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수백, 수천억 원에 거래되는 미술작품들. 작품의 가격은 놀라운 소식으로 보도되곤 합니다. 그리고 60여 년 전, 미술품이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1960년대에 이런 흐름에 저항해 팔릴 수 없는 예술 작품을 선보인 이들이 있어요. 바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죠.
이들의 작업이 팔릴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들 작업이 '대지'를 캔버스로 삼기 때문이고, 둘째는 2주~3주 정도만 전시하고 작품을 철거하기 때문이죠.
<둘러싸인 섬 Surrounded Islands (1983)> 이 작품은, 마이애미의 섬 11개를 포장한 작업이에요. 핫 핑크 색깔의 천으로 섬 주변을 둘러쌌죠. 사용된 천의 규모는 약 18만 평. 거대한 자연을 포장해 낸 작업은 시간도, 돈도, 인력도 많이 들어가지만 2주 남짓 전시되고 무조건 철거됩니다. 컬렉터도, 미술관도 작품을 소장할 수 없죠. 심지어 작품을 설계한 작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본인들마저도요.
이들의 작업은 '대지미술'에 속함. 대지미술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두각을 보인 장르예요. 앞서 언급했듯, 미술품이 투자수단으로 막 떠오르기 시작하던 세태에 저항하고자 시작됐죠. 이들은 작품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거래되기보다, 만들어진 곳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미술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어요.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 국한된 전시는 이제 수명이 다했으며, ‘자연’ 속에서 자연을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자연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선보였어요. 이런 작품은 시간이 지나며 풍화작용에 의해 침식되거나, 변형되곤 함. 대지미술은 이러한 과정까지 작품의 일부로 모두 포함시켜요.
이처럼 대지미술은 갤러리, 박물관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 공간의 경계에서 벗어나, 자연경관에서 감상할 수 있고,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이를 넘어선 더욱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대지미술과 다른,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대표 특징은 ‘포장’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크리스토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천으로 덮는 작업을 선보였다고 해요.
상자부터 병, 의자, 자동차, 나무 등 다양했는데요. 크리스토는 이 물건들을 천으로 덮고, 밧줄로 묶었습니다. 이렇게 숨겨진 물건은 때로는 완전히 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형태만 보이기도 했어요. 또 때로는 관객의 시야를 가려버리기도 하고요. 이는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걸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숨기기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이라고도 불려요.
<계곡 커튼 Valley Curtain (1970)> 이 작품은 콜로라도의 라이플 갭 Rifle Gap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에요. 4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두 개의 산을 주황빛 커튼과 닻줄로 잇는 시도였죠. 2년 4개월 간 철저히 작품을 설계했지만 천의 무게가 61톤이나 됐기 때문에, 설치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 실패했습니다. 설치한 뒤에도 돌풍으로 인해 28시간 만에 찢어졌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곡 커튼>은 여러 미학적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받아요.
이전에 이 길은 건너편이 잘 보였는데, 천으로 계곡을 포장하면서 그간 당연히 볼 수 있었던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또, 자연의 색깔과 이질적인 주황빛 천을 사용해서 우리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죠.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예술은 이렇게 공간을 숨기면서, 새로운 가치들을 드러내는 게 특징이에요.
그들 작업의 두 번째 특징은 ‘일시성’입니다. 작품에 얼마나 시간과 돈이 들었는지와 상관없이, 대부분 작품을 2주, 길어야 3주 정도만 설치해 두는 게 원칙이죠.
그들의 가장 최근 작업인 <포장된 개선문 L'Arc de Triomphe (2021)>은 파리의 개선문을 천과 밧줄로 감싼 작업이에요. 7,500평 크기의 천과 3,000미터의 밧줄을 사용했습니다. 들어간 비용은 1654만 달러, 한화 약 209억 2천만 원이었고, 설계 기간은 27년, 설계 시작부터 실행까지 걸린 기간은 60년입니다.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이 들어간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도 2주만 전시했어요. 이들이 이렇게 일시적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건, 대지미술의 특징인 상업성에 저항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약간 방식이 달라요. 대지미술은 자연에 계속 남아있지만, 이 작품은 철거되며 관람객, 컬렉터뿐만 아니라 작가마저도 작품을 소유할 수 없게 돼요. 아깝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게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전하고 싶어 한 메시지입니다.
