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st is Present (2010) © marina abramović archive
행위예술계의 큰 할머니라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최근 고소당했습니다. 예술가들이 고소하거나, 당하는 사건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다릅니다. 아브라모비치라는 개인을 넘어, 향후 행위예술이라는 장르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행위예술계 할머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Artist is Present (2010) © marina abramović archive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는 1946년생, 올해 78세가 된 여성 예술가예요.. 본인 스스로를 퍼포먼스 아트계 할머니라고 부르죠. 실제로 아브라모비치는 현대미술 장르 중에서도 진입장벽이 있는 행위예술계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은 작가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예술가가 여기 있다>가 있어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작품인데 당시 엄청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슈 대비, 퍼포먼스 자체는 굉장히 평범해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미술관에 앉아서 관객과 눈을 마주치는 퍼포먼스죠. 이게 전부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대신 관객은 원하는 만큼 앉아서 아브라모비치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1분이든, 10분이든, 몇 시간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아브라모비치를 바라보는 관객의 다양한 표정 © marina abramović archive
매우 단순한 퍼포먼스인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느낀 감정은 상당히 다채로웠어요. 우는 관객도 종종 있었다고 하고, 명상을 하는 것처럼 평온했다는 관객도 있었죠. 한편, 아브라모비치의 눈빛이 도발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고, 이 때문에 싸움이나 시비를 걸려고 하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물론 제지되어 끌려나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술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아브라모비치가 뭘 한건 없었어요. 그냥 관객을 응시하고, 아무 반응없이 침묵한 것일 뿐이었죠. 어떤 감정적 동요도 보이지 않고 <Artist is Present> 작품 제목 그대로 존재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오랜 퍼포먼스 아트 동반자이자 오랜 연인인 울라이가 등장했을 때 눈물을 보이며 손을 잡긴 했었어요. 퍼포먼스 내내 동요가 없던 아브라모비치가 보인 격한 반응은 많은 화제가 되었죠.
이 퍼포먼스는 3개월간 50만 명이 방문했고, 1,675명의 관객이 아브라모비치와 눈을 마주쳤다고 해요. 아브라모비치가 의자에 앉아서 관객을 바라본 시간은 총 736시간 30분. 아브라모비치는 평생 퍼포먼스 아트를 해왔는데, <예술가가 여기있다>이 작품이 평생 해온 작품 중 가장 긴 시간 진행된 거라고 해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힘과 체력, 인내력 등을 시험해보고자 했죠. 이 퍼포먼스처럼, 아브라모비치는 본인의 몸을 재료삼아서 인간의 인내력, 연약함을 보여주는 작업을 선보여오곤 했습니다.
14년 만에 진행된 고소 사건
<예술가가 여기 있다> 퍼포먼스가 있었던 당시, 이 작품이 선보여졌던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었어요. <예술가가 여기 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모비치 회고전이 진행되고 있었죠. 그런데, 아브라모비치 작업은 대부분 퍼포먼스입니다. 그리고 아브라모비치는 <예술가가 여기 있다>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다른 퍼포먼스를 동시에 할 수 없었어요.

Imponderabilia (1977) © marina abramović archive
그래서 아브라모비치는 본인이 해온 퍼포먼스를 배우들을 고용해서 함께 전시합니다. 그중에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작업에 참여한 배우가 퍼포먼스 중 7차례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했어요. 전시는 2010년에 진행됐지만, 올해 1월에 고소 소식이 전해졌으니 14년 만에야 고소를 진행한 거예요.
해당 배우가 참여한 작품,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아브라모비치 대표작 중 하나예요. 1977년 처음 선보여진 작품인데, 당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그의 연인 울라이가 알몸으로 미술관 통로에 마주 보고 서있는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런데 통로가 매우 좁아서, 두 사람 사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틈 밖에 없었어요. 관객은 알몸의 두 남녀를 스쳐서 지나가야만 했죠. 관객은 정면으로는 절대 못 지나가고, 몸을 한쪽으로 틀어서 옆으로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스킨십이 발생하는 작품이었죠.
