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경쟁: 레오나르도 다 빈치 VS 미켈란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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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의 탄생, 르네상스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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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The School of Athens (1509) © Public Domain


예술가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경쟁했던 건, 14세기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쓴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르네상스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르네상스에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시기였어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그들의 삶과 꿈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그 이전에는 인간이란 '지구에서 짧은 생을 보낸 후에 내세로 나아가는 죄 많고 타락한 생명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건 상당히 새로운 견해였어요. 


이전까지 예술가는 기술자로 여겨졌습니다. 죄 많고 타락한 생명체가 아닌 신들의 이야기나 성경 속 이야기만 높게 평가받았고, 이 이야기를 널리 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기술자가 오늘날 예술가의 원형이었죠.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야 예술가 개개인의 위상이 생기게 됩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경쟁이나 라이벌 구도도 생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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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 Getty Images, © Public Domain


그리고 그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 평가받던 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천재 예술가로 손꼽히던 인물들이에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만큼 자연스레 라이벌 구도가 형성 됐는데, 서로를 몹시 싫어했고 자주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다툼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낸 동료 예술가가 있었어요. 바로 조르조 바사리입니다.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시기 활동하던 예술가인데요. 화가이자 건축가로 활동해왔고, 당시에도 잘 나갔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알려진 건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미술사학자로서 였어요.


1550년,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전기를 집필했는데요. 매우 자세하게 썼고, 책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 오늘날 ‘미술사학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치열하고, 때로는 유치하게 경쟁해온 내용이 담겨있어요. 오늘 이 내용 토대로 설명하려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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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 Getty Images


다 빈치는 르네상스 맨의 전형입니다. 세기의 걸작인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이면서, 조각가로도 활동했고, 예술분야 외에도 발명, 건축, 과학, 음악, 천문학, 도시계획 등 많은 분야에서 활약을 보였던 인물이죠. 그런데 정작 다 빈치는 스스로의 예술가로서 능력치를 좀 낮게 평가했다고 해요.


당시엔 예술가를 후원하는 것이 흔했는데, 후원을 받기 위해 예술가들은 자기소개서를 쓰곤 했습니다. 다 빈치가 적은 자기소개서에는 예술에 대한 내용이 제일 마지막에, 짧게 들어가 있어요. 방대한 내용 뒤에 ‘... 조각상도 만들 수 있고, 그림이라면 누구 못지 않게 잘 그릴 수 있다' 정도로 짧게 적었죠.


할줄 아는 게 많았던 올라운더, 제너럴리스트였던 셈입니다. 할줄 아는 게 너무 많고, 또 너무 잘하다보니까,  미술을 할 때도 다양한 기법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곤 했어요. 르네상스 화가 중에서는 최초로 유화를 썼던 화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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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 Public Domain


미켈란젤로는 다 빈치보다 23살이나 어립니다. 거의 아빠뻘의 선배였지만, 기죽지 않고 라이벌 관계를 이어나간 데에는 미켈란젤로의 실력이 뒷받침 되었어요. 미켈란젤로도 화가이면서 조각가, 건축가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건 주로 조각 작품이에요. <다비드 상>, <피에타 상> 등이 대표적이죠. 회화 작품으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천장화, 건축에서는 <성 배드로 대성당> 등을 남겼습니다.


걸출한 작품들 외에도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의 지위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유럽은 이제 막 예술가가 기술자에서 인정받던 시기라, 대우가 아주 좋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기술자 대하듯이 시킨대로 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미켈란젤로는 약간 싸움꾼적인, 호전적인 기질이 있어서 부당한 대우에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미켈란젤로 이후 세대의 예술가에 대한 예우는 매우 달라졌다고 평가받아요.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라이벌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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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 Getty Images, © Public Domain


이들의 활동 시기는 겹칩니다. 워낙 뛰어난 실력을 갖춘 예술가들이었기에, 본인들이 원치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생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혐관, 혐오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죠.

 

왜 그랬냐면, 둘은 너무 달랐습니다. 다 빈치는 굉장한 신사였어요. 작업을 할 때든 누군가를 만날 때든 항상 멋진 옷을 입고 잘 꾸민 모습을 하고 다녔습니다. 실제로 키도 크고 외모도 준수. 언행도 매우 우아했다고 해요.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야생의 모습이었습니다. 항상 더럽고 꾀죄죄한 옷에 악취를 풍기고 다녔고,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어요. 어렸을 때 몸싸움을 하다가 코뼈가 주저앉으면서 외모 컴플렉스가 생겼다고 하고, 이때문에 성격도 괴팍해졌죠. 그래서 친구도 없고, 제자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둘은 예술관도 달랐습니다. 예술에 대해 이들이 언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요. 다 빈치는 예술의 핵심은 ‘회화’라 생각했고, 미켈란젤로는 ‘조각’이라 생각했습니다. 둘다 매우 전통적인 예술 장르지만, 평면 예술과 공간 예술이라는 점에서 다른 특징을 갖죠.


다 빈치는, 조각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이야기하곤 했어요. 작업이 끝났을 때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이 공사장 노동자와 같다는 것이었는데요. 반면 회화 작업은 작업이 끝나도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기에 예술의 가장 고귀한 정점은 회화라고 이야기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여기에 또 반박합니다. '원시인이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인류는 돌에 무늬를 새겼다. 이것이 조각의 기원이다'. 라고 말하면서 조각이야말로 최초의 독창적인 예술이라고 주장했죠.


이에 대해서 다 빈치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조각은 회화가 개발되기 전까지만 통용되다가 이제는 사라져가는 중이다'. ‘너무 노동집약적이다'. 이에 미켈란젤로가 할 말이 없어지면서, “다 빈치는 이제껏 제대로 끝낸 작품이 없다" 거나, “과거 동성애 문제로 고발당했었다"는 등의 아웃팅을 시전합니다. 인신공격을 한 것이죠.

