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공개된 피카소 미공개작 ⓒ AP
피카소 미공개작이 공개됐습니다.
지난 10월 4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가정집에 걸려있던 작품이 피카소의 진품이라고 밝혀졌어요. 작품의 현재 가치 추정가는 660만 달러, 한화 약 89억 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이제 피카소 원화를 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경매에 나올 경우 훨씬 높은 금액으로 낙찰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177억 정도의 금액까지는 쉽게 갈 거라는 견해도 나왔어요.
피카소의 미공개작 공개 비하인드
그림 앞에 앉은 안드레아의 어머니 ⓒ The Guardian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벼락부자가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길거리에서 산 작품이 사실은 거장의 작품이었다! 같은 상상이요. 그리고 그런 상상이 실제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 행운의 주인공은 나폴리에 살던 ‘안드레아 로 루소’라는 청년이에요. 본인 집 거실에 오랜 세월 걸려있던 작품이 왠지 피카소 것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을 그린 초상화인데, 피카소의 대표적인 화풍인 입체파의 특징이 가득합니다. 코가 비뚤어져 있고, 얼굴도 가위로 오린 것처럼 일그러져 있죠. 그림에도 첫인상이란 게 있다면, 처음 딱 봤을 때 호감 가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안드레아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그림 속 여자, 너무 못생겼다’면서 ‘작품 제목은 <낙서>라고 하겠다'라고 이야기했죠. 그럼에도 평생 집 거실에 걸어두었고, 후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걸어두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안드레아의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인데요.
그림을 든 안드레아 ⓒ Photo: Al/ROPI via ZUMA Press
이후 안드레아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술 교과서에서 피카소 그림을 보게 돼요.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어쩌면.. 우리 집 거실에 걸린 그림이 피카소 작품이 아닐까?’ 하고 처음 생각합니다.
미공개작이 갑자기 툭 튀어나올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 이력입니다. 미술품은 작가 작업실에서부터 시작해서 누구에게 소장되어 왔는지 등의 정보가 등기부등본처럼 적혀서 문서화돼요. 이를 프로비넌스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 작품은 프로비넌스가 없었습니다. 잡화상인 안드레아의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안드레아 아버지는 '피카소는 무슨,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건데'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안드레아는 '아버지는 예술에 대한 교양이 거의 없고, 피카소가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기 때문에 모르고 주워왔겠지만, 아버지보다 조금 더 교양을 가진 내가 보기에는 분명 진품이 맞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안드레아와 벽에 걸린 미공개작 ⓒ The Guardian
이후 성인이 된 안드레아는 작품을 차에 싣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합니다. 진품인 것 같으니 확인해달라는 취지였는데요. 당시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자세히 살펴봐야 하니, 두고 가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안드레아는 왠지 작품을 두고 가면 영영 못 찾아올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작품을 들고 와서 진품 감정을 하러 돌아다녔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기꾼들에게 돈을 뜯기기도 하고, 위조 예술품 거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이 수십 년간 이어졌다고 해요. 그럼에도 안드레아는 계속 진품일 거라 믿음을 가지고 감정을 진행했는데요.
이탈리아 아르카디아 재단 웹사이트
그의 집념이 마침내 올해, 결실을 맺었습니다. 스위스에 있는 비영리 예술 복원 단체인 ‘아르카디아 재단’이 감정을 진행한 결과, 피카소의 진품이 맞는다고 평가한 거죠. 재단에 따르면, 작품이 제작된 해에 피카소가 사용했던 팔레트의 물감과 작품에 사용된 물감의 화학 성분이 일치했다고 해요. 또 함께 감정에 참여한 필적 전문가는 작품 왼쪽 상단에 새겨진 서명이 피카소의 서명이 맞는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이 전 세계에 보도된 게 지난 4일이었죠.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진위 여부
미공개작의 베일을 벗기는 모습 ⓒ AP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르카디아 재단은 명망 높고 권위 있는 곳이긴 하지만, 피카소 작품에 대한 전문 기관은 아니에요. 좀 더 확실한 감정을 위해서는 파리의 피카소 재단의 감정을 받아야 합니다. 피카소 재단이 진품이라 감정하면, 그때부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100% 진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건데요.