이번에 고소한 남성 배우에 따르면, 퍼포먼스 중, 5명의 관객에게 7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요. 한 관객이 자신의 허리를 잡고 ‘기분이 좋다'라고' 말하거나, 속옷까지 다 벗은 누드 상태로 진행이 되는데 사진을 찍는 등 성적으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다섯 명의 관객은 모두 퇴장조치 되긴 했으나, 아브라모비치와 뉴욕현대미술관이 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대비나 이후 처리가 없었다는 걸 문제 삼아 고소한 거죠.
뉴욕현대미술관 측에서는 배우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해당 배우는 '그건 첫 번째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이후이지 애초에 준비한 것은 없었다'라고 반박했어요.
악질적인 예술가 흠집 내기다 VS 작품이 애초에 문제였다

Rest/Energy (1980) © marina abramović archive
이 배우가 고소한 건 아브라모비치가 아니라 미술관입니다. 근데 언론에서는 뉴욕현대미술관이 아니라 아브라모비치를 계속 언급하면서 사건을 보도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아브라모비치가 미술관보다 책임이 크기 때문인데요. 아브라모비치는 이전부터 본인 퍼포먼스를 배우를 써서 다시 진행하는 '리 퍼포먼스'를 시도해 왔어요.
퍼포먼스 아트는 순간의 예술입니다. 그 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지죠.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남게 되는데, 그렇게 남은 건 기록물일 뿐이고 퍼포먼스 자체는 사라져 버린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이 퍼포먼스 아트를 재연하고, 심지어는 사고팔기 위해 리 퍼포먼스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건데요.

AAA~AAA (1978) © marina abramović archive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 리 퍼포먼스를 적극 활용했던 작가입니다. 이 일환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인스티튜트를 설립해서 젊은 퍼포먼스 아티스트에게 자신의 행위예술을 교육하거나, 새로운 행위예술을 선보일 수 있게 인사이트를 제공해 왔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리퍼포먼스에 나섰던 작가이기 때문에, 리퍼포먼스 과정에서 생기게 되는 문제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더구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업은 수위가 매우 높습니다. 옷을 다 벗은 채로 진행하거나, 피를 흘리는 퍼포먼스가 있을 정도로 위험한 퍼포먼스도 있죠. 이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많았죠. 작품의 주인으로서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건 비난받게 되었고, 향후 '리 퍼포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목숨까지 위협하는 퍼포먼스 아트

rhythm 0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아브라모비치가 본인 스스로 퍼포먼스 아트계 할머니라고 불렀어요. 예술가가 자신한테 별명을 붙이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평론가나 갤러리에서 붙이곤 하죠. 그런데 아브라모비치는 남들이 붙인 별명이 너무 과했어요. 식인종, 악마숭배자, 마녀 등이 있었죠. 심지어 아브라모비치 조국인 세르비아에서는 ‘그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헛소리'라고 언급했고, 가족들은 ‘마리나가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가장 논란이 된 건 <리듬> 시리즈에요. 리듬 0부터 10까지 있고, 이중 가장 논란이 된 건 <리듬 0>이었습니다. 1974년 선보인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아브라모비치가 테이블 앞에 서서 관객의 행위를 받아내는 걸 보여줍니다. 관객은 테이블 위에 있는 도구로 예술가에게 어떤 행위든 해도 됐어요. 테이블 위에는 칼, 음식, 꿀, 장전된 총, 장미, 톱, 채찍, 망치 등 72개의 도구가 있었죠.

rhythm 0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아브라모비치는 옷을 입은 채로 처음 등장해서 여섯 시간 동안 테이블 앞에 서 있었는데요. 퍼포먼스가 종료된 여섯 시간 후에 아브라모비치는 옷이 다 찢겨 나체가 되었고, 얼굴은 피와 눈물범벅이 되었다고 해요. 아브라모비치는 이 작업을 후에 회상하면서, 퍼포먼스가 끝난 다음날, 일어나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 한 줌이 하얗게 변해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던 거죠.
