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미국이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작가 🇺🇸

Jackson Pollock, No. 17A (1948) © Pollock-Krasner Foundation


잭슨 폴록의 1948년작, <No. 17A> 이 작품의 가격은 3,245억 원입니다. 강남에 건물을 여러 채 살 수 있을 만큼 비싼 가격이죠. 하지만 이 작품, 너무 어렵습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왜 그린 건지, 그래서 어떤 걸 느껴야 하는지 모두 모호하죠. 그렇다면 왜 이 가격이 된 걸까요?



[1] 가장 인기있는 아류 장르의 탄생

물감을 흘리고, 뿌리고, 던졌던 잭슨 폴록. 덕분에 '잭 더 드리퍼'라는 별명도 있었다. © Tate


첫째,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작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이 그렸기 때문입니다. 한 장르의 대표 작가라는 점은 작품이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되죠. 추상표현주의는 추상+표현 두 개 단어가 합쳐진 장르인데요. 인상파면 인상파, 야수파면 야수파, 입체파면 입체파 이렇게 하나가 아니라 <추상과 표현>, 두 단어가 붙은 건 당시 유행하던 두 개의 장르에서 특징을 따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죠. 두 사조는 194-50년대 당시 미국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입체파의 기하학적이고 차가운 형태는 추상화에 영향을 미쳤어요. 대상의 특징을 아주 단순화해 극단적으로 미니멀한 형태로 그린 그림은 그래도 무엇을 추상화한 건지 대략 감을 잡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를 통해서 어떤 심상을 느낄 수도 있었죠.


마크 로스코의 Chapel © Aeon


하지만 대부분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은 뭘 그린 것인지 유추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모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물감을 반복적으로 칠하거나, 흘리거나, 심지어 던지기까지 하며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행위예술을 한 결과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래서 추상 뒤에 ‘표현’이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이 ‘표현’은 당시 유행하던 또 다른 사조인 초현실주의에서 따온건데요. 당시 초현실주의는 앙드레 부르통의 자동기술법에 영감을 받아 그림의 원천을 ‘무의식’에 두고 그리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아무 맥락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렸기 때문에 뭘 그린 건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파악하기 힘들죠.


André Masson, Automatic Drawing (1924) © MoMA


입체파에서 따온 추상화의 어법과 초현실주의에서 따온 표현적 제스처는 추상표현주의 작품과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유행하던 사조의 특징을 따와 이름 붙였기 때문에 일종의 아류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늘날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술품 경매에서 상위권에 있는 작품 다수가 추상표현주의 작품이죠.


윌렘 드 쿠닝의 <Interchange>(1955) 4,475억 원, 잭슨 폴록의 <No. 17A>(1948) 3,245억 원, 마크 로스코의 <No. 6 (Violet, Green, Red)>(1951) 3,022억 원. 모두 다 매우 높은 금액을 형성하고 있어요.


미술작품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로 매길 수 있습니다. 경제적, 상징적, 비평적 요소인데요. 추상표현주의는 매우 높은 경제적 가치가 매겨진 상태인데요. 그 원동력에는 이들 사조가 가진 상징적 가치가 있었습니다.



[2] 잭슨 폴록이 그리고 정부가 디자인하다

© MoMA


추상표현주의는 정부의 설계하에 발전한 장르입니다. 미국 정부와 미술 기관, 전문가들이 합심해 만들어낸 성과죠. 함께한 곳은 CIA(미중앙정보국), MoMA(뉴욕현대미술관)등이 있습니다. 모두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관인데요. 이들이 이 장르를 띄워야겠다고 전략을 세운 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었습니다.


20세기까지 미술의 중심지는 유럽으로 여겨졌어요. 르네상스 시기부터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국가가 중심지 노릇을 번갈아가면서 했고, 그렇게 예술의 중심은 유럽에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하지만 1939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며, 유럽의 예술가들은 더는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리고 많은 예술가는 안전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죠.


© MoMA


이 시기쯤 미국은 혼란스러운 전후 상황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 패권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뉴딜정책을 시행 중이었습니다. 미술 부분에서는 공공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연방미술프로젝트 Federal Art Project’가 시행 중이었죠. 연방미술프로젝트에는 화가, 조각가가 만 명가량 참여했습니다. 미국은 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진행하고, 해외 투어 전시까지 기획하면서 미국의 미술을 전 세계에 알렸는데요.


