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13인의 발칙한 사기극: 예술 장르로서의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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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an Kaprow, Yard, 1961 ⓒ Widewalls



현대미술계는 창의력의 각축장입니다. 


전례 없는 새로운 것을 내놓기 위한 자극과 도파민, 어그로가 가득한 곳이죠. 현역 예술가들도 이 어그로를 예술적으로 설득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요. 


1998년, 13명의 미대생들은 이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국가가 지원해 준 후원금 2천만 원을 횡령하는 방식으로요.



1. 사건의 시작

리즈 13인의 사진들 ⓒ VICE, Leeds 13



1998년 여름, 잉글랜드 북쪽에 위치한 리즈대학교 예술학과 3학년 학생들 열세 명은 학기말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나라에서 지원해 준 장학금 1천 파운드, 한화 약 175만 원을 각각 지원받았죠. 보통 학생들은 그 돈을 작품 재료를 사거나, 액자를 맞추거나, 전시회 도록을 제작하거나, 오프닝 행사의 케이터링 비용으로 활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어요. 나라에서 준 돈으로 휴가를 떠났죠. 이 사실이 밝혀진 건 전시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가장 바쁠 시기,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학생들은, 지도 교수에게 택배를 보냈어요. 택배에는 이들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며 찍은 사진과 휴가지의 기념품, 그리고 스페인 말라가 행 항공권이 담겨 있었죠. 안에는 지도 교수에게 쓴 편지도 있었습니다.


“교수님, 부디 저희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십시오. 

전시회 개막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학년 일동.”



리즈 13인의 사진들 ⓒ VICE, Leeds 13



보낸 주소는 마찬가지로 스페인이었습니다. 이들의 지도 교수는 걱정했어요. 전시 준비 상황을 공유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들이 설마 후원금으로 휴가를 떠난 걸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전시회가 열리는 날 저녁, 전시장은 오프닝 행사가 진행됨을 알 수 있는 케이터링이 있었지만 작품도 없고, 작가인 학생들도 없었습니다. 전시를 보러 온 학생들의 부모님과 친구들, 지도 교수는 당황했는데요. 30분 후 승무원이 나타나 작가님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야 한다고 안내합니다. 



리즈 13인의 사진들 ⓒ VICE, Leeds 13



버스는 공항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공항 게이트에서 이들은 여름휴가로 잔뜩 새까매진 13명의 학생들이 우르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죠.


그들은 대변인까지 대동했습니다. 대변인은 전시 준비를 위한 후원금은 스페인에서의 휴가로 모두 써버렸고, 휴가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밝혔죠.



2. 공론화 시작

리즈 13인의 이야기가 보도된 교지 ⓒ VICE, Leeds 13


처음엔 리즈 대학 교지에서 이 소식이 보도되었어요. 동문들은 분노했고 일주일도 안 돼 큰 언론에서도 소식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CNN과 가디언지, 타임지 등 각종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신문 1면에 보도해요. 휴가를 예술이라 선언하는 예술가로서의 게으름, 공공자금을 횡령한 부도덕함이 가장 큰 비난 포인트였습니다.



리즈 13인의 이야기가 보도된 기사 ⓒ VICE, Leeds 13



하지만 이들을 딱히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없었어요. 엄밀히 말해 이들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 주장대로 휴가 자체가 예술이라면, 작품 제작을 위한 비용을 쓴 게 맞았죠.


하지만 그것이 국가 세금을 통해 만들어진 후원금이라는 점 때문에, 영국 전역은 분노합니다. 각종 언론에서는 지원받은 보조금을 모두 뱉어낼 것을 강하게 촉구했죠.



3. 진실이 드러나다

리즈 13인의 이야기를 보도하는 각종 언론들 ⓒ VICE


그리고 사건 발생한 달 만에, 리즈 13인은 BBC 라디오에 직접 출연해 이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라고 밝힙니다. 이들은 아트 컬렉티브로서 하나의 팀을 이뤘고,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려 했다고 말했죠. 그리고 이 주제를 풀기 위해 예술가와 예술을 후원하는 이들 모두에게 가장 예민한 후원금을 건드리기로 한 것이라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당황했어요. 이게 다 거짓말이었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건 철저히 연출된 것이었어요.  지도 교수에게 보낸 엽서에 찍힌 스페인 소인과 항공권은 그들이 직접 그리거나 포토샵으로 위조한 것이었고,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 일광욕 사진은 스페인이 아닌 학교 근처 해변가에서 찍은 것이었죠. 검게 그을린 피부도 분장이었고, 택배로 보낸 스페인 기념품은 중고품 가게에서 공수했습니다.



리즈 13인이 조작한 티켓 ⓒ VICE

리즈 13인의 사진들 ⓒ VICE



심지어 공항까지 매수했다고 해요. 스페인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다녀온 것처럼 연출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았지만 게이트를 통해 나올 수 있게 공항에 부탁했습니다. 이들은 게이트에서 나온 후 ‘비행기가 연착되지 않아 다행’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스페인은 다녀온 적도 없고 학생 기숙사에 숨어있었다고 밝혔죠.


