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가장 선호하는 색은 무엇일까요?
문화권이나 성별, 나이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살펴보면 일종의 경향성이 있습니다. 파랑 > 초록 > 빨강 > 노랑 순서죠. 색깔을 선호하는 경향은 색깔과 관련된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해요. 이를 학술적으로는 생태계 가치 이론(Ecological Valence Theory, EVT)라고 부릅니다.
생태계 가치 이론에 따르면, 파란색은 맑은 하늘, 깨끗한 물 같은 긍정적인 요소를 떠올리게 만들어요. 초록은 푸르른 자연을 떠올리게 하고요. 빨강은 과일, 노을 같은 아름다운 것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랑은 생물학적 폐기물, 노폐물 같은 불쾌한 것을 떠올리게 해 덜 선호된다고 해요.
반면, 미술 시장에서 컬렉터들이 많이 구매하는 작품은 이 경향을 따르지 않았어요.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색은 빨강 > 파랑 > 노랑 > 초록 순서입니다. 상대적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는 빨강이 가장 인기 있는 색깔이었죠.
파란색과 빨간색의 인기는 단연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들을 섞어 탄생한 색인 보라색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요. 오늘은 파랑과 빨강, 보라색의 역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파란색의 시작
이집션 블루를 활용해 만들어진 접시 받침대 (1400–1325 BC)
파란색은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색입니다. 선호하는 색깔에 대한 조사를 하면, 국가, 인종, 성별, 나이 상관없이 파란색이 늘 상위권을 차지하죠.
파란색은 강이나 바다, 푸른 하늘같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색이에요. 동시에, 자연에서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색입니다. 하늘이나 바다의 푸른색은 빛의 산란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고유한 색깔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연 속에 있는 요소들을 떠올려보면 더 어렵습니다. 색을 내는 안료의 원재료가 되는 광물, 풀, 열매 등을 떠올렸을 때 파란색은 거의 없는걸 알 수 있죠.
그리고 이런 상황 속, 고대 이집트가 최초의 파란색 안료를 내놓습니다. 기원전 약 2600년경 이집트인들이 개발한 최초의 파란색 안료, '이집션 블루'였죠. 이집션 블루는 약간 청록색을 띠는 파랑입니다. 오늘날 '파랑'했을 때 떠오르는 완벽한 파랑은 아니지만, 놀라운 점이 하나 있어요. 당시 이집트인들이 이 안료를 인공적으로 개발했다는 점이죠. 이집션 블루는 칼슘, 구리, 규산염을 섞어서 만든 구리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집션 블루의 미세분광위상 분포도 ⓒ Petra Dariz, Thomas Schmid
지금으로부터 약 4600년 전의 이집트인들이 어렵게 파란색을 만든 이유는, 당시 이집트 사람들에게 파란색이 신의 색깔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다, 강의 색인 파랑은 눈으론 볼 수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묘한 색이었어요. 그래서 신의 뜻이 담긴 색이라 여겼고, 신에게 닿으려는 이집트인들의 노력이 이집션 블루로 탄생하게 된 거죠.
이집션 블루는 유물이나 그림을 만들 때 사용됐습니다. 이들을 파란색으로 칠하면, 그 안에 신의 신성함과 영속성이 깃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이집션 블루를 개발하고 3천 년간 애정 하며 사용했었습니다. 후에는 파란빛을 내는 광물인 터키옥을 직접 활용해, 더 파란 염료를 만들기도 했고요.
서구권의 파란색 사랑
Titian, Baccjus and Ariadne (1520-1523) ⓒ National Gallery
유럽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파란색을 쓰기 시작했어요.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에서 재배하던 꽃인 '대청'을 이용해 염색해 옷감을 만들었죠. 이 제작 과정은 우리나라의 쪽 염색 같은 것과 비슷한 방식을 하고 있습니다. 식물의 잎에서 추출한 색을 활용했죠.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긴 하지만, 가격은 그리 높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초고가 파란색 안료가 새롭게 등장해요.
바다를 건너온 파란색이라는 의미의 '울트라 마린'이었습니다. 울트라 마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가격이었어요. 당시 울트라 마린 1온스(28g)의 가격은 일반 노동자의 3달 급여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비쌌어요.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비쌌죠.
