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영국 현대미술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터너상'의 2026년 최종 후보 4인이 발표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상의 이름이 된 인물, 윌리엄 터너의 251번째 생일이기도 했어요. 지난해 터너 250주년에 이어, 올해도 영국은 그를 호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터너는 오랜 기간, 영국이 사랑한 예술가 탑3안에 늘 드는 인물입니다. 지난 2020년에는 시각예술가 중 최초로 영국 지폐에 담기게 되었죠. 원래 20파운드 지폐는 앞면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뒷면에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있었는데요. 2020년부터 뒷면이 윌리엄 터너로 교체되었습니다. 앞면은 그대로 엘리자베스 여왕이었고, 2024년 발행된 신권부터 찰스 3세로 바뀌었죠.

© PBS

© Bank of England
지폐에는 1799년 자화상이 실렸고, 그 배경으로 터너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1839가 수록되었습니다. 1799년은 그가 왕립아카데미 준회원으로 선출된, 자기 정체성을 새로 세운 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터너가 1818년 강의에서 한 말인 '빛은 곧 색채다(Light is therefore colour)'라는 문구와, 유언장의 서명까지 함께 실리게 되었는데요.
놀라운 점은 당시 영국 파운드화에 처음으로 새겨진 시각예술가라는 부분입니다. 그 이전 영국 지폐에는 셰익스피어, 마이클 패러데이, 에드워드 엘가 같은 작가, 과학자, 작곡가는 있었지만 화가는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잉글랜드 은행은 처음으로 시민에게 지폐에 새겨질 인물 후보를 공개했는데, 약 3만 명의 시민이 590명에 달하는 시각예술가를 추천했고, 위원회가 이를 5인의 최종 후보로 추렸습니다. 최종 후보에는 찰리 채플린, 영국 풍자화의 대가 호가스, 영국이 사랑한 도예가 웨지우드, 모더니즘 조각의 거장 헵워스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있었는데요. 이를 뚫고 윌리엄 터너가 선정되었어요. 과연, 영국이 사랑한 예술가답습니다.
터너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상 '터너상'의 귀감이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예술가이자, 터너상의 귀감이 된 윌리엄 터너의 예술세계를 다뤄보려 준비했어요.
윌리엄 터너, 고전과 현대를 잇는 가교

J. M. W. Turner, Self-portrait, 1799, Tate Britain 소장 / 윌리엄 터너의 집을 그린 작품, Frances Elizabeth Wynne, Scraps ancient and modern, 1854-1864, National Library of Wales 소장
터너는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사조인 인상주의,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예견자라고 불려요. 아이디어도 뛰어났지만, 매우 성실하기도 했습니다. 60년간 그림을 쉼없이 그렸고, 평생 3만 점이 넘는 그림을 남겼죠.
터너는 런던 코벤트 가든의 메이든 레인의 평범한 중하층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집안에 미술을 하는 이는 없었지만, 미술 신동이었습니다. 11살 때에는 동네 풍경을 그리곤 했는데, 꽤나 실력이 좋았다고 해요. 이발사였던 터너의 아버지는 '아들이 화가가 되겠거니' 하는 마음을 가지고, 본인 가게 쇼윈도에 걸어두었는데요. 그 그림이 하나둘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터너는 14살 때부터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1년만인 15세에 왕립아카데미 내에서 전시회도 엽니다. 영국에서 왕립아카데미 전시를 한다는 건, 프랑스에서 살롱전에 나가는 것과 비등할 만큼 아주 영향력 있던 일이었어요. 이후 터너는 작품 의뢰로 꾸준한 수입을 얻습니다. 보통 실력을 인정받고 그것이 수입으로 이어지는데에는 약간의 시차가 존재해요. 어느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터너는 바로 꾸준한 수입을 냈습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어요.

