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의 개인전이 14년만에 열립니다. 이 전시는 1998년부터 2023년까지, 25년간 뱅크시가 제작한 작품들을 집대성했어요. 뱅크시 작업의 핵심이 되는 건, 스텐실 작업입니다. 스텐실은 종이를 오려 벽에 대고 스프레이를 뿌리면, 오려진 모양대로 스프레이가 나오는 기법이에요. 어린 아이들이 사용하는 불어펜 같은 원리죠. 이런 스텐실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거리 예술은 대부분 국가에서 불법이지만, 스텐실 작업을 활용하면 빠르게 완성한 뒤 도망치기 쉽죠.
이번 전시 제목 Cut&Run도 여기서 왔습니다. 스텐실 작업을 위해 종이를 자르고, 작업 후 도망치던 뱅크시 작품 방식에서 따온 것이죠.
이 전시는 뱅크시에게 매우 특별합니다. 그동안에는 이렇게 길고 공식적인 전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뱅크시가 선보인 작품 대부분 불법으로 진행된 것이며, 이 작품들은 범죄혐의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전시를 진행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진행하던 전시도 전시 기간이 매우 짧았으며, 당일날 게릴라 형태로 전시 소식을 전했습니다. 또 불법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작가이기에, 뱅크시의 전시 소식이 전해지면 늘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뱅크시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제는 내 작품이 불법이 아닌 예술로 감상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선보인 작품과 제작 비하인드 씬을 공개하기로 했고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건,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18억원에 낙찰된 <Love is in the Bin>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낙찰과 동시에 파쇄됐고, 이후 시장 가치가 엄청나게 뛰었어요. 3년 뒤인 2021년 33억 원에 다시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경매 이후 짧은 기간 내에 재거래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그 기간 동안 15억 이상 가격 상승이 있던 것 또한 이례적이에요. 이때문에 <Love is in the Bin>은 현대미술사에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이 되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품을 만든 설계 모델도 공개된다고 합니다.
많은 아트러버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번 뱅크시의 개인전, <CUT&RUN>.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사에 또 하나 역사를 쓸 전시이지만, 영국에서 진행중입니다. 아쉽게도 보러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뱅크시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어요.
[1] 뱅크시는 누구인가: 저항정신과 반골기질 그 자체, 뱅크시
벽돌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2001), 뱅크시의 첫번째 자서전
뱅크시는 동시대 가장 비밀스러운 예술가입니다. 이름도 익명이고요, 알려진 정보도 많지 않죠. 국적은 영국, 나이는 49세로 추정됩니다. 이 정보들은 뱅크시가 쓴 첫 번째 자서전, <벽돌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2001>를 통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에요. 이 책을 통해 밝힌 내용 외에, 뱅크시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뱅크시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저항정신'입니다.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미술시장에 저항하고, 정치 권력에 저항하죠. 이러한 저항정신은 뱅크시의 나이 11살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뱅크시는 교내 폭행사건에 연루되었는데요. 사실은 전혀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주동자들이 입을 맞춰 뱅크시에게 덮어씌웠다고 해요. 뱅크시는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고, 심지어 어머니도 뱅크시를 믿지 않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잘못을 인정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인정하지 않는 너의 태도는 역겹기까지 하다”고 말했죠. 그뒤로 뱅크시는 학교와 집안 모두에서 입을 다문 채 지냅니다. 이후 학교에서 결국 퇴학당했고, 뱅크시는 거리문화, 그래피티에 관심가지며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래피티 문화는 뱅크시가 가진 저항정신과 아주 잘 맞았습니다. 그래피티의 가장 큰 특징은 ‘태깅’인데요. 태깅은 도시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그래피티 문화 중 하나입니다. 이는 모두 불법이었지만,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태깅을 도심 곳곳에 새기며 박탈당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죠. 뱅크시 역시 태깅을 했지만,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처럼 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항정신을 단순 피해의식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웃을 수 있는 똑똑한 작품을 선보였죠.