그러면 왜 이렇게까지 작업을 하는 걸까요? 아브라모비치에 따르면, 이전에 회화 작업도 하곤 했었는데, 결국 작가의 이야기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려면 신체를 재료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러면 셀프로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물론 혼자서 하는 작업도 해왔습니다. 칼로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찍는 퍼포먼스인 <리듬 10>을 선보인 적도 있고, 알몸으로 기절할 때까지 공업용 선풍기를 얼굴에 쐤던 <리듬 4>를 선보인 적도 있어요.

rhythm 10 (1973) / rhythm 4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리듬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으로 선보였던 게 <리듬 0>이고, 관객 참여형 작품입니다. 본인 통제 밖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에 제일 위험한데요. 그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중은 관음증적이지 않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기존 작품 감상 방식은 예술가가 그린 작품을 관객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식이었는데, 아브라모비치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예술가인 본인과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객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주도하는 경험을 제공해요.
'관객이 예술가와 소통하며, 주체적으로 작품을 주도하는 경험 제공'. 이것이 아브라모비치가 계속 퍼포먼스를 하고, 리 퍼포먼스를 차용해 젊은 예술가를 교육하는 이유입니다.
행위예술과 리-퍼포먼스, 그리고 돈

© marina abramović archive
의도와 명분은 좋지만, 작품 자체는 정말 혹독합니다. 이 때문에 아브라모비치의 리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염려가 많은 거고요. 그럼에도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요. 순간의 예술인 퍼포먼스를 오래도록 세상에 전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동시에 리 퍼포먼스 개념은 후배 예술가들을 위해서도 좋은 장치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유명세에 비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했던 작가입니다. 본인 퍼포먼스가 가학적이다 보니, 연극처럼 여러 번 진행하기도 어려웠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물로서 영상이나 사진은 얼마든 복제가 가능하니 돈이 안되죠. 실제로 아브라모비치는 데뷔하고도20년간 전속 갤러리도 없었어요.

© marina abramović archive
그래서 미술 행사가 있을 때 강의를 진행하거나, 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어 활동해 왔는데요.. 리 퍼포먼스 개념이 퍼포먼스계에 잡히게 되면, 본인이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전시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사고팔 수도 있는 상품성도 생기고요. 이는 곧, 후배 행위예술가들이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 고소 사건을 통해 '리 퍼포먼스'라고 하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예술적 장치가 고도화되는 계기가 아닐까 보는 시각도 있어요. 부족한 점을 보완만 하면, 행위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이 해도 예술이 될까?

Maurizio Cattelan, Comedian (2018) / Tino sehgal, The Kiss (2003) © Artsy
현대미술 이론상으로는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을 통해 볼 수 있죠. 이 작품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바나나와 덕테이프를 벽에 붙여두었는데요. 바나나와 테이프에 대해 디테일한 가이드를 설정해 두어, 전시 기간 동안 작품이 계속 교체되어도 상관없게 기획했어요. 작품에 활용된 재료는 작품 가치와 상관없죠. 오히려 이 가이드가 담긴 보증서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또 티노 세갈의 <키스>라는 작품도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 아트로서 드물게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이에요. 작품 가격은 한화 약 1억 원, 19세기 이후 현대미술사에서 남녀의 키스를 그려낸 작품의 포즈들을 추려, 매뉴얼을 만들고, 그 매뉴얼에 따라 행위자들이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마찬가지로 명확한 가이드만 따르면, 누가 해도 상관없는 작품입니다.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 Dan Flavin © Artsy
이 외에도 댄 플래빈의 형광등 작업,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죽음의 불가능성> 등의 작품도 작품에 활용된 재료가 교체된 사례가 있어요. 이 때문에 작품의 재료인 예술가가 바뀐다고 해서, 예술성이 사라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작품을 감상할 관객의 감흥이 조금 떨어질 수는 있겠죠. 예술가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작품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현대미술 흐름에 따라 '리 퍼포먼스'개념은 도입될 것으로 보여요. 고소 사건을 통해 매뉴얼이 더 단단해지면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것으로 예상되고요. 여러분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 어떻게 느끼셨나요?

