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작가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의 파사드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입니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파사드 공간에서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어떻게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고, 어떤 작품을 선보이는지 소식을 정리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그리고 비워진 파사드 공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전경 ⓒ The Met
메트로폴리탄은 1866년, 파리에 있던 미국인 그룹이 '미국에도 훌륭한 미술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설립된 국립 미술관입니다. 그렇게 2년 만에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1880년에는 현재 위치인 센트럴파크 5번가로 이전하면서 지금까지 운영 중인데요.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150만 점 가량의 소장품, 700만 명의 연간 관람객을 유치하며 세계적인 뮤지엄으로 손꼽히고 있어요.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2019년부터, 미술관의 건물 외벽 중 정면을 칭하는 '파사드' 공간에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파사드 커미션이라 이름 붙였는데요. 미술계에서 '커미션 작업'은 '주문 제작을 통해 제작한 작품'을 의미합니다. 즉, 생존 예술가들만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것이죠. 메트로폴리탄은 2019년부터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해, 다채로운 설치 작품을 미술관 외부에 전시해왔어요.

메트로폴리탄 파사드 전경. 니치 공간이 모두 비워져 있다. ⓒ The Met
파사드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인 그리스식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그리스식 건축에서는 기둥 사이에 조각 작품을 전시하곤 했습니다. 이 작품이 놓일 공간을 니치(Niche) 공간이라 칭해요.
그런데 메트로폴리탄의 니치 공간에는 조각 작품 없이, 작품이 놓일 받침대만 놓여 있습니다. 건물 외관에 총 네 개의 니치 공간이 있는데, 모두 받침대만 있고 작품은 하나도 없죠.

비어있는 니치 공간의 모습 ⓒ The Met
원래는 미술관 건립 당시, 니치 공간에 그리스, 이집트, 르네상스, 근대 조각 작품을 설치할 계획이 있었다고 해요. 메트로폴리탄이 가진 방대한 소장품의 기간들을 모두 아우른 큐레이션인데요.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조각 작품 제작이 안 되었고,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받침대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엔 메트로폴리탄 깃발이나, 진행되는 특별전 깃발이 길게 걸리곤 했죠.
그러던 중 2019년, 메트로폴리탄은 이 받침대 공간을 활용해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파사드 커미션을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뮤지엄이었던 공간이 조금 더 현대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한 것이죠.
이불 작가의 파사드 전시

<Long Tail Halo: CTCS #1> 앞의 이불 작가 ⓒ Lucia Vazquez for The New York Times
2024년부터 메트로폴리탄은 한국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와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파사드 커미션의 이름을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으로 바꾸었어요. 이후 2024년 9월 12일부터 한국 작가인 '이불(Lee Bul, b. 1964)'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는 올해 5월 27일까지 진행될 예정인데요. 파사드 커미션을 통해 한국 작가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많은 이목을 끌고 있어요.
이불 작가는 네 개의 니치 공간에 각각 하나씩 조각 작품을 전시합니다. 처음 작품을 기획할 때 작가는 이곳에 놓일 조각이 미술관을 수호하는 일종의 가디언, 신 같은 존재가 될 거라 생각했다고 해요. 동양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대문 옆의 조각들을 떠올린 건데요.

Long Tail Halo: The Secret Sharer II, The Secret Sharer III (2024)

Long Tail Halo CTCS #1, Long Tail Halo: CTCS #2 (2024)
네 개의 공간 중 바깥쪽의 두 개 공간에는 추상적인 개 조각을 선보입니다. 입체파에서 볼 수 있는 추상적인 형태를 조각에 적용했죠. 그리고 안쪽 두 개의 부분에는 인간 형태의 조각을 선보여요. 마찬가지로 형태가 추상적인데, 입체파 느낌에 그리스 로마 시대 갑옷을 연상케하는 형태를 더했습니다. 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컬렉션의 다양한 예술 양식을 추상적으로 반영한 거라고 해요.
이러한 추상성은 대상을 모호하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보편적으로 감상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실물을 보는 듯 똑떨어진 형태는 감탄을 자아낼 순 있지만, 자신의 감상이나 기억을 투영할 여지가 적어요. 하지만 추상적인 이미지는 얼마든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죠. 같은 이유에서 미술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가 추상화이기도 합니다.

