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대 미술관의 '한류' 콘텐츠 전시회 (Feat. 달항아리, 함경아)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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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yu! The Korean Wave>. ⓒ MFA Boston



미국 3대 미술관인 보스턴 뮤지엄에서 대규모 한류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제목은 <Hallyu: the Korean Wave>. ‘K-‘가 붙어 보도되는 모든 것들을 아우릅니다. 한국의 패션, 미술,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 IT 기술 등 다양하죠. 


흥미로운 점은, 전시 부제인 ‘From Tradition to Traditional’입니다. 단순히 최근 핫한 콘텐츠만 다루는 게 아니라, 한국 문화자본의 계보를 살펴볼 수 있게 구성해둔 것이 특징이에요.

 

 

미국 3대 미술관: 보스턴 뮤지엄

보스턴 뮤지엄 전경 ⓒ MFA Boston



보스턴미술관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위치한 미술관이에요. 1870년에 설립되었고, 소장품만 50만 점이 넘을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죠.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워싱턴 D.C 국립미술관과 함께 손꼽히는 곳인데요. 


이 중에서도 보스턴미술관은 '아시아 미술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소장품 50만 점 중에서 11만 5천 점이 아시아 미술 컬렉션이라고 해요. 약 20% 이상이 아시아 미술 작품인 셈이죠. 이 중에서 10만 점이 일본 미술 작품들이고, 나머지 만 오천 점 정도가 중국 미술과 한국 미술 작품입니다.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미술 작품으로는 고려 시대 은으로 만든 장식품, 고려청자, 불교미술 작품, 조선시대 도자기 등이 있어요. 그리고 2012년에는 한국 미술 전용관을 개관해서 이런 작품들을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선보이고 있기도 하죠. 그래서 한국 관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보스턴미술관의 한류 전시: 핵심은 '역사'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달항아리와 달항아리에서 영감받은 민주 킴의 원피스 ⓒ MFA Boston



이번 전시에서는 250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 작품들은 크게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의상, 예술작품, IT 기술, 영화나 K-pop, 유튜브 영상 등 문화 콘텐츠죠. 


그리고 핵심은, 전시의 부제인 From Tradition to Trendsetting이라는 문장처럼, 한국의 전통부터 최신 트렌드를 아우른다는 점입니다.



제시카 킴과 그의 한복 ⓒ MFA Boston



첫째로 의상은 한국의 전통 의복인 한복부터 다뤄요.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인 제시카 킴의 한복을 전시하는데요. 제시카 킴은 할머니 때부터 어머니, 그리고 본인까지 3대에 걸쳐서 한복을 만들어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한국에서 한복 가게를 운영했었고, 이후 어머니가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필라델피아로 이민 오게 되면서, 한복 숍을 차리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3대째 한복 제작을 하고 있는데요. 제시카 킴은 전통적인 한복뿐만 아니라 좀 더 현대적이고, 때로는 아방가르드 한 디자인도 함께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적인 한복과 함께 제시카 킴의 독특한 한복까지 아울러 선보여요.



전시 전경 ⓒ MFA Boston



한복으로 전통을 살펴봤다면, 트렌디한 한국 의상도 살펴볼 수 있게 구성해두었습니다. BTS나 블랙핑크, 에스파 같은 K-pop 아이돌이 입었던 의상들이 전시되었죠. 


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의상과 소품도 함께 전시됩니다.



세 번째 의상이 민주 킴, 네 번째 의상이 박소희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 MFA Boston



더불어 국내보다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박소희의 의상도 선보여요. 박소희 디자이너는 96년생, 젊은 디자이너입니다. 세계 3대 패션스쿨로 손꼽히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는데요. 당시 졸업 패션쇼에서 선보인 꽃을 형상화한 드레스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입소문을 타고 마일리 사이러스, 카디 비,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박소희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넥스트 인 패션> 우승자인 민주 킴, 김민주 디자이너의 드레스가 선보입니다. 김민주 디자이너는 이번에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만든 드레스를 전시해요.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의 미술

Unidentified artist, Moon jar, Korean, Joseon dynasty, early 18th century / Bequest of Charles Bain Hoyt—Charles Bain Hoyt Collection.