[2] 뱅크시의 작품세계: 전쟁, 권력, 시스템에 대한 저항
Armed Dove of Peace
권력의 영향이 있는 곳이라면 뱅크시는 언제든 작품 각을 봤습니다. 이 작품은 비둘기가 방탄 조끼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비둘기의 심장 부분엔 총구가 겨눠진 걸 볼 수 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통해 반전성향을 드러낸 뱅크시는 이 그림을 아주 똑똑하게 그려냅니다. 그림이 그려진 위치를 고려하면, 더욱 그 영리함이 돋보이죠. 그림이 그려진 장소는 팔레스타인 장벽입니다. 이 장벽의 길이는 700키로미터, 뱅크시는 이 장벽을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감옥이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 벽에 뱅크시는 전쟁 상황을 비판하는 수 많은 작업을 그려내며 직관적이고 위트있게 상황을 비판했죠. 오늘날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장벽에 가장 많은 그림을 남긴 작가이기도 합니다.
Monkey Queen
이외에도 권위에 도전하는 발칙한 작업들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침팬지로 그려낸 작업이에요. 작품 주변에 영국 국기의 컬러를 원 형태로 넣고, 왕관과 악세서리를 더해서 엘리자베스 여왕임을 암시했죠. 뱅크시는 이 작품에 이런 코멘트를 남깁니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재능이나 노력에 의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What are you looking at
뱅크시의 저항 정신은 사회 시스템에도 적용됩니다. <What are you looking at>은 CCTV를 벽으로 돌려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뱅크시는 벽에 ‘뭘 봐?’라고 적어두었죠. 전부터 뱅크시는 현대 영국에서 가장 나쁜 것 중 하나를 CCTV라고 주장했는데요. 사회를 감시하고 억압하려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문장 하나로 가볍게 지적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대중의 상당한 지지를 받으며, 뱅크시를 스타 예술가로 만들어줬어요.
Love is in the Bin (2018)
최근에는 미술 시장에 대한 저항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Girl with Balloon>이 작품은 2018년 소더비 경매에 출품됩니다. 그리고 작품이 낙찰됨과 동시에 작품은 갈렸죠. 이 퍼포먼스 이후, 뱅크시는 작품 보증서에 새로운 제목을 새깁니다. <Love is in the Bin>. 낙찰 당시 가격은 약 18억 원이었지만, 작품에 파격적인 이벤트가 더해지며 당시 시장가치 3조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뱅크시를 혐오하는 것으로 유명한 평론가, 가디언 지의 조너선 존스는 사건 이후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만큼은, 이 예술가는 예술을 오로지 상품으로만 여기는 시스템 전체에 강력한 한 방을 먹였다. 그는 해야 할 말을 했다. 예술은 돈에 질식되어 죽어가고 있다. 이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란은 예술작품이 팔리는 순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3]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시
2019년 한국에서 진행된 뱅크시의 가짜 전시회
이번 뱅크시의 전시가 의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정말 오랜만의 ‘진짜’ 뱅크시 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짜 전시도 있었어? 라고 한다면, 네. 뱅크시는 예술가중에서는 드물게 본인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전시를 겪었던 사람이에요.
위 포스터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진행됐던 뱅크시 전시 포스터입니다. 이 전시에서 내세운 슬로건은,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시’였죠. 실제로 이 전시는 뱅크시 허가를 안 받았고, 그럼에도 세계 28개국을 돌며 순회전시까지 했습니다. 뱅크시는 본인 웹사이트에 FAKE 전시라며 보이콧을 장려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은 전시의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관객들은 뱅크시가 익명의 예술가이니, 허가받기 어려웠겠지라고 짐작했죠. 전시는 잘 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앵콜 전시까지 진행합니다.
뱅크시의 파트너 스티브 라자리즈
이 전시를 기획한 건 뱅크시의 오랜 파트너, 스티브 라자리즈입니다. 둘의 협업 기간은 10년이 넘습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뱅크시를 위해 스티브는 든든한 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뱅크시의 포스터 사업을 도왔고, 전시 기획을 돕고, 뱅크시가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할 때 ‘아웃사이더, 반항아’로 뱅크시를 브랜딩한 것도 스티브였죠. 이후 2008년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결별하는데요. 이후 6년이 지난 2014년, 스티브는 본인이 소장한 작품을 뱅크시의 동의 없이 경매에 내놓습니다.
