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은 도서관의 날입니다. 지난 2023년부터 도서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이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지정된 날이인데요. 오늘은 도서관의 날을 맞아,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 중 하나인 ‘타셴(TASCHEN)’의 역사를 소개해 드리려합니다.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

3대 아트북 출판사는 오늘 소개할 타셴과 파이던, 애슐린 세 곳으로 손꼽힙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곳은 파이던이에요. 파이던은 1923년 시작되었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전적으로 전통과 품질을 강조하는 아트북 출판사에요. 파이던에서 출간한 책 중 가장 유명한 도서가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입니다. 미술을 이제 막 좋아하기 시작한 입문자 분들이 많이 읽는 책인데, 무게가 2키로 정도나가는 두꺼운 책이에요. 도서 사이트에서 표지만 보고 구매했다가, 받아보고 당황한 분들이 많은 책이기도 하죠. 두껍고 무거운 스펙만큼이나 내용도 탄탄합니다. 1950년 출간되고 전세계적으로 8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죠. 서양 미술사 개론서에 있어서는 가장 완벽한 책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 책을 대표로, 파이던은 고전적인 아트북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어요.
다음으로 손꼽히는 곳은 애슐린입니다. 애슐린은 3대 출판사 중에서 가장 막내에요. 1998년 시작되었는데, 고급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주로 샤넬, 루이비통, 까르띠에 같은 명품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책을 선보이고, 책의 콘텐츠만큼이나 디자인이나 프린트 퀄리티가 뛰어나요. 애슐린 책을 보면, 럭셔리 아트북이란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파이던은 고전, 애슐린은 럭셔리를 표방하며 아트북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타셴은 조금 다른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어요. 바로, ‘극단’이죠. 타셴은 아트북 시장은 물론이고, 기존 출판 시장에서 보기 드물었던, 극단적인 기획력을 선보이는 곳입니다.
타셴의 시작

© TASCHEN
타셴은 1980년, 당시 열여덟 살의 소년이었던 베네딕트 타셴(Benedikt Taschen b. 1961)이 세운 회사에요. 베네딕트는 의사 부모님 밑에서 자랐던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었던 독서광이었고, 그중에서도 만화책을 특히 좋아했죠. 그런데 보통의 아이들은 만화책을 좋아하면, 부모님께 사달라고 하기 마련인데요. 타셴은 좀 남달랐습니다. 본인이 사는 독일로 미국의 만화책을 받아볼 수 있게, 우편 주문 사업을 시작했죠. 한국 나이로 치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18살이 되던 해에는 아예 가게를 오픈해요. 독일 쾰른 지역에 25평 규모의 작은 만화책 상점이었습니다. 상점의 이름은 타셴 코믹스. 이곳에서 타셴은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만화책을 판매했어요. 이중에는 미국에서 우편 주문 사업을 하며 얻게 된 희귀본도 제법 있었어서, 초반에는 잘 팔렸다고 하는데요. 사실 만화책이나 희귀한 만화책을 구하려는 고객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의 매출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 TASCHEN
그래도 타셴은 4년이나 그 서점을 운영합니다. 수입은 크지 않지만, 어린 나이에 경험삼아 해보기는 좋은 비즈니스였고 경험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멈췄다면 세계 최대 아트북 출판사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타셴은 이 서점 창업을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더 큰 사업으로 확장하기로 해요.
