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카푸어: 공간을 차지하는 조각이 아닌, 공간을 창출하는 조각




Anish Kapoor 아니쉬 카푸어 (1954~) © Newyorker

1954년 인도 뭄바이 출생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작가
1991년 터너상 수상
2009년 런던 왕립 미술학교 전시장 전관 사용 (생존 작가 최초)
2011년 그랑팔레 회고전 (단 한 개의 작품으로 회고전 진행)
2012년 런던 올림픽 상징물 <아르세로미탈 궤도> 제작




Cloud Gate(2006), Anish Kapoor © etsy

아니쉬 카푸어의 대표작은 구름 문 Cloud Gate(2006)입니다. 강낭콩을 닮은 모습 때문에 The Bean이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리곤 하죠. 가로 10미터, 세로 20미터, 높이 12미터의 이 거대한 콩은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습니다. 

초기 제작비용은 600만 달러(한화 약 86억 원)이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2천3백만 달러(한화 약 331억 7천만 원)까지 비용이 올라갔습니다. 웬만한 건물 한 채를 지을 수 있는 돈이죠. 이 작품이 이렇게나 비싼 단가를 자랑하는 건, 제작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름 문 (Cloud Gate) 제작 당시의 모습 © millenniumparkfoundation


한 번에 저 사이즈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현재 기술로 불가능합니다. 여러 개의 조각을 이어붙여야 하죠. 아니쉬 카푸어는 작품을 설계한 후, 168개로 조각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강판 조각을 매끈하게 연마해 정확히 맞물린 후, 용접해서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을 만들어냈죠. 

제작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문제는 작품 제작 비용이었습니다. 86억에서 331억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제작 단가에 시카고시는 작품 구매에 난항을 겪었지만, 지역 유지가 작품을 구매하기로 합니다. 덕분에 300억 원이 넘는 거대한 콩은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죠.



© Flickr


© Frieze


예술작품 치고는 상당한 사이즈의 작품인 구름 문. 처음에는 시민이 사용하는 공원에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작품을 설계한 아니쉬 카푸어는 "이 작품의 진짜 가치는 공간을 차지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닌,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데서 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낼까요. 앞서 언급했듯, 작품의 표면은 고광택의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주변 사물과 풍경이 모두 반사되죠. 동시에 표면이 콩처럼 휘어져 있어, 비현실적으로 휘어져서 보입니다. 관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작품이 아닌 작품이 반사하는 휘어진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작품을 통해서 익숙한 공간의 생경한 모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인 작품을 바라보는 아니쉬 카푸어 © Chicago Sun Times


바로 이 지점에서 카푸어는 구름 문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고 보았습니다. 작품은 앞에서 보면 강낭콩 모양이지만, 작품 안쪽으로 들어가면 천장이 도넛처럼 뚫려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작품 한가운데로 가면 휘어진 스테인리스에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죠. 공간은 온통 휘어져 보이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 자신도 휘어져 있습니다. 이 순간에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 동시에 감상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작품이 반사하는 모습을 감상할 확률이 높습니다. 정확히 작품을 바라보려 해도, 그것이 반사하는 형상이 더 눈을 끄니까요.



눈 덮인 구름 문. 시카고의 날씨를 고려해 영하의 온도에도 손상되지 않게 제작했다. © Chicago Sun Times


그간 조각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다소 선호되지 않던 장르였습니다. 조각 작품의 특성 때문인데요. 조각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늘 '조각의 문제는 공간의 문제'로 였으며, 조각 작품은 공간을 잡아먹는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카푸어는 조각을 통해 오히려 공간이 드러나도록 설계했습니다. 공간인식에 역점을 둔 것이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스테인리스'라는 재질 덕분이었습니다. 주변을 반사하는 스테인리스는 예술가들에게 매혹적인 소재였습니다. 카푸어 이전에도, 이후에도 스테인리스를 이용한 예술가는 많았지만 모두 '조각 작품'이 드러나게 작업했지, '조각을 통해 공간이 드러나게' 작업하진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카푸어의 작품은 독보적인 강점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이죠.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감정을 전해주는 것,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것은 예술가들의 오랜 미션이었고, 현대미술에서도 동일합니다. 카푸어는 스테인리스의 반사하는 성질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닌, 그 특징을 이해하고 역으로 작품 안에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죠.



작품 가운데 공간으로 가면 보이는 풍경 © Chicago Sun Times


카푸어는 이 작품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문 Gate이라고 보고, 작품 제목을 지었습니다. 물론, 제목을 짓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카푸어의 아이디어 노트에는 '문'부터 시작해 동문, 서문, 천년의 문, 침묵의 문, 하늘의 문, 침묵의 문, 아침의 문, 하늘 아치, 거울 문, 빛의 문, 내면의 문 등 다양한 이름이 적혀 내려갔죠. 아이디어는 계속 이어졌지만, '문 Gate'에 대해서는 계속 가져간 걸 볼 수 있는데요. 문은 '통로'의 개념을 가집니다. 문을 지나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죠. 카푸어는 작품 제목에 '문'을 붙임으로써 관객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차원과 공간을 인식하길 바랐습니다.