Artist is Present (2010) © marina abramović archive
행위예술계의 큰 할머니라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최근 고소당했습니다. 예술가들이 고소하거나, 당하는 사건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다릅니다. 아브라모비치라는 개인을 넘어, 향후 행위예술이라는 장르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행위예술계 할머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Artist is Present (2010) © marina abramović archive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는 1946년생, 올해 78세가 된 여성 예술가예요.. 본인 스스로를 퍼포먼스 아트계 할머니라고 부르죠. 실제로 아브라모비치는 현대미술 장르 중에서도 진입장벽이 있는 행위예술계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은 작가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예술가가 여기 있다>가 있어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작품인데 당시 엄청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슈 대비, 퍼포먼스 자체는 굉장히 평범해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미술관에 앉아서 관객과 눈을 마주치는 퍼포먼스죠. 이게 전부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대신 관객은 원하는 만큼 앉아서 아브라모비치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1분이든, 10분이든, 몇 시간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아브라모비치를 바라보는 관객의 다양한 표정 © marina abramović archive
매우 단순한 퍼포먼스인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느낀 감정은 상당히 다채로웠어요. 우는 관객도 종종 있었다고 하고, 명상을 하는 것처럼 평온했다는 관객도 있었죠. 한편, 아브라모비치의 눈빛이 도발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고, 이 때문에 싸움이나 시비를 걸려고 하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물론 제지되어 끌려나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술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아브라모비치가 뭘 한건 없었어요. 그냥 관객을 응시하고, 아무 반응없이 침묵한 것일 뿐이었죠. 어떤 감정적 동요도 보이지 않고 <Artist is Present> 작품 제목 그대로 존재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오랜 퍼포먼스 아트 동반자이자 오랜 연인인 울라이가 등장했을 때 눈물을 보이며 손을 잡긴 했었어요. 퍼포먼스 내내 동요가 없던 아브라모비치가 보인 격한 반응은 많은 화제가 되었죠.
이 퍼포먼스는 3개월간 50만 명이 방문했고, 1,675명의 관객이 아브라모비치와 눈을 마주쳤다고 해요. 아브라모비치가 의자에 앉아서 관객을 바라본 시간은 총 736시간 30분. 아브라모비치는 평생 퍼포먼스 아트를 해왔는데, <예술가가 여기있다>이 작품이 평생 해온 작품 중 가장 긴 시간 진행된 거라고 해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힘과 체력, 인내력 등을 시험해보고자 했죠. 이 퍼포먼스처럼, 아브라모비치는 본인의 몸을 재료삼아서 인간의 인내력, 연약함을 보여주는 작업을 선보여오곤 했습니다.
14년 만에 진행된 고소 사건
<예술가가 여기 있다> 퍼포먼스가 있었던 당시, 이 작품이 선보여졌던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었어요. <예술가가 여기 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모비치 회고전이 진행되고 있었죠. 그런데, 아브라모비치 작업은 대부분 퍼포먼스입니다. 그리고 아브라모비치는 <예술가가 여기 있다>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다른 퍼포먼스를 동시에 할 수 없었어요.
Imponderabilia (1977) © marina abramović archive
그래서 아브라모비치는 본인이 해온 퍼포먼스를 배우들을 고용해서 함께 전시합니다. 그중에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작업에 참여한 배우가 퍼포먼스 중 7차례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했어요. 전시는 2010년에 진행됐지만, 올해 1월에 고소 소식이 전해졌으니 14년 만에야 고소를 진행한 거예요.
해당 배우가 참여한 작품,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아브라모비치 대표작 중 하나예요. 1977년 처음 선보여진 작품인데, 당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그의 연인 울라이가 알몸으로 미술관 통로에 마주 보고 서있는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런데 통로가 매우 좁아서, 두 사람 사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틈 밖에 없었어요. 관객은 알몸의 두 남녀를 스쳐서 지나가야만 했죠. 관객은 정면으로는 절대 못 지나가고, 몸을 한쪽으로 틀어서 옆으로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스킨십이 발생하는 작품이었죠.
