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 데이: 초콜릿을 그린 예술 작품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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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ne Thiebaud, Dessert Tray, 1992-1994 © Wayne Thiebaud Foundation

Wayne Thiebaud, Dessert Tray, 1992-1994 © Wayne Thiebaud Foundation


초콜릿은 16세기 유럽에 전래된 이후 귀족 문화의 상징이자 이국적 사치품으로 여겨져왔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예술 작품에도 초콜릿이 많이 그려져 왔어요. 오늘은 초콜릿의 역사를 담은 예술 작품 5점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8세기 스위스의 초콜릿

장 에티엔 리오타르, The Chocolate Girl, 1744, Staatliche Kunstsamlungen 소장

장 에티엔 리오타르, The Chocolate Girl, 1744, Staatliche Kunstsamlungen 소장


리오타르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경험을 했던 예술가입니다. *칼뱅파 신교도였던 리오타르의 부모님은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망명했고, 이후 파리, 빈, 런던, 로마, 이스탄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덕분에 어린 리오타르의 견문은 넓어졌죠. 유화, 판화, 파스텔화 등 다양한 미술 장르를 공부했는데, 그중에서도 리오타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파스텔화였다고 해요. 다루기 쉽지 않은 재료인 탓에 유화보다는 사용하는 화가가 적었지만, 리오타르는 파스텔화 특유의 질감과 색감에 매료되어 많은 그림을 파스텔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 <초콜릿 걸>에서 화가가 파스텔로 낼 수 있는 최대의 효과를 보여줬어요.


*칼뱅파가 박해받은 이유: 기독교 신학 체계 중 하나인 ‘칼뱅주의’는 오늘날 한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의 뿌리입니다. 하지만 등장 초기, 가톨릭교회와 절대 왕정으로부터 격렬한 박해를 받았어요. 국가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한 점,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틀이 된 장로제를 도입한 점 등이 문제가 되었죠. 장로제는 ‘왕 없이도 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며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렸죠. 프랑스에서는 칼뱅주의자들을 위그노라 부르며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은 깔끔하게 차려입은 하녀가 핫초콜릿을 나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언뜻 보았을 땐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작품은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감탄을 자아냅니다. 당대 최고의 파스텔 화가로 손꼽혔던 ‘로잘바 카리에라’는 이 그림을 들어 ‘가장 아름다운 파스텔화’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죠. 작품은 색감도 아름답지만, 디테일도 매우 아름다워요. 하녀의 구겨진 앞치마, 실크 치마, 쟁반에 비친 그림자, 도자기 그릇에 든 핫초코의 질감과 옆에 있는 유리잔 속 물의 질감 같은 묘사가 파스텔화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디테일을 담아냅니다. 








베이커스 초콜릿


이후 작품은 미국 베이커스 초콜릿 로고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로고 속 초콜릿은 네모난 직육면체의 고체 형태인데, 그림 속 초콜릿은 핫초코, 액체 형태라는 점입니다. 이 시기까지 초콜릿은 음료로 주로 소비되었다고 해요. 


초콜릿은 16세기 초, 스페인이 아스텍을 제패하면서 처음 스페인 궁정에 소개됐습니다. 당시 카카오를 활용한 초콜릿 음료 형태로 음용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쓴 맛 때문에 낯설었지만, 이후 설탕과 바닐라를 넣어 달콤하게 만들면서 부유층 중심으로 대중화됩니다. 부유층 중심일 수밖에 없었던 건, 초콜릿 재료인 카카오, 설탕, 바닐라 모두 식민지에서 온 고가의 수입품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이후 17세기부터 유럽 전역에 초콜릿 음료 문화가 확산했고, 리오타르는 이 고급스러운 문화를 파스텔화를 통해 특유의 포근한 질감과 색감으로 구현해 냈습니다.

 

 

18세기 스페인의 초콜릿

루이스 멜렌데스, 초콜릿 세트가 있는 정물, 1770, 프라도 미술관 소장

루이스 멜렌데스, 초콜릿 세트가 있는 정물, 1770, 프라도 미술관 소장


루이스 멜렌레스는 정물화 하나로 스페인 최고 화가가 된 인물입니다. 실제보다 더 생생한 묘사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감탄을 자아내죠. <초콜릿 세트가 있는 정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은 중국 청나라 시기의 수입 도자기 잔, 빵과 비스킷, 그리고 그리고 핫초코를 타 먹던 초콜릿 포트, 주전자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에요. 모두 바다 건너에서 수입해 온 값비싼 사치품들이죠. 