 


 

피렌체 대회의장 벽화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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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폴 루벤스가 후에 그린 앙기아리 전투 Peter Paul Rubens, copy of The Battle of Anghiari (1606) © Public Domain


1504년, 이들은 정면승부를 하게 됩니다. 피렌체 시의 의뢰로 진행된 벽화 작업에서 였는데요. 당시 피렌체에는 500명 수용 가능한 대회의장이 있었습니다. 큰 규모 만큼이나 외관이 매우 근사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피렌체 시에서는 이 대회의장 내부도 멋지게 꾸미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의 양쪽 벽면을 벽화로 채우기로 했죠. 면적은 높이 8미터, 폭 20미터로 상당히 큰 사이즈였습니다.


처음에 피렌체 시는 다 빈치에게 의뢰를 요청합니다. 당시 경력으로 보든, 업적으로 보든 그래도 원탑은 다 빈치였기 때문에 의뢰를 했는데, 미켈란젤로가 소식을 듣고 ‘나도 동시대 손꼽히는 예술가인데 왜 요청을 하지 않냐'며 따졌다고 해요. 미켈란젤로는 정부 관계자를 찾아가서, 본인에게도 벽화를 맡겨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양쪽 벽면을 채울거면 한쪽은 나에게 맡기라는 끈질긴 요청 끝에 미켈란젤로는 결국 계약을 따내게 됐고, 다 빈치가 맡은 벽 맞은편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미켈란젤로가 참전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의뢰 작업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세기의 대결처럼 보여졌습니다. 두 천재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사람들도 기대했고요.

 

피렌체 시에서는 이들에게 각각 어떤 그림을 그릴 지 정해줬어요. 다 빈치에게는 ‘피렌체가 밀라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앙기아리 전투를 그려달라'고 맡겼고, 미켈란젤로에게는 ‘피렌체가 피사에 크게 승리한 카시나 전투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제는 달랐지만, 소재는 둘다 전투 현장이었어요. 하지만 둘은 매우 다른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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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앙기아리 전투 습작 (1504)


우선 다 빈치는 치열한 전투 장면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다 빈치가 그린 스케치를 보면, 기마병의 표정이 매우 살벌하고, 싸움으로 엉켜있는 군인들의 성난 근육 등이 그려져 있어요. 반면 미켈란젤로는 군인들이 강에서 목욕하다가 적군의 침입 소식을 듣고 옷을 입기 시작하는 순간을 그렸습니다. 본인의 호전적인 성격과는 달리, 이제 막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을 그렸죠.


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벽이 마주보는 구조였기 때문에, 실제 작업에 들어가고 나서도 서로 작업의 동태를 파악하며 경쟁은 더 심해졌다고 해요. 하지만 결론은 무승부였습니다. 굉장히 허무하지만, 둘다 실패작을 내놓았어요.


우선 다 빈치는,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기법을 적극 실험하던 화가였습니다. 이 대결에서도 다 빈치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는데, 이게 실패했습니다. 유화 물감에 화학적으로 무언가를 첨가했는데, 이 물감은 벽에 스며드는 게 아니라 계속 녹아서 흘러내렸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날에는 이때 다빈치가 그린 <앙기아리 전투>의 스케치만 남아있고, 후에 다른 화가가 스케치를 보고 그린 모사본만 볼 수 있습니다. 결과물이 없는 거죠.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완성하지도 못했습니다. 벽면 사이즈에 맞게 밑그림을 그려뒀는데, 이걸 실제 벽에 옮기지도 않고 끝냈다고 해요.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도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작품입니다. 대결은 했는데, 결과물이 없어서 승자도 패자도 없게된 것이죠.

 

 

예술가의 성공과 실패를 인정했던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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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의 초상 ©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오늘날의 생각으론 의뢰받은 일을 마치지 않았기에, 이들이 앞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어요. 게다가 나라에서 의뢰한 작업이었기에, 타격은 더 클 수 있었죠. 하지만 의뢰인인 피렌체 시는 '그렇게 되었구나'하며 의뢰한 벽의 원래 색깔 물감으로 덧발라버렸어요.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음. 첫째로, 당시 피렌체는 무역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이탈리아 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도시였습니다. 예술가에 대한 후원도 아끼지 않았던 곳이고요. 국가적으로 만든 후원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사적으로 후원하던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디치 가문이 있죠. 이처럼 당시 피렌체에서는 예술가에게 후원하는 게 너무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후원 개념으로 넘어갔다고 해요. 

 

둘째로는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바쁜 스케쥴도 있었습니다. 대결 직후에 다 빈치는 밀라노에서 작품 제작 요청이 들어오면서 작업을 방치하고 떠났어요.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청을 받고 로마로 떠나갔고요. 이들이 너무 스타 예술가여서, 바빴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언젠가는 작품을 마무리짓겠지하고 기다렸을 수도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당시 사람들의 추측인데요. 사실 다 빈치도, 미켈란젤로도 이 대결을 부담스러워했을 거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면승부를 하게 되면,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본인 명성 다 깎아먹는 일이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거란 추측이 있고, 또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면서 계속 크고 작은 싸움이 생겨 진짜 대결은 뒷전이 되었을거란 추측도 있어요.

 

그래도 예술은 계속되었습니다. 예술가에게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피렌체의 환경 덕분이에요. 사건 이후에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모두 피렌체의 후원을 통해 걸작들을 쏟아냈습니다. 예술가의 실패도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이들이 경쟁하면서, 세기의 명작을 만들수 있었을 것이라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술가에 대한 후원은 이어지고, 때로는 건강하게, 때로는 유치하게 경쟁하며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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