터너의 초기작, Clare Hall and King's College Chapel, Cambridge, from the Banks of the River Cam, 1793, Yale Center for British Art 소장
우선 터너는 집안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건축 제도사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력이 워낙 뛰어나 많은 건축가들이 터너에게 작품을 주문했다고 해요. 또, 당시에는 여행 안내서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어요. 삽화를 곁들인 여행기와 안내서가 아주 잘 팔렸고, 터너도 이런 삽화 작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터너가 그린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었던 데다가, 건축 제도사로 일하며 축적한 원근법적 완성도가 있었던 덕분이었죠. 이렇게 터너는 당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삽화 작업으로 인지도를 금세 올릴 수 있었어요. 이런 인지도는 영국 내 공장주나 은행가 같은 수집가들의 주문으로 이어졌고요.

J. M. W. Turner, Modern Rome – Campo Vaccino, 1839, Getty Center 소장
이윽고 32살이 되던 해, 왕립미술아카데미 원근법 교수가 됩니다. 직위 자체는 1837년까지 약 30년간 유지했지만, 실제로 강의를 한 건 1811년부터 1828년까지 약 17년이었어요. 강의 전달력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데다 학생 수가 점차 줄면서, 점점 강단에 오르지 않게 된 탓이죠. 그럼에도 그는 방학 때 유럽을 여행하며 세계 다양한 나라 예술작품을 보고 공부했고, 외국의 풍경까지 그려내기 시작해요.
아카데믹한 화풍을 구사하던 터너가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게 된 것은 1819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였습니다. 지중해의 빛을 경험하면서 영국에서는 본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이후 터너의 작품은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빛, 대기, 운동의 감각이 전면에 나서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비, 증기, 속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

J. M. W. Turne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National Gallery 소장
작품은 템스강 위의 철도 다리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뿌옇게 보여요.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가, 기차가 내뿜는 증기에 기차 뒤편은 뿌옇게 흐려져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뿌연 처리는 당시 미술계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저온 규칙을 어긴 시도였습니다.
일단, 터너는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해요. 원근법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것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한 대기원근법입니다. 가장 가까운 근경부터 중경, 제일 먼 원경에 이르기까지 거리에 따라 점점 뿌옇게 보이게 처리하는 기법인데, 터너의 그림은 중경부터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뿌연 걸 볼 수 있어요. 게다가 대기원근법에서는 가까이 있는 건 선명하고 밝게, 멀리 있는 건 흐릿하고 어둡게 그리는데 가까이 있는게 어두운 걸 볼 수 있죠. 터너가 왕립아카데미에서 원근법 교수로 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게다가, 명암법, 빛과 어둠을 표현하는 방식과 상당히 달랐어요. 그림을 보면, 기관차의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빛, 전체 풍경에 산란된 빛이 뒤섞이며 명확히 빛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애매합니다. 게다가 비까지 와서, 바닥에 반사된 빛이 섞이면서 매우 모호하게 느껴지죠. 그림을 본 당시 관객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어요. <비, 증기, 속도>는 1844년 왕립아카데미에 전시되었는데요. 일부 비평가는 '뭘 그린 건지 모르겠다'고 혹평했습니다. 한편, 젊은 작가들은 이 시도에 열광했어요. 전통적인 미술기법에 저항한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터너가 구사한 새로운 시도 때문이었죠.
작품을 자세히 보면, 붓질이 거칠고 빠른 걸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물감을 팔레트 나이프로 긁어내거나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있어요. 그림을 꼼꼼하게 그려내던 과거와 달리 '감각'이 더 중요시된 모습입니다.

터너의 대표작,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1838, National Gallery 소장
실제로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터너는 이 작품을 그릴 당시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달리는 기차의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밖으로 내민 적이 있었다고 해요. 당시 폭풍우가 치고 있었는데, 약 9분간 그 상태로 있었다고 하죠. 게다가 맞은편 자리에는 한 여성이 앉아있었는데도 계속 그 상태로 기차의 속도와 폭풍우를 경험했다고 해요. 그리고 1년 뒤, 이 작품을 제작해 내놓았는데. 당시 기차에서 그를 마주봤던 그 여인이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때 그 사람이구나!하고 알아챘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정리해보면, 터너의 그림은 여행자에게 도움을 줄 정도로 아주 사실적이었고, 대학에서 원근법을 가르칠 정도로 학문적이었지만 이탈리아 여행 후 감각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도는 미술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받아요.
