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클라인: 색의 소유권을 주장한 첫 번째 예술가

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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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이브 클라인, 1961년 © Charles Wilp / BPK, Berlin


이브 클라인은 1957년, ‘인터네셔널 클라인 블루’라는 색을 개발합니다. 이 색깔은 아주 쨍한 파란색이에요. 형광빛이 도는 듯 밝으면서도 벨벳의 질감을 보는 듯 포근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색깔이죠. 


클라인은 1960년, 이 색깔 조합을 특허로 등록합니다. 이건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기념비적인 행보였어요. 색 자체를 하나의 예술적 발견이자 브랜드로 등록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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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Klein (1928-1962), California, (IKB 71), 1961 © Christie's


그리고 최근, 이브 클라인의 1961년 작 <IKB61>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21.4 million, 약 29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작품은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 정도의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이 ‘인터네셔널 클라인 블루’ 색깔을 가득 칠한 게 전부인 작품이에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왜 이렇게나 높은 금액에 낙찰될 수 있었던 걸까요.

 


 

색깔의 소유권을 주장한 첫 번째 예술가, 이브 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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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업실에서 이브 클라인 © ART RESOURCE, NY.


이브 클라인은 1928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화가였어요. 아버지는 후기 인상주의 화풍을 구사했고, 어머니는 추상 표현주의 화풍을 구사하던 화가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두 분 다 상당한 인싸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다른 예술가들과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면서 서로의 예술관을 공유했죠. 덕분에 이브 클라인은 특별히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음에도 어린 나이부터 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14살이 되던 해에는, 동양국립언어학교와 국립해병예술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동양국립언어학교는 말 그대로, 동양 언어를 배우는 학교에요. 이 덕분에 이브 클라인은 특히 일본 문화에 매료되어서, 25살이 되던 해에는 유도 4단을 따면서 유도 마스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도 4단은 검은 띠를 매는 유단자고, 보통 유도를 시작하고 7~8년이 지나야 딸 수 있다고 해요. 이건 당시 유럽인들 중 최고 등급이었습니다. 클라인은 유도에 꽤 진심이었어요. 나중에는 파리에 유도 도장을 열고, 스물여섯 살 때는 유도 교본을 집필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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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ves Klein


이미 20대에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가졌던 클라인은, 학창 시절도 상당히 비범하게 보냈습니다. 클라인은 19살 때, 친구들과 해변가에서 시간을 자주 보내곤 했는데요. 친구들과 바닷가에 누워 ‘세상 나누기 게임’을 했다고 해요. 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 중 우리의 삶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을 골라 갖는 게임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언어’를 골랐고, 다른 친구는 ‘대지’를 골랐어요. 그리고 클라인은 ‘지구를 둘러싼 무형의 공간, 하늘’을 골랐습니다.


상당히 철학적이고 추상적인데요. 이렇게 클라인은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을 통해 예술을 접하고, 친구들과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당시로선 낯선 동양의 스포츠를 즐기면서 예술가적인 시절을 보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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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있는 이브 클라인 © Yves Kle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ADAGP, Paris, 2017. Photo © Georges Véron.


그런 클라인이 예술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건 1955년, 27살 때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였어요. 당시 클라인은 한 가지 색깔로만 구성된 단색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살았던 도시, 여행차 다녀온 곳들에서 발견하거나, 영감받은 강렬한 색깔 하나로만 그림을 구성했던 것이었는데요. 이것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비범한 시도였어요.


당시 클라인이 주로 사용했던 색은 주황색,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파란색이었습니다. 클라인은 각각의 색깔이 각기 다른 지역을 상징하게끔 했는데, 관객의 반응은 클라인이 기대한 것과 달랐다고 해요. 관객은 이 색깔들이 각각의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뉜 하나의 작품일 거라고 보고 일종의 모자이크를 보듯 각 작품들을 연결지어서 감상했습니다. 클라인의 의도와는 완전히 상반되게 감상한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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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Klein, Yves Peintures, 1954, copy from the original.  © Yves Kle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아무래도 한 가지 색으로만 구성된 단색화 개념이 당시 관객에게는 낯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은데요. 클라인은 이 모습을 보고 힌트를 얻습니다. 단색화 개념을 제대로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색깔이 아니라 딱 하나의 색깔로만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죠. 그리고 자신의 주요 컬러로 파란색을 선택합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클라인이 어렸을 때, 친구들과 세상 나누기 게임을 하면서 골랐던 것은 ‘지구를 둘러싼 무형의 공간’인 하늘이었습니다. 파란색은 이 하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이기도 해요. 그리고 클라인은 파란색이 추상적인 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자연을 이루는 색은 매우 다양해요. 빨간색 하면 빨간 장미를 떠올릴 수도 있고, 피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초록색은 산, 나무, 꽃, 풀 등을 떠올릴 수 있고요. 노란색은 노을, 병아리, 마찬가지로 꽃 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란색은 하늘과 바다 정도에서만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늘과 바다는 실제로 파란색이 아닙니다. 빛의 산란으로 그 색깔로 보일 뿐이죠. 그렇다 보니 클라인에게 파란색은 매우 추상적이고 매력적인 색으로 여겨졌다고 해요. 그렇게 파란색에 집중해 본인의 단색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인터네셔널 클라인 블루, ‘IKB’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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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Klein's "Le Buffle," estimated in the region of $10 million, offered as part of Christie's "Post-War and Contemporary Art" sale, London, 4th March 2010. Photo: Nathan King/Alamy.