이 때문에 작품을 선보일 때부터 단 2주만 전시할 것을 알리기도 했어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잠시 동안만 존재할 작품을 더 자세히,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 노력했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아지고 가벼워진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공들여 바라보게 만든 이 작품은 다른 작품이 줄 수 없는 가치를 주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예술가가 협업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조수를 두기도 하고, 설계도만 그리고 작품 구현은 외주를 맡기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협업 규모는 좀 남다릅니다. 정부 기관부터, 변호사, 과학자, 지역사회 일원 등 다양한 이들과 광범위하게 협업하죠.
이렇게나 협업하는 이유는 작품 규모가 워낙 큰 탓도 있지만, 각 지역의 정부 당국 허가도 받아야 하고, 지역사회 일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도 있습니다. 도심 속, 자연 속 대규모 작품을 선보이는 탓에, 교통을 통제해야 하거나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죠.
<포장된 독일 국회의사당 Wrapped Reichstag (1971-95)> 이 작품 역시 2주가량만 전시를 진행했지만, 2주 간 국회의사당을 포장하기 위한 과정은 ‘투쟁’ 그 자체였습니다. 기획부터 실현까지 무려 24년이 걸렸다고 해요. 이에 대해 크리스토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종적으로 보이는 어떤 물리적 대상만이 예술작품인 게 아니다. 오히려 시장조사를 하고, 작품 계획을 세우고, 설치 차용 계약을 하고, 부품을 제작하고, 조립하고, 공청회를 갖는 등의 모든 과정이 다 작품의 일부분이다.”
Christo와 Jeanne-Claude의 작업에는 기술적, 법률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겪으며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논쟁과 저항, 지지 등도 작품의 일부가 되죠. 수년간의 계획, 지방 당국 및 토지 소유자와의 광범위한 협상, 엔지니어링, 물류 문제 등 다양합니다.
작품을 만드는데 투입되는 인력은 매우 다양하지만, 작품 설치 자금은 오롯이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둘이 조달하는 것도 특징이에요. 국가 보조금은 물론 사적인 후원, 기부도 받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크리스토의 설계 도안을 작품화하거나, 작업 과정을 촬영해 영화화하거나, 드로잉 작품 등을 판매해 프로젝트 비용을 충당한다고 해요.
1983년 선보인 <둘러싸인 섬 Surrounded Islands>. 이 작품은 마이애미 섬 11개를 핫 핑크 천(폴리프로필렌 패브릭)으로 둘러싼 작업이에요. 이 설치물도 규모가 큽니다. 사용된 천의 크기는 약 18만 평이라고 해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작업은 대지를 캔버스로 삼기 때문에, 늘 환경 파괴 이슈가 제기되곤 합니다. 그리고 <둘러싸인 섬> 이 작업은 가장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작품이에요. 바다와 섬의 환경 파괴가 당연히 있을 거라 여겨졌고, 겨우 11일 간 설치를 위해 환경 파괴를 감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비난이 있었죠.
이에 Christo와 Jeanne-Claude는 환경파괴를 거의 일으키지 않기 위한 기획도 진행합니다. 섬의 야생동물을 공부하고, 그들의 생활 패턴과 습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작업을 계획했죠. 또, 섬을 둘러쌀 직물도 환경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 종류로 선별해 3년여간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지 검토했습니다. 이를 위해 팀도 설계했는데, 변호사부터 해양 엔지니어, 해양 생물학자, 조류학자, 포유류 전문가까지 다양했다고 해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작품을 구현하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된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뭘 하려고 하기보다, 인간의 손이 아예 닿지 않는 게 자연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거죠.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이런 의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품 전시가 종료된 후에 섬과 바다의 환경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걸 넘어, 40여 톤의 바다 쓰레기를 추가로 청소했다고 해요.
자연을 캔버스 삼은 작품은 필연적으로 환경 및 생태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업 전, 중, 후의 자연환경을 꾸준히 체크하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선보여요. 그리고 이 역시 작품의 일부로 담깁니다. 이들 작품을 보며 관객은 자연환경보호, 인간 개입의 영향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플로팅 피어스 The Floating Piers(2016)>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이세오 Iseo 호수에 설치된 작업이에요. 3만 평 규모의 노란 천을 사용해 호수의 섬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만들었죠. 폭은 약 16미터, 높이는 35센티로 얇았는데요. 덕분에 관객은 수면 위를 걷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일렁이는 물결에 따라 길이 움직이기도 해서, 독특한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었죠.
Christo와 Jeanne-Claude의 작품은 접근이 힘든 자연에서 선보여지기도 하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도 전시됩니다. 작품이 자연스레 대중의 일상과 사고 속으로 침투하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 역시 무료로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크리스토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티켓도, 공석도, 예약도, 주인도 없었습니다. 떠다니는 부두는 거리의 연장선이었고 모든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플로팅 피어스는 수백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았어요. 이렇게나 많은 관객이 올 수 있었던 건, 전통적인 전시 공간인 미술관이 아닌, 비전통적인 환경에서 작품이 전시된 덕분이었습니다. 감상과 경험의 공간이 된 호수는 관객의 정서에 깊이 개입하며,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 작품이 되었죠.
