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좋은 예술가’ 30년째 유지 중인 뱅크시의 비밀

202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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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공개되;ㄴ 뱅크시의 벽화

뱅크시의 작품

© Banksy


2025년 9월 7일, 영국 런던의 고등법원 건물에 뱅크시 벽화가 그려졌습니다. 판사가 법봉을 들고 시위자를 내리치는 그림이었죠. 뱅크시 그림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어딘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가득한데요. 그간 뱅크시가 그려온 비판적인 그림과 결은 비슷하지만, 판사를 조롱하는 그림을 법원 벽에 그린건 상당히 도발적이긴 했습니다. 법원은 몇 시간만에 그림을 봉쇄했고, 며칠만에 그림을 지워버렸어요. 법원 건물이 보호 건축물이기 때문에 원래 모습대로 유지해야 한다는게 이유였죠.


사실 그간 뱅크시가 그린 벽화는 보호 받아오곤 했는데요. 이 작품은 지워졌지만, 되려 지워지면서 뱅크시의 예술관을 더 잘 드러냈습니다.



[1] 뱅크시의 진정성 있는 예술관

뱅크시의 셀피

© Banksy


뱅크시는 ‘예술은 소외된 이들에게 평안을, 권력자들에겐 불안을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이번 벽화는 빠르게 봉인되고 지워지며 권력자들에게 불안을 주려는 뱅크시의 의도가 성공했음을 보여주었죠.


뱅크시가 이런 비판적인 작업을 해온 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최고의 권력을 얻은 여왕을 침팬지에 빗대 조롱하거나, 푸틴이 어린아이와의 유도 싸움에서 지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직관적이고 위트있는 작업들을 선보인바 있죠.


뱅크시의 스텐실 작업
뱅크시의 스텐실 작업

© Banksy


이 작업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길거리에 그려져, 미술관을 방문하기 힘든 소외된 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는데요. 이런 거리 예술이 시작된 건 약 35년 전이었어요. 당시 거리에는 뱅크시처럼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박탈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길거리에 ‘태깅’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담은 그림을 그려내곤 했는데요. 이런 그래피티는 모두 불법이었어요. 때문에 이들은 늘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였죠.


뱅크시는 스텐실 작업을 고안합니다. 스텐실은 미리 만들어둔 종이 틀에 스프레이만 분사하면 작품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작업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본인 작업을 많이 남길 수 있었고요. 덕분에 뱅크시는 동료 그래피티 아티스트보다 빨리 이름을 알릴 수 있었죠.


그리고 이런 행보는 동료들의 질투를 삽니다. 스텐실로 안전하고 빠르게 작업하는 뱅크시는 진정한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아니라며 비난하기 시작하죠. 뱅크시는 말합니다. “전통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고수하는 여러 규칙이 있고, 난 그걸 존중한다. 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누가 내게 뭘 해야 할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타임아웃지 인터뷰 중



[2]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발칙함

뱅크시의 도둑전시 작품

© Banksy


이후 뱅크시는 언더그라운드 예술계를 벗어나 더 큰물인 미술계로 향합니다. 이건 자칫 ‘소외된 자들을 위한 예술을 한다’는 뱅크시의 예술관과 상충되는 행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뱅크시는 발칙하고 영리한 예술가였어요. 미술관에서 공식적인 전시가 아닌 도둑전시를 감행했죠. 


도둑전시는 미술관에 몰래 작품을 거는 전시를 의미합니다. 루브르나 테이트 모던 같은 권위있는 미술관에 작품을 거는데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2-3주씩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도 그럴만한 것이 뱅크시가 전시한 작품은 자세히 봐야 이상한 걸 알수 있었습니다.


뱅크시 도둑전시 작품
뱅크시 도둑전시 작품

© Banksy


고대 뗀석기 유물에 카트 끄는 사람을 그려넣거나, 인상주의 그림에 현대 문물의 상징인 CCTV를 그리거나, 호수 앞 벤치에 앉아 상념에 잠긴 남자의 팔에 나치 완장을 채워넣는 식이었죠. 뱅크시는 이 작업을 통해 미술관의 권위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간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소수의 큐레이터가 선별한 작품들이었어요. 대중들은 이들이 정한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할 뿐이었죠. 하지만 이 도둑 전시에서 관객은 미술관보다 먼저 작품의 이상함을 눈치챘습니다. 도둑전시를 통해 뱅크시는 미술계 흐름을 이끄는 소수의 권위자, 즉 미술관 관계자들이 그 흐름을 추종하는 다수의 대중, 관객보다 우둔한 리액션을 보였다는 점을 꼬집었죠.


