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머릿속, 예술작품을 떠올려 보면, 봄, 여름, 가을을 그린 작품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겨울을 그린 작품은 거의 없어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로는 겨울의 추운 날씨를 버티며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눈이 내려 풍경이 하얗게 변하면, 그 안에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것이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겨울을 그린 그림이 많지 않은데요.
그럼에도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그렸다고 손꼽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겨울 그림 대표작 네 점을 시대순으로 준비해왔어요.
르네상스 시기- 피터 브뤼겔의 '눈 속 사냥꾼들'

피터 브뤼겔 (Pieter Bruegel the Elder), <눈 속의 사냥꾼들 (The Hunters in the Snow)>, 1565
첫 번째로 살펴볼 그림은 피터 브뤼겔이 그린 <눈 속의 사냥꾼들>이에요. 아마 ‘피터 브뤼겔’이라는 예술가는 낯설 것 같습니다. 브뤼겔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50년 정도 후배로, 르네상스 시기 작가로 분류돼요. 하지만 당시 예술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와는 거리가 있는, 네덜란드 작가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인데요.
하지만 오늘 소개할 브뤼겔의 작품, <눈 속의 사냥꾼들>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덕분에 작가보다 유명한 예술 작품이 되었죠. 이 그림은 1565년 그려진 그림입니다. 하지만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500년 가까이 되는 과거에 그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어요. 마치 동화책 속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현대 일러스트 그림 같은 느낌도 듭니다.
또 이 그림은 이런 현대적인 특성에 더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림에서 가장 먼저 이목을 끄는 건, 왼편에 있는 세 명의 사냥꾼과 여러 마리의 사냥개입니다. 이들은 그림의 주인공이에요. 사냥을 마치고 눈 덮인 언덕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브뤼겔이 그렸는데요.

고개를 푹 숙인채 돌아가는 사냥꾼들. 가장 위쪽 사냥꾼 등에 여우가 한 마리 달려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사냥의 수확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앞쪽에 있는 사냥꾼이 여우 한 마리를 짊어진 게 전부죠.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금은 의기소침해져서 마을로 돌아오고 있는데요. 이렇게 이들이 실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565년은 ‘소(小) 빙하기'라고 불리는 추운 겨울이 다가온 해였어요. 더 추워지기 전, 겨울 동안 먹을거리를 많이 구해둬야 했던 상황이었죠. 하지만 사냥꾼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근심 가득했을 텐데, 이 사냥꾼 옆쪽으로는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활기찬 겨울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요.
왼쪽의 여인들은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고 있고, 오른쪽 언덕 아래로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데, 사람들은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팽이치기를 하며 놀고 있습니다.
작품은 사냥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잔뜩 흐린 하늘을 그려서 불안감을 더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여기에 브뤼겔은 본인이 활동하던 네덜란드에서 불길한 징조를 상징하는 요소인 까치를 그려 넣었습니다. 사냥꾼들 위쪽으로 보이는 나무를 보면, 까치가 여러 마리 그려져 있는데요. 이 역시 근심 어린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는 장치에요.


땔감을 나르고, 소총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그림 속 이야기는 조금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의 요소를 하나씩 살펴보면 희망적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의 크기는 세로 117cm, 가로 162cm로 큰 편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그림을 보면, 언덕 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죠.
이들을 자세히 보면, 총으로 새를 사냥하는 사람도 있고, 얼음에 구멍을 뚫어 낚시를 하는 사람, 땔감을 나르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늘은 사냥꾼들이 허탕을 쳤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겨울 준비가 한창인 것이죠. 이렇게 서로 돕고 나눈 덕분에, 마을 공동체는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눈 속 사냥꾼들>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이면서, 르네상스 시기에 겨울 풍경을 그린 몇 안 되는 작품이에요. 덕분에 오늘날까지 '겨울을 그린 예술 작품'하면 손꼽히는 최고의 겨울 그림이에요.
인상주의- 클로드 모네의 '까치'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까치 (The Magpie), 1869
이제 인상주의 시기로 가보겠습니다. 인상주의 대표 작가, 클로드 모네의 <까치>라는 작품을 볼 건데요. 인상주의 작가들은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전의 화가들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단연 ‘밖에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일 거예요. 이들은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밖으로 나가, 계절별 풍경을 포착하고, 그림에 그려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밖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철도가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튜브 물감과 휴대용 이젤이 발명되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작업실을 벗어나서, 물감과 이젤을 들고 자연 풍경을 그리곤 했습니다.