인상주의의 선구자, 윌리엄 터너

J. M. W. Turner, Snow Storm: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1842, Tate Britain 소장
터너의 그림을 보면, 대상의 형태를 잘 구현하는 건 중요치 않아 보입니다. 터너 역시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언급했고 본인이 느낀 풍경을 그렸다 말했죠. 이처럼 감각적인 것에 집중한 시도는 빛과 대기의 인상을 포착하려 한 인상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아요. 게다가, 섬세한 붓질이 아닌 빠르게 무언가를 표현하려한 붓질도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요.

Claude Monet, The Islets at Port-Villez, 1897, Brooklyn Museum 소장
실제로 모네는 1870년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한 시기에, 내셔널 갤러리에서 터너와 컨스터블의 작품을 직접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해요. 이후 1885년에는 모네와 피사로를 비롯한 핵심 인상주의자 그룹이 런던의 그로스브너 갤러리에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이런 시도를 한 인물이 있었다. 영국 화파의 저명한 터너가 그 주인공이다.'라고 언급한 것이 전해지죠.
흥미로운 점은, 이후 인상주의가 어느정도 미술계에서 인정받게 되면서 모네는 터너의 영향을 축소하기도 했다는 점인데요. 이때문에 터너가 정말 영향을 준게 맞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터너의 영향력을 더 잘 보여주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영국이 터너를 사랑한 이유

J. M. W. Turne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National Gallery 소장
터너의 그림은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의 성과를 그림에 잘 담아냈어요. 앞서 언급한 <비, 증기, 속도>를 보면, 이 그림의 레일 위에, 기관차 앞을 질주하는 산토끼를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산토끼는 단거리에서 시속 80km까지 달릴 수 있어, 평균 시속 53km대였던 당시 기관차보다 실제로 더 빠른 동물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터너 본인이 작품을 그릴 때 옆에서 지켜본 화가 조지 레슬리는 훗날 '터너가 기차가 아니라 이 토끼야말로 속도를 상징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죠. 자연의 속도와 기계의 속도가 한 화면에서 경합하는 구도인 셈입니다. 어느 쪽의 손을 들든,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있던 영국의 시선이 그대로 캔버스로 옮겨졌다는 점만큼은 분명해요.
이건, 산업혁명으로 앞서있던 영국의 사랑을 받을만한 요소였습니다. 그렇게 오늘날, 터너는 영국이 가장 사랑한 작가가 되었고, 1984년에는 미술계 부커상이라 불리는 터너상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Photo: James Speakman/PA Media Assignments © Tate
터너상은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와 그 기부자 그룹 신미술후원자회가 설립했습니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 장려하고 테이트 갤러리의 작품 수집 지원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이들이 터너의 이름을 따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터너라는 예술가가 오늘날에는 영국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지만 생전에는 너무 새롭고 급진적인 시도를 한 탓에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게다가 노예무역의 참상을 격렬하게 시각화한 <노예선>(1840)처럼, 당대 영국이 외면하고 싶어 했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도 남겼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작가로 평가받아요. 테이트 미술관과 신미술후원자회는, 오늘날 현대미술 작가들도 훗날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 이름에 터너를 붙였습니다.

4인의 후보가 상을 나눠가진 2019 터너상의 모습. 상을 나눠가진 결정은 많은 담론을 낳았다. © Tate
또 터너는 자신의 유언장에 본인이 남긴 방대한 작품들을 영국에 기증한다는 내용을 남겼어요. 그렇게 3만 점이 넘는 터너의 작품이 영국 내에 소장중이죠. 터너상이라 이름 붙인 건, 터너에 대한 헌사였습니다. 그리고 터너상은 오늘날에 수많은 미술상의 레퍼런스가 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올해의 작가상도 터너상에서 많은 요소를 따왔죠.
