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팬톤 올해의 컬러: 클라우드 댄서(Cloud Dancer)

2025-12-15
조회수 1598

매년 연말이 되면, 팬톤에서는 올해의 컬러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최근 2026년 올해의 컬러로 새로운 색이 선정되었어요. 바로, ‘클라우드 댄서(Cloud Dancer)’입니다. 

 

 

2026 올해의 컬러, ‘클라우드 댄서’

팬톤 2026 올해의 컬러 클라우드 댄서

© PANTONE


클라우드 댄서는 구름을 보는 것처럼 뽀얀 흰색입니다. 올해의 컬러가 발표되고 나서 국내 SNS에서는 ‘꼬질 꼬질한 마티즈 색’이라고 칭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클라우드 댄서는 그간 우리가 흰색하면 떠올릴 수 있는 차갑거나 삭막한 화이트가 아닌, 따뜻하고 부드러운 매력을 가진 흰색인 것을 볼 수 있어요. 


팬톤은 이 색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어요. 

"구름처럼 가볍고 공기를 머금은 듯한 존재감을 지닌, 평온함이 깃든 부드럽고 균형 잡힌 화이트다.“ 



팬톤 2026 올해의 컬러 클라우드 댄서팬톤 2026 올해의 컬러 클라우드 댄서

© PANTONE


클라우드 댄서가 올해의 색으로 선정된 건 꽤 특별합니다. 팬톤이 '올해의 컬러' 프로그램을 시작한 1999년 이래 처음으로 화이트 계열 색상이 선정되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이 색깔을 선정한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따랐습니다. 팬톤은 그동안, 사회문화적 사건사고를 반영해 색을 선정하곤 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는 올해의 컬러로 노랑과 회색을 선택하면서, 어둡고 힘든 상황이지만 희망과 밝음을 잃지 말 것을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이 종식되어가던 2023년에는 강렬한 핑크빛의 ‘비바 마젠타’를 선정했고, 종식이 전세계적으로 합의된 2024년에는 화사한 파스텔 톤의 ‘피치 퍼즈’를 선정했죠. 그리고 올해인 2025년 올해의 컬러로는 ‘모카 무스’를 선정했음. 따뜻한 느낌의 갈색이죠.

 

최근 몇 년간 팬톤의 선택을 보면, 채도 높은 색에서 점차 차분하고 중성적인 뉴트럴 톤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전 세계적인 정치적 혼란, 디지털 피로, 그리고 안정과 평화에 대한 집단적 갈망한 것으로 읽히고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이 선정이 "경기 침체의 신호"라거나, 사회적 긴장 속에서 "무난한 선택"이라는 비판도 따랐어요. 

 

 

무난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신’의 색, 흰색

팬톤 클라우드 댄서

© PANTONE


흰색은 아주 긴 역사를 가진 색입니다. 인류가 빛과 어둠을 구분하기 시작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흰색의 역사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죠. 


그리고 그 시작은 기원전 1만 7천년 경,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찾을 수 있어요. 학자들은 조개껍질 등을 이용한 원시적인 흰색 안료를 통해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처럼 흰색은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색이고, 조개껍질 뿐만 아니라 돌 같은 광물을 통해서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색이다보니 인류와 가장 친숙한 색깔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 긴 시간만큼 흰색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져 왔습니다. 


흰색에 대한 최초의 이미지는 ‘신성한 색’이었어요.

 

이집트 피라미드 흰색 석회암

White casing stones remain near the top of the Pyramid of Khafre. (CC BY 2.0)

이집트 프레스코 벽화

Nebamun hunting birds from the Tomb of Nebamun, c. 1350 BC. British Museum.


그 시작은 고대 이집트입니다. 이집트는 다른 문명에 비해 더 빠르게, 더 다양한 색들을 활용해왔던 곳이기도 해요. 


최초의 파란색 안료인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도 기원전 3250년경, 이집트에서 발명되었고요. 이 덕분에 이집트의 미술품들엔 다채로운 색이 활용된 걸 볼 수 있는데요. 여러 화려한 색깔들 중에서도 이집트는 흰색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이 고귀한 존재로 여기던 햇빛이 흰색이었기 때문이죠. 이때문에 최고 통치자인 파라오는 대체로 흰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피라미드도 원래는 흰색 석회암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카프라왕의 피라미드 꼭대기 부분에는 석회암이 일부 남아있기도 한데, 사라진 석회암은 후에 권력을 잡은 다른 지도자에 의해 벗겨져 다른 건축물을 짓는데 활용되거나, 자연재해로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돼요. 