그런데, 피카소 재단은 최근 수년간 그 어떤 진품 감정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피카소가 평생 남긴 작품 수는 약 5만 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종류도 유화부터 판화, 파스텔화, 조각, 도자기, 습작 등 다양하고요. 그렇다 보니… 피카소 재단에 미공개작을 발견했다!면서 연락 오는 사람이 지금도 하루에 수십 명이나 된다고 해요. 피카소 재단은 이걸 일일이 다 감정하기 어렵고, 감정해 보니 허탕인 경우도 허다했다고 밝혔습니다.
ⓒ AP
게다가, 미술품 감정하는 인력은 상당한 고급 인력입니다. 특히나 피카소처럼 유명 예술가의 경우에는 작품 감정 스페셜리스트가 있는데요. 전 세계에 한두 명 정도로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안드레아의 작품 감정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르카디아 재단에서 진품이라 선언하면서 자연스럽게 피카소 재단에서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여론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피카소 재단 측에서는 묵묵부답인 상태에요.
갈리는 전문가의 주장
미공개작의 서명 확대본 ⓒ AP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작품이, 피카소가 1949년에 만든 작품 <여성 흉상>과 굉장히 흡사하다'라고 해요. 그런데 이 사실은 해석의 여지가 좀 갈립니다. 작품이 구성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습작 같은 그림이라고도 볼 수 있고, 또 시리즈 작업의 일부라고 해석할 수도 있긴 한데요.
또 다른 전문가는 '본인이 30년간 피카소 작품을 연구한 결과, 피카소는 절대 본인 작품을 똑같이 그린 게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과거 비슷한 작품이 있다는 점은, 진품일 확률도 있지만 동시에 위작일 확률도 있는 셈이죠. 같은 정보를 두고 완전히 상반된 주장이 나온 겁니다.
ⓒ AP
한편 또 다른 주장도 나왔어요. 피카소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봤을 때, 진품일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었는데요.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4만 1천 점의 피카소 작품이 아카이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번에 발견된 작품의 습작으로 추정되는 이미지들을 발견했다고 해요.
하지만 이 역시 진품이라는 걸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위작 제작자들은 기존 화가의 작품을 똑같이 만들기도 하지만, 그 화가의 습작을 보고 아예 없던 작품을 만들어내서 미공개작이라 판매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주장이 나오면서, 이번에 진품 감정을 한 아르카디아 재단이 다시 공식 입장을 밝혔어요. ‘우리는 과학적 방식으로 감정했고, 그 결과 진품임이 확실하다'라고 또 한 번 못을 박았는데요. 이 때문에 아직까지 여론은 진품일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 벌써부터 이 작품을 구매하려는 제안이 안드레아에게 들어오고 있다고 해요. 안드레아는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평생 피카소 작품일 거라 믿어온 작품이 아주 높은 확률로 진품일 것인 상황에서, 판매하라는 제안이 쏟아지고, 세상의 관심 쏠리고 있기 때문이죠.
스페인의 피카소 재단 ⓒ National Geographic
어찌 됐건 결과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피카소 재단의 손에 달려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안드레아에게 남은 단계는 두 개입니다. 피카소 재단이 진품 감정을 진행하는 것, 그리고 진품 감정을 받아내는 것. 안드레아는 재단 감정 결과 진품임이 드러나면, 작품을 경매에 부칠 거라고 밝혔어요. 아버지가 평생 ‘저게 만약 피카소 진품이라면 꼭 팔거라’라고 말했던 것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하면서요.
미공개작 비하인드
ⓒ AP
이 작품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도라 마르(Dora Maar)를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서 한 전문가가 언급한 것처럼, 이번에 공개된 작품은 피카소가 이전에 그린 <여성 흉상>과 비슷한데요. 그 그림 속 여성은 도라 마르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그리던 시기, 피카소는 25살 연하인 도라 마르와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어요.
