발전해가는 기술 속 인간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2021년 11월, 영국의 한 미술품 복원업체가 피카소 그림 속 또 다른 피카소 그림을 찾아냈습니다. X-Ray를 통해 드러난 그림은 형태가 분명했지만, 색깔이나 디테일한 묘사는 보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은 기대에 차올랐어요. 피카소의 공개되지 않은 그림이라니! 비록 그 모습이 불분명할 지언정, 관객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죠.
그러던 중, 한 기업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작품을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AI를 활용해 피카소의 필체와 작품 스타일을 학습하고, 이 그림에 입혀 만들어낸 것이죠. 이 소식은 많은 담론들을 만들어냈어요.
① 작가의 동의 없이 미공개작을 공개해도 되는가?
② 미공개작을 기술을 통해 복원하는 것이, 작가의 예술세계를 헤치지는 않는가?
💙 사건을 이해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피카소는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입체파의 거장, 천재 예술가, 예술가들의 예술가 등 많은 별명이 있죠. 한편, 이름은 익숙하지만 우리가 피카소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도 있습니다. "천재로 불리는 피카소도 처음부터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니었다는 것." 피카소는 네 다섯살 정도 되는 나이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던 화가인데요. 그와는 별개로 초기에 돈을 잘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 돈을 잘 버는 화가는 달랐기 때문이죠.
피카소의 작업 초기, 가난했던 그 시절엔 그의 우울함을 담아낸 그림이 많습니다. 이 그림들은 대부분 파란 빛으로 그려져, '청색시대(1901~1904)' 작품이라 불리죠. 청색시대 그림은 거의 판매되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이번에 발견된 그림 역시, 청색시대 그려진 그림 아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The Blue Room, 1901
청색시대 작업의 특징은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사회적 약자였다'는 점입니다. 맹인, 거리의 부랑자, 가난한 노인, 몸을 팔아 돈 버는 여인 등이 대부분인데요. 피카소가 이처럼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그린 이유는, 본인이 그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천재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을 거쳐 화가가 되었지만, 누구도 피카소의 작품을 사지 않았죠. 팔리지 않는 작품을 바라보며 피카소는 "영양 부족으로 실명하게 되진 않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The Blind Man's Meal, 1903 © CNN
이번에 그림 속 그림이 발견된 작품도 청색시대 그려졌습니다. 제목은 <맹인의 식사>.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손으로 식탁을 더듬거리며 식사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이는 실명에 대한 피카소의 공포가 극에 달한 심리를 드러냅니다. '맹인'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그려낸 것이죠. 그리고 이 그림 아래, 여인의 누드화가 X-Ray를 통해 발견됐습니다.
X-Ray는 작품에 손상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작품 표면 아래를 잘 볼수 있기 때문에 많은 작품에 활용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작품의 진위여부를 밝히기 위해 쓰이는데요. 예술가들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가난한 시기 그려진 것이 많아, 그림 아래 또 다른 그림이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 역시 가난했던 청색시기 작업인 만큼, 캔버스를 재활용한 것으로 추정되고요.
© CNN
X-Ray를 통해 발견된 첫 모습입니다. 흑백이지만 작품의 형태는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죠. 청색시대 작품임을 미루어 보아, 아마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성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앞서 우리가 본 <맹인의 식사> 작품을 들어내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긁어내거나, 벗겨내거나, 작품에 손상이 최대한 덜 가는 방법으로 천천히 진행해야 했죠. 작품 복원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도 들어갈 만큼 어려운 작업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이 작품의 모습을 구현한 기업이 등장합니다.
바로, 영국의 미술품 복원 업체 '옥시아 팔루스(이하 팔루스)'였죠. 팔루스는 X-Ray를 통해 그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작품에 활용해보기로 합니다. AI에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을 학습시켜, 피카소 화풍대로 그림에 채색을 진행한 것이죠. 이전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렘브란트 등 유명 예술가의 그림을 기계가 그려낸 사례가 있었습니다. 진짜 렘브란트 그림 사이 놓인 AI 작품은 정말 완벽했죠. 이번에도 같은 원리로 작품 채색이 진행된건데요. 팔루스 측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3D 프린터를 활용해 작품을 실물로 만들기로 했죠.
The Lonesome Crouching Nude, © Oxia Palus
인공지능이 제공한 정보는 생각보다 다채로웠습니다. 어떤 물감이 어떤 비율로 섞여 색이 표현된건지, 물감과 기름의 비율은 어느정도인지, 물감이 쌓인 두께는 어떻게 달라지는 지 등 다양했죠.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3D 프린터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렇게 발굴된 작품엔 이름까지 붙었습니다. <외롭게 웅크린 누드>. X-Ray를 활용해 숨겨진 작품을 발견하는 건 너무나 흔한 사례였지만, 이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채색하고, 3D 프린터를 이용해 구현해낸 건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담론이 치열하게 펼쳐졌죠.
① 작가의 동의 없이 미공개작을 공개해도 되는가?
② 미공개작을 기술을 통해 복원하는 것이, 작가의 예술세계를 헤치지는 않는가?
> 작가의 동의 없이 미공개작을 공개해도 되는가에 대해 찬성파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적 사료로 보고 복원하는 것이 맞다', '이제 기술을 활용한 예술작품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피카소가 숨기려고 애쓴 흔적이 없다. 괜찮다',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 계기다'.
> 반면, 반대파의 입장도 첨예합니다.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 행위다', '단순 복원이 아닌 재창조라고 봐야한다. 피카소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것이 정말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알기 위함인지, 옥시아 팔루스라는 기업의 이름을 알리기 위함인지 알기 어렵다'
© Oxia Palus
각 주장은 날카로운 대립각을 만들어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작품 복원이 시작된 건 19세기, 본격적인 연구와 복원이 병행된 건 2000년입니다. 미술의 역사에 비해 복원의 역사는 짧은 셈이죠. 현재까지의 작품 보존은 '최소한의 개입', '최소한의 조치'를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또 작품을 ‘어떻게’ 복원하느냐보다 ‘왜’ 복원하는가에 의미를 두고 복원을 진행하죠. 단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재의 방향성은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편, 이번 발굴을 진행한 옥시아 팔루스는 '연구 목적'으로 작품을 복원했다는 의견을 계속 피력하고 있습니다.
Self Portrait, 1901
작가의 예술세계를 둘러싼 복원 논란. 최소한의 개입이 맞을지, 연구 목적의 발굴이 맞을 지, 빠르게 발전해가는 기술 속 인간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