 

베르니니 조각 작품

Gian Lorenzo Bernini, The Rape of Proserpina, 1621–22. Courtesy: Ministero per i Beni e le Attività Culturali and Galleria Borghese, Rome; photograph: Luciano Romano


그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도 흰색을 빛의 색이자 근본적인 색으로 간주하면서 높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이어진 다른 문화권에서도 흰색을 예수 그리스도, 천사, 성모 마리아를 그리는데 사용하면서 성스럽고 순수한 이미지를 유지했고, 이런 흰색의 고귀한 이미지는 꽤나 오래갔어요.

 

 

부유함의 상징, 극한의 화이트

하지만 중세에 접어들면서부터 흰색의 이미지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흰색이 ‘부자들의 색’으로 여겨졌어요. 양모나 면을 포함한 섬유는 엄청난 가공 과정을 거쳐야 완전한 흰색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흰색 옷들은 모두 상당한 가격을 자랑했어요. 게다가, 이 흰 옷을 원래 색깔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중세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옷감 자체도 비싸고, 관리도 힘들다보니, 흰 옷은 아주 부유해고 하인을 많이 거느린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여겨지곤 했어요. 일반 사람들은 표백하지 않은 아이보리색 옷을 주로 입었죠. 


빅토리아 여왕 사진

Queen Victoria of Great Britain, 1895.By Bob Thomas/Popperfoto/Getty Images.


그러던 중 흰색이 부자들의 색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진 계기가 발생해요. 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 공과 결혼식에서 흰색 드레스를 입으면서였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왕실의 신부들은 결혼식에서 다양한 색깔의 드레스를 입곤 했습니다. 가장 사랑받는 색은 빨강이었죠. 빨간색이 다산을 상징하는 덕분에 인기가 있었던 건데요.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조금 다른 생각을 떠올립니다. 국가 수반의 결혼식 행사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 걸 예상하고, 자국의 레이스 산업을 활성화는 계기로 만들기로 하죠. 이 시기 영국에서는 기계 직물이 발명되면서 장인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레이스가 가장 잘 드러나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골라요. 그리고 결혼 케이크도 여기에 맞춰서 흰색으로 골랐습니다. 케이크의 둘레는 3미터, 무게는 136키로 가량 나가는 큰 케이크였는데, 이 케이크의 아이싱부터 크림까지 순백의 흰색으로 했어요. 이 시기에는 설탕마저도 하얗게 만드는 것이 더 비쌌습니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의 흰색 투성이 결혼식은 상당한 이목을 끌었고, 이 이후부터 흰색 웨딩 드레스가 결혼식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 전해지죠.

 

빅토리아 여왕 결혼식 그림

George Hayter (1792-1871) - The Marriage of Queen Victoria, 10 February 1840, Royal Collection


한편, 빅토리아 여왕의 의도대로 순백색의 웨딩 드레스가 이목을 끌면서 흰색 레이스를 활용한 드레스가 서서히 대중적으로도 사랑받기 시작합니다. 


이런 흰색 드레스는 그림에도 자주 표현되었어요. 흰색 드레스를 가장 잘 그린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로는,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가 있습니다. 

 

 

죽음과 맞바꾼 휘슬러의 흰색 집착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예술 작품

James McNeill Whistler, Symphony in White, No. 1: The White Girl, 1861~1863, National Gallery of Art


휘슬러는 정말 많은 흰색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흰색 교향곡 제1번: 흰 옷을 입은 소녀> 를 보면, 흰색 커튼 앞에 흰색 드레스를 입은 채 서있는 여성을 볼 수 있습니다. 


흰색 드레스는 눈으로 봤을 땐 아름다운데, 그림으로 그리면 예쁘게 그리기 쉽지 않습니다. 온통 흰색이기 때문에 아무리 디테일을 묘사해도 티가 잘 나지 않고, 자칫 잘못하면 흰색이 아닌 다른 색 드레스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리는 것 자체도 까다로웠죠.

 

하지만 휘슬러는 아주 대범하게도 흰색 커튼 앞에,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그렸어요. 심지어 커튼의 밝기와 드레스의 밝기가 비슷하고, 커튼에도 자수와 레이스 장식이 있어서 질감도 드레스와 비슷했죠. 이 때문에 휘슬러는 흰 배경과 흰 드레스를 분리하기 위해서, 드레스의 외곽선을 선명하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외곽선을 강조하면 그림이 평면적으로 보여요. 옛날 2D 애니메이션들을 떠올려보면, 늘 대상의 외곽에 검은색으로 선을 진하게 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외곽선은 평면성을 강조하죠. 그런데 이런 외곽선을 회화에 적용하면, 깊이감이 사라지게 됩니다. 일본의 우키요에 그림들이 그런 특성을 가지죠.