수많은 포장 작업을 선보인 이후, 이들의 작업은 설치로 나아갑니다. <문 The Gates (2005)> 이 작품은, 뉴욕 시 센트럴 파크에 주황색 천으로 감싼 철문 7,503개를 설치한 작업이에요. 나란히 놓인 철문은 무려 37km(23마일)로 길게 늘어섰죠.
하지만 뉴욕 시민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철문은 땅에 박지 않아도 설치할 수 있게 설계해서, 자연에도 영향이 없었죠. 변화를 경험한 건 오직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뜻 밖에 관객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도심 속 자연의 공간인 센트럴 파크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작업으로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Christo와 Jeanne-Claude의 프로젝트는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 인간과 주변 환경의 관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낳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서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했죠.
예술의 상업화에 저항해, 판매할 수 없는 작품을 선보인 예술가 부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크리스토는 2020년, 잔 클로드는 200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구상부터 협업, 실현의 단계까지 철저히 설계해 둔 덕에 2021년에는 <포장된 개선문>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1977년부터 고안된 <더 마스타바>는 현재 작업 중에 있고요.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 작품이 되어 아부다비에 설치될 예정입니다. 이 작업은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구적으로 남을 작품일 거라고 해요.
전통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공간과 개인에 대한 사유를 만드는 예술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여러분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사진 © 1981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수십, 수백, 수천억 원에 거래되는 미술작품들. 작품의 가격은 놀라운 소식으로 보도되곤 합니다. 그리고 60여 년 전, 미술품이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1960년대에 이런 흐름에 저항해 팔릴 수 없는 예술 작품을 선보인 이들이 있어요. 바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죠.
이들의 작업이 팔릴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들 작업이 '대지'를 캔버스로 삼기 때문이고, 둘째는 2주~3주 정도만 전시하고 작품을 철거하기 때문이죠.
둘러싸인 섬 Surrounded Islands (1983)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둘러싸인 섬 Surrounded Islands (1983)> 이 작품은, 마이애미의 섬 11개를 포장한 작업이에요. 핫 핑크 색깔의 천으로 섬 주변을 둘러쌌죠. 사용된 천의 규모는 약 18만 평. 거대한 자연을 포장해 낸 작업은 시간도, 돈도, 인력도 많이 들어가지만 2주 남짓 전시되고 무조건 철거됩니다. 컬렉터도, 미술관도 작품을 소장할 수 없죠. 심지어 작품을 설계한 작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본인들마저도요.
이들의 작업은 '대지미술'에 속함. 대지미술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두각을 보인 장르예요. 앞서 언급했듯, 미술품이 투자수단으로 막 떠오르기 시작하던 세태에 저항하고자 시작됐죠. 이들은 작품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거래되기보다, 만들어진 곳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사진 © 1976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그리고 이들은 ‘미술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어요.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 국한된 전시는 이제 수명이 다했으며, ‘자연’ 속에서 자연을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자연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선보였어요. 이런 작품은 시간이 지나며 풍화작용에 의해 침식되거나, 변형되곤 함. 대지미술은 이러한 과정까지 작품의 일부로 모두 포함시켜요.
이처럼 대지미술은 갤러리, 박물관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 공간의 경계에서 벗어나, 자연경관에서 감상할 수 있고,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이를 넘어선 더욱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포장: 숨겨지면서야 드러나는 것
Package on a Table (1961) / Wrapped Chair (1961)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다른 대지미술과 다른,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대표 특징은 ‘포장’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크리스토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천으로 덮는 작업을 선보였다고 해요.
상자부터 병, 의자, 자동차, 나무 등 다양했는데요. 크리스토는 이 물건들을 천으로 덮고, 밧줄로 묶었습니다. 이렇게 숨겨진 물건은 때로는 완전히 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형태만 보이기도 했어요. 또 때로는 관객의 시야를 가려버리기도 하고요. 이는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걸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숨기기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이라고도 불려요.
Valley Curtain (1970-72)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계곡 커튼 Valley Curtain (1970)> 이 작품은 콜로라도의 라이플 갭 Rifle Gap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에요. 4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두 개의 산을 주황빛 커튼과 닻줄로 잇는 시도였죠. 2년 4개월 간 철저히 작품을 설계했지만 천의 무게가 61톤이나 됐기 때문에, 설치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 실패했습니다. 설치한 뒤에도 돌풍으로 인해 28시간 만에 찢어졌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곡 커튼>은 여러 미학적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받아요.