(좌) Wilton Diptych (1395) ⓒ National Gallery / (우) Pietro Perugino, The Virgin and Child with an Angel ⓒ National Gallery
이렇게 비쌌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원재료인 '청금석'을 구하는 게 까다로웠어요. 청금석은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크샨 지역에서만 채굴되었는데요. 그 채굴 과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또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청금석을 분쇄하고, 그 가루를 여러 차례 물과 혼합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죠.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순수한 파란색 안료는 극히 적었기 때문에, 이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더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프가니스탄에서 바다 건너 유럽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에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하지만 울트라 마린은 비싼 값을 했습니다. 단순히 비싸기만 한건 아니고, 아름답기도 했기 때문이죠. 기존에 있던 터키옥을 이용해 만든 파랑이나, 대청을 이용해 만든 파랑과 비교해 봐도 훨씬 깊고 풍부한 느낌을 보여줬습니다. 덕분에 울트라 마린은 매우 고귀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칭송받기 시작해요.
Giovanni Battista Salvi da Sassoferrato, The Virgin in Prayer (1640-1650) ⓒ National Gallery
일례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인 첸니노 첸니니는 이렇게 말했어요. ‘걸출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완벽한, 모든 색을 능가하는 색. 입에 담거나 허투루 쓴다면 가치가 바랠 것.'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부로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할 색이라 강조하며, 울트라 마린의 푸른빛을 예찬했는데요. 첸니니의 말처럼 당시 울트라 마린은 종교화 등 비싼 그림에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울트라 마린은 특유의 성스러움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그림에 자주 활용되었어요. 종교화 속 마리아의 모습은 아들의 슬픔을 애도하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후 파란색은 슬픔, 우울함의 색으로 자리 잡게 됐어요. 이런 인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14세기 시인 제프리 초서는 시에서 '파란 눈물'과 '상처받은 마음'을 언급하면서 파란색을 슬픔과 연결 지었어요. 이 표현은 이후 문학을 넘어 예술 전반에서 파란색을 우울함과 관련짓는 데 영향 주기도 했습니다.
빨간색의 시작
Contunico © ZDF Studios GmbH, Mainz; Thumbnail © Markzeta/Dreamstime.com
빨간색은 인간이 처음으로 이름 붙인 색깔이자, 인간이 두 번째로 존재를 인식한 색이에요. 첫 번째로 인식한 색은 빛의 색인 흰색이었는데, 흰색은 하얀 특징 없는 색입니다. 그래서 빛의 색으로 불리다가, 최초로 고유한 이름이 붙은 색으로 빨강이 등장했죠.
빨간색이 맨 처음 활용된 건 선사시대 벽화에서였습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에 붉은색 벽화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건,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광물인 천연 산화철을 활용해 그린 것입니다. 빨강은 황토 같은 토양에서도 구하기 쉬운 안료다 보니, 일찍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어요.
고대 이집트도 당연히 활용했고, 고대 로마도 붉은색 매우 좋아했습니다. 특히 고대 로마인들은 빨간색 옷감을 아주 높게 쳤어요. 자신들의 건강미를 돋보여주는 색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곳에 활용했어요. 군복에 망토로 활용하거나, 빨간색 깃발을 무기에 달아 에너지를 표출하는 등 다양했죠. 오늘날의 레드 카펫도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관습에서 비롯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인들을 환영하면서 열정의 상징인 붉은색 깃발을 흔들었고, 후에 이것이 붉은색 카펫으로 바뀌게 되면서 중요한 자리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중 16세기 초반, 스페인이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하면서 '코치닐'이라는 재료를 발견합니다.
빨간색의 2막이 열리다
코치닐: 왼쪽이 암컷, 오른쪽이 수컷이다.
코치닐은 빨간색의 원재료이자, 우리나라에서는 연지벌레로 알려져 있는 벌레입니다. 딸기우유 같은 것의 식용색소로 오늘날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죠. 하지만 과거엔 그렇지 못했습니다. 200년 넘게 독점되던 안료였어요. 16세기 초반 스페인은 코치닐을 발견하며, 이를 이용해 염색하면 가장 완벽한 빨강이 구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색도 오랫동안 바래지 않았고요. 그래서 코치닐을 이용해 염색한 천이 굉장히 비싸게 거래되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 코치닐 생산을 독점하고 있던 스페인은, 누구도 코치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외국인이 코치닐 안료를 몰래 가지고 나갈 경우 사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코치닐이 무엇인지조차 공개하지 않았았죠. 코치닐 재료가 사실 벌레라는 게 밝혀진 건, 처음 안료를 생산하고 200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어요.