피카소는 언제 어디서든 작업을 했던 예술가였고, 휴가지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휴가지에서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이 이탈리아에 남겨진 게 아닐까 추정되죠. 안드레아도 이 지점 때문에 피카소 작품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고 하고요.
도라 마르 ⓒ Centre Pompidou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서 도라 마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도라 마르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화가, 시인이었던 인물입니다. 활동 당시에는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와 함께 손꼽히던 예술가였을 정도로 예술가로서 성과도 상당했던 인물인데요. 동시에 외모도 매우 뛰어나서 다른 예술가들의 뮤즈로도 활동하기도 했어요.
도라 마르와 피카소의 첫 만남은 도라의 나이 29살 때였습니다. 당시 한 영화 포스터 촬영장에서 54세의 피카소와 처음 만나게 되었죠. 둘은 빠르게 호감을 느꼈는데, 연애를 바로 시작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당시 피카소는 만나던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도라 마르를 뮤즈 삼아서 많은 그림을 남기고, 연애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휴가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휴가지에서 피카소와 도라 마르 ⓒ Centre Pompidou
피카소와의 만남은 도라 마르에게 큰 고통이었어요. 피카소는 당시 만나던 연인인 마리 테레즈 발터와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리와 도라가 자신을 놓고 싸우게까지 했죠. 게다가 도라 마르를 때로는 육체적으로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에 도라 마르는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년가량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피카소와 이별한 후 도라 마르는 사진작가를 은퇴합니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는 도라 마르가 오히려 피카소와의 만남, 그리고 이별 덕분에 예술적으로는 더 성숙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해요. 실제로 이별 후 화가로 전향하며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고요.
Dora Maar, Mannequin in Window, 1935
오늘날에는 피카소의 연인이라는 이미지보다, 사진작가이자 화가였던, 또 수많은 이들의 뮤즈였던 예술가로서의 예술성을 조명하려는 시도가 더 많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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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피카소 미공개작 ⓒ AP
피카소 미공개작이 공개됐습니다.
지난 10월 4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가정집에 걸려있던 작품이 피카소의 진품이라고 밝혀졌어요. 작품의 현재 가치 추정가는 660만 달러, 한화 약 89억 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이제 피카소 원화를 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경매에 나올 경우 훨씬 높은 금액으로 낙찰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177억 정도의 금액까지는 쉽게 갈 거라는 견해도 나왔어요.
피카소의 미공개작 공개 비하인드
그림 앞에 앉은 안드레아의 어머니 ⓒ The Guardian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벼락부자가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길거리에서 산 작품이 사실은 거장의 작품이었다! 같은 상상이요. 그리고 그런 상상이 실제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 행운의 주인공은 나폴리에 살던 ‘안드레아 로 루소’라는 청년이에요. 본인 집 거실에 오랜 세월 걸려있던 작품이 왠지 피카소 것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을 그린 초상화인데, 피카소의 대표적인 화풍인 입체파의 특징이 가득합니다. 코가 비뚤어져 있고, 얼굴도 가위로 오린 것처럼 일그러져 있죠. 그림에도 첫인상이란 게 있다면, 처음 딱 봤을 때 호감 가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안드레아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그림 속 여자, 너무 못생겼다’면서 ‘작품 제목은 <낙서>라고 하겠다'라고 이야기했죠. 그럼에도 평생 집 거실에 걸어두었고, 후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걸어두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안드레아의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인데요.
그림을 든 안드레아 ⓒ Photo: Al/ROPI via ZUMA Press
이후 안드레아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술 교과서에서 피카소 그림을 보게 돼요.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어쩌면.. 우리 집 거실에 걸린 그림이 피카소 작품이 아닐까?’ 하고 처음 생각합니다.