뱅크시의 작품 <풍선을 든 소녀>

© sotheby's


그렇게 전통적인 예술계 권력, 미술관에 제대로 한 방 먹인 뱅크시는 이후 새로운 예술계 권력, 경매회사를 정조준합니다. 자신의 작품 <풍선을 든 소녀>가 낙찰되는 순간 작품을 갈아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였죠. 이 사건 당시 뱅크시를 안 좋아하는 걸로 유명했던 평론가마저도 뱅크시가 경매회사에 제대로 한방 먹였다며 감탄했었는데요. 이 퍼포먼스에도 맥락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경매회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예술가 본인이 작품 가격을 정할 수 없고, 작품의 가치가 숫자로 규정되어 버리는데다가, 낙찰된 금액에 예술가의 몫은 없었기 때문이었죠. 뱅크시는 작품이 낙찰되는 순간 그림을 갈아버렸는데 이건 경매회사에게 상당한 난처함을 안겨준 시도였습니다. 경매회사의 높은 수수료에는 작품 판매 전, 중 후 모든 과정에서 작품의 컨디션을 보증하는 의무도 담겨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뱅크시는 미술계 강력한 권력인 미술관과 경매회사에 또한번 불안감을 선사할 수 있었어요.



[3] 끊임없는 캐릭터 빌딩

뱅크시의 사진

© Banksy


그렇게 그래피티 씬의 아웃사이더는 미술계의 테러리스트로 거듭났습니다. 이 키워드들은 모두 부정적이긴 하지만 뱅크시의 예술관은 여전히 소외된 자들을 위한 예술을 선보인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맥락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도화합니다. 미술계 수퍼 히어로로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뱅크시는 영국 사우스 샘프턴 병원에 그림을 하나 기증합니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남자아이를 그린 <게임 체인저>였어요. 그림 속  아이가 들고 있는 인형은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편의 바구니엔 베트맨과 아이언맨이 담겨 있고요. 오늘날 히어로는 의료진임을 보여준 작품이었는데요.


게임체인저
뱅크시 작품을 감상하는 의료진

© Banksy


이 작품은 1년간 병원에 전시됩니다. 의료진은 작품 앞에서 사진 찍으며 위로를 받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의료 시스템은 마비상태였고 이들의 업무량은 줄지 않았습니다. 뱅크시는 이 작품을 팔자고 제안해요. 그리고 2021년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한화 약 264억 원에 낙찰됩니다. 경매 수익금 전액은 사우스 샘프턴 병원의 직원, 환자의 복지를 지원하는데 사용되었죠.


이후 뱅크시의 기부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해요. 그간 뱅크시에게 기부 받았던 기관들이 뱅크시의 선행을 공개한건데요. 여지까지 기부한 금액으로 추정되는 것만 한화 약 535억 원 가량이라고 하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예술을 외치던 뱅크시의 예술관이 말뿐이 아닌 진심이었음을 볼 수 있던 계기였습니다.


뱅크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 Banksy


뱅크시의 이런 진정성은 30년 넘는 활동 기간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를 보여줘요. 그래피티씬의 아웃사이더에서 미술계 테러리스트, 그리고 얼굴없는 수퍼 히어로까지. 뱅크시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예술을 한다’는 본질 아래, 시기별로 자신의 캐릭터를 고도화하며 발전시켜왔어요.


이렇게 잘 만들어진 예술관이 세련된 방식으로 선보여지며 관객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죠. 그리고 이 내용을 담은 저의 첫 책,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이 출간되었습니다. 그간 많은 미술책이 미술사적 관점에서 작가가 특별한 이유를 이야기하곤 했어요. 저는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브랜딩과 마케팅적 관점에서 이들의 전략을 분석했습니다.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다고들 하잖아요. 예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익숙한 예술가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고, 아직 예술과 친숙하지 않은 분들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만든 예술가들의 비밀을 더 직관적인 언어로 이해해볼 수 있을 책입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
이정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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