한편, 미술작품 역시 조선시대 작품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전통과 트렌드를 아울러 선보여요. 보스턴미술관이 가장 공들여서 소개한 건 달항아리입니다. 달항아리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커다랗고 둥그런 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말인데요. 해외에서는 이미 2000년대부터 달항아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대영박물관은 2000년, 한국실을 개관했는데요. 당시 주요 유물로 18세기 달항아리를 선보였고, 곧 달항아리는 대영박물관 내 인기 유물로 떠올랐습니다. 덕분에 박물관 가이드북에도 소개될 정도로 핵심 작품이 되었죠. 이후 알랭 드 보통 등 해외 문인이 달항아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고, 비교적 최근에는 RM이 달항아리를 껴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면서 해외 젊은 팬들에게도 달항아리의 인지도가 또 한 번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전시 전경 ⓒ MFA Boston



꾸준히 해외 팬들에게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이 계속 선보인 건데요. 이번 전시를 진행하는 보스턴미술관 큐레이터는 달항아리가 심플함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말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함과 섬세함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달항아리는 확실히 서구의 도자기 작품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아시아 도자기와도 또 다른 순수한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무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의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 초 만들어진 달 항아리가 선보입니다. 



함경아, What you see is the unseen (2016-17) © Kyungah Ha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외에도 함께 선보이는 작품으로는 조선시대 병풍, 옻칠로 만든 보석함, 보자기 등이 있습니다. 현대미술 작품 중에서는 함경아 작가의 작품 <What you see is the unseen> (2016-17)입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샹들리에를 검은 배경에 그려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샹들리에가 자수로 그려져 있어요. 놀라운 것은, 이 자수 작업을 북한의 자수 공예가들이 했다는 것입니다. 


함경아 작가의 작품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아요. 작가가 캔버스에 샹들리에 이미지를 프린트해, 중국을 통해서 북한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북한 자수 공예가들이 작품을 받아서 작품을 수놓죠. 그리고 다시 중국을 통해 다시 돌려보냅니다. 



함경아 작가 ⓒ 보그 코리아(Vogue Korea)



그런데, 함경아 작가 본인 의도대로 제작되지 않는 작품도 많았다고 해요. 북한의 자수 공예가들과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함경아 작가가 요청한 '파스텔톤'과 북한 자수 공예가가 생각한 '파스텔톤'의 기준이 달라, 연한 색감을 예상하고 보냈는데 쨍한 색감의 작품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하죠.


어려운 점은 하나 더 있었어요. 중국을 거쳐 작품을 전달하면서, 매번 다른 루트를 통해서 전달해야 했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바로 물건을 보내는 게 불가능하고, 중국을 거쳐 보낸다 하더라도 빈도가 잦아지면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어렵게 작품을 보낸다 하더라도 유실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겁니다. 한국 → 중국 → 북한 → 중국 → 한국으로 작품이 이동하다 보니, 10개의 작품을 보내면 돌려받는 건 6점 정도였다고 하죠. 

 

이렇게 북한 자수 공예가들에게 외주를 맡긴 건, 분단국가의 특성을 살리기 위함이었어요. 타국을 거쳐 작품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작품이 주는 울림이 있을 거라 본 거죠. 함경아 작가는 “공간적 거리와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뛰어넘고 익명의 타자들과 소통하려 시도하고, 마침내 소통해 만들어낸 결과가 이 작품"이라면서 과정부터 결과까지 모든 과정을 작품화합니다.


또 북한은 수공예 기술력이 전 세계적 수준이에요. 동상을 제작으로 연간 수백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고, 자수 같은 수공예도 북한의 든든한 외화벌이 수단이죠. 그뿐만 아니라 2018년에는 남북 합작으로 뽀로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을 정도로, 수공예 실력이 뛰어난 국가입니다. 


한국의 분단국가라는 특성, 북한의 뛰어난 수공예 실력을 적극 활용한 덕분에, 함경아 작가의 작품도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입니다.



한국 문화자본의 뿌리는 'IT 기술'

삼성 휴대폰과 TV 공장 전경 ⓒ MFA Boston / Courtesy of the Samsung Innovation Museum.



보스턴미술관은 한국이 이토록 찬란한 문화자본을 일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한국 IT 기술을 꼽습니다. 전시장에 적힌 내용을 보면,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서 국가 경제와 국제적 명성을 빠르게 변화시켰다’고 이야기하죠. 


그리고 이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사진 작품을 주로 선보입니다. 1970년대, 삼성전자 TV 생산라인을 촬영한 사진 작품이 있고요, 더불어 1999년 출시된 삼성 최초의 MP3 통합 휴대폰인 SPH-M2500도 함께 전시됩니다. 한류의 기반에 기술력이 있었다는 내용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죠. 



Jun Min Cho, Gangnam view of Hyundai apartment blocks, 20th century / Photo Jun Min Cho. Courtesy Museum of Contemporary History of Korea.



뿐만 아니라 1970년대 강남 풍경과 오늘날 강남 풍경을 비교한 사진을 전시하는 등, 기술력을 기반으로 발전해 온 한국의 문화 자본을 헤아려볼 수 있는 사진들을 선보여요.


