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이 사랑한 예술 작품들

2025-11-17
조회수 200

Maurizio Cattelan, America, 2016 © Guggenheim Museum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정말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아트러버들이 주목하는 건, 백악관 집무실에 원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걸어둘 수 있다는 점이에요. 현재 집권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집권 당시 반 고흐의 작품을 걸고 싶어 했는데요. 담당 큐레이터는 그 작품은 걸 수 없다며, 다른 작품을 제안했어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아메리카>였습니다. 


트럼프 정부 측은 작품을 거절했어요. 작품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다분히 풍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엄청난 화제를 모았죠. 이후 이 작품은 도난 사건을 겪기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작품의 인지도가 매우 높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최근 뉴욕 소더비 경매에 출품되었어요. 추정가는 천만 달러(한화 약 140억 원), 경매는 오는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트럼프가 거절한 작품, <아메리카> 비하인드

트럼프의 연설 모습 © CNN


트럼프 정부가 반 고흐 작품을 걸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당시, 이에 직접 소통한 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큐레이터였습니다. 큐레이터는 “고흐 작품은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동이 금지되어 있어, 집무실의 사적인 컬렉션으로 임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죠. 대신, <아메리카> 작품은 어떻겠느냐는 도발적인 제안을 합니다.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작품을 보는 순간 함의를 알 수 있었어요. 우선, 인간의 분비물이 닿는 변기를 18K 순금 100%로 만들었다는 것은 상당히 사치스럽습니다. 더불어 작품의 제목이 <아메리카>라는 것 또한 미국의 자본주의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죠.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입니다. 바나나를 덕 테이프로 벽에 붙인 작품 <코미디언>(2018)을 선보인 작가이죠. 그리고 그 작품을 내놓기 2년 전인 2016년, <아메리카>를 제작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딱 두 달 전이었어요. 


집 안의 트럼프 © ABC News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된 그의 집 인테리어는 그가 가진 부를 매우 잘 보여줬어요. 집안 곳곳은 24K 순금 금박으로 리모델링되어 있었고, 바닥은 대리석, 샹들리에는 크리스털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18세기 베르사유 궁전에서 영감받은 것이라고 하죠. 이 집이 상당히 화제가 된 탓에, 황금으로 만든 변기는 트럼프의 사치스러운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카텔란은 한발 물러섰어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주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꼬집기 위함이었다”라고 말했죠. 대신, 트럼프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품이 담고 있는 유일한 의미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 그럼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와 나눈 이메일이 공개된 덕분이었습니다.


큐레이터의 기세는 예술가의 태도와 달리 매우 대단했어요. “대통령과 영부인이 설치 작품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마르셀 뒤샹의 1917년 작 <샘>을 참조해 만든 이 작품을 제안하고 싶다. 까다로운 작품이긴 하지만, 설치와 관리에 대한 모든 지침을 제공하겠다”라고 말했죠.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큐레이터는 트럼프 정부에 대해 수차례 비판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해요. 당시 미국 국민이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강한 호불호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이 사건은 정치적 이슈가 얽히며 더 뜨거워졌습니다. 작품의 인지도는 매우 높아지게 되었죠.


100kg짜리 순금 변기, <아메리카>의 도난 사건이 일어나다

Maurizio Cattelan, America, 2016


이후 2019년, 작품 도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작품은 윈스턴 처칠의 생가인 블렌하임 궁전에서 전시되고 있었어요. 이 궁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는데, 작품은 궁전의 화장실에 작동할 수 있게 설치되었습니다. 이 자체로 엄청난 충격이자 화젯거리가 됐죠. 관객은 누구든 예약을 통해 이 화장실의 순금 변기를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도난당할 위험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죠. 


궁전 측에서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관에 연결된 채 설치’되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는 상당한 오판이었습니다. 전시 개막 행사가 끝나고 단 몇 시간 후인 새벽 5시에 작품이 도난당했기 때문이죠. 범인들은 전시된 작품을 확인한 뒤 다음 날 새벽에 궁전에 침입해, 정확히 5분 30초 만에 작품을 뜯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수가 생겨, 세계문화유산인 궁전이 상당수 침수되기도 했죠. 


도난당한 작품은 여러 개로 나뉘고 녹여진 채로 판매되어, 현재는 찾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금을 팔아서 번 돈도 회수되지 않았고요. 대신 범인은 잡혔습니다. 사건 발생 6년이 지난 올해인 2025년 6월에 형을 선고받았죠. 도난 직후부터 범인이 잡힌 후, 그리고 선고가 될 때까지 소식이 꾸준히 전해지며 작품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전시 전경 © Maurizio Cattelan


작품은 한 점만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대개 카텔란 작품은 3점씩 제작되기 때문에, 그중 한 점이 시장에 나온 것이죠. 소더비는 작품의 추정가를 천만 달러로 매겼어요. 한화로는 약 140억 원 정도의 금액입니다. 기존 카텔란의 작품보다도 상당한 고가이죠. 이번 추정가는 기존에 경매 회사에서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매겨졌다고 해요. 작품이 순금 100%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작품에 사용된 금 101.2kg의 시세를 기준으로 추정가를 정했다고 해요. 이런 식의 방식은 사상 처음입니다. 


작품은 오는 11월 18일 화요일 경매가 진행될 예정인데요. 과연 얼마에 낙찰될지, 최근 미술시장 상황이 썩 좋지 않은데, 낙찰이 되기는 할지가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로 손꼽혀요. 