이불 작가 작품 전시 전경 ⓒ Lucia Vazquez for The New York Times
메트로폴리탄 측 역시, 이불 작가의 추상적인 조각 작품에 대해 '놀라운 모호성'이라며, 현대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음을 언급했어요. 그렇게 이불 작가는 동양의 수호신 같은 존재들을 서양의 미술관 앞에 배치하면서, 뉴욕의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간 이불 작가가 선보인 작품들

이불 작가의 작품 설치 모습 ⓒ Lucia Vazquez for The New York Times
이불 작가는 1964년, 영주에서 태어난 작가에요. 예술가로 활동은 1987년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한국은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대중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국제화의 물결이 일었으며, 세기말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했던 시기였죠.
이불 작가는 당시 여성 작가이자 20대 청년 작가였어요. 혼란스러운 시기를 사회적 약자로 보낸 건데요. 이 시기 자신이 느낀 부조리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 주제도 교육, 젠더, 사회 등으로 다양한데요.
오늘날에는 드로잉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에서 선보인 조각이나, 설치미술,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작업을 선보이지만, 활동 초기에는 비판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작가의 신체 자체가 재료가 되는 퍼포먼스 작업을 주로 진행했어요.



이불,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1990, 12일간의 퍼포먼스,《제2회 일·한 행위예술제》ⓒ Lee Bul
주목할 만한 것은 1990년 작, <수난 유감-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입니다. 제목만 봐도 역사의 변곡점을 여성 작가로서 살아낸 작가의 기개가 느껴지는데요. 작품은 김포공항과 나리타공항, 도쿄의 시내 곳곳에서 12일간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이뤄졌습니다. 당시 작가는 천과 합성 고무로 제작된 의상을 입고 각 공간에 나타났는데, 그 의상이 매우 독특해요. 동물의 촉수 같기도 하고, 장기 같기도 합니다.
이 의상은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평범한 일상 공간에 비현실적 존재가 개입하면서 나타나는 행인들의 반응까지 작품의 일부입니다. 그렇게 작가는 강력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어떻게 저항해 내는지를 보여줬어요. 이런 퍼포먼스 작업은 1996년까지 진행했습니다.

이불, 히드라, 1998 ⓒ Lee Bul
이후 이불은 다른 것에 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서구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었는데요. 1998년 발표한 작품 <히드라>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은 아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작가의 모습을 커다란 풍선에 인쇄한 작품인데. 프린트된 작가를 자세히 보면, 머리장식이나 의상은 동양의 전통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어요.
그런데, 하반신으로 시선을 돌리면 망사스타킹에 하이힐을 신고 있습니다. 이건 서구의 문화적 코드에요. 동서양의 복식문화가 혼합된 모습을 한 작가는 정면을 보고 다리를 벌린 채, 매우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합니다. 이건, 그동안 서양에서 동양 여성은 순종적이고 유약하다고 여긴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을 의미해요.