터너상은 1년에 한 번씩, 매년 봄에 네 명의 후보 예술가를 선정합니다. 지난 12개월 간 선보인 작품이나 전시를 토대로 선정하는데, 매년 심사위원이 바뀐다고 해요. 후보가 발표되면 런던 테이트 브리튼이나 영국 내 다른 도시의 미술관에서 후보작 특별전이 열리는데, 2011년부터는 격년으로 런던 외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어요. 그리고 매년 12월 중 시상식 행사로 수상자를 선정하죠. 수상자는 한화 약 4,500만 원의 상금을 받고, 나머지 3인도 약 1,8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고 해요. 상금은 꽤 적게 느껴지고 이에 대한 지적도 있긴 하나, 사실 터너상은 상금 자체보다는 수상에 더 큰 의의를 두는 편입니다. 수상자가 매우 화려하고, 수상하면 온갖 갤러리에서 러브콜을 보내기 때문이죠.

2026년 터너상 후보- 왼쪽부터 마르그리트 위모, 타노아 사스라쿠, 시미언 바클리, 키라 프레이예 © The Art Newspaper
1991년에는 아니쉬 카푸어가, 1995년에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1999년에는 노예 12년을 제작한 영화감독 스티브 맥퀸이 수상했습니다. 터너상 수상자다, 혹은 후보자였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현대미술 작가에게는 매우 큰 영예인 셈이죠.
올해 터너상 후보 4인은 마르그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타노아 사스라쿠(Tanoa Sasraku), 시미언 바클리(Simeon Barclay), 키라 프레이예(Kira Freije)가 선정됐어요. 오는 9월 26일부터 미들즈브러 현대미술관(MIMA)에서 후보작 전시가 열리고, 12월 10일에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니, 관심가지고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23일, 영국 현대미술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터너상'의 2026년 최종 후보 4인이 발표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상의 이름이 된 인물, 윌리엄 터너의 251번째 생일이기도 했어요. 지난해 터너 250주년에 이어, 올해도 영국은 그를 호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터너는 오랜 기간, 영국이 사랑한 예술가 탑3안에 늘 드는 인물입니다. 지난 2020년에는 시각예술가 중 최초로 영국 지폐에 담기게 되었죠. 원래 20파운드 지폐는 앞면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뒷면에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있었는데요. 2020년부터 뒷면이 윌리엄 터너로 교체되었습니다. 앞면은 그대로 엘리자베스 여왕이었고, 2024년 발행된 신권부터 찰스 3세로 바뀌었죠.
© PBS
© Bank of England
지폐에는 1799년 자화상이 실렸고, 그 배경으로 터너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1839가 수록되었습니다. 1799년은 그가 왕립아카데미 준회원으로 선출된, 자기 정체성을 새로 세운 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터너가 1818년 강의에서 한 말인 '빛은 곧 색채다(Light is therefore colour)'라는 문구와, 유언장의 서명까지 함께 실리게 되었는데요.
놀라운 점은 당시 영국 파운드화에 처음으로 새겨진 시각예술가라는 부분입니다. 그 이전 영국 지폐에는 셰익스피어, 마이클 패러데이, 에드워드 엘가 같은 작가, 과학자, 작곡가는 있었지만 화가는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잉글랜드 은행은 처음으로 시민에게 지폐에 새겨질 인물 후보를 공개했는데, 약 3만 명의 시민이 590명에 달하는 시각예술가를 추천했고, 위원회가 이를 5인의 최종 후보로 추렸습니다. 최종 후보에는 찰리 채플린, 영국 풍자화의 대가 호가스, 영국이 사랑한 도예가 웨지우드, 모더니즘 조각의 거장 헵워스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있었는데요. 이를 뚫고 윌리엄 터너가 선정되었어요. 과연, 영국이 사랑한 예술가답습니다.