<코미디언>을 거절하고 트럼프가 선정한 작품들

백악관에 전시된 트럼프의 초상화 © Newsweek



트럼프의 집무실엔 별명이 있습니다. ‘금박으로 둘러싸인 갤러리’죠. 이번 2기 행정부 때 공간 곳곳을 금박으로 장식했고, 작품 수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거의 20점에 달하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에요. 이전에 집권한 바이든은 역대 대통령 초상을 6점 걸었었고, 오바마는 단 2점만 걸었습니다.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하죠. 


그중 5점은 본인의 초상화입니다. 가장 이목을 끄는 작품은 지난 2024년,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암살 시도를 당했던 당시 촬영된 사진으로 만든 초상화예요. 이 사진은 사건 당시의 혼란함 속 당당한 트럼프의 모습을 극적으로 포착하면서, 예술 작품보다 더 예술적인 사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이를 그대로 활용해 초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 외에도 성조기와 트럼프를 함께 그린 초상화들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아는 유명한 화가나 미국 예술가의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트럼프가 얼마나 자기애가 강한 사업가이자, 정치인인지를 헤아려볼 수 있는 지점이지요. 


조 바이든과 오바마의 작품들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모습 © White House


조 바이든은 대부분 오바마 전 대통령이 걸어둔 작품을 거의 그대로 걸어두었습니다. 오바마는 예술에 대해 꽤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요. 선정한 작품 역시 흥미롭습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차일드 하삼의 작품이 있어요. 차일드 하삼은 인상주의가 한참 유럽에서 유행하고, 미국으로 그 유행이 전파되던 당시 미국적인 방식으로 인상주의를 그려낸 인물입니다. 


인상주의가 태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유럽의 인상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 인상주의자들도 빛을 빠른 붓질로 포착하는 시도를 선보였어요. 대신 유럽과는 다른 미국의 풍경을 주로 그렸죠.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대신 이후 이어진 후기 인상주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미국과 유럽의 인상주의가 크게 달라져요. 


차일드 하삼, 비 내리는 거리, 1917


1917년 작 <비 내리는 거리>가 있어요. 작품은 비 내리는 미국의 풍경을 인상주의적인 붓질로 포착했습니다. 높은 건물이 그림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또 이 건물의 3분의 2 정도를 성조기가 빼곡하게 뒤덮고 있어요. 미국인이 그린 정말 미국적인 회화 같은 느낌입니다. 


이 외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휘트니 미술관에서 대여한 에드워드 호퍼의 풍경화가 있어요. 호퍼는 미국을 상징하는 예술가입니다. 미술을 시작할 당시, 호퍼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은 애슈캔 학파에 속해있었습니다. 애슈캔 학파는 ‘예술가란 본인이 머무는 공간의 고유한 특징을 가장 잘 포착하는 사람’이라는 논조 하에, 뉴욕의 생활상을 작품에 그려낸 예술가 집단입니다. 덕분에 호퍼는 미국의 풍경을 정말 많이 그렸죠. 그런데 호퍼의 그림은 조금 독특했습니다. 당시 애슈캔 학파 화가들은 뉴욕의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마천루를 그리곤 했어요. 하지만 호퍼는 다들 높은 빌딩을 그릴 때, 그 빌딩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듯 그려냈어요. 그러면서 빠른 성장을 이룬 대도시 속 사람들의 고립감을 담아냈죠.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모습 © White House


얼마 안 가 미국의 상황은 달라집니다. 대공황이 이어지며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 일자리를 찾는 모습이 펼쳐졌죠. 애슈캔 학파 화가들은 거리에 나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어요. 그 모습이 당시 뉴욕의 풍경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호퍼는 이 타이밍에 또 전혀 다른 풍경을 그립니다. 교외로 나가 텅 비어버린 풍경을 담아냈죠. 다들 일자리를 찾아 도심으로 몰려들다 보니, 텅 비어버린 베드타운을 포착했던 겁니다. 그의 그림에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고립감과 자절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호퍼는 남들이 건물을 그릴 땐 사람을 그리고, 사람을 그릴 땐 건물을 그렸습니다. 애슈캔 학파의 작가들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지만, 이런 시도가 오히려 미국의 진짜 모습, 그리고 더 깊은 사유가 담긴 모습을 담아냈다고 평가받으면서 호퍼는 오늘날까지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과 지지받고 있어요. 


에드워드 호퍼, Cobb's Barns, South Truro (1930-1933)


오바마는 호퍼가 교외의 텅 빈 풍경을 포착한 풍경화를 백악관에 걸어두었습니다. 공허하지만, 이곳에도 생활이 있고 사람들의 감정이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그림들이었어요. 이 그림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미국의 성취보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감정 하나하나를 헤아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대통령이 선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리더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인 셈이지요. 


흔히 예술 작품은 세계 공용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트럼프와 오바마가 선택한 작품을 살펴보면, 이들의 정치적 선택과는 별개로 한 사람으로서 추구하는 가치관과 캐릭터를 헤아려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

▶ 에드워드 호퍼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5가지 키워드

▶ 트럼프 사진으로 보는 이미지의 선전 효과 feat. 자크 루이 다비드


Market News

예술가가 일으킨 스캔들, 미술 시장의 경매 소식, 예술계 크고 작은 행사 등 지금 가장 뜨거운 현대미술 소식을 정리해, 그 안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아트뉴스 | 이번 주 가장 이목을 끈 콘텐츠 TOP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