이불, 히드라, 1996/2021, 천 위에 사진 인화, 공기 펌프, 1000cm x 700cm ⓒ Lee Bul
그리고 작가는 <히드라>라는 제목의 부제로 <모뉴먼트>를 붙였는데요. 모뉴먼트는 기념비를 의미합니다. 보통 돌로 제작해 훼손되지 않게 하는데, 작가는 바람 넣은 풍선에 자신의 사진을 인쇄해 기념비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렇게 기념비라는 것의 이미지에도 저항하면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가볍고 무용한 것인지를 느끼게 만듭니다.
그렇게 이불 작가는 사회 시스템,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번 메트로폴리탄에서 선보이는 추상조각들 역시 이불이 가진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데요. 메트로폴리탄 파사드 공간에서 더 많은 관객과 마주할 그의 작품이, 또 어떤 사고의 확장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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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작가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의 파사드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입니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파사드 공간에서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어떻게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고, 어떤 작품을 선보이는지 소식을 정리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그리고 비워진 파사드 공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전경 ⓒ The Met
메트로폴리탄은 1866년, 파리에 있던 미국인 그룹이 '미국에도 훌륭한 미술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설립된 국립 미술관입니다. 그렇게 2년 만에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1880년에는 현재 위치인 센트럴파크 5번가로 이전하면서 지금까지 운영 중인데요.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150만 점 가량의 소장품, 700만 명의 연간 관람객을 유치하며 세계적인 뮤지엄으로 손꼽히고 있어요.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2019년부터, 미술관의 건물 외벽 중 정면을 칭하는 '파사드' 공간에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파사드 커미션이라 이름 붙였는데요. 미술계에서 '커미션 작업'은 '주문 제작을 통해 제작한 작품'을 의미합니다. 즉, 생존 예술가들만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것이죠. 메트로폴리탄은 2019년부터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해, 다채로운 설치 작품을 미술관 외부에 전시해왔어요.
메트로폴리탄 파사드 전경. 니치 공간이 모두 비워져 있다. ⓒ The Met
파사드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인 그리스식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그리스식 건축에서는 기둥 사이에 조각 작품을 전시하곤 했습니다. 이 작품이 놓일 공간을 니치(Niche) 공간이라 칭해요.
그런데 메트로폴리탄의 니치 공간에는 조각 작품 없이, 작품이 놓일 받침대만 놓여 있습니다. 건물 외관에 총 네 개의 니치 공간이 있는데, 모두 받침대만 있고 작품은 하나도 없죠.
비어있는 니치 공간의 모습 ⓒ The Met
원래는 미술관 건립 당시, 니치 공간에 그리스, 이집트, 르네상스, 근대 조각 작품을 설치할 계획이 있었다고 해요. 메트로폴리탄이 가진 방대한 소장품의 기간들을 모두 아우른 큐레이션인데요.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조각 작품 제작이 안 되었고,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받침대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엔 메트로폴리탄 깃발이나, 진행되는 특별전 깃발이 길게 걸리곤 했죠.
그러던 중 2019년, 메트로폴리탄은 이 받침대 공간을 활용해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파사드 커미션을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뮤지엄이었던 공간이 조금 더 현대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한 것이죠.
이불 작가의 파사드 전시
<Long Tail Halo: CTCS #1> 앞의 이불 작가 ⓒ Lucia Vazquez for The New York Times
2024년부터 메트로폴리탄은 한국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와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파사드 커미션의 이름을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으로 바꾸었어요. 이후 2024년 9월 12일부터 한국 작가인 '이불(Lee Bul, b. 1964)'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는 올해 5월 27일까지 진행될 예정인데요. 파사드 커미션을 통해 한국 작가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많은 이목을 끌고 있어요.
이불 작가는 네 개의 니치 공간에 각각 하나씩 조각 작품을 전시합니다. 처음 작품을 기획할 때 작가는 이곳에 놓일 조각이 미술관을 수호하는 일종의 가디언, 신 같은 존재가 될 거라 생각했다고 해요. 동양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대문 옆의 조각들을 떠올린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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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공간 중 바깥쪽의 두 개 공간에는 추상적인 개 조각을 선보입니다. 입체파에서 볼 수 있는 추상적인 형태를 조각에 적용했죠. 그리고 안쪽 두 개의 부분에는 인간 형태의 조각을 선보여요. 마찬가지로 형태가 추상적인데, 입체파 느낌에 그리스 로마 시대 갑옷을 연상케하는 형태를 더했습니다. 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컬렉션의 다양한 예술 양식을 추상적으로 반영한 거라고 해요.