보통 경매에 작품을 내놓으면, 구매자들을 위해 작품 컨디션을 체크할 수 있는 프리뷰 전시를 기획합니다. 스티브가 내놓은 뱅크시 작품도 이렇게 첫 전시를 열었습니다. 뱅크시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진행된 최초의 전시였죠. 이를 시작으로 스티브는 <Art of Banksy>라는 제목의 무단, 회고전을 진행합니다. 이 전시가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된 가짜 전시였죠.
저작권이 뱅크시에게 있으니 법적 절차를 밟아 막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뱅크시는 그렇게 하지 않기도, 그렇게 할수 없기도 했습니다. 첫째로는 그래도 10년 넘게 일한 파트너에게 소송을 걸고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EU 특허청이 뱅크시가 얼굴과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익명의 예술가라는 점에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뱅크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저 홈페이지에 FAKE라고 달아 전시 보이콧을 장려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FAKE 전시가 아닌 진짜 자기 전시로 맞대응하는 것. 하지만 뱅크시는 현재 범죄자 신분입니다. 뉴욕에서는 지명수배자이기도 하고요. 명백히 불법인 그래피티 작업을 너무 많이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면, 자신의 범죄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를 전시하는 셈이기 때문에 그간 전시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해왔던 몇몇 전시는 뱅크시의 대리인들이 수행했죠.
하지만 이제 뱅크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범죄가 아닌 예술로 본인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늘었다’며 전시를 진행합니다. 얼굴을 꽁꽁 숨긴 채 온갖 피해를 지켜보던 그가 세상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거죠. 14년만에 진행되는 뱅크시의 개인전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 뱅크시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시리즈로 발행된 빋피의 뱅크시 콘텐츠를 확인해보세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현대미술관 GoMA, 6월 15일부터 8월 28일까지
뱅크시의 개인전이 14년만에 열립니다. 이 전시는 1998년부터 2023년까지, 25년간 뱅크시가 제작한 작품들을 집대성했어요. 뱅크시 작업의 핵심이 되는 건, 스텐실 작업입니다. 스텐실은 종이를 오려 벽에 대고 스프레이를 뿌리면, 오려진 모양대로 스프레이가 나오는 기법이에요. 어린 아이들이 사용하는 불어펜 같은 원리죠. 이런 스텐실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거리 예술은 대부분 국가에서 불법이지만, 스텐실 작업을 활용하면 빠르게 완성한 뒤 도망치기 쉽죠.
이번 전시 제목 Cut&Run도 여기서 왔습니다. 스텐실 작업을 위해 종이를 자르고, 작업 후 도망치던 뱅크시 작품 방식에서 따온 것이죠.
이 전시는 뱅크시에게 매우 특별합니다. 그동안에는 이렇게 길고 공식적인 전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뱅크시가 선보인 작품 대부분 불법으로 진행된 것이며, 이 작품들은 범죄혐의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전시를 진행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진행하던 전시도 전시 기간이 매우 짧았으며, 당일날 게릴라 형태로 전시 소식을 전했습니다. 또 불법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작가이기에, 뱅크시의 전시 소식이 전해지면 늘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고요.
거리 예술가에게 초상화 작업을 받고 있는 뱅크시 © Banksy.co.uk
하지만 뱅크시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제는 내 작품이 불법이 아닌 예술로 감상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선보인 작품과 제작 비하인드 씬을 공개하기로 했고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건,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18억원에 낙찰된 <Love is in the Bin>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낙찰과 동시에 파쇄됐고, 이후 시장 가치가 엄청나게 뛰었어요. 3년 뒤인 2021년 33억 원에 다시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경매 이후 짧은 기간 내에 재거래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그 기간 동안 15억 이상 가격 상승이 있던 것 또한 이례적이에요. 이때문에 <Love is in the Bin>은 현대미술사에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이 되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품을 만든 설계 모델도 공개된다고 합니다.
많은 아트러버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번 뱅크시의 개인전, <CUT&RUN>.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사에 또 하나 역사를 쓸 전시이지만, 영국에서 진행중입니다. 아쉽게도 보러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뱅크시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어요.