 

'K-' 국뽕이 아닌 진짜 트렌드

보스턴 미술관이 선정한 '꼭 들어야 할 한국 노래 21곡' ⓒ MFA Boston



마지막으로는 K-POP, K-Drama를 비롯해 영화 등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우선 K-POP을 보면, 싸이부터 시작해서 방탄소년단까지 흥미로운 콘텐츠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보스턴미술관에서는 앞서 말했듯 이번 전시의 슬로건을 '전통부터 트렌드까지'로 잡았어요. 


그래서 K-POP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노래 21곡을 선정해서 들을 수 있게 구성해두었어요. 이 플레이리스트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소개하는 곡은 1961년 나온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에요. 보스턴 미술관은 이 곡을 "한국이 미국식 팝 음악에 첫발을 내디딘 계기이자, 전 세계 음악가들이 한국의 음악에 첫 관심을 갖게 된 곡"이라고 소개했어요.


61년도에 발매된 곡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단순합니다. 곡이 발매되었을 당시, 한국에 주둔 중이었던 미 8군 병사들이 이 노래에 매료되어 아시아 미군 기지 전체에 공유했죠. 이후 인기가 점점 커지면서 한명숙은 미 8군 엔터테인먼트 부서와 파트너십을 맺고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시아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넘어 많은 나라에 한국의 음악을 알리게 되었죠.





두 번째 곡은 1974년 발매된 신중현의 ‘미인'이에요. 신중현은 한국 록 음악의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보스턴미술관은 신중현을 들어서 한국적인 락을 선보이는데 헌신했다고 소개하면서 그 대표곡을 미인으로 꼽았어요.




다음으로는 1992년 발매된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입니다. 보스턴미술관은 현진영을 K 팝의 선구자이자 SM 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가수로 소개해요.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주요한 가수들의 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언급합니다. 또 현진영을 들어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통해 한국에 뉴 잭 스윙을 소개하고, 한국과 서구 음악을 접목시키면서 한국 음악을 발전시킨 존재라 이야기했어요. 


그 외에 선정된 곡들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1993)

듀스의 ‘나를 돌아봐'(1993)

HOT의 ‘전사의 후예'(1996)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2003)

보아의 ID: ‘Peace B’ (2000)

동방신기의 ‘HUG’(2004)

원더걸스의 ‘Tell Me’ (2007)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2009)

소녀시대의 ‘Gee’(2009)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2012)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2016)

블랙핑크의 ‘휘파람'(2016)

스트레이 키즈의 ‘Discrict 9’(2018)

에이티즈의 ‘Say My Name’(2019)

뉴진스의 ‘Ditto’(2022)


이 노래는 스포티파이 재생목록으로도 나와있습니다. 또 보스턴미술관 홈페이지에 곡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살펴볼 수 있어요. 한번 확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것과 트렌디한 작품을 아울러 소개합니다. 전통적인 작품으로는 2003년 개봉한 <올드보이>가 선보여요. 이외에는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2005년 개봉한 <웰컴 투 동막골>,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작 <시>,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 장훈 감독의 <택시 운전사>, 그리고 가장 큰 이슈였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최근 화제가 된 <미나리>를 아울러 소개합니다.


미술관 내에 짧은 클립으로 감상할 수 있는 형태이고, <기생충>의 경우 워낙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기 때문에 미술관 내에 주인공 가족의 반지하 화장실을 재현해 체험할 수 있게 해두기도 했습니다.



A Netflix Original Series Squid Game © 2021 Netflix. All Rights Reserved.



드라마도 마찬가지로 과거 작품부터 다룹니다. 2003년 선보인 <대장금>을 가장 처음 소개하고, 이후 2018년 작인 <미스터 선샤인>과 <스카이 캐슬>, 2019년 작 <사랑의 불시착>, 가장 큰 인기를 몰았던 2021년 작 <오징어 게임>, 2022년 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등을 소개합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에는 특별한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고, <부산행>이나 <설국열차>, <82년생 김지영> 같은 영화는 따로 상영회를 열기도 하는 모습입니다.



전시회 굿즈 ⓒ MFA Boston


이번 전시는 한국의 문화를 단순히 지금 뜨는 트렌드로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역사와 아울러서 전통부터 최신작까지 살펴볼 수 있게 구성해 큰 의미를 가집니다. 타국의 문화를 섬세하게 큐레이션 한 보스턴 뮤지엄의 저력이 엿보이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문화의 면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 흥미롭죠. 보스턴 뮤지엄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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