클로드 모네와 그의 대표작, '인상, 해돋이' (1872)
그리고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인 클로드 모네도 튜브 물감과 휴대용 이젤을 들고 야외 풍경을 자주 그리곤 했어요. 모네는 '인상, 해돋이'와 '수련' 시리즈 등 많은 인상주의 걸작을 남긴 예술가인데요. 이 시기 모네는, 수많은 풍경화가 만들어졌지만 겨울 풍경화는 드물다는 걸 알고, 겨울을 그리기로 합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야외에서 그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당시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간 모네를 한 기자가 우연히 발견하고 관찰한 기록이 있는데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날은 7일간 내리 눈이 내렸고, 통신 기기도 완전히 고장 나버릴 정도로 추웠다.
돌조차도 깨질 정도였다.
그러던 중 우리는 길에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두꺼운 신발, 세 겹이나 겹쳐 입은 코트, 장갑.
그는 이젤 앞에 앉아 있었고, 얼굴은 반쯤 얼어 있었다.
그는 클로드 모네였다.
눈의 효과를 포착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얼굴이 반쯤 얼어버릴 정도로 노력했던 클로드 모네는, 그렇게 겨울 풍경을 그린 지 약 4년 만인 1869년에 <까치>를 내놓습니다. 여지까지 모네가 그렸던 겨울 그림 중 가장 큰 사이즈로, 세로 89센티, 가로 130센티의 그림이에요.
작품은 갓 내린 눈 위로 햇살이 비치는 걸 포착해, 겨울의 추위와 햇살의 따스함이 동시에 느껴지게 합니다. 이 대비를 보여주는 중요한 존재는 그림자에요. 모네는 그림자를 연한 파랑과 보라를 섞어서 표현했는데요. 이 시기 전까지 미술사에서는 ‘그림자는 검은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네는 이 오랜 관습에 도전하기 위해, 그림자를 보라색으로 그렸어요.

모네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 ⓒ AFP via Getty Images
이전에 빋피에서 보라색의 역사를 다루며 소개하기도 했던 내용인데요. 모네는 “앞으로 모두가 보라색을 작품에 사용할 것이다. 진정한 대기의 색이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보라색을 좋아했던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림자를 표현하는 데에 보라색을 사용해, 빛과 어두움이 가진 다채로움을 표현했죠. 그리고 이 작품, <까치>에서도 보라색 그림자를 그렸습니다.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며 자신의 예술적 가치관을 표현한 작가, 모네. 덕분에 작품은 겨울의 추위와 따스함을 모두 아우르며, 모네가 인상주의의 대표 예술가로 손꼽히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근대 미술- 조지아 오키프 '겨울 길'

조지아 오키프와 그의 그림 Series 1, No. 8 (1918)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겨울 길>입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사실 추상적이고 거대한 크기의 꽃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작가에요. 꽃은 그동안 수많은 화가들이 그려온 존재였지만, 오키프의 꽃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사이즈로 확대해 그려서, 꽃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 꽃 그림들처럼, 오키프는 풍경화도 독특하게 그렸어요. <겨울 길>이 대표적인데요. 작품은 겨울날의 풍경을 그렸는데, 새하얀 캔버스에 유화로 한 붓 그리기로 길을 그렸습니다. 눈이 가득 쌓인 언덕에 빼꼼 드러난 길만 단순하게 묘사한 풍경화인데요. 이 작품을 그린 비하인드도 흥미로워요.
어느 날 오키프는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도로를 바라보던 중,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길게 뻗은 길의 곡선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그 길을 두세 장 찍고, 곡선을 이리저리 다시 살펴봤다고 해요. 그리곤 여러 습작을 거친 끝에, 한 붓 그리기로 <겨울 길>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겨울 길 (Winter Road), 1963
대담한 붓질은 동양화를 연상시키는데요. 실제로 오키프는 동양 예술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대담한 붓질과 강인한 선이 강조된 수묵화의 기법을 이 그림에 적용했죠. 그래서 유화임에도 물감의 농담이 느껴지게 그려져 있습니다. 멀리 있는 길은 더 흐릿하고 연하고, 가까이 있는 길은, 선명하고 진하죠.
또 수묵화는 서양화와 달리, 공간의 모든 면을 빽빽하게 채색하지 않습니다. 여백의 미가 있는 것이지요. 의도적으로 공간을 비워두면서 빈 공간과 채워진 공간이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오키프는 이렇게 동양화 특유의 ‘덜어냄의 미학’을 적극 차용해, 그 빈 공간을 겨울 눈으로 표현했어요. 그렇게 <겨울 길>은 서양의 풍경을 동양화적 방식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동시대 작가- 미셸 들라크루아의 겨울 그림들