베이직 아트 시리즈: 아트북 가격의 혁명
22살이 되던 해, 타셴은 이모에게 돈을 빌려서 미국의 무역 박람회장에 갑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영문으로 된 르네 마그리트의 단행본 4만 권을 권당 1달러에 구입해요. 전 세계에 있는 마그리트 단행본 재고를 모두 구입한 거죠. 그리고 이 책을 권당 6.6달러에 판매합니다. 이건 당시 판매되던 다른 아트북보다 저렴한 금액이었고, 빠른 시간에 4만 권이 모두 솔드아웃됐어요. 타셴은 이 판매를 계기로 저렴한 아트북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윽고 다른 아트북도 저렴하게 구매해 팔기로 하는데, 저렴한 아트북을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사실 이런 미술 도서들은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도판 비용 때문이에요.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책에 실려야 하다 보니, 책 제작 금액 자체가 많이 들어갑니다. 또 둘째로는 컬러 인쇄를 한다는 점 때문이에요. 대다수 흑백 도서가 많은 서구권 출판 시장에서 컬러 인쇄가 된 책은 훨씬 비싼 가격을 자랑했죠. 마지막으로, 미술 도서를 읽는 사람들이 다른 도서 구매자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보니, 소량 제작을 해야해서 더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그리트 단행본을 4만 권이나 구하고, 성공적으로 판매했던 경험은은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이었어요. 저렴한 아트북은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힘들게 찾은 저렴한 아트북은 신생 출판사인 타셴에게 책 라이선스를 굳이 넘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셴은 마그리트 책을 팔아 번 수익금을 모아, 즉시 아트북 제작에 들어가기로 해요.

© TASCHEN
우선 타셴은 마그리트 책을 4만 권 구입했던 것처럼 대량 제작을 했고, 저비용으로 마감처리를 진행해서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책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서, 유명한 예술가를 선정해요. 타셴이 첫 번째로 다룬 예술가는 피카소였습니다. <피카소: 세기의 천재>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고, 마찬가지로 권당 6.6달러 정도로 저렴하게 판매했어요. 책은 저렴한 가격대와 피카소의 인지도 덕분에 빠르게 팔려나갔습니다.
이후 타셴은 살바도르 달리, 빈센트 반 고흐의 책을 동일한 금액과 방식으로 제작하면서 판매하면서 성공해요. 이 저렴한 아트북 기획은 오느날 ‘베이직 아트’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예술가들의 책을 선보이고 있죠.
“우리 책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 수는 없다” -베네딕트 타셴
SUMO 시리즈: 가격과 사이즈의 혁명
타셴의 별명은 ‘극단의 출판업자’에요. 극과 극을 아우르는 사업적 전략 때문이죠. 베이직 아트 시리즈는 가격대도 저렴했지만, 다루는 예술가들이 다 대중적이었습니다. 클로드 모네, 프리다 칼로,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엮었죠. 이 기획도 학생을 비롯한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후, 타셴은 이런 메이저한 예술가가 아닌 마이너한 예술을 다루기로 해요. 포르노그래피 사진집을 내거나, 고급 호텔의 내부 전경 사진집을 내기도 했고, 골동품 꽃병 사진집 등을 내면서 과감한 행보를 보여줍니다. 이건 다른 아트북 출판사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들이었어요. 이 과감한 시도로 타셴은 출판업계에서 유명해지게 됩니다.
“보수적인 것에서 진보적인 것까지, 고급에서 저급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베네딕트 타셴



© TASCHEN
이렇게 인지도를 쌓은 타셴은 또한번 극단적인 전략을 구사하기로 해요. 이번에는 장르가 아니라, 가격에서의 극단을 추구했습니다. 1999년, 타셴이 만들어지고 19년째 되던 해에는 패션 사진작가 헬무트 뉴턴의 사진집을 출간했는데요. 책의 가격은 2만 달러였습니다. 한화로 3천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고, 1999년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죠.
이 책은 가격만큼이나 사이즈도 상당했어요. 페이지수는 464장, 가로 50cm, 세로 70cm로 기존 책들보다 두세 배 정도 큰 판형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장 압도적인 건 책의 무게입니다. 무려 30kg이었죠. 이 책은 다른 책들처럼 가볍게 들고 볼수 있는 책이 아니어서, 북스탠드도 특수 제작해서 판매했어요. 책을 구매하면 북스탠드도 함께 오는데, 이 북스탠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이 디자인하면서, 책의 소장 가치를 끌어올렸죠.