이번에 고소한 남성 배우에 따르면, 퍼포먼스 중, 5명의 관객에게 7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요. 한 관객이 자신의 허리를 잡고 ‘기분이 좋다'라고' 말하거나, 속옷까지 다 벗은 누드 상태로 진행이 되는데 사진을 찍는 등 성적으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다섯 명의 관객은 모두 퇴장조치 되긴 했으나, 아브라모비치와 뉴욕현대미술관이 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대비나 이후 처리가 없었다는 걸 문제 삼아 고소한 거죠.
뉴욕현대미술관 측에서는 배우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해당 배우는 '그건 첫 번째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이후이지 애초에 준비한 것은 없었다'라고 반박했어요.
악질적인 예술가 흠집 내기다 VS 작품이 애초에 문제였다
Rest/Energy (1980) © marina abramović archive
이 배우가 고소한 건 아브라모비치가 아니라 미술관입니다. 근데 언론에서는 뉴욕현대미술관이 아니라 아브라모비치를 계속 언급하면서 사건을 보도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아브라모비치가 미술관보다 책임이 크기 때문인데요. 아브라모비치는 이전부터 본인 퍼포먼스를 배우를 써서 다시 진행하는 '리 퍼포먼스'를 시도해 왔어요.
퍼포먼스 아트는 순간의 예술입니다. 그 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지죠.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남게 되는데, 그렇게 남은 건 기록물일 뿐이고 퍼포먼스 자체는 사라져 버린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이 퍼포먼스 아트를 재연하고, 심지어는 사고팔기 위해 리 퍼포먼스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건데요.
AAA~AAA (1978) © marina abramović archive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 리 퍼포먼스를 적극 활용했던 작가입니다. 이 일환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인스티튜트를 설립해서 젊은 퍼포먼스 아티스트에게 자신의 행위예술을 교육하거나, 새로운 행위예술을 선보일 수 있게 인사이트를 제공해 왔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리퍼포먼스에 나섰던 작가이기 때문에, 리퍼포먼스 과정에서 생기게 되는 문제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더구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업은 수위가 매우 높습니다. 옷을 다 벗은 채로 진행하거나, 피를 흘리는 퍼포먼스가 있을 정도로 위험한 퍼포먼스도 있죠. 이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많았죠. 작품의 주인으로서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건 비난받게 되었고, 향후 '리 퍼포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목숨까지 위협하는 퍼포먼스 아트
rhythm 0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아브라모비치가 본인 스스로 퍼포먼스 아트계 할머니라고 불렀어요. 예술가가 자신한테 별명을 붙이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평론가나 갤러리에서 붙이곤 하죠. 그런데 아브라모비치는 남들이 붙인 별명이 너무 과했어요. 식인종, 악마숭배자, 마녀 등이 있었죠. 심지어 아브라모비치 조국인 세르비아에서는 ‘그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헛소리'라고 언급했고, 가족들은 ‘마리나가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가장 논란이 된 건 <리듬> 시리즈에요. 리듬 0부터 10까지 있고, 이중 가장 논란이 된 건 <리듬 0>이었습니다. 1974년 선보인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아브라모비치가 테이블 앞에 서서 관객의 행위를 받아내는 걸 보여줍니다. 관객은 테이블 위에 있는 도구로 예술가에게 어떤 행위든 해도 됐어요. 테이블 위에는 칼, 음식, 꿀, 장전된 총, 장미, 톱, 채찍, 망치 등 72개의 도구가 있었죠.
rhythm 0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아브라모비치는 옷을 입은 채로 처음 등장해서 여섯 시간 동안 테이블 앞에 서 있었는데요. 퍼포먼스가 종료된 여섯 시간 후에 아브라모비치는 옷이 다 찢겨 나체가 되었고, 얼굴은 피와 눈물범벅이 되었다고 해요. 아브라모비치는 이 작업을 후에 회상하면서, 퍼포먼스가 끝난 다음날, 일어나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 한 줌이 하얗게 변해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던 거죠.
