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아트카, 50년간 달려온 주행형 예술작품

2025-03-29
조회수 449

© BMW


화려한 원색의 물감이 자동차 차체를 따라 흘러내리고, 바람을 가르는 자동차의 속도감을 표현한 붓질이 햇빛에 반짝입니다. 모터 스포츠와 예술이 만나 탄생한 BMW 아트카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어요. 50년의 시간 동안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자동차라는 3차원 캔버스에 펼쳐졌고, 예술과 자동차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특별한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BMW는 올해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3월 20일부터 전 세계 투어 전시를 시작했어요. 비엔나를 시작으로 홍콩, 호주, 벨기에, 중국, 남아공, 미국까지 이어질 예정이죠. BMW 아트카가 50년간 이어온 예술 이야기는 생각보다 단순한 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터스포츠와 예술의 우연한 만남 (1975)

알렉산더 칼더의 아트카 / BMW 3.0 CSL / 1975 © BMW


1975년, 프랑스의 레이싱 드라이버 에르베 푸랭은 '르망 24시' 레이스 출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BMW 3.0 CSL를 특별하게 꾸미고 싶었죠. 그래서 친구이자 당시 유명 예술가였던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에게 차량 디자인을 부탁했습니다.


칼더는 '움직이는 조각'의 개념을 제시하고 모빌이라는 예술형식을 창안한 작입니다. 그의 작품은 두 가지 이유로 미술계의 큰 지지를 받았어요. 첫째, 조각 작품을 좌대(받침대)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입니다. 고대부터 당시까지 조각 작품은 늘 좌대 위에 있었는데, 칼더는 천장에 조각을 매다는 방식으로 이 관습을 깨버렸죠. 둘째로는,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의 조각은 고정되어 정적인 형태를 가졌지만, 칼더의 모빌은 관객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작은 바람에도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칼더의 모빌 작품 © Alexander Calder 


칼더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색상 사용입니다. 그는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흰색의 원색을 절제된 방식으로 사용했는데요. 이런 색의 제한은 오히려 그의 작품에 시각적 통일감을 부여했습니다. 푸랭의 BMW에도 칼더는 이 시그니처 색상들을 대담하게 적용했죠.


아쉽게도 이 아트카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24시간 레이스 중 단 9시간 만에 기계적인 문제로 리타이어하게 됐죠. 하지만 칼더의 화려한 색상과 대담한 디자인으로 장식된 이 차량은 트랙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차량 튜닝은 주로 성능 향상이나 스폰서 로고 부착 정도였지, 예술가가 차 자체를 캔버스 삼아 작업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죠.


더 아쉬운 건, 이 차량을 디자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더가 세상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만약 BMW 아트카를 작품으로 본다면, 이 차량은 칼더의 유작이 됩니다. 하지만 이 차량은 레이스에서 받은 엄청난 주목 덕분에 BMW가 아트카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기획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기하학과 팝아트로 확장된 아트카 시리즈

프랭크 스텔라의 아트카 / BMW 3.0 CSL / 1976 © BMW

프랭크 스텔라 © Sotheby's 


칼더 이후, BMW는 당시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미니멀리즘 작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2024)와 협업합니다. 스텔라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반영해 기하학적 패턴을 차량에 그려넣었어요. 이 차량 역시 르망 24시 레이스에 출전했지만, 마찬가지로 차량 결함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어요. 


이후 BMW는 당시 미술계 트렌드였던 팝아트를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 중반, 팝아트는 이미 미술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어요. 이 흐름을 읽은 BMW는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과 협업합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아트카 / BMW 320i Turbo / 1977 © BMW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그의 작품 '행복한 눈물' © Gagosian


리히텐슈타인은 우리나라에서도 <행복한 눈물>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주로 잡지나 신문의 네컷만화나 삽화 느낌의 그림을 페인팅으로 그려낸 작품을 선보였죠. BMW 아트카에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벤데이 닷(땡땡이 무늬)을 활용해 차량이 바람을 가르는 듯한 역동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이 차량도 레이스를 완주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9위라는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여전히 성적보다는 차량의 예술성이 더 주목받았죠.


앤디 워홀, BMW 아트카의 전설을 만들다

앤디 워홀의 아트카 / BMW M1 / 1979 © BMW


이듬해, 오늘날 BMW 아트카 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차량이 등장합니다. 바로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아트카죠.


워홀의 아트카는 여러모로 특별했습니다. 우선, 차종이 달랐습니다. 이전 아트카들이 3.0 CSL이나 320i 같은 쿠페 스타일의 레이싱 차량이었다면, 워홀의 차량은 M1 차종이었죠. 이 차이 덕분인지, 워홀의 아트카는 24시 레이스에서 55대의 출전 차량 중 6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예술적인 부분에서도 차별점이 있었습니다. 워홀이 이 차량을 직접 채색했다는 점이죠. 이전까지 예술가들은 작은 차 모형에 디자인을 하고, 실제 구현은 기술자들이 담당했는데요. 워홀은 직접 붓과 물감으로 채색했고, 놀랍게도 단 28분 만에 차량 전체를 완성했습니다.





아트카 제작 당시의 워홀 © BMW


이렇게 빠르게 채색한 이유는 '속도의 예술적 표현'을 담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워홀은 "빠르게 움직이는 차에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 자체가 속도감을 담고 있다"고 말했어요. 실제로 차량을 보면 굉장히 거친 붓질로 채색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보라 등 다양한 색깔이 거칠게 칠해져 있고, 물감이 흘러내리는 모습까지 그대로 남아있죠.