© TASCHEN
책은 1만 권 한정 판매로 출간됐어요, 모든 책에 작가의 친필 서명과 에디션 번호가 기재되었고요. 출간 소식이 전해지고 사람들은 타셴이 미쳤다거나, 회사가 망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인 헬무트 뉴턴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타셴 같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내가 몇 권의 책을 내봤는데, 출판사 사람들이 다 타셴 같지는 않더라. 타셴 같은 사람은 정말 없다. 아니, 그 같은 사람은 아예 없다. 솔직히, 타셴은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업계 사람은 물론이고, 책의 저자까지 염려할 정도로 파격적인 시도였던 건데요. 놀랍게도 출간 직후, 1만 권 중에 7천 권이 팔렸고, 나머지 3천 권도 순차적으로 팔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출간 얼마 안되어 모든 책이 솔드아웃됐어요. 이후에는 더 놀라운 기록도 세우게 됩니다. 책의 첫 번째 에디션(1만 권중 첫 번째 책)이 2001년 경매에서 31만 7천달러에 낙찰된 거에요. 한화로는 4억 7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책 가격 치고는 매우 비싼 금액이죠. 덕분에 타셴은 더욱 유명해지게 됩니다. 이후에는 무하마드 알리의 인생을 담은 사진집을 SUMO 시리즈로 출간하기도 하고, 현대미술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협업해 책을 제작하기도 했어요. 이전에 고급부터 저급까지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던 모습과, 유명 예술가를 큐레이션했던 기획력이 꽃을 피운듯 했죠.





© TASCHEN
그중에서도 많은 충격을 안긴 건 2018년에 내놓은 <페라리>였어요. 이 책은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인 페라리의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마찬가지로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해요. 가로 32cm, 세로 43cm. 페이지수는 514페이지였고, 무게는 38kg정도 됐습니다. 이전 책보다 더 크고 무거워졌죠.
이번에도 책 스텐드를 제작했는데, 페라리 차량의 엔진 장치에서 영감받아 크롬 도금 강철로 제작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정판이었어요. 1947부만 출간했는데, 이건 페라리의 창립 연도인 1947년에서 가져온 숫자입니다. 가격은 1만 달러. 전작보다 저렴한데 이건 대중을 위한 에디션이었어요. 스탠드까지 제공하는 아트 에디션은 더 비쌉니다. 250부 한정 판매고, 3만 달러. 한화 약 4,400만 원이었는데요. 대중을 위한 에디션과 아트 에디션 모두 놀랍게도 빠르게 매진됩니다. 특히 아트 에디션의 미개봉본은 최근 6만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어요. 8천8백만 원 정도 금액이었죠. 페라리 책이 왠만한 차 값인 셈입니다.
오늘날 타셴: 더욱 흥미로워진 기획력



© TASCHEN
타셴은 최근에도 계속해서 흥미로운 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제적으로 흥미로운 아트북을 내놓았는데요. 작년에는 레몬에 대한 책을 출간했어요. 레몬이라는 과일을 중심으로, 예술, 문학, 영화, 요리, 역사를 아우르는 책이죠.
미술에 있어서는 레몬이 등장하는 고전회화부터 현대미술을 시대순으로 소개해요. 바로크 시대에 레몬이 정물로 그려진 회화부터, 앤디 워홀의 레몬 그림까지 다양하죠. 또 역사에서는 레몬이 역사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가진 과일이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비밀 편지를 보내기 위한 잉크로 사용된 역사나,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진 레모네이드 이야기 등을 다루죠. 그리고 레몬을 재료로 한 전세계의 요리 레시피를 60개 이상 소개합니다. 이런 기획도 기존 아트북에서는 볼 수 없는, 타셴만의 발칙한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는듯 해요.


