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붉은 말의 해: 말을 그린 예술 작품들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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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류 최초의 말 그림, 라스코 동굴 벽화

라스코 동굴 벽화 속 말

The Lascaux Cave Paintings


라스코 동굴 벽화는 약 17,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600점 이상의 동물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인 364점이 말을 그리고 있어요. 이렇게나 말을 그린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시기에 말이 많았기 때문이죠. 실제로, 로스코 동굴 벽화 외에도 유럽 내 동굴 벽화에서 말은 전체 동물 중 30%를 차지합니다.


이렇게나 말이 많았던 덕분에, 말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어요. 최근 보고된 독일 쉔닝겐 유적지 연구에 따르면, 30만 년 전 인류는 공동 사냥 전략을 사용해 말 무리를 습격했다고 하죠. 또 사냥꾼들은 말의 행동 패턴을 관찰하고 지형을 활용해 매복 지점으로 말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말이라는 동물은, 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어요. 그래서 사냥 대상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한 기록적 목적이나, 사냥의 성공을 위한 주술적 목적으로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 속 말

The Lascaux Cave Paintings


한편, 일부 연구에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해요. 프랑스의 동굴 예술 전문가 장 클로테스는 ‘동굴 속 말 그림이 단순한 사실적 표현을 넘어선 특별한 중요성이 부여되어 있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동굴 벽화에 그려진 다른 동물들을 보면, 대부분 식용이 아닌 동물들이라는 점이라는 게 그 근거죠. 클로테스는 당시 사람들이 동물을 인간과 자연 사이 중재자 같은 존재로 바라보고, 영적인 존재로 인식해 그렸을 것을 주장합니다. 


실제로 몇몇 동굴 벽화에서는 말의 점박이 무늬를 배경부에 그려 넣으면서, 장식적인 요소를 연출한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단순한 기록 목적이라면, 굳이 그려 넣지 않았을 요소들이죠. 이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말이 고대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였음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2] 르네상스 시기, 다 빈치의 말 그림

다 빈치가 그린 말 스케치

다 빈치가 그린 말 스케치, 1488


르네상스에 접어들며 말은 강력한 전투력의 상징으로서 묘사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말 그림들이 대표적인데요. 다 빈치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화가로도 유명했지만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건물도 지었고, 군사학, 해부학, 화학 같은 분야까지 능통해 완벽한 문·이과 통합형 인재였어요.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이를 일컫는 ‘르네상스 형 인물’이라는 표현도 다 빈치 덕분에 만들어졌죠.


다빈치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동물이었습니다. 특히나 고양이에 대해서는 ‘작은 걸작’이라고 칭하면서, 동물을 신이 창조한 걸작으로 여겼어요. 그리고 그 걸작들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새와 박쥐의 비행 원리를 연구해서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계 설계에 적용했고, 돼지, 말, 심지어 고양이까지 해부하면서 내부 구조를 정확하게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후배 작가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앙기아리 전투 모사본

후배 작가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앙기아리 전투 모사본 (1606)


그중에서도 다 빈치가 작품으로 가장 많이 남겼던 것은 말이었어요. 오늘날 전해지는 <앙기아리 전투> 작품을 보면, 말을 탄 병사들이 칼을 휘두르며 적군과 싸우는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한 걸 볼 수 있습니다. 군인들의 전투적인 표정과 함께, 근육질의 말이 앞다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죠. 


이 작품은 피렌체시의 의뢰로 그려졌습니다. 당시 새롭게 만든 5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대회의장의 벽면에 다 빈치의 벽화를 그려 넣고자 한 것이었는데요. 이 의뢰의 흥미로운 점은, 한쪽 벽에는 다 빈치의 그림이 그려졌고, 나머지 한쪽 벽에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그려졌다는 점이에요. 


다 빈치가 그린 말 스케치

다 빈치가 그린 말 스케치, 1490


두 사람 다 르네상스 사회에서 손꼽히는 천재 예술가였기 때문에 이 벽화 작업을 ‘세기의 대결’로 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승부는 나지 않았어요.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두 사람 다 벽화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다 빈치는 새로운 물감을 제작해, 그 물감으로 채색했는데요. 물감이 벽에서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다 빈치는 이걸 막으려고 불을 쪼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물감이 완전히 녹아내려 버렸어요. 한편, 미켈란젤로는 스케치까진 완성했는데 벽에 옮겨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엔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을 토대로 후배 예술가 루벤스가 그린 모사본만이 전해지고 있어요. 모사본이지만, 다 빈치의 해부학적 지식이 잘 담겨 있어서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3] 19세기 사실주의 화가, 로자 보뇌르의 그림

로자 보뇌르, 말 시장

로자 보뇌르, 말 시장, 1852-55,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세로 2미터, 가로 5미터의 매우 큰 크기의 그림입니다. 작품은 파리에서 열린 말 시장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죠. 그림은 약 15마리의 말들이 뛰어다니는 역동적 순간을 포착했어요. 흰색 말, 갈색 말, 검은색 말 등 다양한 말들이 근육질의 다리를 뽐내며 뛰어다니는 모습인데요. 


이 그림을 그린 로자 보뇌르(Rosa Bonheur)는 사실 여성 작가입니다. 그리고 19세기 당시 여성에게는 제약이 참 많았어요. 그림 그리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고, 미술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수업이 제한적이었죠. 또, 여성은 말 시장에 가는 것도 부적절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럼에도 로자 보뇌르는 말 시장을 그리고 싶어 했어요. 전부터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서, 사자나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기르기도 했을 정도였죠. 그리고 파리의 도축장으로 가, 도축을 기다리는 동물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건 동물을 그리는 화가들에게는 흔한 일이긴 했는데, 여성 화가 중에서는 최초였어요. 그리고 도축장에 있던 남성 화가들은 로자 보뇌르를 수차례 괴롭혔죠. 


