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지 않은 저항정신, 뱅크시 작품 특징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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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노엔터테인먼트


최근 뱅크시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했습니다.

이 다큐는 뱅크시의 예술세계를 당시 거리예술 흐름과 함께 풀어 설명해주는데요. 현시점 가장 뜨거운 예술가이자 셀프 브랜딩이 잘 된 작가인 만큼, 세 편에 걸쳐서 뱅크시의 [1] 작품세계 [2] 돈벌이, [3] 모순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이번 편은 뱅크시의 예술세계 그 첫번째, '작품'을 다룹니다.




뱅크시 작품의 핵심 소재, '쥐'

뱅크시가 그래피티를 하던 1980년대 후반, 미국과 영국 경찰들은 골목길에서 삼엄한 감시를 했습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잡기 위해서였죠. 그들이 그려내는 그래피티는 도시경관을 헤칠 뿐 아니라,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뱅크시 역시 많은 그래피티를 그렸고, 현재까지도 (작품활동이자 불법행위인) 그래피티 작품 때문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뉴욕에서는 지명수배자이기도 하고요.

그래피티를 그리기 위해서 뱅크시는 늘 밤 늦은 시간에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사람이나 경찰은 피해야만 했고요. 뱅크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쥐'에 자주 투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쫓겨다니며 멸시받는 존재, 골목길 하수구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사람이 없을 때에야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쥐. 그렇다면 뱅크시는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이토록 멸시받는 존재를 자처한 걸까요?




Palestine Photo(2005) © Banksy



[1] 반전성향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방탄조끼를 입고있고, 동시에 총구에 겨눠진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팔레스타인 장벽에 그려져있는데요.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당했고, 2002년에는 아예 장벽까지 세워지며 세상과 차단되었습니다. 이는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이죠. 이 장벽은 베를린 장벽보다 세 배나 높고, 길이는 700키로미터나 된다고 해요.

뱅크시는 팔레스타인을 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이라고 언급하고, 이 장벽에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그림들이죠. 이 그림들은 단순히 메시지를 '선전'하기보다, 직관적이면서 위트있게 주제를 꼬집고 있어요.




Sofa Bethlehem’s checkpoint(2005) / Banksy Wall and Piece © Banksy


왼쪽 사진 역시 팔레스타인 장벽에 뱅크시가 그린 그림입니다. 뱅크시가 낸 책 <Wall and Piece>에 따르면, 이 그림을 그리는 중에 한 노인이 다가왔다고 해요. 그리고 노인은 이렇게 말 합니다.


“자네가 벽을 예쁘게 만들어 뒀군."

이에 뱅크시는 감사하다고 대답하는데요, 이에 노인은 이런 말을 남겨요.

“하지만 우린 이 벽을 보기좋게 만들고 싶진 않아. 이 장벽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야.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가게"


하지만 이 뒤로도 뱅크시는 장벽에 그림을 꾸준히 그려옵니다. 그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요. 700키로 미터나 되는 벽을 하나씩 채워가면서, 뱅크시는 계속해서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찾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Burger King Kid(2006) © Banksy


[2] 약자 보호

뱅크시는 난민, 기아 문제에 대한 작품도 자주 만들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아이들을 작품에 자주 활용하곤 했는데요. 이 작품의 아이는 버거킹 종이 왕관 모자를 쓴 모습을 하고 있어요.

버거킹은 패스트푸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인류 비만화에 기여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징이 담긴 모자를 쓴 기아의 모습은 아이러니를 강조하죠. 뱅크시는 평소, 작품과 함께 간단한 한줄평을 남기는데요. 이 작품 아래에는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때로는 내가 먹던 두번째 애플파이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이 너무나도 역겹게 느껴진다.”




Napalm © Banksy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 당시 도망치던 어린 아이 사진을 오마주한 것이에요. 원본사진(오른쪽)은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뱅크시는 사진 속 여자 아이를 미키마우스와 맥도날드 캐릭터가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위에서 본 <Burgerking Kid>와 마찬가지로 현시대의 아이러니, 부와 시스템이 고르게 분배되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합니다. 세상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외면받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해서요.




Monkey Queen(2003) © Banksy

[3] 권위 도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침팬지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 주변에 영국 국기의 컬러를 원 형태로 넣고, 왕관과 악세서리를 더해 엘리자베스 여왕임을 암시했죠. 뱅크시는 이 작품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어요. ‘영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재능이나 노력에 의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Kissing Coppers(2004) / What are you Looking At? © Banksy

뱅크시는 인물 뿐만 아니라 시스템도 비판합니다. 왼쪽 작품은 두 명의 경찰관이 키스하는 모습을 그려낸 <Kissing Coppers>에요. 뱅크시는 정말 많은 경찰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영국 LGBTQ 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브라이튼 지역에 그려졌어요.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경찰을 가장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곳에 위트있게 그려낸 것이죠.