 

그럼에도 휘슬러는 그림에 흰색을 가득 사용했어요. 그리고 1862년, 이 그림을 영국 로얄 아카데미(Royal Academy)에 출품합니다. 아카데미 출품작들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되었는데요. 여기 선정된 작품들은 대다수, 오늘날 미대 입시 그림들처럼 명확한 규칙과 공식에 맞춰져 그려졌습니다. 흰색 드레스를 그린다면, 배경을 어둡게 처리해서 그 드레스가 잘 보이게 하는 식이었죠. 그리고 흰색 배경에 흰색 드레스를 그린 휘슬러는 당연하게도 아카데미에서 낙선합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자화상

James McNeill Whistler, Arrangement in Gray: Portrait of the Painter, 1872, Detroit Institute of Arts


이 작품을 걸기 위해, 휘슬러는 프랑스 정부에서 여는 <낙선전>에 작품을 출품합니다. <낙선전>은 영국 로얄 아카데미와 비슷하게, 정부에서 심사를 통해 열어준 전시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들을 위해 열었던 전시였어요. 그리고 전시의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화가라는 낙인이 찍히는 거니까요. 하지만 휘슬러는 낙선전에 이 작품을 출품했어요. 그리고 신랄한 비난을 받습니다.


프랑스 평론가 에밀 졸라는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각색해 <작품(L'Œuvre)>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냈는데요. 이 소설에는 낙선전에 걸린 ‘하얀 여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휘슬러의 <흰색 교향곡 제1번>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록 소설 속 각색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당시 기준으로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화가들은 흰 드레스를 그릴 때 배경을 어둡게 처리해 드레스가 잘 보이게끔 했고, 이건 공식이나 규칙 축에 들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휘슬러가 흰색 드레스를 흰 배경에 그려넣은 이유는, 매우 단순하게도 ‘흰색을 너무 좋아해서’였습니다. 사실 당시 낙선전에 참여한 화가들 중에는 기술적으로 그림을 못그리는 케이스도 꽤 있었는데, 휘슬러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림 자체는 잘 그리는 편이었고, <흰색 교향곡>도 오늘날 시선에서 보면 잘 그린 작품입니다. 휘슬러는 이 그림 전후로도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꽤 자주 그렸었고, 흰색 드레스가 아니면 흰색 모자나 블라우스라도 꼭 그려넣곤 했습니다. 흰색이 가진 특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데, 이게 휘슬러를 죽음에 몰아넣은 것으로 추정돼요.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예술 작품

James McNeill Whistler, 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1871, Musée d'Orsay 


휘슬러가 사용하던 흰색 물감의 이름은 리드 화이트입니다. 우리말로는 연백, 혹은 납백이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납을 활용해서 만든 흰색이에요. 납백은 고대부터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사용되어온 색입니다. 제조법도 아주 전통적이에요. 납 조각을 식초, 그리고 동물의 배설물과 함께 30일간 발효시키면 흰색 고체가 맺히게 되는데, 이걸 긁어내면 납백의 안료가 됩니다. 그럼 이 안료를 계란 노른자나 기름에 풀어서 흰색 물감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재료 자체가 납을 활용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인체에 해로웠습니다. 이 때문에 1820년대부터는 위험성이 인지되기 시작했고, 1978년 미국에서는 가정용 페인트에 납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1992년에 유럽 연합에서는 사용 자체를 금지했고요. 

 

하지만 휘슬러가 활동하던 1860년대 당시 영국 정부는 위험성만 인지했을 뿐 사용을 금지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안료 제조 시 공장에서는 꼭 환기할 것을 권고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일하는 화가들은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 했어요. 이 때문에 납백을 사용하던 화가 다수는 납중독으로 고생했다고 전해집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화가로는 고야, 카라바조, 고흐 등이 있죠. 납중독에 걸리면 복통, 내장 뒤틀림, 변비, 천식, 호흡곤란, 두통, 식욕상실 등의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되고,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었어요. 실제로 납중독으로 죽은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직업군이 화가였다고 전해집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예술 작품

James McNeill Whistler, The Artist in His Studio, 1865, Art Institute of Chicago


그리고 휘슬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휘슬러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어요. 그리고 예술가가 되고 난 후에는, 흡연과 음주를 과하게 했고요. 그리고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일부에서는 평생 납백을 다뤘던 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휘슬러는 평생 관련 증상으로 앓았다고도 전해져요. 그리고 이것이 수십 년간 축적되며, 심혈관 질환을 일으켰고 심장마비를 겪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설 모비딕을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흰색의 가장 내밀한 개념 속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도사려서, 두려움을 자아내는 피의 붉은색보다 더 큰 공포를 우리 영혼에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이죠. 완전한 흰색은 구현하기 까다롭고 위험하다보니, 이 문장이 담아낸 흰색의 공포가 실체를 가진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완전한 흰색이 아닌 살짝 빛바랜 흰색을 고른 팬톤의 의도도, 어쩌면 이런 역사적 맥락으로 헤아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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빋피 이정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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