리즈 13인은 이 상황 자체가 예술이라며, 본인들이 설계한 상황에 속은 모두가 관객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대형 언론과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대중들까지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한 관객이라고 말했죠.



4. 이어진 반응들

리즈 13인의 사진들 ⓒ VICE



이들의 사기극과 이어진 주장은 흥미로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예술이 아니라거나, 조악한 예술이라거나, 예술은 없고 마케터만 있다는 비난들이 이어졌죠. 하지만 리즈 13인은 각종 언론에서 본인들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의 샘 이후, 예술가가 명명하면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사상은 현대미술을 강력하게 견인하며, 1961년에는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이것은 아이리스 클러트의 초상화다. 내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이다”라는 문구를 초상화라 주장하기도 했고, 피에로 만초니는 자기 똥을 캔에 담고 무게를 달아 그 무게에 해당하는 금값을 받고 작품으로 판매했죠. 


변기, 똥, 텍스트는 그렇게 예술이 되었고, 오늘날엔 예술가들의 행동들, 하다못해 걷고, 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폭력적인 행동까지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 리즈 13인의 이 속임수는 잠시 현대미술에 브레이크를 걸어줬습니다. 



리즈 13인의 사진들 ⓒ VICE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에 고찰하게 만들었죠. 예술가가 선택하면 예술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술가와 일반인 중간에 있는 미대생의 선택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예술가가 내린 선택이 어쩌면 일반인이 내린 선택보다 더 구릴 수도 있지 않을까? 도대체 예술이 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논의는 활발해졌습니다.


예술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름 한 번쯤 들어보셨을 철학자,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이렇게 말했어요. ‘예술 작품이란 무언가에 관한 것이며, 관점과 스타일을 갖추고 있고, 수사적 생략을 사용해, 관객이 공백을 메우도록 이끌어들인다.’


예술 작품은 단순히 존재하는 게 다가 아니라, 그것과 마주한 사람이 그것에 반응해야만 한다는 걸 강조한 주장인데요. 실제로 오늘날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예술가 보다 관객의 중요성이 더 대두되고 있습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주체를 관객에게 넘기며, 예술의 효용을 확장시키는 거죠. 





물론, 예술의 쓸모는 그 가치 없음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논리 안에서 예술의 가치는 찾는 이들에게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리즈 13인의 이야기는 수많은 관객을 작품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디까지 예술일 수 있는가라는 현대미술이 풀어야만 할 숙제를 다시금 짚어주었죠.


아서 단토의 주장으로 이들의 작품을 바라보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현대미술을 잠시 멈춰세워 사람들을 사유하게 만들었고, 이를 후원금이라는 예민한 주제를 건드리며 사기극으로 연출했고, 사건 이후 한 달간의 텀을 두어 관객이 공백을 메우도록 끌어들였습니다. 이들이 설계한 상황은 예술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었죠.


리즈 13인은 이후 학교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고, 또 다른 전시회를 열기 위한 기업 및 지역 사업 후원을 받으며 이들의 예술적 행보를 이어나가기도 했습니다.



5. 해프닝이라는 예술 장르

Allan Kaprow, Fluids, 1967



이후 현대미술에는 해프닝이라는 장르가 활발하게 등장합니다. 해프닝은 작가가 설계한 상황을 일컫는데요. 퍼포먼스 아트, 행위예술과도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해프닝은 철저히 계획된 것이 아닌, 예측 불가능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도록 유도합니다.


때문에 즉흥적인 요소가 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사건들이 작품의 일부가 되죠. 



Maurizio Cattelan, Working is a bad job, 1993



현대미술계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해프닝을 즐겨 사용했는데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배정받은 자신의 공간을 향수회사의 팝업스토어로 임대하거나, 본인의 전시에 다른 작가 전시 작품과 기물을 모조리 훔쳐 와 전시하는 등 난해하고 비윤리적인 해프닝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술이라고 보기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작품들이기도 한데요. 그 논쟁이 작품의 가치를 완성시키며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숙제를 계속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리즈 13인의 기사 사진들 ⓒ VICE



물론, 어려운 개념이긴 합니다. 페인팅이나 조각 같은 전통적인 예술을 선호하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받아들이기 쉽지 않죠. 그래서 이런 난해함의 극한을 달리는 현대미술 장르들을 통칭하는 단어, MAYA (Most Advanced, Yet Acceptable)도 있습니다. 가장 진보적이지만,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미죠.


그럼에도 어떤 해프닝들은 예술이 되어 사람들의 사유를 이끌어내고, 그 자체로 의미가 되기도 하는데요. 모든 예술은 과거에 현대미술이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언젠가 해프닝이 주류 예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현대미술의 가장 진보적이고,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예술 장르, 해프닝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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