오른쪽의 작품, <What are You looking at?>은 CCTV를 벽으로 돌려놓은 모습을 하고있어요. 그리고 뱅크시는 벽에 '뭘 봐?'라고 적어두었죠. 전부터 뱅크시는 현대 영국에서 가장 나쁜 것 중 하나를 CCTV라고 주장했는데요. 사회를 감시하고 억압하려는 존재에 대한 비판을 문장 하나로 가볍게 비꼬며, 이 작품 역시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Banging Your Head Against a Brick Wall (2001) © Banksy


9살 때 시작된 뱅크시의 저항 정신

전쟁에 반대하고, 외면받는 아이들에 주목하고, 권위에 저항한 뱅크시. 그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크게 하나로 보면, '저항 정신'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뱅크시가 이토록 저항 정신이 가득한 작품을 선보인 건, 그의 어린시절 영향이 컸습니다.

뱅크시는 한국나이로 11살 때, 교내 폭행 사건에 연루됩니다. 사건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지만, 주동자들이 입을 맞춰 뱅크시에게 덮어 씌운 것이죠. 뱅크시는 본인의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머니는 "잘못을 인정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인정하지 않는 너의 태도는 역겹기까지 하다"고 말했죠.

그 뒤로 뱅크시는 학교와 집 안 모두에서 입을 다문 채 지냅니다. 이것도 잠시, 이후 퇴학까지 당하게 되죠. 이 이야기는 뱅크시가 2001년 자비로 낸 첫 책, <벽돌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Banging Your Head Against a Brick Wall>에 나와있어요.

책에 따르면 뱅크시는 이후, 중학교 때부터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그래피티에 관심을 가지며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어울렸죠.



그래피티 문화, 그리고 뱅크시

그래피티는 자신의 이름을 거리에 그려내는 문화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를 '태깅'이라고 하는데요. 태깅은 지하철 열차, 건물 벽면, 굴다리 등 도시 곳곳에 새겨졌어요. 이를 막으려는 단속이 시작되었지만, 밤이나 새벽 빠르게 그림을 그리고 도망가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잡는 건 쉽지 않았죠. 한 학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들어 "박탈당한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전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뱅크시는 어린시절 겪은 부당한 일로 방황을 거치며,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을 싹틔웠습니다. 그리고 이 저항 정신을 단순한 피해의식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더 세밀한 표현 방식을 다듬어 나갔죠.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위트있게 그림에 배치했습니다. 뱅크시의 그래피티는 금세 많은 팬을 만들었죠.




뱅크시 작업에 비난의 글을 적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그룹, 'Team Robbo'

하지만 동시에, 동료들에게는 비난받습니다. 뱅크시의 그래피티는 당시 다른 작업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래피티의 정신은 자신의 이름을 공공장소에 새기는 것, 태깅에서 출발하는데요. 이 태깅의 주 목적은 동료들에게 과시하기 위함입니다. 더 개방된 장소일 수록 동료들의 리스펙을 받을 수 있고, 더 크게 그릴 수록 실력을 인정 받을 수 있죠. 하지만 뱅크시의 작업은 동료들에게 선보이는 과시가 아닌, 대중을 향한 메시지였습니다.

때문에 기존 그래피티와는 달리 '스텐실' 작업을 주로 활용했어요. 스텐실은 미리 판을 만들어두고, 그 위에 스프레이질만 하면 되기에 기존 그래피티보다 작업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더 많은 대중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죠. 하지만 그래피티는 위험을 감수하며 과감함을 보여주는 것이 곧 실력이기에, 그래피티 동료들은 뱅크시의 작업을 '떨거지, 걸레짝 Masterpiss'라고 불렀습니다. 안전한 집안에서 기초 작업을 다 하고, 위험한 현장에서는 몇 초만에 작품을 뚝딱 그려내버리니까요.



벽에 스프레이를 분사하면 완성되는 뱅크시의 스텐실 작업들 © Banksy Instagram

뱅크시는 동료들의 비난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뱅크시가 TimeOut지와 인터뷰한 내용에서 그는 이렇게 언급했어요. "전통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고수하는 여러가지 규칙이 있고, 난 그걸 존중해요. 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누가 내게 뭘 해야할 지 알려줬으면 좋겠군요."

이후 뱅크시는 길거리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본인의 저항 정신이 담긴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도둑전시를 하는 뱅크시의 모습 © Banksy

[4] 도둑 전시

이후 뱅크시의 저항정신은 미술시장으로 뻗어나갑니다. 만약 배우가 영화계를 혐오하고, 모델이 패션계를 혐오한다고 하면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뱅크시는 예술가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죠. 더불어 그래피티로 얻은 팬덤도 등에 얹고 있었고요. 뱅크시는 미술시장의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권위의식, 허상을 비판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테이트, 루브르, 모마 같은 유명 미술관에 '도둑전시'를 진행하죠. 각 미술관에서 주로 선보이는 작품의 특징이나 컨셉을 고려해 작품을 몰래 걸었습니다.




<Crimewatch UK Has Ruined the Countryside for All of Us> © Banksy

이 작업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2003년 선보인 첫 도둑전시 작업입니다. 그림과 액자, 캡션까지 완벽하게 테이트 미술관에 걸린 다른 작품과 비슷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접착제가 마르면서 두시간 30분만에 작품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본 경비원이 다른 경비원에게 알리면서 발각되었죠.