터너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상 '터너상'의 귀감이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예술가이자, 터너상의 귀감이 된 윌리엄 터너의 예술세계를 다뤄보려 준비했어요.
윌리엄 터너, 고전과 현대를 잇는 가교
J. M. W. Turner, Self-portrait, 1799, Tate Britain 소장 / 윌리엄 터너의 집을 그린 작품, Frances Elizabeth Wynne, Scraps ancient and modern, 1854-1864, National Library of Wales 소장
터너는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사조인 인상주의,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예견자라고 불려요. 아이디어도 뛰어났지만, 매우 성실하기도 했습니다. 60년간 그림을 쉼없이 그렸고, 평생 3만 점이 넘는 그림을 남겼죠.
터너는 런던 코벤트 가든의 메이든 레인의 평범한 중하층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집안에 미술을 하는 이는 없었지만, 미술 신동이었습니다. 11살 때에는 동네 풍경을 그리곤 했는데, 꽤나 실력이 좋았다고 해요. 이발사였던 터너의 아버지는 '아들이 화가가 되겠거니' 하는 마음을 가지고, 본인 가게 쇼윈도에 걸어두었는데요. 그 그림이 하나둘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터너는 14살 때부터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1년만인 15세에 왕립아카데미 내에서 전시회도 엽니다. 영국에서 왕립아카데미 전시를 한다는 건, 프랑스에서 살롱전에 나가는 것과 비등할 만큼 아주 영향력 있던 일이었어요. 이후 터너는 작품 의뢰로 꾸준한 수입을 얻습니다. 보통 실력을 인정받고 그것이 수입으로 이어지는데에는 약간의 시차가 존재해요. 어느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터너는 바로 꾸준한 수입을 냈습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어요.
터너의 초기작, Clare Hall and King's College Chapel, Cambridge, from the Banks of the River Cam, 1793, Yale Center for British Art 소장
우선 터너는 집안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건축 제도사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력이 워낙 뛰어나 많은 건축가들이 터너에게 작품을 주문했다고 해요. 또, 당시에는 여행 안내서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어요. 삽화를 곁들인 여행기와 안내서가 아주 잘 팔렸고, 터너도 이런 삽화 작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터너가 그린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었던 데다가, 건축 제도사로 일하며 축적한 원근법적 완성도가 있었던 덕분이었죠. 이렇게 터너는 당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삽화 작업으로 인지도를 금세 올릴 수 있었어요. 이런 인지도는 영국 내 공장주나 은행가 같은 수집가들의 주문으로 이어졌고요.
J. M. W. Turner, Modern Rome – Campo Vaccino, 1839, Getty Center 소장
이윽고 32살이 되던 해, 왕립미술아카데미 원근법 교수가 됩니다. 직위 자체는 1837년까지 약 30년간 유지했지만, 실제로 강의를 한 건 1811년부터 1828년까지 약 17년이었어요. 강의 전달력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데다 학생 수가 점차 줄면서, 점점 강단에 오르지 않게 된 탓이죠. 그럼에도 그는 방학 때 유럽을 여행하며 세계 다양한 나라 예술작품을 보고 공부했고, 외국의 풍경까지 그려내기 시작해요.
아카데믹한 화풍을 구사하던 터너가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게 된 것은 1819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였습니다. 지중해의 빛을 경험하면서 영국에서는 본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이후 터너의 작품은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빛, 대기, 운동의 감각이 전면에 나서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비, 증기, 속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
J. M. W. Turne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National Gallery 소장
작품은 템스강 위의 철도 다리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뿌옇게 보여요.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가, 기차가 내뿜는 증기에 기차 뒤편은 뿌옇게 흐려져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뿌연 처리는 당시 미술계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저온 규칙을 어긴 시도였습니다.