리바이어던 Leviathan, Anish Kapoor, 2011 © Metalocus


그리고 이런 작품 감상 방식을 한 번 더 꼰 작품이 있습니다. 2011년 작, <리바이어던 Leviathan>이죠. 리바이어던은 카푸어가 2011년 회고전을 열며 처음 선보인 작품이었습니다. 전시가 열린 곳은 파리의 그랑팔레였는데요. 그랑팔레는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기념하며 지어진 건축물로, 천장이 유리로 된 것이 특징입니다. 독특한 건축양식에 기념비적인 역사도 있어, 파리에서 열리는 예술 관련 큰 행사는 모두 그랑팔레에서 열리곤 합니다. 공간도 매우 커, 아트페어가 열리기도 하죠. 이런 공간에 카푸어는 단 한 점의 작품만을 선보입니다. 1만 701킬로그램, 높이 38미터, 면적 4,034평의 초대형 작품인 <리바이어던>이었죠.

작품은 그랑팔레의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점은 작품 외부와 내부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 밖에서 보면 검은색이지만, 안쪽 공간으로 들어서면 붉은색을 하고 있습니다. 또 반투명한 재질로 만들어 그랑팔레 유리천장으로 내려오는 햇빛이 작품 안쪽까지 들어오죠. 자연광이 시시각각 바뀔 때마다, 작품 안에 있는 관객은 달라지는 작품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리바이어던 내부의 모습.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pako campo


작품은 걸어 다니며 감상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관객에게 선택지는 없기도 합니다. 작품 사이즈가 워낙 커, 작품의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는 없기 때문이죠. 공간을 터질 듯이 채우고 있어, 한눈에 작품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때문에 관객은 <리바이어던>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작품 안과 밖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작품의 부분을 조합해 전체 모습을 상상하게 되죠. 이는 관객에게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관객이 작품의 형태에 의문을 계속 품은 채로 작품을 감상해야 하고, 본인의 기억에 의존해 더듬더듬 작품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죠.

혼란스럽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관객들. 카푸어는 이런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작품의 제목을 <리바이어던>으로 지었습니다. 리바이어던은 미지의 공포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고대 페니키아 신화에서는 바다 괴물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고, 성서에서는 혼돈의 힘, 거대 생물을 의미하는 단어로 썼죠. 오늘날까지 이 흐름은 이어져 미지의 존재, 공포감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 Anish Kapoor


카푸어는 거대한 작품 속에서 관객이 느낄 혼란까지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오랜 역사 속 '미지의 존재에 느낀 공포'를 상징하는 리바이어던이라 지었죠. 거대한 조각의 일부를 관객이 탐험하듯 감상하게 만드는 건, 카푸어가 자주 선보인 작품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작품 시리즈를 카푸어는 Mental Sculpture (정신 조각)이라고 명명했죠. 관객의 머릿속에서 조각 작품이 새롭게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리바이어던>은 카푸어의 회고전에 출품된 유일한 한 개의 작품이었습니다. 보통 회고전을 진행할 때에는 작가의 생애 주기에 따라 시기별로 여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게 특징인데요. 카푸어는 오직 단 한 개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미술계는 '충분하며 완벽하다'라고 느꼈죠. 이는 리바이어던이 카푸어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한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작품 사이즈, 새로운 공간 경험을 주는 작품, 안과 밖이라는 개념 사용. 이들은 앞서 구름 문에서도 언급된 카푸어의 작품 특징입니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에는 더 많은 카푸어의 작품 특징이 녹아있습니다.



© Financial Times


카푸어의 예술세계는 매우 방대합니다. 인도인의 정체성을 살려 불교 개념을 작품에 적용하기도 하고, 본인만의 컬러를 사용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죠. 대중에게 잘 알려진 건 '가장 완벽한 검은색'이라 불리는 반타 블랙 VantaBlack입니다. 카푸어는 반타 블랙을 예술작품에 활용할 수 있는 독점계약을 맺었죠. 카푸어 외에는 누구도 반타 블랙을 작품에 활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많은 예술계 인사들의 비난도 받았지만, 이제는 카푸어의 강력한 브랜딩 요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카푸어의 작품세계는 2화에서 이어집니다.





함께 보면 좋을 예술가 셀프 브랜딩 사례 👀

❶ 올라퍼 엘리아슨: 관객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예술작품
❷ 백남준: 조각 작품의 딜레마
❸ 데미안 허스트: 박제상어를 만든 이유

Magazine

알다가도 모를 현대미술씬.
예술가들은 어떻게 자신을 브랜딩하고 마케팅할까요?

작가가 그려낸 작품세계와 시장이 받아들인 작품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세요.


I don’t believe in art. 

Believe in the artists.

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예술가를 믿을 뿐이다.

 -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 -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