클라인은 1955년, 27살 때 프랑스 파리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셰 아담’이라는 화방을 방문해요. 이곳은 1898년부터 3대에 걸쳐 운영해 온 유명한 화방이라고 전해집니다.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 샤갈, 달리, 프랜시스 베이컨 등 유명 예술가들이 여기서 재료를 사기도 했죠. 클라인은 여기에서 파란색 안료를 사기로 합니다. 안료는 분말 형태로 된 착색제를 의미해요. 물이나 기름이나 다른 재료를 더하면 물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인데요. 


이곳에서 클라인은 두 가지 안료를 고민했어요. 하나는 18세기부터 사랑받아 온 재료인 ‘프러시안 블루’였습니다. 푸른빛을 띠긴 하지만 남색에 가까운 느낌을 자아내는 색이죠. 나머지 하나는 ‘울트라마린’이었습니다. 르네상스 때부터 사랑받아 온 역사가 깊은 색깔인데, ‘청금석’이라고 불리는 보석을 갈아서 만든 물감이라 매우 비쌌어요. 청금석 자체를 구하기도 힘들어서 원가도 매우 비쌌고요. 그 때문에 울트라마린은 황금보다도 비싼 금액을 자랑했는데요. 색깔은 비싼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아주 맑은 바다의 깊은 부분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밝은색을 가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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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마린을 활용한 작품인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


이브 클라인은 이때를 회상하면서, ‘프러시안 블루가 어둡고 무거운 반면, 울트라마린은 빛이 없는 밀폐된 방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브 클라인은 일단 두 가지 안료를 모두 구매해 왔는데, 사 온 안료를 물감처럼 쓰기 위해 바인더와 섞어서 캔버스에 바르는 순간 실망했어요. 클라인에 따르면 “안료의 각 입자가 개별적으로 죽임당한 것 같았다. 마법의 색은 사라졌다”라고 하죠. 


실제로 안료를 다른 재료에 풀어서 용해하게 되면, 안료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감은 사라지게 됩니다. 고체에서 액체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손실되는 질감과 색감이 있기 마련인 건데요. 클라인은 건조된 분말 상태 그대로의 벨벳 같은 질감과 색감의 강렬함이 화면 위에 유지되길 바랐어요. 하지만 이건,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브 클라인은 자신만의 색을 만들기로 결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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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nna, AUSTRIA: A visitor looks at paintings by French artist Yves Klein during the exhibition “The Blue Revolution” at the Mumok museum in Vienna, 08 March 2007. A comprehensive retrospective is being dedicated to Yves Klein at the Mumok museum. Courtesy of Getty Images.


당시 클라인은 색감과 질감을 유지할 수 있는 안료를 만들기 위해 아담이라는 남성과 협업하기 시작합니다. 아담은 실력 있는 기술자였어요. 화가들이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이걸 기술적으로 실현해 주곤 했죠. 그렇게 클라인과 아담은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질감과 색감을 살릴 수 있는 안료 개발에 몰두하는데요. 좀처럼 해결이 쉽진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담이 프랑스 화학 회사 ‘론 플랑크’에서 일하는 화학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화학자는 아담에게 로다파스 M이라는 합성수지를 알려줬어요. 이 합성수지는 원래 지도를 방수 처리하는 용도로 개발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에 프린트된 안료와 섞이지 않고, 그 위에 코팅되었죠. 그래서 이 조합은 이브 클라인이 원하던 안료의 분말상태일 때의 매트하고 입자감 있는 질감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벨벳 같은 질감도 유지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또 이걸 붓이 아닌 롤러로 칠하면, 질감이 더 잘 살아났고요.


그렇게 클라인의 파란색은 단순히 색을 섞어서 만든 물감이 아니라, 안료가 그 질감을 유지할 수 있게 입자와 재료를 고려한 덕분에 특허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클라인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이 색깔을 IKB, 이브 클라인 블루라고 이름 붙였죠.