이전에 이 길은 건너편이 잘 보였는데, 천으로 계곡을 포장하면서 그간 당연히 볼 수 있었던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또, 자연의 색깔과 이질적인 주황빛 천을 사용해서 우리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죠.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예술은 이렇게 공간을 숨기면서, 새로운 가치들을 드러내는 게 특징이에요.
[2] 일시성
포장된 개선문 L'Arc de Triomphe (1961-2021)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그들 작업의 두 번째 특징은 ‘일시성’입니다. 작품에 얼마나 시간과 돈이 들었는지와 상관없이, 대부분 작품을 2주, 길어야 3주 정도만 설치해 두는 게 원칙이죠.
그들의 가장 최근 작업인 <포장된 개선문 L'Arc de Triomphe (2021)>은 파리의 개선문을 천과 밧줄로 감싼 작업이에요. 7,500평 크기의 천과 3,000미터의 밧줄을 사용했습니다. 들어간 비용은 1654만 달러, 한화 약 209억 2천만 원이었고, 설계 기간은 27년, 설계 시작부터 실행까지 걸린 기간은 60년입니다.
포장된 개선문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이 들어간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도 2주만 전시했어요. 이들이 이렇게 일시적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건, 대지미술의 특징인 상업성에 저항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약간 방식이 달라요. 대지미술은 자연에 계속 남아있지만, 이 작품은 철거되며 관람객, 컬렉터뿐만 아니라 작가마저도 작품을 소유할 수 없게 돼요. 아깝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게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전하고 싶어 한 메시지입니다.
이 때문에 작품을 선보일 때부터 단 2주만 전시할 것을 알리기도 했어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잠시 동안만 존재할 작품을 더 자세히,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 노력했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아지고 가벼워진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공들여 바라보게 만든 이 작품은 다른 작품이 줄 수 없는 가치를 주기도 했습니다.
[3] 정부 기관, 사회 시스템과의 협업
포장된 국회의사당 Wrapped Reichstag (1971-95)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오늘날 예술가가 협업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조수를 두기도 하고, 설계도만 그리고 작품 구현은 외주를 맡기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협업 규모는 좀 남다릅니다. 정부 기관부터, 변호사, 과학자, 지역사회 일원 등 다양한 이들과 광범위하게 협업하죠.
이렇게나 협업하는 이유는 작품 규모가 워낙 큰 탓도 있지만, 각 지역의 정부 당국 허가도 받아야 하고, 지역사회 일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도 있습니다. 도심 속, 자연 속 대규모 작품을 선보이는 탓에, 교통을 통제해야 하거나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죠.
<포장된 독일 국회의사당 Wrapped Reichstag (1971-95)> 이 작품 역시 2주가량만 전시를 진행했지만, 2주 간 국회의사당을 포장하기 위한 과정은 ‘투쟁’ 그 자체였습니다. 기획부터 실현까지 무려 24년이 걸렸다고 해요. 이에 대해 크리스토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종적으로 보이는 어떤 물리적 대상만이 예술작품인 게 아니다. 오히려 시장조사를 하고, 작품 계획을 세우고, 설치 차용 계약을 하고, 부품을 제작하고, 조립하고, 공청회를 갖는 등의 모든 과정이 다 작품의 일부분이다.”
포장된 국회의사당 관련 논의를 위해 독일 의회가 토론하던 모습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Christo와 Jeanne-Claude의 작업에는 기술적, 법률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겪으며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논쟁과 저항, 지지 등도 작품의 일부가 되죠. 수년간의 계획, 지방 당국 및 토지 소유자와의 광범위한 협상, 엔지니어링, 물류 문제 등 다양합니다.
작품을 만드는데 투입되는 인력은 매우 다양하지만, 작품 설치 자금은 오롯이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둘이 조달하는 것도 특징이에요. 국가 보조금은 물론 사적인 후원, 기부도 받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크리스토의 설계 도안을 작품화하거나, 작업 과정을 촬영해 영화화하거나, 드로잉 작품 등을 판매해 프로젝트 비용을 충당한다고 해요.