© TASCHEN
그리고 타셴은 1990년대부터 전 세계에 서점과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물론 있습니다. 남부터미널 역 근처에 타셴 북카페가 운영중인데요. 이곳에서는 한국어로 번역된 타셴 도서들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이곳 뿐만 아니라, 전국 서점에서도 한국어판 타셴 도서들 만나볼 수 있는데요. 기획적인 면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책이어서, 도서관의 날을 맞아 한 번쯤 읽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
❶ 식목일, 나무를 그려낸 예술작품
❷ 총 자산 31조 원, 억만장자가 세운 무료 미술관
❸ 카우스: 스트릿을 넘어 하이앤드로 간 디즈니 애니메이터
4월 12일은 도서관의 날입니다. 지난 2023년부터 도서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이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지정된 날이인데요. 오늘은 도서관의 날을 맞아,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 중 하나인 ‘타셴(TASCHEN)’의 역사를 소개해 드리려합니다.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
3대 아트북 출판사는 오늘 소개할 타셴과 파이던, 애슐린 세 곳으로 손꼽힙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곳은 파이던이에요. 파이던은 1923년 시작되었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전적으로 전통과 품질을 강조하는 아트북 출판사에요. 파이던에서 출간한 책 중 가장 유명한 도서가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입니다. 미술을 이제 막 좋아하기 시작한 입문자 분들이 많이 읽는 책인데, 무게가 2키로 정도나가는 두꺼운 책이에요. 도서 사이트에서 표지만 보고 구매했다가, 받아보고 당황한 분들이 많은 책이기도 하죠. 두껍고 무거운 스펙만큼이나 내용도 탄탄합니다. 1950년 출간되고 전세계적으로 8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죠. 서양 미술사 개론서에 있어서는 가장 완벽한 책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 책을 대표로, 파이던은 고전적인 아트북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어요.
다음으로 손꼽히는 곳은 애슐린입니다. 애슐린은 3대 출판사 중에서 가장 막내에요. 1998년 시작되었는데, 고급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주로 샤넬, 루이비통, 까르띠에 같은 명품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책을 선보이고, 책의 콘텐츠만큼이나 디자인이나 프린트 퀄리티가 뛰어나요. 애슐린 책을 보면, 럭셔리 아트북이란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파이던은 고전, 애슐린은 럭셔리를 표방하며 아트북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타셴은 조금 다른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어요. 바로, ‘극단’이죠. 타셴은 아트북 시장은 물론이고, 기존 출판 시장에서 보기 드물었던, 극단적인 기획력을 선보이는 곳입니다.
타셴의 시작
© TASCHEN
타셴은 1980년, 당시 열여덟 살의 소년이었던 베네딕트 타셴(Benedikt Taschen b. 1961)이 세운 회사에요. 베네딕트는 의사 부모님 밑에서 자랐던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었던 독서광이었고, 그중에서도 만화책을 특히 좋아했죠. 그런데 보통의 아이들은 만화책을 좋아하면, 부모님께 사달라고 하기 마련인데요. 타셴은 좀 남달랐습니다. 본인이 사는 독일로 미국의 만화책을 받아볼 수 있게, 우편 주문 사업을 시작했죠. 한국 나이로 치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18살이 되던 해에는 아예 가게를 오픈해요. 독일 쾰른 지역에 25평 규모의 작은 만화책 상점이었습니다. 상점의 이름은 타셴 코믹스. 이곳에서 타셴은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만화책을 판매했어요. 이중에는 미국에서 우편 주문 사업을 하며 얻게 된 희귀본도 제법 있었어서, 초반에는 잘 팔렸다고 하는데요. 사실 만화책이나 희귀한 만화책을 구하려는 고객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의 매출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 TASCHEN
그래도 타셴은 4년이나 그 서점을 운영합니다. 수입은 크지 않지만, 어린 나이에 경험삼아 해보기는 좋은 비즈니스였고 경험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멈췄다면 세계 최대 아트북 출판사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타셴은 이 서점 창업을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더 큰 사업으로 확장하기로 해요.