Michel Delacroix와 그의 겨울 작품 © 2024 M Fine Arts Galerie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가는 미셸 들라크루아입니다. 들라크루아는 상대적으로 낯선 작가이지만, 여지까지 개인전만 300번 넘게 했을 정도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에요.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1933년생, 올해로 91세가 된 고령의 예술가이자, 파리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에요. 사실 파리에서 활동한 예술가 하면, 피카소도 있고, 반 고흐도 있고, 유명한 예술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파리 태생은 아니에요.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왔고,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온 작가죠.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파리에서 나고 자란 찐 파리 태생 예술가에요.
그리고 90년가량 파리에서 살면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걸 자신의 예술적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록적으로 담아낸 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파리”를 그리는 게 특징이에요. 들라크루아에게는 그 파리의 모습이 오늘날의 현대적인 파리가 아닌,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 속, 7-80년 전의 파리였습니다.

Michel Delacroix의 겨울 작품 © 2024 M Fine Arts Galerie
그리고 그 시절의 파리는 오늘날보다 더 추웠고, 눈이 자주 내렸습니다. 들라크루아는 당시 파리에서 내리던 눈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이면서, 마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실제로 눈이 내리면, 익숙했던 도시 풍경이 많이 달라집니다. 거리에 아이들이 뛰어나와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죠. 또 사람들은 더 두껍고 포근한 옷을 입고 다니고요. 여러모로 도시의 분위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들라크루아는 이런 달라진 풍경이 오히려 향수 가득한 파리의 모습을 잘 담아낸다고 보고, 눈 내린 파리의 모습을 많이 그려냈어요. 에펠탑, 물랑 루즈, 노트르담 성당, 눈길을 달리는 마차 등을 더욱 아름답게 그려냈죠.

