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담아낸 예술작품 3 (밀레, 클림트, 장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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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가을 작품, 밀레의 <만종>

JEAN-FRANÇOIS MILLET, El Ángelus, (1857-1859) ⓒ Museo de Orsay



가을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예술가는, 단연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일 겁니다. 밀레 하면 <만종 The Angelus(1857-1859)>이라거나, <이삭 줍는 여인들 The Gleaners(1857)> 같은 작품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요. 두 작품은 모두 1년간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밀레 이전까지는 이런 계절이 변화하는 일상적인 순간을 담아낸 그림이 많지 않았어요. 밀레가 사실주의 예술의 선구자격 인물이기 때문인데. 사실주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예술 사조입니다. 이게 왜 특별하지? 할 수 있지만, 사실주의 전까지의 예술작품은 잘 꾸며진, 아름다운 것들을 주로 그려냈어요. 인물화도 최대한 아름답게 그리고, 풍경화도 최대한 아름답게 연출했습니다.



Jean-François Millet, Gleaners, (1857) ⓒ Museo de Orsay



그림을 그리는 것이 돈과 시간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림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거나, 충분히 아름답다 여겨지는 것들을 그려냈기 때문인데요. 사실주의는 그간 그림에 담기지 않았던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들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장 프랑수아 밀레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밀레가 그려낸 많은 농민 그림들 중, <만종>은 더더욱 특별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인 반 고흐, 살바도르 달리가 오마주 하면서 예술가들이 사랑한 예술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했죠. 

 

 

밀레의 <만종>이 예술가들의 작품이 된 이유

JEAN-FRANÇOIS MILLET, El Ángelus, (1857-1859) ⓒ Museo de Orsay



작품은, 밭일을 하던 농부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그림 오른쪽 뒤편 멀리에 있는 교회에서 종소리를 듣고 잠시 일을 멈춘 것처럼 보이는데요. 농부들의 일상적인 순간을 담았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적인 특성이 짙으면서도,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고, 그림 전반의 심상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덕분에 노동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듯한 느낌도 자아냅니다.


이건 이전까지 예술가들이 노동자 계급을 그린 방식과는 조금 다른 연출이었어요. 사실주의 예술가들은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지, 신성하게 연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우 독특한 시도였어요. 하지만 이건 미술사적인 해석이고, 작품의 매력을 증폭시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동화도 아이들을 위한 오리지널 동화보다 잔혹 동화가 흥미로운 것처럼, 밀레의 <만종>에도 잔혹한 뒷이야기가 있는데요. 



Salvador Dali, Archaeological Reminiscence of Millet's Angelus (1934) © Salvador Dalí Museum Inc



이 뒷이야기는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내놓은 주장에서 시작되었어요. 달리는, 기도를 올리는 농부 부부 사이에 놓여있는 바구니에 주목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바구니가 일하는 중에 먹을 간식을 담고 있거나, 이들이 추수한 작물을 담기 위한 용도일 거라 생각했는데요. 달리는 이 바구니에 이들이 낳은 아기의 시체가 담겨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부부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때문이 아니라, 죽은 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한 기도라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근거가 빈약했습니다. 당시 달리는 이 주장을 한 이유에 대해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그림을 보고만 있어도 불안해진다. 죽음의 시그널이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죠. 그래서 달리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 혹은 괴담 정도로만 치부되었는데요. 그러던 중 1932년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정신병을 앓던 환자가 이 작품을 칼로 두 번 그어버린 것이죠. 그림 복원을 위해 X선 투시 촬영을 진행했는데, 이때 달리가 주장한 바구니 시체 설도 함께 연구됩니다.



ⓒ prakharprabhakar



그리고 놀랍게도, 달리의 주장이 맞았습니다. 바구니 부분의 밑그림에 관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난 거죠. 미술사학자들은 밀레가 처음에 <만종>을 그릴 당시, 실제로 죽은 아기를 위한 기도 장면을 묘사하려다가 나중에 이를 수정해서, 농부들이 저녁 기도를 드리는 장면으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되면, 작품의 의미는 더 커지게 돼요. 앞서 사실주의 화풍이 노동자 계급의 평범한 일상을 조명한 사조라 말씀드렸는데요. 아기의 시체를 통해 그림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노동의 모습이 아닌, 가난하고 혹독한 상황에 자식을 잃은 척박한 현실을 드러낸 사회고발적인 작품이 됩니다. 덕분에 작품은 처음 만들어진 1860년 이후, 72년 만에 비밀이 공개되면서 다시 만들어졌다, 재탄생했다고 불리기도 했어요.


이렇게 <만종>은 흥미로운 이야기 덕분에 더 사랑받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을의 정취를 담아낸 작품으로 손꼽히면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지독한 루틴 속 탄생한 클림트의 풍경화

Gustav Klimt, Beech Grove I, 1902 ⓒ Galerie Neue Meister



두 번째로 살펴볼 작품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풍경화 <비치 그로브 원>에요. 노란색 낙엽이 떨어진 숲의 모습을 담은 그림인데요. 나무와 낙엽, 두 가지 요소만으로 단순하게 구성했지만 클림트 특유의 화려함이 담겨있는 그림입니다.