[1] 뱅크시는 누구인가: 저항정신과 반골기질 그 자체, 뱅크시
벽돌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2001), 뱅크시의 첫번째 자서전
뱅크시는 동시대 가장 비밀스러운 예술가입니다. 이름도 익명이고요, 알려진 정보도 많지 않죠. 국적은 영국, 나이는 49세로 추정됩니다. 이 정보들은 뱅크시가 쓴 첫 번째 자서전, <벽돌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2001>를 통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에요. 이 책을 통해 밝힌 내용 외에, 뱅크시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뱅크시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저항정신'입니다.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미술시장에 저항하고, 정치 권력에 저항하죠. 이러한 저항정신은 뱅크시의 나이 11살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뱅크시는 교내 폭행사건에 연루되었는데요. 사실은 전혀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주동자들이 입을 맞춰 뱅크시에게 덮어씌웠다고 해요. 뱅크시는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고, 심지어 어머니도 뱅크시를 믿지 않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잘못을 인정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인정하지 않는 너의 태도는 역겹기까지 하다”고 말했죠. 그뒤로 뱅크시는 학교와 집안 모두에서 입을 다문 채 지냅니다. 이후 학교에서 결국 퇴학당했고, 뱅크시는 거리문화, 그래피티에 관심가지며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래피티에 스탠실을 결합해 자신만의 예술을 선보인 뱅크시 © Banksy.co.uk
그래피티 문화는 뱅크시가 가진 저항정신과 아주 잘 맞았습니다. 그래피티의 가장 큰 특징은 ‘태깅’인데요. 태깅은 도시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그래피티 문화 중 하나입니다. 이는 모두 불법이었지만,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태깅을 도심 곳곳에 새기며 박탈당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죠. 뱅크시 역시 태깅을 했지만,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처럼 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항정신을 단순 피해의식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웃을 수 있는 똑똑한 작품을 선보였죠.
[2] 뱅크시의 작품세계: 전쟁, 권력, 시스템에 대한 저항
Armed Dove of Peace
권력의 영향이 있는 곳이라면 뱅크시는 언제든 작품 각을 봤습니다. 이 작품은 비둘기가 방탄 조끼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비둘기의 심장 부분엔 총구가 겨눠진 걸 볼 수 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통해 반전성향을 드러낸 뱅크시는 이 그림을 아주 똑똑하게 그려냅니다. 그림이 그려진 위치를 고려하면, 더욱 그 영리함이 돋보이죠. 그림이 그려진 장소는 팔레스타인 장벽입니다. 이 장벽의 길이는 700키로미터, 뱅크시는 이 장벽을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감옥이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 벽에 뱅크시는 전쟁 상황을 비판하는 수 많은 작업을 그려내며 직관적이고 위트있게 상황을 비판했죠. 오늘날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장벽에 가장 많은 그림을 남긴 작가이기도 합니다.
Monkey Queen
이외에도 권위에 도전하는 발칙한 작업들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침팬지로 그려낸 작업이에요. 작품 주변에 영국 국기의 컬러를 원 형태로 넣고, 왕관과 악세서리를 더해서 엘리자베스 여왕임을 암시했죠. 뱅크시는 이 작품에 이런 코멘트를 남깁니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재능이나 노력에 의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What are you looking at
뱅크시의 저항 정신은 사회 시스템에도 적용됩니다. <What are you looking at>은 CCTV를 벽으로 돌려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뱅크시는 벽에 ‘뭘 봐?’라고 적어두었죠. 전부터 뱅크시는 현대 영국에서 가장 나쁜 것 중 하나를 CCTV라고 주장했는데요. 사회를 감시하고 억압하려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문장 하나로 가볍게 지적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대중의 상당한 지지를 받으며, 뱅크시를 스타 예술가로 만들어줬어요.