일단, 터너는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해요. 원근법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것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한 대기원근법입니다. 가장 가까운 근경부터 중경, 제일 먼 원경에 이르기까지 거리에 따라 점점 뿌옇게 보이게 처리하는 기법인데, 터너의 그림은 중경부터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뿌연 걸 볼 수 있어요. 게다가 대기원근법에서는 가까이 있는 건 선명하고 밝게, 멀리 있는 건 흐릿하고 어둡게 그리는데 가까이 있는게 어두운 걸 볼 수 있죠. 터너가 왕립아카데미에서 원근법 교수로 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게다가, 명암법, 빛과 어둠을 표현하는 방식과 상당히 달랐어요. 그림을 보면, 기관차의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빛, 전체 풍경에 산란된 빛이 뒤섞이며 명확히 빛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애매합니다. 게다가 비까지 와서, 바닥에 반사된 빛이 섞이면서 매우 모호하게 느껴지죠. 그림을 본 당시 관객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어요. <비, 증기, 속도>는 1844년 왕립아카데미에 전시되었는데요. 일부 비평가는 '뭘 그린 건지 모르겠다'고 혹평했습니다. 한편, 젊은 작가들은 이 시도에 열광했어요. 전통적인 미술기법에 저항한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터너가 구사한 새로운 시도 때문이었죠.
작품을 자세히 보면, 붓질이 거칠고 빠른 걸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물감을 팔레트 나이프로 긁어내거나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있어요. 그림을 꼼꼼하게 그려내던 과거와 달리 '감각'이 더 중요시된 모습입니다.
터너의 대표작,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1838, National Gallery 소장
실제로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터너는 이 작품을 그릴 당시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달리는 기차의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밖으로 내민 적이 있었다고 해요. 당시 폭풍우가 치고 있었는데, 약 9분간 그 상태로 있었다고 하죠. 게다가 맞은편 자리에는 한 여성이 앉아있었는데도 계속 그 상태로 기차의 속도와 폭풍우를 경험했다고 해요. 그리고 1년 뒤, 이 작품을 제작해 내놓았는데. 당시 기차에서 그를 마주봤던 그 여인이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때 그 사람이구나!하고 알아챘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정리해보면, 터너의 그림은 여행자에게 도움을 줄 정도로 아주 사실적이었고, 대학에서 원근법을 가르칠 정도로 학문적이었지만 이탈리아 여행 후 감각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도는 미술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받아요.
인상주의의 선구자, 윌리엄 터너
J. M. W. Turner, Snow Storm: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1842, Tate Britain 소장
터너의 그림을 보면, 대상의 형태를 잘 구현하는 건 중요치 않아 보입니다. 터너 역시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언급했고 본인이 느낀 풍경을 그렸다 말했죠. 이처럼 감각적인 것에 집중한 시도는 빛과 대기의 인상을 포착하려 한 인상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아요. 게다가, 섬세한 붓질이 아닌 빠르게 무언가를 표현하려한 붓질도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요.
Claude Monet, The Islets at Port-Villez, 1897, Brooklyn Museum 소장
실제로 모네는 1870년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한 시기에, 내셔널 갤러리에서 터너와 컨스터블의 작품을 직접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해요. 이후 1885년에는 모네와 피사로를 비롯한 핵심 인상주의자 그룹이 런던의 그로스브너 갤러리에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이런 시도를 한 인물이 있었다. 영국 화파의 저명한 터너가 그 주인공이다.'라고 언급한 것이 전해지죠.