이러한 추상성은 대상을 모호하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보편적으로 감상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실물을 보는 듯 똑떨어진 형태는 감탄을 자아낼 순 있지만, 자신의 감상이나 기억을 투영할 여지가 적어요. 하지만 추상적인 이미지는 얼마든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죠. 같은 이유에서 미술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가 추상화이기도 합니다.
이불 작가 작품 전시 전경 ⓒ Lucia Vazquez for The New York Times
메트로폴리탄 측 역시, 이불 작가의 추상적인 조각 작품에 대해 '놀라운 모호성'이라며, 현대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음을 언급했어요. 그렇게 이불 작가는 동양의 수호신 같은 존재들을 서양의 미술관 앞에 배치하면서, 뉴욕의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간 이불 작가가 선보인 작품들
이불 작가의 작품 설치 모습 ⓒ Lucia Vazquez for The New York Times
이불 작가는 1964년, 영주에서 태어난 작가에요. 예술가로 활동은 1987년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한국은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대중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국제화의 물결이 일었으며, 세기말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했던 시기였죠.
이불 작가는 당시 여성 작가이자 20대 청년 작가였어요. 혼란스러운 시기를 사회적 약자로 보낸 건데요. 이 시기 자신이 느낀 부조리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 주제도 교육, 젠더, 사회 등으로 다양한데요.
오늘날에는 드로잉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에서 선보인 조각이나, 설치미술,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작업을 선보이지만, 활동 초기에는 비판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작가의 신체 자체가 재료가 되는 퍼포먼스 작업을 주로 진행했어요.
이불,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1990, 12일간의 퍼포먼스,《제2회 일·한 행위예술제》ⓒ Lee Bul
주목할 만한 것은 1990년 작, <수난 유감-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입니다. 제목만 봐도 역사의 변곡점을 여성 작가로서 살아낸 작가의 기개가 느껴지는데요. 작품은 김포공항과 나리타공항, 도쿄의 시내 곳곳에서 12일간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이뤄졌습니다. 당시 작가는 천과 합성 고무로 제작된 의상을 입고 각 공간에 나타났는데, 그 의상이 매우 독특해요. 동물의 촉수 같기도 하고, 장기 같기도 합니다.
이 의상은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평범한 일상 공간에 비현실적 존재가 개입하면서 나타나는 행인들의 반응까지 작품의 일부입니다. 그렇게 작가는 강력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어떻게 저항해 내는지를 보여줬어요. 이런 퍼포먼스 작업은 1996년까지 진행했습니다.
이불, 히드라, 1998 ⓒ Lee Bul
이후 이불은 다른 것에 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서구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었는데요. 1998년 발표한 작품 <히드라>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은 아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작가의 모습을 커다란 풍선에 인쇄한 작품인데. 프린트된 작가를 자세히 보면, 머리장식이나 의상은 동양의 전통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어요.
그런데, 하반신으로 시선을 돌리면 망사스타킹에 하이힐을 신고 있습니다. 이건 서구의 문화적 코드에요. 동서양의 복식문화가 혼합된 모습을 한 작가는 정면을 보고 다리를 벌린 채, 매우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합니다. 이건, 그동안 서양에서 동양 여성은 순종적이고 유약하다고 여긴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을 의미해요.
이불, 히드라, 1996/2021, 천 위에 사진 인화, 공기 펌프, 1000cm x 700cm ⓒ Lee Bul
그리고 작가는 <히드라>라는 제목의 부제로 <모뉴먼트>를 붙였는데요. 모뉴먼트는 기념비를 의미합니다. 보통 돌로 제작해 훼손되지 않게 하는데, 작가는 바람 넣은 풍선에 자신의 사진을 인쇄해 기념비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렇게 기념비라는 것의 이미지에도 저항하면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가볍고 무용한 것인지를 느끼게 만듭니다.
그렇게 이불 작가는 사회 시스템,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번 메트로폴리탄에서 선보이는 추상조각들 역시 이불이 가진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데요. 메트로폴리탄 파사드 공간에서 더 많은 관객과 마주할 그의 작품이, 또 어떤 사고의 확장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
► 메트로폴리탄의 가장 큰 연례행사, 멧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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