눈 내리는 물랭 루주, Moulin Rouge sous la neige, 2022 © Michel Delacroix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건 단연 물랑 루즈를 그린 그림이에요. 물랑 루즈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프랑스어로 빨간 풍차를 의미하는, 세계 최초의 카바레이자 파리 문화 번영기에 한 획을 그은 장소입니다. 그리고 들라크루아는 물랑 루즈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어요. 비 오는 물랑 루즈도 그리고, 눈 오는 물랑 루즈도 그려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파리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냈어요.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노스텔지아 어린 1930년대 파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국내 전시도 자주 진행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고 감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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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머릿속, 예술작품을 떠올려 보면, 봄, 여름, 가을을 그린 작품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겨울을 그린 작품은 거의 없어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로는 겨울의 추운 날씨를 버티며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눈이 내려 풍경이 하얗게 변하면, 그 안에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것이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겨울을 그린 그림이 많지 않은데요.
그럼에도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그렸다고 손꼽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겨울 그림 대표작 네 점을 시대순으로 준비해왔어요.
르네상스 시기- 피터 브뤼겔의 '눈 속 사냥꾼들'
피터 브뤼겔 (Pieter Bruegel the Elder), <눈 속의 사냥꾼들 (The Hunters in the Snow)>, 1565
첫 번째로 살펴볼 그림은 피터 브뤼겔이 그린 <눈 속의 사냥꾼들>이에요. 아마 ‘피터 브뤼겔’이라는 예술가는 낯설 것 같습니다. 브뤼겔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50년 정도 후배로, 르네상스 시기 작가로 분류돼요. 하지만 당시 예술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와는 거리가 있는, 네덜란드 작가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인데요.
하지만 오늘 소개할 브뤼겔의 작품, <눈 속의 사냥꾼들>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덕분에 작가보다 유명한 예술 작품이 되었죠. 이 그림은 1565년 그려진 그림입니다. 하지만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500년 가까이 되는 과거에 그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어요. 마치 동화책 속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현대 일러스트 그림 같은 느낌도 듭니다.
또 이 그림은 이런 현대적인 특성에 더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림에서 가장 먼저 이목을 끄는 건, 왼편에 있는 세 명의 사냥꾼과 여러 마리의 사냥개입니다. 이들은 그림의 주인공이에요. 사냥을 마치고 눈 덮인 언덕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브뤼겔이 그렸는데요.
고개를 푹 숙인채 돌아가는 사냥꾼들. 가장 위쪽 사냥꾼 등에 여우가 한 마리 달려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사냥의 수확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앞쪽에 있는 사냥꾼이 여우 한 마리를 짊어진 게 전부죠.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금은 의기소침해져서 마을로 돌아오고 있는데요. 이렇게 이들이 실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565년은 ‘소(小) 빙하기'라고 불리는 추운 겨울이 다가온 해였어요. 더 추워지기 전, 겨울 동안 먹을거리를 많이 구해둬야 했던 상황이었죠. 하지만 사냥꾼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근심 가득했을 텐데, 이 사냥꾼 옆쪽으로는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활기찬 겨울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요.
왼쪽의 여인들은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고 있고, 오른쪽 언덕 아래로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데, 사람들은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팽이치기를 하며 놀고 있습니다.
작품은 사냥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잔뜩 흐린 하늘을 그려서 불안감을 더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여기에 브뤼겔은 본인이 활동하던 네덜란드에서 불길한 징조를 상징하는 요소인 까치를 그려 넣었습니다. 사냥꾼들 위쪽으로 보이는 나무를 보면, 까치가 여러 마리 그려져 있는데요. 이 역시 근심 어린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는 장치에요.
땔감을 나르고, 소총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그림 속 이야기는 조금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의 요소를 하나씩 살펴보면 희망적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의 크기는 세로 117cm, 가로 162cm로 큰 편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그림을 보면, 언덕 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죠.
이들을 자세히 보면, 총으로 새를 사냥하는 사람도 있고, 얼음에 구멍을 뚫어 낚시를 하는 사람, 땔감을 나르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늘은 사냥꾼들이 허탕을 쳤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겨울 준비가 한창인 것이죠. 이렇게 서로 돕고 나눈 덕분에, 마을 공동체는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눈 속 사냥꾼들>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이면서, 르네상스 시기에 겨울 풍경을 그린 몇 안 되는 작품이에요. 덕분에 오늘날까지 '겨울을 그린 예술 작품'하면 손꼽히는 최고의 겨울 그림이에요.
인상주의- 클로드 모네의 '까치'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까치 (The Magpie), 1869
이제 인상주의 시기로 가보겠습니다. 인상주의 대표 작가, 클로드 모네의 <까치>라는 작품을 볼 건데요. 인상주의 작가들은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전의 화가들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단연 ‘밖에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일 거예요. 이들은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밖으로 나가, 계절별 풍경을 포착하고, 그림에 그려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밖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철도가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튜브 물감과 휴대용 이젤이 발명되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작업실을 벗어나서, 물감과 이젤을 들고 자연 풍경을 그리곤 했습니다.
클로드 모네와 그의 대표작, '인상, 해돋이' (1872)