Love is in the Bin (2018)
최근에는 미술 시장에 대한 저항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Girl with Balloon>이 작품은 2018년 소더비 경매에 출품됩니다. 그리고 작품이 낙찰됨과 동시에 작품은 갈렸죠. 이 퍼포먼스 이후, 뱅크시는 작품 보증서에 새로운 제목을 새깁니다. <Love is in the Bin>. 낙찰 당시 가격은 약 18억 원이었지만, 작품에 파격적인 이벤트가 더해지며 당시 시장가치 3조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뱅크시를 혐오하는 것으로 유명한 평론가, 가디언 지의 조너선 존스는 사건 이후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만큼은, 이 예술가는 예술을 오로지 상품으로만 여기는 시스템 전체에 강력한 한 방을 먹였다. 그는 해야 할 말을 했다. 예술은 돈에 질식되어 죽어가고 있다. 이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란은 예술작품이 팔리는 순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3]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시
2019년 한국에서 진행된 뱅크시의 가짜 전시회
이번 뱅크시의 전시가 의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정말 오랜만의 ‘진짜’ 뱅크시 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짜 전시도 있었어? 라고 한다면, 네. 뱅크시는 예술가중에서는 드물게 본인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전시를 겪었던 사람이에요.
위 포스터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진행됐던 뱅크시 전시 포스터입니다. 이 전시에서 내세운 슬로건은,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시’였죠. 실제로 이 전시는 뱅크시 허가를 안 받았고, 그럼에도 세계 28개국을 돌며 순회전시까지 했습니다. 뱅크시는 본인 웹사이트에 FAKE 전시라며 보이콧을 장려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은 전시의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관객들은 뱅크시가 익명의 예술가이니, 허가받기 어려웠겠지라고 짐작했죠. 전시는 잘 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앵콜 전시까지 진행합니다.
뱅크시의 파트너 스티브 라자리즈
이 전시를 기획한 건 뱅크시의 오랜 파트너, 스티브 라자리즈입니다. 둘의 협업 기간은 10년이 넘습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뱅크시를 위해 스티브는 든든한 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뱅크시의 포스터 사업을 도왔고, 전시 기획을 돕고, 뱅크시가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할 때 ‘아웃사이더, 반항아’로 뱅크시를 브랜딩한 것도 스티브였죠. 이후 2008년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결별하는데요. 이후 6년이 지난 2014년, 스티브는 본인이 소장한 작품을 뱅크시의 동의 없이 경매에 내놓습니다.
보통 경매에 작품을 내놓으면, 구매자들을 위해 작품 컨디션을 체크할 수 있는 프리뷰 전시를 기획합니다. 스티브가 내놓은 뱅크시 작품도 이렇게 첫 전시를 열었습니다. 뱅크시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진행된 최초의 전시였죠. 이를 시작으로 스티브는 <Art of Banksy>라는 제목의 무단, 회고전을 진행합니다. 이 전시가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된 가짜 전시였죠.
소더비에서 진행된 뱅크시의 허가 받지 않은 첫번째 전시 (2014) © Sotheby's
저작권이 뱅크시에게 있으니 법적 절차를 밟아 막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뱅크시는 그렇게 하지 않기도, 그렇게 할수 없기도 했습니다. 첫째로는 그래도 10년 넘게 일한 파트너에게 소송을 걸고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EU 특허청이 뱅크시가 얼굴과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익명의 예술가라는 점에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뱅크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저 홈페이지에 FAKE라고 달아 전시 보이콧을 장려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FAKE 전시가 아닌 진짜 자기 전시로 맞대응하는 것. 하지만 뱅크시는 현재 범죄자 신분입니다. 뉴욕에서는 지명수배자이기도 하고요. 명백히 불법인 그래피티 작업을 너무 많이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면, 자신의 범죄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를 전시하는 셈이기 때문에 그간 전시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해왔던 몇몇 전시는 뱅크시의 대리인들이 수행했죠.
하지만 이제 뱅크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범죄가 아닌 예술로 본인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늘었다’며 전시를 진행합니다. 얼굴을 꽁꽁 숨긴 채 온갖 피해를 지켜보던 그가 세상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거죠. 14년만에 진행되는 뱅크시의 개인전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⓵ 촌스럽지 않은 저항정신, 뱅크시의 작품 특징 5가지
⓶ 익명의 예술가가 합법적으로 돈 버는 방법
⓷ 저작권은 루저들을 위한 것: 뱅크시 철학의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