[4] 놓치지 않은 환경 이슈
<둘러싸인 섬>의 설치 모습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1983년 선보인 <둘러싸인 섬 Surrounded Islands>. 이 작품은 마이애미 섬 11개를 핫 핑크 천(폴리프로필렌 패브릭)으로 둘러싼 작업이에요. 이 설치물도 규모가 큽니다. 사용된 천의 크기는 약 18만 평이라고 해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작업은 대지를 캔버스로 삼기 때문에, 늘 환경 파괴 이슈가 제기되곤 합니다. 그리고 <둘러싸인 섬> 이 작업은 가장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작품이에요. 바다와 섬의 환경 파괴가 당연히 있을 거라 여겨졌고, 겨우 11일 간 설치를 위해 환경 파괴를 감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비난이 있었죠.
<둘러싸인 섬>의 설계도 일부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이에 Christo와 Jeanne-Claude는 환경파괴를 거의 일으키지 않기 위한 기획도 진행합니다. 섬의 야생동물을 공부하고, 그들의 생활 패턴과 습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작업을 계획했죠. 또, 섬을 둘러쌀 직물도 환경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 종류로 선별해 3년여간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지 검토했습니다. 이를 위해 팀도 설계했는데, 변호사부터 해양 엔지니어, 해양 생물학자, 조류학자, 포유류 전문가까지 다양했다고 해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작품을 구현하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된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뭘 하려고 하기보다, 인간의 손이 아예 닿지 않는 게 자연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거죠.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이런 의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품 전시가 종료된 후에 섬과 바다의 환경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걸 넘어, 40여 톤의 바다 쓰레기를 추가로 청소했다고 해요.
<둘러싸인 섬>의 설치 모습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자연을 캔버스 삼은 작품은 필연적으로 환경 및 생태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업 전, 중, 후의 자연환경을 꾸준히 체크하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선보여요. 그리고 이 역시 작품의 일부로 담깁니다. 이들 작품을 보며 관객은 자연환경보호, 인간 개입의 영향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5] 관객과의 상호작용
플로팅 피어스 The Floating Piers (2016)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플로팅 피어스 The Floating Piers(2016)>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이세오 Iseo 호수에 설치된 작업이에요. 3만 평 규모의 노란 천을 사용해 호수의 섬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만들었죠. 폭은 약 16미터, 높이는 35센티로 얇았는데요. 덕분에 관객은 수면 위를 걷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일렁이는 물결에 따라 길이 움직이기도 해서, 독특한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었죠.
Christo와 Jeanne-Claude의 작품은 접근이 힘든 자연에서 선보여지기도 하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도 전시됩니다. 작품이 자연스레 대중의 일상과 사고 속으로 침투하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 역시 무료로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크리스토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플로팅 피어스 위의 크리스토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티켓도, 공석도, 예약도, 주인도 없었습니다. 떠다니는 부두는 거리의 연장선이었고 모든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플로팅 피어스는 수백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았어요. 이렇게나 많은 관객이 올 수 있었던 건, 전통적인 전시 공간인 미술관이 아닌, 비전통적인 환경에서 작품이 전시된 덕분이었습니다. 감상과 경험의 공간이 된 호수는 관객의 정서에 깊이 개입하며,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 작품이 되었죠.
[6] 예술적 의미
문 The Gates (2005)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수많은 포장 작업을 선보인 이후, 이들의 작업은 설치로 나아갑니다. <문 The Gates (2005)> 이 작품은, 뉴욕 시 센트럴 파크에 주황색 천으로 감싼 철문 7,503개를 설치한 작업이에요. 나란히 놓인 철문은 무려 37km(23마일)로 길게 늘어섰죠.
하지만 뉴욕 시민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철문은 땅에 박지 않아도 설치할 수 있게 설계해서, 자연에도 영향이 없었죠. 변화를 경험한 건 오직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뜻 밖에 관객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도심 속 자연의 공간인 센트럴 파크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작업으로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문 The Gates (2005)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Christo와 Jeanne-Claude의 프로젝트는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 인간과 주변 환경의 관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낳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서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했죠.
The Gates 앞의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예술의 상업화에 저항해, 판매할 수 없는 작품을 선보인 예술가 부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크리스토는 2020년, 잔 클로드는 200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구상부터 협업, 실현의 단계까지 철저히 설계해 둔 덕에 2021년에는 <포장된 개선문>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1977년부터 고안된 <더 마스타바>는 현재 작업 중에 있고요.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 작품이 되어 아부다비에 설치될 예정입니다. 이 작업은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구적으로 남을 작품일 거라고 해요.
전통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공간과 개인에 대한 사유를 만드는 예술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여러분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 자료 출처
홈페이지 <christoandjeanneclaude.net>
책 <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 2014, RHK
책 <예술이 궁금하다> 마거릿 P. 배틴, 2004, 현실문화연구
책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정서연, 2023,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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