당시 수혜를 받은 예술가 중에는 앞서 살펴본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윌렘 드 쿠닝 등이 있습니다. 오늘날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작가라 불리는 이들이죠. 작가마다 조금씩 디테일은 달랐지만, 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그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에 미치기 전에 느껴지는 직관적인 강렬함, 벽화만큼이나 크고 압도적인 캔버스 크기, 기존 미술 작품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표현 기법 등이었죠.


이 특징은 미국 미술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브랜딩하기 아주 적합했습니다. 새롭고, 혁신적이고, 직관적이었기 때문이죠. 미술적으로 독창적이며 아방가르드한, 이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이 유럽과의 경쟁에서 문화적으로 현대적임을 과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 Pollock-Krasner Foundation


그렇다면 그중에서도 잭슨 폴록이 대표 작가로 여겨지는 이유는 뭐였을까요? 잭슨 폴록은, 당시 미국이 강조하고 싶어한 현대적인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폴록은 캔버스를 이젤에 세워 그리는 게 아닌, 바닥에 눕혀놓고 그렸습니다. 캔버스 천을 카펫처럼 깔고 그리기도 했고요. 기존 미술 작품과 전혀 다른, 새롭고 혁신적인 작업 방식이었습니다.


또 그의 작업 방식은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한스 나무스 Hans Namuth가 찍은 폴록의 작업 사진을 보면, 물감으로 범벅된 작업화를 신고,

캔버스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폴록을 볼 수 있습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그림을 그려내는 모습은 새로우면서 매력적인 예술가의 캐릭터로 보여졌죠.


© Pollock-Krasner Foundation


또 폴록은 재료도 자유자재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붓을 그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게 아닌, 물감을 흩뿌리는 막대기처럼 활용했죠. 캔버스에 붓이 닿는 전통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피우고 난 담배꽁초나 작업실에 굴러다니는 먼지도 그림에 재료로 활용했고요.


경직된 미술계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 폴록은, 어떤 규범에도 매이지 않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출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징은 보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더 중요한 건 쇼잉이 아니라, 작품이 가진 본질, 미술사적 가치죠.



[3] 미술사적 가치

평론가들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두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갑론을박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당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평론가였던

그린버그와 로젠버그의 평론이었는데요. 이들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폴록의 작품 가치를 평론했습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1909-1994) © Wikipedia


우선 그린버그는 과거 미술사에 기반해 작품을 바라봤어요. 과거 미술사에서는 예술의 순수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주요한 주제였는데요. 순수해진다는 것은 예술이 자기 매체가 가진 고유성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미술분야에서 순수 예술은 조각과 회화가 있었는데요. 조각은 공간 예술이었고, 회화는 평면 예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린버그는 폴록의 작품이 표면의 평면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이야기했죠.


해롤드 로젠버그 (Harold Rosenberg, 1906-1978) © Wikipedia


한편, 로젠버그는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폴록의 작품의 주요 특징은 결과로서 작품이 아닌, 과정으로서 행위에 있다고 보았죠.


폴록 본인도 작품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어떤 행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라거나, ‘작품이 발생하게 내버려둔다'라는 표현을 하면서 행위에 방점을 두기도 했어요. 이에 로젠버그는 폴록의 작업 방식을 ‘액션 페인팅'이라 부르자고 제안했죠.


© JACKSON-POLLOCK-NFT


두 평론가의 비평은 폴록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긴 했지만, 중점을 둔 가치가 달랐기 때문에 둘 간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그린버그가 보기에 로젠버그의 평은 연극적인 특성만을 강조해, 작품 자체는 행위의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었죠. 결과물로서 그림 자체에 집중해야 하는지, 과정으로서 행위에 집중해야하는 지. 잭슨폴록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두고 치열한 비평이 이어가면서 작품을 한결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미술사적 준거를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많은 현대미술 장르의 탄생에 기반이 되었죠. 오늘날 행위에 집중한 행위 예술, 해프닝, 그리고 회화의 순수성에 집중한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 사조의 탄생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데요. 나라의 필요로 띄워진 장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컸던 폴록 작품은 오늘날에도 많은 미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관객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상표현주의는 오늘날까지 전시 시장과 미술품 거래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높은 가치를 형성하고 있죠. 나도 하겠는데? 생각이 드는 작품 속 담긴 경제적, 비평적, 상징적 가치는 예술의 의미가 결코 만만하지도, 또 단순하지도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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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believe i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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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예술가를 믿을 뿐이다.

 -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 -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