 


 

이브 클라인이 자신만의 색을 활용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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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Klein, Table 'IKB®', 1961 © Yves Kle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1957년, 클라인은 파리의 한 갤러리 전시를 통해 IKB를 선보여요. 독특한 점은 이 물감을 캔버스에 펴 발라서 선보인 게 아니라, 순수한 안료 그 자체로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클라인은 안료를 접시에 담아 전시했어요. 물질 자체로서의 안료를 탐구하려는 시도였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번에도 클라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것이 어떤 회화적인 시도라고 보기보다는, 장식적인 요소일 거라고 받아들였죠. 전시 공간을 꾸미는 인테리어용 소품 정도로만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안료 자체를 예술로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하지만 1960년, IKB를 만들고 3년 만에 클라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당시 클라인은 "Soleau envelope"(솔로 봉투)를 1960년 5월 19일에 프랑스 국립산업재산권원(INPI)에 등록했어요. 이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색 자체를 특허 낸 것이 아니에요. 당시 클라인이 살던 프랑스 법상 색 자체는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클라인이 등록한 것은 ‘안료와 합성 수지의 특정 조합 기법’이었어요. 


비록 기술적 등록에 불과하긴 했지만, 많은 이들은 이 시도를 신선하게 여겼습니다. 자기 이름을 딴 색을 특허  낸 화가가 최초였기 때문에, 그가 만든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죠. 그리고 이 덕분에, 클라인이 이전에 시도하던 단색화 기법이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는 하나의 색깔만 이용하는 것이 낯설었지만, 이제는 화가가 특허낸 색깔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졌기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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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Klein, Untitled Anthropometry (ANT 106), 1960, Courtesy of Yves Klein Archives


당시 클라인은 롤러에 IKB를 묻혀서 캔버스에 칠한 단색화를 선보였는데, 색을 만들고 1년 만에는 좀 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합니다. 롤러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을 모델로 하기로 한 것이었죠. 앞서서 살펴보았듯이 클라인은 어렸을 때부터 좀 독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클라인은 붓이나 롤러 같은 도구가 지나치게 사람의 손과 가까이 있다고 보고, 색깔이 좀더 독립적으로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 위해 본인의 손을 사용하지 않기로 해요. 그리고 모델의 몸에 IKB를 바르고, 그들이 캔버스에 눕거나, 밀착한 채로 움직여서 인체의 윤곽과 자국이 IKB색으로 남게끔 했습니다. 이건 유도를 하며 클라인이 보고 경험한 인체적인 움직임에서 영감받은 시도이기도 했어요.


클라인은 1960년, IKB의 특허를 낸 해에 모델들이 IKB 바른 채 캔버스 위에서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해요. 이때 재료와 도구, 그리고 작가 사이 거리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클라인은 턱시도와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지휘자처럼 손짓만으로 모델이 움직이게 지시했습니다. 이 작품은 상반된 반응을 끌어냈어요. 퍼포먼스를 직접 목도한 한 관객은 “어떤 이들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고, 어떤 이들은 박수를 쳤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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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Just Blue Masterpieces by Yves Klein: Yves Klein, Anthropometries de l’époque bleue, 1958 © Yves Kle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작품은 난해하긴 했습니다. 예술가가 정장 차림으로 알몸의 모델들을 지휘하고, 모델 몸에 묻은 물감이 캔버스에 묻어나는 모습은 확실히 새로웠죠. 하지만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에 클라인은 당황합니다. 여기에 더해, 클라인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해요. 당시 이 작품을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촬영해 칸 영화제에 상영했는데, 이 작품과 함께 곤충 식당, 돼지 도살장, 거북이 피 마시는 사람들 등 기괴한 영상들을 함께 담았습니다. 클라인은 자신의 작품 세계가 저급하고 더러운 것들과 함께 소개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요. 그리고 이 영화를 보던 중 처음으로 심장마비 증상을 겪습니다. 그리고 1962년, IKB 특허를 따고, 이 누드 퍼포먼스를 벌인지 2년 만에 클라인은 두 번의 심장마비 증세를 더 겪고 세상을 떠나게 돼요. 향년 34세의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클라인은 사후에 오히려 더 유명해지게 돼요. 이전까지는 지나치게 도발적인 예술로 논쟁의 여지에 있었지만, 후에 현대미술이 더 다양해지면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퍼포먼스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되었죠. 최초의 색깔 특허를 낸 예술가이자, 아시아 문화를 현대미술에 적용한 예술가, 이브 클라인의 예술 세계를 여러분은 어떻게 접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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