미공개작이 갑자기 툭 튀어나올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 이력입니다. 미술품은 작가 작업실에서부터 시작해서 누구에게 소장되어 왔는지 등의 정보가 등기부등본처럼 적혀서 문서화돼요. 이를 프로비넌스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 작품은 프로비넌스가 없었습니다. 잡화상인 안드레아의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안드레아 아버지는 '피카소는 무슨,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건데'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안드레아는 '아버지는 예술에 대한 교양이 거의 없고, 피카소가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기 때문에 모르고 주워왔겠지만, 아버지보다 조금 더 교양을 가진 내가 보기에는 분명 진품이 맞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안드레아와 벽에 걸린 미공개작 ⓒ The Guardian
이후 성인이 된 안드레아는 작품을 차에 싣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합니다. 진품인 것 같으니 확인해달라는 취지였는데요. 당시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자세히 살펴봐야 하니, 두고 가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안드레아는 왠지 작품을 두고 가면 영영 못 찾아올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작품을 들고 와서 진품 감정을 하러 돌아다녔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기꾼들에게 돈을 뜯기기도 하고, 위조 예술품 거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이 수십 년간 이어졌다고 해요. 그럼에도 안드레아는 계속 진품일 거라 믿음을 가지고 감정을 진행했는데요.
이탈리아 아르카디아 재단 웹사이트
그의 집념이 마침내 올해, 결실을 맺었습니다. 스위스에 있는 비영리 예술 복원 단체인 ‘아르카디아 재단’이 감정을 진행한 결과, 피카소의 진품이 맞는다고 평가한 거죠. 재단에 따르면, 작품이 제작된 해에 피카소가 사용했던 팔레트의 물감과 작품에 사용된 물감의 화학 성분이 일치했다고 해요. 또 함께 감정에 참여한 필적 전문가는 작품 왼쪽 상단에 새겨진 서명이 피카소의 서명이 맞는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이 전 세계에 보도된 게 지난 4일이었죠.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진위 여부
미공개작의 베일을 벗기는 모습 ⓒ AP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르카디아 재단은 명망 높고 권위 있는 곳이긴 하지만, 피카소 작품에 대한 전문 기관은 아니에요. 좀 더 확실한 감정을 위해서는 파리의 피카소 재단의 감정을 받아야 합니다. 피카소 재단이 진품이라 감정하면, 그때부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100% 진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건데요.
그런데, 피카소 재단은 최근 수년간 그 어떤 진품 감정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피카소가 평생 남긴 작품 수는 약 5만 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종류도 유화부터 판화, 파스텔화, 조각, 도자기, 습작 등 다양하고요. 그렇다 보니… 피카소 재단에 미공개작을 발견했다!면서 연락 오는 사람이 지금도 하루에 수십 명이나 된다고 해요. 피카소 재단은 이걸 일일이 다 감정하기 어렵고, 감정해 보니 허탕인 경우도 허다했다고 밝혔습니다.
ⓒ AP
게다가, 미술품 감정하는 인력은 상당한 고급 인력입니다. 특히나 피카소처럼 유명 예술가의 경우에는 작품 감정 스페셜리스트가 있는데요. 전 세계에 한두 명 정도로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안드레아의 작품 감정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르카디아 재단에서 진품이라 선언하면서 자연스럽게 피카소 재단에서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여론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피카소 재단 측에서는 묵묵부답인 상태에요.
갈리는 전문가의 주장
미공개작의 서명 확대본 ⓒ AP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작품이, 피카소가 1949년에 만든 작품 <여성 흉상>과 굉장히 흡사하다'라고 해요. 그런데 이 사실은 해석의 여지가 좀 갈립니다. 작품이 구성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습작 같은 그림이라고도 볼 수 있고, 또 시리즈 작업의 일부라고 해석할 수도 있긴 한데요.
또 다른 전문가는 '본인이 30년간 피카소 작품을 연구한 결과, 피카소는 절대 본인 작품을 똑같이 그린 게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과거 비슷한 작품이 있다는 점은, 진품일 확률도 있지만 동시에 위작일 확률도 있는 셈이죠. 같은 정보를 두고 완전히 상반된 주장이 나온 겁니다.