베이직 아트 시리즈: 아트북 가격의 혁명
22살이 되던 해, 타셴은 이모에게 돈을 빌려서 미국의 무역 박람회장에 갑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영문으로 된 르네 마그리트의 단행본 4만 권을 권당 1달러에 구입해요. 전 세계에 있는 마그리트 단행본 재고를 모두 구입한 거죠. 그리고 이 책을 권당 6.6달러에 판매합니다. 이건 당시 판매되던 다른 아트북보다 저렴한 금액이었고, 빠른 시간에 4만 권이 모두 솔드아웃됐어요. 타셴은 이 판매를 계기로 저렴한 아트북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윽고 다른 아트북도 저렴하게 구매해 팔기로 하는데, 저렴한 아트북을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사실 이런 미술 도서들은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도판 비용 때문이에요.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책에 실려야 하다 보니, 책 제작 금액 자체가 많이 들어갑니다. 또 둘째로는 컬러 인쇄를 한다는 점 때문이에요. 대다수 흑백 도서가 많은 서구권 출판 시장에서 컬러 인쇄가 된 책은 훨씬 비싼 가격을 자랑했죠. 마지막으로, 미술 도서를 읽는 사람들이 다른 도서 구매자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보니, 소량 제작을 해야해서 더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그리트 단행본을 4만 권이나 구하고, 성공적으로 판매했던 경험은은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이었어요. 저렴한 아트북은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힘들게 찾은 저렴한 아트북은 신생 출판사인 타셴에게 책 라이선스를 굳이 넘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셴은 마그리트 책을 팔아 번 수익금을 모아, 즉시 아트북 제작에 들어가기로 해요.
© TASCHEN
우선 타셴은 마그리트 책을 4만 권 구입했던 것처럼 대량 제작을 했고, 저비용으로 마감처리를 진행해서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책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서, 유명한 예술가를 선정해요. 타셴이 첫 번째로 다룬 예술가는 피카소였습니다. <피카소: 세기의 천재>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고, 마찬가지로 권당 6.6달러 정도로 저렴하게 판매했어요. 책은 저렴한 가격대와 피카소의 인지도 덕분에 빠르게 팔려나갔습니다.
이후 타셴은 살바도르 달리, 빈센트 반 고흐의 책을 동일한 금액과 방식으로 제작하면서 판매하면서 성공해요. 이 저렴한 아트북 기획은 오느날 ‘베이직 아트’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예술가들의 책을 선보이고 있죠.
“우리 책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 수는 없다” -베네딕트 타셴
SUMO 시리즈: 가격과 사이즈의 혁명
타셴의 별명은 ‘극단의 출판업자’에요. 극과 극을 아우르는 사업적 전략 때문이죠. 베이직 아트 시리즈는 가격대도 저렴했지만, 다루는 예술가들이 다 대중적이었습니다. 클로드 모네, 프리다 칼로,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엮었죠. 이 기획도 학생을 비롯한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후, 타셴은 이런 메이저한 예술가가 아닌 마이너한 예술을 다루기로 해요. 포르노그래피 사진집을 내거나, 고급 호텔의 내부 전경 사진집을 내기도 했고, 골동품 꽃병 사진집 등을 내면서 과감한 행보를 보여줍니다. 이건 다른 아트북 출판사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들이었어요. 이 과감한 시도로 타셴은 출판업계에서 유명해지게 됩니다.
“보수적인 것에서 진보적인 것까지, 고급에서 저급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베네딕트 타셴
© TASCHEN
이렇게 인지도를 쌓은 타셴은 또한번 극단적인 전략을 구사하기로 해요. 이번에는 장르가 아니라, 가격에서의 극단을 추구했습니다. 1999년, 타셴이 만들어지고 19년째 되던 해에는 패션 사진작가 헬무트 뉴턴의 사진집을 출간했는데요. 책의 가격은 2만 달러였습니다. 한화로 3천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고, 1999년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죠.
이 책은 가격만큼이나 사이즈도 상당했어요. 페이지수는 464장, 가로 50cm, 세로 70cm로 기존 책들보다 두세 배 정도 큰 판형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장 압도적인 건 책의 무게입니다. 무려 30kg이었죠. 이 책은 다른 책들처럼 가볍게 들고 볼수 있는 책이 아니어서, 북스탠드도 특수 제작해서 판매했어요. 책을 구매하면 북스탠드도 함께 오는데, 이 북스탠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이 디자인하면서, 책의 소장 가치를 끌어올렸죠.