이렇게 다양한 색깔로 칠한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워홀은 차량이 빠르게 달리면 이 색깔들이 모두 뒤섞여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관객이 이를 눈으로 직접 경험하길 바랐던 것이죠. 워홀의 명성과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이 차량은 BMW 아트카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텍스트로 달리는 차, 제니 홀저의 아트카

제니 홀저의 아트카 / BMW V12 LMR / 1999 © BMW


글로벌 아트 시장이 유래 없는 호황을 맞으면서, 국내에서도 프리즈 아트페어처럼 굵직한 미술 행사들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리즈 아트페어의 공식 스폰서인 BMW는 행사마다 아트카를 전시했는데요.


처음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렸던 2022년에는 제니 홀저(Jenny Holzer, b. 1950)가 디자인한 1999년 아트카가 공개되었습니다. 홀저의 아트카는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 있는 BMW V12 LMR 차종을 캔버스로 삼았죠.


이 차량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차량 전면과 후면에 영어로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요. 이 글자는 홀로그램으로 프린트되어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도록 연출되었습니다. 차량이 커브를 돌거나 움직일 때마다 글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효과를 연출했죠.

‘Light Line’ at the Guggenheim Museum © Photo: Filip Wolak © 2024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이는 제니 홀저의 작품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디자인입니다. 홀저는 텍스트 아트를 주로 선보이는 예술가로, LED 간판을 활용해 공공장소에 텍스트 작품을 설치합니다. 이 때문에 일반 광고나 간판과 구분이 어려워 작품인지 긴가민가한 경우도 있죠.


홀저 작품의 예술적 특징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BMW 아트카에 새긴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세요'라는 문장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욕망을 떠올릴 수도 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죠. 조금은 난해하지만,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넘기는 이러한 시도는 현대미술의 흐름과 맞닿아 있으며, BMW 아트카도 이 흐름을 잘 받아들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상업과 예술의 완벽한 교차점, 제프 쿤스의 주행형 아트카

제프 쿤스의 아트카 / BMW M3 GT2 / 2010 © BMW


2022년 한국에는 BMW 8시리즈와 제프 쿤스(Jeff Koons, b. 1955)가 함께한 아트카가 선보여졌습니다. 쿤스는 이미 2010년에 아트카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레이싱용 차량을 디자인했습니다. 2022년에는 대중을 위한 주행용 아트카를 선보였죠.


제프 쿤스는 '포스트 모던 키치의 왕'이라 불리는 예술가입니다. 주로 풍선 모양의 조각 작품으로 유명하며, 대중에게는 파란색 풍선 개 조각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죠. 쿤스의 작품에는 늘 놀라운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2023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파란색 풍선 개 작품(소형 도자기 버전)이 아트페어에서 관객의 실수로 떨어져 산산조각났습니다. 놀랍게도 어떤 관객이 이 파손된 작품을 '제프 쿤스의 풍선 개는 많지만 조각난 건 없다'는 이유로 5,400만 원에 구매했죠. 2019년에는 토끼 풍선 조각이 1,085억 원에 낙찰되어 쿤스는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가격에 작품이, 팔린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경매 기록은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고 있죠.


제프 쿤스와 그의 대표작 풍선 개 © Bernardaud

제프 쿤스의 BMW The 8 © BMW


파격적인 작품만큼이나 파격적인 작품 가격을 자랑하는 쿤스는 BMW 아트카 협업에서도 상업적 접근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존 레이싱용 차량 대신 주행용 차량으로 협업을 진행해 판매까지 이어갔죠. 99대 한정으로 제작된 이 차량은 35만 달러(한화 약 4억 2천만 원)에 판매되었습니다. 차량 내부에는 제프 쿤스의 서명이 각인되어 있고, 구매자에게는 쿤스와 BMW 최고 경영자 올리버 집스가 서명한 정품 인증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단 1대만 판매되었다고 해요.


디자인은 쿤스 특유의 팝한 색감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쨍한 파란색을 베이스로 속도감을 강조하는 선이 장식적으로 들어가 있고, 만화책을 보는 듯한 반짝이는 효과도 더해져 애니메이션 속 차량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런 복잡한 페인팅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페인팅 작업만 11단계로 나누어 진행했고, 차량 완성까지 수백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독일 내 전문팀이 일주일에 단 두 대만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공정과 노력이 들어간 디자인이죠.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파격을 추구했던 제프 쿤스의 면모가 차량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도로 위의 미술관, 앞으로도 달릴 BMW 아트카

© BMW


올해는 특히 BMW 아트카 50주년을 맞이해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매년 9월에 아트카를 전시했던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또 어떤 특별한 아트카를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BMW 아트카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젊고 다채롭게 확장하면서도,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캔버스를 제공했습니다. 자동차라는 기능적 객체가 예술이라는 창의적 영역과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사례로, 기업과 예술의 성공적 협업 모델을 보여준 것이죠.


차량의 성능이나 디자인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와 예술적 감성까지 담아낸 BMW의 전략은 브랜드의 격을 한층 높였습니다. 무엇보다 BMW 아트카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지 않아도, 도로 위에서 달리는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대중과 예술의 거리를 좁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릴 BMW 아트카의 새로운 여정을 함께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 더 많은 현대미술과 브랜드 협업 사례가 궁금하다면 

❶ 루이비통 X 무라카미 다카시: 럭셔리와 팝아트의 만남 

❷ 알렉산더 칼더의 공학적 예술세계

❸ 상업주의 사회 그 자체가 된 예술가, 앤디 워홀

Market News

예술가가 일으킨 스캔들, 미술 시장의 경매 소식, 예술계 크고 작은 행사 등 지금 가장 뜨거운 현대미술 소식을 정리해, 그 안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아트뉴스 | 이번 주 가장 이목을 끈 콘텐츠 TOP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