ⓒ AP
한편 또 다른 주장도 나왔어요. 피카소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봤을 때, 진품일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었는데요.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4만 1천 점의 피카소 작품이 아카이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번에 발견된 작품의 습작으로 추정되는 이미지들을 발견했다고 해요.
하지만 이 역시 진품이라는 걸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위작 제작자들은 기존 화가의 작품을 똑같이 만들기도 하지만, 그 화가의 습작을 보고 아예 없던 작품을 만들어내서 미공개작이라 판매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주장이 나오면서, 이번에 진품 감정을 한 아르카디아 재단이 다시 공식 입장을 밝혔어요. ‘우리는 과학적 방식으로 감정했고, 그 결과 진품임이 확실하다'라고 또 한 번 못을 박았는데요. 이 때문에 아직까지 여론은 진품일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 벌써부터 이 작품을 구매하려는 제안이 안드레아에게 들어오고 있다고 해요. 안드레아는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평생 피카소 작품일 거라 믿어온 작품이 아주 높은 확률로 진품일 것인 상황에서, 판매하라는 제안이 쏟아지고, 세상의 관심 쏠리고 있기 때문이죠.
스페인의 피카소 재단 ⓒ National Geographic
어찌 됐건 결과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피카소 재단의 손에 달려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안드레아에게 남은 단계는 두 개입니다. 피카소 재단이 진품 감정을 진행하는 것, 그리고 진품 감정을 받아내는 것. 안드레아는 재단 감정 결과 진품임이 드러나면, 작품을 경매에 부칠 거라고 밝혔어요. 아버지가 평생 ‘저게 만약 피카소 진품이라면 꼭 팔거라’라고 말했던 것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하면서요.
미공개작 비하인드
ⓒ AP
이 작품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도라 마르(Dora Maar)를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서 한 전문가가 언급한 것처럼, 이번에 공개된 작품은 피카소가 이전에 그린 <여성 흉상>과 비슷한데요. 그 그림 속 여성은 도라 마르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그리던 시기, 피카소는 25살 연하인 도라 마르와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어요.
피카소는 언제 어디서든 작업을 했던 예술가였고, 휴가지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휴가지에서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이 이탈리아에 남겨진 게 아닐까 추정되죠. 안드레아도 이 지점 때문에 피카소 작품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고 하고요.
도라 마르 ⓒ Centre Pompidou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서 도라 마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도라 마르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화가, 시인이었던 인물입니다. 활동 당시에는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와 함께 손꼽히던 예술가였을 정도로 예술가로서 성과도 상당했던 인물인데요. 동시에 외모도 매우 뛰어나서 다른 예술가들의 뮤즈로도 활동하기도 했어요.
도라 마르와 피카소의 첫 만남은 도라의 나이 29살 때였습니다. 당시 한 영화 포스터 촬영장에서 54세의 피카소와 처음 만나게 되었죠. 둘은 빠르게 호감을 느꼈는데, 연애를 바로 시작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당시 피카소는 만나던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도라 마르를 뮤즈 삼아서 많은 그림을 남기고, 연애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휴가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휴가지에서 피카소와 도라 마르 ⓒ Centre Pompidou
피카소와의 만남은 도라 마르에게 큰 고통이었어요. 피카소는 당시 만나던 연인인 마리 테레즈 발터와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리와 도라가 자신을 놓고 싸우게까지 했죠. 게다가 도라 마르를 때로는 육체적으로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에 도라 마르는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년가량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피카소와 이별한 후 도라 마르는 사진작가를 은퇴합니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는 도라 마르가 오히려 피카소와의 만남, 그리고 이별 덕분에 예술적으로는 더 성숙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해요. 실제로 이별 후 화가로 전향하며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고요.
Dora Maar, Mannequin in Window, 1935
오늘날에는 피카소의 연인이라는 이미지보다, 사진작가이자 화가였던, 또 수많은 이들의 뮤즈였던 예술가로서의 예술성을 조명하려는 시도가 더 많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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