© TASCHEN
책은 1만 권 한정 판매로 출간됐어요, 모든 책에 작가의 친필 서명과 에디션 번호가 기재되었고요. 출간 소식이 전해지고 사람들은 타셴이 미쳤다거나, 회사가 망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인 헬무트 뉴턴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타셴 같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내가 몇 권의 책을 내봤는데, 출판사 사람들이 다 타셴 같지는 않더라. 타셴 같은 사람은 정말 없다. 아니, 그 같은 사람은 아예 없다. 솔직히, 타셴은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업계 사람은 물론이고, 책의 저자까지 염려할 정도로 파격적인 시도였던 건데요. 놀랍게도 출간 직후, 1만 권 중에 7천 권이 팔렸고, 나머지 3천 권도 순차적으로 팔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출간 얼마 안되어 모든 책이 솔드아웃됐어요. 이후에는 더 놀라운 기록도 세우게 됩니다. 책의 첫 번째 에디션(1만 권중 첫 번째 책)이 2001년 경매에서 31만 7천달러에 낙찰된 거에요. 한화로는 4억 7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책 가격 치고는 매우 비싼 금액이죠. 덕분에 타셴은 더욱 유명해지게 됩니다. 이후에는 무하마드 알리의 인생을 담은 사진집을 SUMO 시리즈로 출간하기도 하고, 현대미술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협업해 책을 제작하기도 했어요. 이전에 고급부터 저급까지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던 모습과, 유명 예술가를 큐레이션했던 기획력이 꽃을 피운듯 했죠.
© TASCHEN
그중에서도 많은 충격을 안긴 건 2018년에 내놓은 <페라리>였어요. 이 책은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인 페라리의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마찬가지로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해요. 가로 32cm, 세로 43cm. 페이지수는 514페이지였고, 무게는 38kg정도 됐습니다. 이전 책보다 더 크고 무거워졌죠.
이번에도 책 스텐드를 제작했는데, 페라리 차량의 엔진 장치에서 영감받아 크롬 도금 강철로 제작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정판이었어요. 1947부만 출간했는데, 이건 페라리의 창립 연도인 1947년에서 가져온 숫자입니다. 가격은 1만 달러. 전작보다 저렴한데 이건 대중을 위한 에디션이었어요. 스탠드까지 제공하는 아트 에디션은 더 비쌉니다. 250부 한정 판매고, 3만 달러. 한화 약 4,400만 원이었는데요. 대중을 위한 에디션과 아트 에디션 모두 놀랍게도 빠르게 매진됩니다. 특히 아트 에디션의 미개봉본은 최근 6만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어요. 8천8백만 원 정도 금액이었죠. 페라리 책이 왠만한 차 값인 셈입니다.
오늘날 타셴: 더욱 흥미로워진 기획력
© TASCHEN
타셴은 최근에도 계속해서 흥미로운 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제적으로 흥미로운 아트북을 내놓았는데요. 작년에는 레몬에 대한 책을 출간했어요. 레몬이라는 과일을 중심으로, 예술, 문학, 영화, 요리, 역사를 아우르는 책이죠.
미술에 있어서는 레몬이 등장하는 고전회화부터 현대미술을 시대순으로 소개해요. 바로크 시대에 레몬이 정물로 그려진 회화부터, 앤디 워홀의 레몬 그림까지 다양하죠. 또 역사에서는 레몬이 역사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가진 과일이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비밀 편지를 보내기 위한 잉크로 사용된 역사나,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진 레모네이드 이야기 등을 다루죠. 그리고 레몬을 재료로 한 전세계의 요리 레시피를 60개 이상 소개합니다. 이런 기획도 기존 아트북에서는 볼 수 없는, 타셴만의 발칙한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는듯 해요.
© TASCHEN
그리고 타셴은 1990년대부터 전 세계에 서점과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물론 있습니다. 남부터미널 역 근처에 타셴 북카페가 운영중인데요. 이곳에서는 한국어로 번역된 타셴 도서들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이곳 뿐만 아니라, 전국 서점에서도 한국어판 타셴 도서들 만나볼 수 있는데요. 기획적인 면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책이어서, 도서관의 날을 맞아 한 번쯤 읽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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