오른쪽 아래에는 초콜릿이 씌워진 듯한 비스킷이 보입니다. 오늘날엔 동그란 비스킷에 초코가 씌워진 과자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아직 이 시기까지는 이런 과자가 존재하진 않았어요. 동그란 초코 메달은, 초콜릿 음료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카카오의 흔한 형태였다고 합니다.


고체 초콜릿은 1847년에야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져요. 영국의 조셉 프라이가 코코아 파우더에 설탕과 카카오버터를 섞어 틀에 부어 굳히는 방식으로 최초의 고체 초콜릿 바를 만들었죠. 그리고 이 시점부터 초콜릿은 ‘마시는 사치품’에서 ‘먹는 간식’으로 성격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조금 새로운 이미지를 가져요. 사치품을 넘어, 여유로운 오후, 편안함을 즐기는 순간의 상징으로요.

 

 

19세기 프랑스의 초콜릿

Pierre Auguste Renoir, The Chocolate Cup, 1878, 루브르 아부다비 소장

Pierre Auguste Renoir, The Chocolate Cup, 1878, 루브르 아부다비 소장


고체형 초콜릿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마시는 초콜릿은 부유함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그 때문에 미술 작품엔 계속해서 이런 모습이 많이 그려지곤 했어요. 르누아르도 이런 시도를 했습니다. <초콜릿 한 잔> 이 작품은 르누아르 특유의 화풍으로 초콜릿을 마시는 여인을 그려냈어요. 여인이 입은 파란색 옷이나 붉은색 소파, 그리고 화려한 꽃무늬 벽지까지 작품 속 모든 요소가 그림 속 여인이 상당한 상류층임을 떠올릴 수 있게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하곤 했어요. 하지만 인상주의의 초기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비평가는 물론 관객의 반응도 좋지 않았고, 작품도 잘 팔리지 않았죠. 이윽고, 르누아르는 방향을 바꾸기로 합니다. 아웃사이더 인상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거부했던, 메이저 전시인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로 한 것이죠. 당시 르누아르가 미술상 폴 뒤랑 뤼엘에게 보낸 편지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파리에는 살롱전 출품 경력이 없는 그림을 좋아할 수 있는 미술 애호가가 15명도 되지 않습니다. 
제가 살롱전에 출품하는 것은 전적으로 비즈니스적인 문제입니다.”


그렇게 팔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았던 작품이 이 <초콜릿 한 잔>이었어요. 작품을 선보였을 당시, 한 미술 평론가는 ‘르누아르가 인상파를 버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확실히 화풍은 인상주의 그림 같다기보다 고전적인 느낌이 들어요. 결국 작품은 살롱전에 입선하는 데 성공은 했는데, 그리 큰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 

 

르누아르, 초콜릿 한 잔, 1912년, 1914년. 두 작품 모두 Barnes Foundation 소장

르누아르, 초콜릿 한 잔, 1912년, 1914년. 두 작품 모두 Barnes Foundation 소장


그럼에도 르누아르는 같은 제목으로 초콜릿을 마시는 여성을 두 번 더 그렸어요. 이후 그린 그림들엔 르누아르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기도 합니다.

 


20세기 프랑스의 초콜릿

Henri Matisse, Still Life with Blue Tablecloth, 1909,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Henri Matisse, Still Life with Blue Tablecloth, 1909,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인상주의 이후 이어진 모더니즘 시기에도 초콜릿, 혹은 초콜릿 주전자를 정물로 활용한 그림이 다수 그려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앙리 마티스가 특히 초콜릿 주전자를 자주 그리곤 했어요. 이전에 마티스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아멜리 파레르라는 여성과 첫눈에 반하고, 만난 지 석 달 만에 결혼했는데요. 당시 절친한 친구이자 야수파 동료였던 알베르 마르케에게 결혼 선물로 초콜릿 주전자를 선물합니다. 마티스는 이 주전자를 꽤 마음에 들어했어요. 신혼 때 그린 정물화를 보면, 대다수 작품에 초콜릿 주전자가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죠.