2003년 테이트를 시작으로, 17개월 간 뱅크시는 다양한 미술관에서 도둑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때로는 작품을 걸기 위해 조력자들이 미술관 내부에서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죠.




<Soup Can> © Banksy

다음으로 뱅크시가 향한 곳은, 미국 뉴욕에 있는 대표적인 현대미술관 모마MoMA였습니다. 이곳 3층에는 앤디 워홀의 <32개의 캠밸 수프 통조림>이 걸려있는데요. 뱅크시는 그 옆에 테스코 벨류 토마토 크림 수프를 그린 <수프 캔 할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호기롭게 5분 동안 관람객을 관찰했다고 해요.

뱅크시가 자서전에 쓴 말은 이러합니다. “관람객이 파도처럼 몰려와서 작품을 쳐다보고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떠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진정한 현대미술가가 된 느낌이었다.” 작품은 무려 6일간 전시되었습니다.




Wall Art © Banksy

2004년에는 영국 대영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이 곳에서는 미술품 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적 유물도 만나볼 수 있는데요. 뱅크시는 돌에 마트 카트를 밀고 쇼핑하러 가는 원시인의 모습을 새깁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캡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갔는데요. 캡션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었어요.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뱅크시무스 막시무스라는 이름으로 영국 남동부 지역에 상당한 작품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대다수는 벽에 그린 그림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열성적인 시 공무원에 의해 파괴된다.”

작품은 도둑전시 8일 후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작품에 대한 분석을 거쳐, 현재 대영박물관에서 영구 소장중이에요.






 Pest Control-Banksus Militus Vandalus © Banksy

같은 해, 뱅크시는 좀 더 과감한 작품도 선보였습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우리의 시대가 곧 올 것이다'라고 쓰인 쥐 형상의 조각 작품을 걸었죠. 이 작품은 무게가 꽤 나가서 벽에 걸기 위해 무선 드릴까지 준비했어야 했다고 하는데요. 너무 과감한 작품이었던 탓에, 2시간 만에 철거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뱅크시는 수 많은 작품을 유명 미술관에 몰래 걸었습니다. 그래피티 작업을 하면서 생긴 담력, 깡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뱅크시는 때로 두려워하기도 했어요. 뱅크시가 뉴욕 타임즈와 나눈 인터뷰에 따르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도 시도하려다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도둑전시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피카소 작품 두 점 사이에 내 작품을 두려고 했는데 그러고 빠져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나는 스스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여러 전시실을 돌아다녔다. 시도해봤어야 했다.”

어쨌든, 도둑전시에 대해 미술관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습니다. 미술관의 권위를 비판하고자 몰래 걸어둔 작품이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는 등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낸 건, 뱅크시의 예술성이 그만큼 크다는 걸 오히려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죠.




Love is in the Bin © Sotheby's



[5] 파괴예술

미술시장에 저항한 뱅크시의 작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사진의 왼쪽 작업입니다. 원래 제목은 <Girl with Balloon>이었지만, 작품이 낙찰됨과 동시에 뱅크시는 작품을 갈아버렸죠. 그리고 이 퍼포먼스 이후, 뱅크시는 작품 보증서에 새로운 제목을 새겼습니다. <Love is in the Bin>. 낙찰 당시 가격은 약 15억 원이었지만, 현재가치는 3조 2,650억 원으로 여겨져요.

그간 뱅크시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동료 그래피티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 중에서도 뱅크시를 혐오하던 세력이 있었죠. 뱅크시의 예술세계가 지나치게 쉽고 단순하다거나, 거리 예술 자체를 예술로 보지 않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이 퍼포먼스에는 경외를 표하고, 인정했죠.



Jonathan Jones © The Guardian

뱅크시를 혐오하는 걸로 유명한 평론가, <가디언>지의 조너선 존스(Jonathan Jones)는 이렇게 썼음. “이번만큼은, 이 예술가는 예술을 오로지 상품으로만 여기는 시스템 전체에 강력한 한 방을 먹였다. 소더비에서 벌어진 사건은 뱅크시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그는 해야할 말을 했다. 예술은 돈에 질식되어 죽어가고 있다. 시장은 상상력을 돈벌이로, 반항하는 예술을 권력자의 집을 꾸미는 장식물로 바꾼다. 이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란은 예술작품이 팔리는 순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뱅크시는 미술시장 권위자들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세계 유명 미술관이 전시 열어주겠다고 해도 거절하고, 유명 갤러리가 전속작가를 제안해도 거절했죠. 또 이름난 컬렉터가 본인 작품을 구매했단 소식을 들으면 경멸했다고 해요. 미술관, 갤러리, 컬렉터는 미술시장이 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가장 핵심적인 존재인데 말이죠.


Banksy의 셀피 © TIME

그렇다면 뱅크시는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요? 거리예술만 하고, 도둑전시만 해선 돈이 안되는데 말이죠. 다큐멘터리로 보는 뱅크시의 예술세계, '돈'에 대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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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예술시장을 혐오한 예술가를 사랑하는 예술시장

❸ 실력과 관종력으로 시장점유율을 증대시킨 예술가, 제프 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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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 -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