로자 보뇌르의 초상, Anna Elizabeth Klumpke, 1898

로자 보뇌르의 초상, Anna Elizabeth Klumpke, 189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보뇌르는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함. 당시 동물 그림 중에서 좋게 평가받는 그림은, 보기 힘든 동물들을 담아낸 그림이었어요. 평범한 소나 들개, 돼지 같은 동물 그림보다는, 고급 말을 그린 그림이 비싸게 팔리는 식이었죠. 그래서 보뇌르는 말 시장으로 향합니다. 당시 말 시장엔 여성의 입장이 부적절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남장을 하는 조건으로 경찰의 허락을 받아냈어요. 


그리고 보뇌르는 말 시장에 2주에 한 번씩 방문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보뇌르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남성 화가들은 나를 소년이라고 여겼다’라고 해요.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던 거죠.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이 작품, <말 시장>은 1853년, 파리 살롱전에 입선합니다. 그리고 평단의 찬사를 받아요. 


말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해부학적 지식도 그림에 담아낸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보뇌르는 이후에 많은 의뢰를 받으면서 예술가로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오늘날 <말 시장>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서 많은 관객과 만나고 있어요. 

 

 

[3] 사진술이 뒤바꾼 사람들의 인식: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말 사진

Eadweard Muybridge, Horse in Motion, 1878

Eadweard Muybridge, Horse in Motion, 1878


이 사진은 카메라가 보급된 지 얼마 안 된 1878년에 촬영되었어요.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했던 경주마 소유주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에게 자신의 말 화보집 제작을 해달라며 의뢰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말 사진을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말이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당시 카메라 기술로는 말을 포착하기가 힘들었던 것이죠. 당시에는 사진 하나를 찍기 위해서 몇 시간씩 카메라 앞에 앉아 있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메이브리지는 의뢰를 받고 나서도 몇 년 동안 이 말 화보집 제작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 때문에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작업도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메이브리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여러 엔지니어와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서 점점 더 빠른 기계식 셔터를 개발했고, 이후 6년 만에 고속 촬영에 성공해 냅니다.


Théodore Géricault, Derby at Epsom, 1821

Théodore Géricault, Derby at Epsom, 1821,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런데 그렇게 촬영된 사진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조작된 거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달리는 말의 모습을 연속 촬영한 것을 보면, 말의 다리가 제각기 다 다른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말이 달릴 때, 앞다리 두 개와 뒷다리 두 개가 동시에 움직인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그려진 모습도 매우 많았고요.


그렇다 보니 사진이 거짓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았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인 오귀스트 로댕은 이 사진을 보고 “현실에서는 시간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예술가의 눈이 진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머이브리지는 1,000분의 1초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해 냈고, 사진술이 점점 발전하며 머이브리지가 맞았음이 증명돼요. 


이후 말 그림은 더 이상, 앞다리와 뒷다리가 세트로 움직이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머이브리지의 달리는 말 사진은 미술사의 관점을 바꾼, 역사적 사진이 되었죠. 

 

 

[4] 인상주의의 말 그림: 에드가 드가의 경마 연작

에드가 드가의 말 그림

Edgar Degas, Race Horses, 1885-188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드가(Edgar Degas)는 인상주의자들의 예술관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가진 화제성에 주목해서 인상주의 전시를 주도했던 전략적인 예술가예요. 그렇게 인상주의자들의 리더로 알려지면서, 이후부터 본인의 예술을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발레리나를 그린 연작이에요.


드가는 본인의 발레리나 작품을 ‘상품’이라고 칭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상품 설계하듯이 작품을 기획했고, 여기엔 당연히 구매자도 염두에 있었어요. 드가가 본 자신의 고객들,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들은 그림을 살 만한 돈이 있었고, 이들은 그림 외에도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겼습니다. 발레 공연도 그중 하나였고, 경마도 있었죠. 


에드가 드가의 말 그림

Edgar Degas, Before the Race, 1882-1884, 월터스 미술관 소장


드가는 경마장에 가서, 말들의 움직임을 연구하곤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머이브리지의 사진이 등장한 이후, 로댕 같은 예술가는 이 사진이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드가는 이를 빠르게 자신의 그림에 반영해요. 인상주의 전시를 열었던 것을 통해 미루어볼 수 있듯, 드가는 새로운 시도에 열려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그림을 사진을 찍은 것 같은 구도로 그려요. 전통적인 그림처럼 완벽한 구도로 그리기보다, 사진을 찍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즉흥성이 담긴 구도들도 그림에 적용한 것이죠. 이런 구도는 오히려 그림에 역동성과 생동감을 자아냈습니다. 


에드가 드가의 말 그림

Edgar Degas, At the Races in the Countryside, 1869, 보스턴 미술관 소장


그리고 드가만의 독특함은 하나 더 있었어요.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발레리나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연습실에서 연습하거나 쉬는 모습을 더 많이 그리곤 했는데요. 경마장의 말을 그릴 때에도 비슷하게 경주 시작 전후의 모습을 담아냅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장면 구성은 컬렉터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해요. 


수집 시장에서 귀하게 평가받는 것은 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대다수의 화가가 달리는 말의 모습을 그리면서 역동성을 강조할 때, 대기 중인 말을 그리면서 새로운 구도로 생동감을 연출한 드가의 그림은 그 어떤 그림보다 생생함을 담고 있었죠. 덕분에 드가의 경마 연작은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오늘날에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해 파리 오르세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정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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