그러면 왜 이렇게까지 작업을 하는 걸까요? 아브라모비치에 따르면, 이전에 회화 작업도 하곤 했었는데, 결국 작가의 이야기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려면 신체를 재료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러면 셀프로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물론 혼자서 하는 작업도 해왔습니다. 칼로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찍는 퍼포먼스인 <리듬 10>을 선보인 적도 있고, 알몸으로 기절할 때까지 공업용 선풍기를 얼굴에 쐤던 <리듬 4>를 선보인 적도 있어요.
rhythm 10 (1973) / rhythm 4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리듬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으로 선보였던 게 <리듬 0>이고, 관객 참여형 작품입니다. 본인 통제 밖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에 제일 위험한데요. 그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중은 관음증적이지 않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기존 작품 감상 방식은 예술가가 그린 작품을 관객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식이었는데, 아브라모비치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예술가인 본인과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객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주도하는 경험을 제공해요.
'관객이 예술가와 소통하며, 주체적으로 작품을 주도하는 경험 제공'. 이것이 아브라모비치가 계속 퍼포먼스를 하고, 리 퍼포먼스를 차용해 젊은 예술가를 교육하는 이유입니다.
행위예술과 리-퍼포먼스, 그리고 돈
© marina abramović archive
의도와 명분은 좋지만, 작품 자체는 정말 혹독합니다. 이 때문에 아브라모비치의 리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염려가 많은 거고요. 그럼에도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요. 순간의 예술인 퍼포먼스를 오래도록 세상에 전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동시에 리 퍼포먼스 개념은 후배 예술가들을 위해서도 좋은 장치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유명세에 비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했던 작가입니다. 본인 퍼포먼스가 가학적이다 보니, 연극처럼 여러 번 진행하기도 어려웠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물로서 영상이나 사진은 얼마든 복제가 가능하니 돈이 안되죠. 실제로 아브라모비치는 데뷔하고도20년간 전속 갤러리도 없었어요.
© marina abramović archive
그래서 미술 행사가 있을 때 강의를 진행하거나, 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어 활동해 왔는데요.. 리 퍼포먼스 개념이 퍼포먼스계에 잡히게 되면, 본인이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전시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사고팔 수도 있는 상품성도 생기고요. 이는 곧, 후배 행위예술가들이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 고소 사건을 통해 '리 퍼포먼스'라고 하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예술적 장치가 고도화되는 계기가 아닐까 보는 시각도 있어요. 부족한 점을 보완만 하면, 행위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이 해도 예술이 될까?
Maurizio Cattelan, Comedian (2018) / Tino sehgal, The Kiss (2003) © Artsy
현대미술 이론상으로는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을 통해 볼 수 있죠. 이 작품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바나나와 덕테이프를 벽에 붙여두었는데요. 바나나와 테이프에 대해 디테일한 가이드를 설정해 두어, 전시 기간 동안 작품이 계속 교체되어도 상관없게 기획했어요. 작품에 활용된 재료는 작품 가치와 상관없죠. 오히려 이 가이드가 담긴 보증서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또 티노 세갈의 <키스>라는 작품도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 아트로서 드물게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이에요. 작품 가격은 한화 약 1억 원, 19세기 이후 현대미술사에서 남녀의 키스를 그려낸 작품의 포즈들을 추려, 매뉴얼을 만들고, 그 매뉴얼에 따라 행위자들이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마찬가지로 명확한 가이드만 따르면, 누가 해도 상관없는 작품입니다.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 Dan Flavin © Artsy
이 외에도 댄 플래빈의 형광등 작업,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죽음의 불가능성> 등의 작품도 작품에 활용된 재료가 교체된 사례가 있어요. 이 때문에 작품의 재료인 예술가가 바뀐다고 해서, 예술성이 사라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작품을 감상할 관객의 감흥이 조금 떨어질 수는 있겠죠. 예술가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작품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현대미술 흐름에 따라 '리 퍼포먼스'개념은 도입될 것으로 보여요. 고소 사건을 통해 매뉴얼이 더 단단해지면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것으로 예상되고요. 여러분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 어떻게 느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