그리고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인 클로드 모네도 튜브 물감과 휴대용 이젤을 들고 야외 풍경을 자주 그리곤 했어요. 모네는 '인상, 해돋이'와 '수련' 시리즈 등 많은 인상주의 걸작을 남긴 예술가인데요. 이 시기 모네는, 수많은 풍경화가 만들어졌지만 겨울 풍경화는 드물다는 걸 알고, 겨울을 그리기로 합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야외에서 그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당시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간 모네를 한 기자가 우연히 발견하고 관찰한 기록이 있는데요. 이렇게 적었습니다.
얼굴이 반쯤 얼어버릴 정도로 노력했던 클로드 모네는, 그렇게 겨울 풍경을 그린 지 약 4년 만인 1869년에 <까치>를 내놓습니다. 여지까지 모네가 그렸던 겨울 그림 중 가장 큰 사이즈로, 세로 89센티, 가로 130센티의 그림이에요.
작품은 갓 내린 눈 위로 햇살이 비치는 걸 포착해, 겨울의 추위와 햇살의 따스함이 동시에 느껴지게 합니다. 이 대비를 보여주는 중요한 존재는 그림자에요. 모네는 그림자를 연한 파랑과 보라를 섞어서 표현했는데요. 이 시기 전까지 미술사에서는 ‘그림자는 검은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네는 이 오랜 관습에 도전하기 위해, 그림자를 보라색으로 그렸어요.
모네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 ⓒ AFP via Getty Images
이전에 빋피에서 보라색의 역사를 다루며 소개하기도 했던 내용인데요. 모네는 “앞으로 모두가 보라색을 작품에 사용할 것이다. 진정한 대기의 색이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보라색을 좋아했던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림자를 표현하는 데에 보라색을 사용해, 빛과 어두움이 가진 다채로움을 표현했죠. 그리고 이 작품, <까치>에서도 보라색 그림자를 그렸습니다.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며 자신의 예술적 가치관을 표현한 작가, 모네. 덕분에 작품은 겨울의 추위와 따스함을 모두 아우르며, 모네가 인상주의의 대표 예술가로 손꼽히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근대 미술- 조지아 오키프 '겨울 길'
조지아 오키프와 그의 그림 Series 1, No. 8 (1918)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겨울 길>입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사실 추상적이고 거대한 크기의 꽃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작가에요. 꽃은 그동안 수많은 화가들이 그려온 존재였지만, 오키프의 꽃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사이즈로 확대해 그려서, 꽃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 꽃 그림들처럼, 오키프는 풍경화도 독특하게 그렸어요. <겨울 길>이 대표적인데요. 작품은 겨울날의 풍경을 그렸는데, 새하얀 캔버스에 유화로 한 붓 그리기로 길을 그렸습니다. 눈이 가득 쌓인 언덕에 빼꼼 드러난 길만 단순하게 묘사한 풍경화인데요. 이 작품을 그린 비하인드도 흥미로워요.
어느 날 오키프는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도로를 바라보던 중,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길게 뻗은 길의 곡선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그 길을 두세 장 찍고, 곡선을 이리저리 다시 살펴봤다고 해요. 그리곤 여러 습작을 거친 끝에, 한 붓 그리기로 <겨울 길>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겨울 길 (Winter Road), 1963
대담한 붓질은 동양화를 연상시키는데요. 실제로 오키프는 동양 예술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대담한 붓질과 강인한 선이 강조된 수묵화의 기법을 이 그림에 적용했죠. 그래서 유화임에도 물감의 농담이 느껴지게 그려져 있습니다. 멀리 있는 길은 더 흐릿하고 연하고, 가까이 있는 길은, 선명하고 진하죠.
또 수묵화는 서양화와 달리, 공간의 모든 면을 빽빽하게 채색하지 않습니다. 여백의 미가 있는 것이지요. 의도적으로 공간을 비워두면서 빈 공간과 채워진 공간이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오키프는 이렇게 동양화 특유의 ‘덜어냄의 미학’을 적극 차용해, 그 빈 공간을 겨울 눈으로 표현했어요. 그렇게 <겨울 길>은 서양의 풍경을 동양화적 방식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동시대 작가- 미셸 들라크루아의 겨울 그림들
Michel Delacroix와 그의 겨울 작품 © 2024 M Fine Arts Galerie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가는 미셸 들라크루아입니다. 들라크루아는 상대적으로 낯선 작가이지만, 여지까지 개인전만 300번 넘게 했을 정도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에요.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1933년생, 올해로 91세가 된 고령의 예술가이자, 파리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에요. 사실 파리에서 활동한 예술가 하면, 피카소도 있고, 반 고흐도 있고, 유명한 예술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파리 태생은 아니에요.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왔고,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온 작가죠.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파리에서 나고 자란 찐 파리 태생 예술가에요.
그리고 90년가량 파리에서 살면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걸 자신의 예술적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록적으로 담아낸 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파리”를 그리는 게 특징이에요. 들라크루아에게는 그 파리의 모습이 오늘날의 현대적인 파리가 아닌,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 속, 7-80년 전의 파리였습니다.
Michel Delacroix의 겨울 작품 © 2024 M Fine Arts Galerie
그리고 그 시절의 파리는 오늘날보다 더 추웠고, 눈이 자주 내렸습니다. 들라크루아는 당시 파리에서 내리던 눈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이면서, 마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실제로 눈이 내리면, 익숙했던 도시 풍경이 많이 달라집니다. 거리에 아이들이 뛰어나와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죠. 또 사람들은 더 두껍고 포근한 옷을 입고 다니고요. 여러모로 도시의 분위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들라크루아는 이런 달라진 풍경이 오히려 향수 가득한 파리의 모습을 잘 담아낸다고 보고, 눈 내린 파리의 모습을 많이 그려냈어요. 에펠탑, 물랑 루즈, 노트르담 성당, 눈길을 달리는 마차 등을 더욱 아름답게 그려냈죠.
눈 내리는 물랭 루주, Moulin Rouge sous la neige, 2022 © Michel Delacroix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건 단연 물랑 루즈를 그린 그림이에요. 물랑 루즈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프랑스어로 빨간 풍차를 의미하는, 세계 최초의 카바레이자 파리 문화 번영기에 한 획을 그은 장소입니다. 그리고 들라크루아는 물랑 루즈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어요. 비 오는 물랑 루즈도 그리고, 눈 오는 물랑 루즈도 그려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파리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냈어요.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노스텔지아 어린 1930년대 파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국내 전시도 자주 진행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고 감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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