사실 클림트 하면, 흔히 황금을 붙인 그림이나, 관능적인 여성이 그려진 그림을 익숙하게 떠올리곤 합니다. 클림트는 삶도, 예술도 이분법적인 걸 추구했던 인물이에요. 사랑을 할 때에도 에로스적인 사랑을 하는 여인 따로,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는 여인 따로 뒀었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인물화에는 인물만, 풍경화에는 풍경만 그렸죠.



Gustav Klimt, Attersee, 1900 ⓒ  Leopold Museum



풍경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건 클림트의 나이 서른여덟 살 때부터입니다. 이 시기 클림트는 예술가로서 성공한 덕분에 짧으면 보름, 길면 두 달간 여름휴가를 즐기곤 했는데요. 16년 동안 매번 똑같은 장소로 여름휴가를 떠났어요. 클림트가 활동하던 대도시인 빈에서 멀리 떨어진 ‘아터 호수(Attersee)’였습니다.


아터 호수는 사실 오늘날에도 가기 쉽지 않은 곳이에요. 빈에서 출발하면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고, 편도로 다섯 시간 정도 걸립니다. 클림트가 활동하던 20세기 초에는 교통편이 더 열악했을 텐데도, 매년 여름 이곳으로 찾아왔어요. 이곳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터 호수는 ‘천사의 호수'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해요. 그래서 클림트뿐만 아니라 빈에서 활동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찾아왔던 곳이기도 하죠.



Gustav Klimt, Litzelberg am Attersee, 1915 ⓒ Gustav Klimt



클림트는 굉장한 집돌이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매년 여름이 되면 꼬박꼬박 아터호수를 찾아와 그림을 그렸고, 16년간 여름휴가를 와서 5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50점이면 많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건 이건 클림트가 평생 그린 그림의 4분의 1 정도 되는 양으로 많은 편이에요. 

 

 

여름 휴가지에서 가을 풍경을 그린 이유

Gustav Klimt, Schloss Kammer am Attersee I, 1908 ⓒ Gustav Klimt



클림트는 젊었을 때부터 예술성을 인정받았던 덕분에 굉장히 많은 의뢰를 받았던 예술가입니다. 항상 바빴어요. 그래서 여름 휴가철인 7월이 아닌, 8월-9월 경에 늦은 휴가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사실 8-9월이라고 해도 낙엽이 떨어지기는 이른 계절입니다. 그럼에도 클림트가 이렇게 가을 숲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아터 호수 지역의 오묘한 날씨 덕분이에요.


아터 호수는 산 중턱에 자리 잡아서 날씨가 매우 서늘하고, 빠르게 변화한다고 해요. 여름에도 춥고 서늘해서, 여름 속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죠. 그래서 이런 가을 풍경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해요. 또 아터 호수 주변에는 다양한 지형이 있었습니다. 호수뿐만 아니라, 습지, 숲, 들판 등 다양했죠. 덕분에 여름부터 가을까지의 자연 풍경을 다채롭게 그려낸 모습을 클림트 작품을 통해 볼 수 있어요.


클림트의 풍경화는 인물화와는 또 다른 화려함이 있어서, 마니아층도 탄탄합니다. 오늘날에도 클림트 풍경화 전이 열리거나, 풍경화 작품만 모아둔 책이 여러 권 쓰이기도 하면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죠. 

 

 

집, 가족, 고향, 그리고 계절의 풍경들



장욱진, 자화상, 1951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미술문화재단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 예술가인 장욱진 화백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이에요. 작품은 바라만 봐도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집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을 가로지르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길이 쭉 뻗어있어서 이 남자가 먼 길을 걸어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고요. 그리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장욱진 자신을 그려낸 그림입니다.


그런데 자화상인 것치고는 풍경의 비율이 매우 커요. 이건 장욱진 화백의 예술세계를 알면 이해할 수 있는 연출입니다.  장욱진 화백이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거친 격동의 시대였어요. 그리고 혼란스러운 전쟁의 참상 속에서 안전을 위해 자식과 떨어져 살게 됩니다. 장욱진 화백은 6·25 전쟁 직후, 자식을 부모님께 맡긴 채 아내와 부산으로 가게 되었는데요. 이때 자식을 두고 왔다는 괴로움에 빈속에 술만 마시며 지냈다고 해요. 이를 보다 못한 아내가 당신이라도 고향에 가라고 떠밀었고, 그렇게 돌아온 고향에서 남긴 작품이 바로 자화상입니다. 


이 작품 속에 황금빛 들판은 전쟁의 피폐한 현실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풍경이기도 하고, 다가올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장욱진의 꿈과 희망을 담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들판 위를 보면 줄지어 날아가는 네 마리의 까치를 볼 수 있는데요. 이 까치들은 그의 가족을 상징. 언젠가 전쟁이 끝나고 함께할 가족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요. 

 

장욱진은 이 그림뿐만 아니라 많은 그림을 통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을 활용하곤 했고요. 그래서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장욱진 미술관을 한 번쯤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어요. 이곳에선 가을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절을 담아낸 장욱진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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