 

Bouquet of Flowers in a Chocolate Pot, 1902, 피카소 미술관 소장

Bouquet of Flowers in a Chocolate Pot, 1902, 피카소 미술관 소장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02년 작, <초콜릿 주전자 속 꽃다발>입니다. 이 작품은 초콜릿 주전자를 화병으로 활용한 것을 포착한 정물화인데요.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아내에 대한 헌사로 봅니다. 이 시기 마티스의 부인 아멜리 파레르는 파리에서 모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게의 인테리어를 위해 꽃꽂이를 직접 하곤 했다고 해요. 아내가 매일 같이하던 꽃꽂이를, 결혼 선물로 받은 초콜릿 주전자에 담은 모습을 담은 로맨틱한 그림인 것이죠.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마티스의 동료이자 강력한 라이벌로 손꼽히던 피카소가 작품 제작 약 40년 뒤에 구매했어요. 그 때문에 이 작품은 지금 피카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전후로도 마티스는 계속 초콜릿 주전자를 그렸어요. 1905년에 마티스는 자신의 딸이 집에서 책 읽고 있는 모습을 그립니다.



Interior with Young Girl Reading, 1905-06,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Interior with Young Girl Reading, 1905-06,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그동안에는 초콜릿 주전자가 주인공처럼 그려지곤 했는데, 딸이 태어나고 나서는 주전자가 정물화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닌, 인물화의 소품으로써 활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비중은 달라졌지만, 초콜릿 주전자는 여전히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요소로 쓰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티스는 1898년 결혼한 이후부터 1909년까지 10년 넘게 초콜릿 주전자를 많이 그려냈는데요. 1939년, 아내 아멜리와 이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멜리는 이 주전자를 가져가 버렸죠. 이후 마티스는 비슷하게 생긴 주전자를 다시 구해서 그림에 담아냅니다. 


마티스는 정물화 속 ‘정물’을 연극 무대 위 ‘배우’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곤 했어요. 연출자의 관점에서 가장 자주 활용한 초콜릿 주전자는 마티스에게 아주 매력적인 배우였던 것 같습니다. 

 

 

21세기 뉴욕의 초콜릿

Vik Muniz, Marilyn from Pictures of Chocolate, 1999,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Vik Muniz, Marilyn from Pictures of Chocolate, 1999,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빅 무니스는 1961년생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화가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는데, 작품은 꽤 인기가 많아요. 미술관에서도, 시장에서도 사랑받는 예술가죠. 무니스는 예술이 엘리트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예술관 아래, 대중 친화적인 재료로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초콜릿 시리즈예요. 조르주 쇠라나 빈센트 반 고흐, 앤디 워홀같이 대중에게 익숙한 예술가의 그림을 액체화된 초콜릿으로 그려내죠. 이 초콜릿은 한 시간 정도면 다 굳어버려서, 빠르게 완성해야 합니다. 상당한 그림 실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 작품인데요. 작품이 완성되면 사진으로 촬영하고, 6점 한정판으로 제작한 뒤에 초콜릿 자체는 폐기한다고 해요.


무니스는 이 일련의 작업 과정을 이야기하며, 본인을 ‘일루셔니스트’라고 표현했어요. 원본 회화나 사진 같은 영구적인 것을 초콜릿 같은 비영구적인 것으로 바꾸고, 이걸 다시 사진이라는 영구적인 것으로 남기면서 매체를 다양하게 바꿔나가는 일종의 연금술사 같은 이미지로 설명한 것이죠. 그림 그 자체보다는 아이디어가 강조된 장르가 현대미술이니만큼, 초콜릿의 특성을 잘 살린 현대미술 작품이 아닐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Wayne Thiebaud, Chocolate Cake, 1971, 테이트 브리튼 소장

Wayne Thiebaud, Chocolate Cake, 1971, 테이트 브리튼 소장


이렇게 초콜릿은 그림 속에서, 때로는 부유함의 상징으로 쓰였고, 때로는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때로는 현대미술의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재료로 쓰이면서 다양한 면모를 보여줬어요. 오늘날엔 전통적인 화가가 아닌 쇼콜라티에들도 초콜릿을 활용한 예술적 경지의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또 어떤 초콜릿 예술 작품이 등장하게 될까요? 





이정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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