흥미로운 점은, 이후 인상주의가 어느정도 미술계에서 인정받게 되면서 모네는 터너의 영향을 축소하기도 했다는 점인데요. 이때문에 터너가 정말 영향을 준게 맞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터너의 영향력을 더 잘 보여주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영국이 터너를 사랑한 이유
J. M. W. Turne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National Gallery 소장
터너의 그림은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의 성과를 그림에 잘 담아냈어요. 앞서 언급한 <비, 증기, 속도>를 보면, 이 그림의 레일 위에, 기관차 앞을 질주하는 산토끼를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산토끼는 단거리에서 시속 80km까지 달릴 수 있어, 평균 시속 53km대였던 당시 기관차보다 실제로 더 빠른 동물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터너 본인이 작품을 그릴 때 옆에서 지켜본 화가 조지 레슬리는 훗날 '터너가 기차가 아니라 이 토끼야말로 속도를 상징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죠. 자연의 속도와 기계의 속도가 한 화면에서 경합하는 구도인 셈입니다. 어느 쪽의 손을 들든,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있던 영국의 시선이 그대로 캔버스로 옮겨졌다는 점만큼은 분명해요.
이건, 산업혁명으로 앞서있던 영국의 사랑을 받을만한 요소였습니다. 그렇게 오늘날, 터너는 영국이 가장 사랑한 작가가 되었고, 1984년에는 미술계 부커상이라 불리는 터너상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Photo: James Speakman/PA Media Assignments © Tate
터너상은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와 그 기부자 그룹 신미술후원자회가 설립했습니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 장려하고 테이트 갤러리의 작품 수집 지원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이들이 터너의 이름을 따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터너라는 예술가가 오늘날에는 영국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지만 생전에는 너무 새롭고 급진적인 시도를 한 탓에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게다가 노예무역의 참상을 격렬하게 시각화한 <노예선>(1840)처럼, 당대 영국이 외면하고 싶어 했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도 남겼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작가로 평가받아요. 테이트 미술관과 신미술후원자회는, 오늘날 현대미술 작가들도 훗날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 이름에 터너를 붙였습니다.
4인의 후보가 상을 나눠가진 2019 터너상의 모습. 상을 나눠가진 결정은 많은 담론을 낳았다. © Tate
또 터너는 자신의 유언장에 본인이 남긴 방대한 작품들을 영국에 기증한다는 내용을 남겼어요. 그렇게 3만 점이 넘는 터너의 작품이 영국 내에 소장중이죠. 터너상이라 이름 붙인 건, 터너에 대한 헌사였습니다. 그리고 터너상은 오늘날에 수많은 미술상의 레퍼런스가 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올해의 작가상도 터너상에서 많은 요소를 따왔죠.
터너상은 1년에 한 번씩, 매년 봄에 네 명의 후보 예술가를 선정합니다. 지난 12개월 간 선보인 작품이나 전시를 토대로 선정하는데, 매년 심사위원이 바뀐다고 해요. 후보가 발표되면 런던 테이트 브리튼이나 영국 내 다른 도시의 미술관에서 후보작 특별전이 열리는데, 2011년부터는 격년으로 런던 외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어요. 그리고 매년 12월 중 시상식 행사로 수상자를 선정하죠. 수상자는 한화 약 4,500만 원의 상금을 받고, 나머지 3인도 약 1,8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고 해요. 상금은 꽤 적게 느껴지고 이에 대한 지적도 있긴 하나, 사실 터너상은 상금 자체보다는 수상에 더 큰 의의를 두는 편입니다. 수상자가 매우 화려하고, 수상하면 온갖 갤러리에서 러브콜을 보내기 때문이죠.
2026년 터너상 후보- 왼쪽부터 마르그리트 위모, 타노아 사스라쿠, 시미언 바클리, 키라 프레이예 © The Art Newspaper
1991년에는 아니쉬 카푸어가, 1995년에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1999년에는 노예 12년을 제작한 영화감독 스티브 맥퀸이 수상했습니다. 터너상 수상자다, 혹은 후보자였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현대미술 작가에게는 매우 큰 영예인 셈이죠.
올해 터너상 후보 4인은 마르그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타노아 사스라쿠(Tanoa Sasraku), 시미언 바클리(Simeon Barclay), 키라 프레이예(Kira Freije)가 선정됐어요. 오는 9월 26일부터 미들즈브러 현대미술관(MIMA)에서 후보작 전시가 열리고, 12월 10일에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니, 관심가지고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