그래서 당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에서는 코치닐을 얻기 위해 스페인 배를 약탈하거나, 제조 비법을 알기 위해 스파이를 보내는 등 온갖 술수를 썼습니다. 국가 원수는 물론이고 염색 업자, 화학자, 해적, 스파이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나섰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렇게 코치닐은 200년간 스페인이 독점한, 가장 강렬한 빨강이 되었죠.
현대에도 이어지는 빨강의 저력
본인 작품 앞의 쿠사마 야요이 Photograph Courtesy of Jeremy Sutton-Hibbert / Alamy St/Alamy Stock Photo
붉은색은 인간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색입니다. 자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의 색이기도 하다 보니, 붉은색을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긴장감을 느끼거나 심박수가 높아진다고 하죠. 이를 이용해 우리 일상 곳곳에는 빨강이 활용됩니다. 신호등의 정지신호나, 투우사가 흔드는 천이 빨간색 등이 대표적이죠. 사실 투우에 이용되는 소는 대부분 색맹에 가까워서 빨간색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소가 반응하는 건 빨간 천이 아닌, 천의 움직임이죠. 천의 색깔은 관객을 흥분시키기 위한 거라고 해요.
빨강의 강렬함을 이용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2008년 로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남학생들에게 다양한 색의 옷을 입은 여성들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어떤 색의 옷을 입은 여성에 호감 느끼는지를 묻습니다. 이들은 남학생들에게 단순히 데이트할 거냐 물어보는 걸 넘어, 이런 질문도 던졌어요 '만약 당신 지갑에 100달러가 있다면, 이 사람과 데이트에서 얼마나 쓸 겁니까?'
실험에 참여한 남학생 대부분은 빨간색 옷을 입은 여성에게 높은 데이트 비용 쓰겠다고 대답합니다. 당시 맨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빨간 옷을 입은 것뿐만 아니라, 빨간 배경 앞에 선 여성 사진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변수를 시도했는데요. 이때도 마찬가지로 남학생들은 빨간색이 있는 여성에게 더 높은 데이트 비용을 쓰겠다 응답했죠.
아니쉬 카푸어의 2017년 전시 <Destierro> ⓒ Deezen
스포츠의 경우엔 더 극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55%나 더 많은 승리를 거뒀다고 해요. 빨강이 인간의 운동능력, 투쟁심 자극하는 색이라는 걸 보여준 결과였죠.
흔히 빨강이 가진 특별함은 우리의 피의 색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가 빨갛기 때문에 빨강이 특별해진 게 아니라, 빨강이 특별했기 때문에 인체의 여러 체액 중 피가 유독 주목받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만큼 빨강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색으로 여겨집니다.
보라색의 시작
조개로 염색된 다양한 보라색들 Photograph: U.Name.Me / Derivative work: TeKaBe
보라색은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빨강과 파랑에 비하면 막내 색깔이기도 해요. 발견이 상대적으로 늦은 탓이었습니다. 최초의 보라색은 기원전 15세기였어요. 당시 '퍼퓨라' 라고 불리는 바다 우렁이가 있었는데, 한 강아지가 퍼퓨라를 물고 놀다가 입 주변이 보랏빛으로 착색되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보라색을 퍼퓨라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그리고 퍼퓨라를 이용해 보라색 옷감을 만드는 시도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색이 오늘날 '티리안 퍼플'이라 불리는 보라색이에요. 우리가 보라색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쨍한 보라색인데요. 이 티리안 퍼플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웠다고 해요. 당시 직물 1제곱미터를 티리안 퍼플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퍼퓨라 2만 개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1온스(28그램)의 안료를 구하려면 퍼퓨라 25만 개가 필요했죠.
ⓒ Business Insider
양도 많이 필요하지만 제작 과정도 까다로웠습니다. 티리안 퍼플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아요. 퍼퓨라의 샘에서 추출한 액체를 오줌통에 더하고, 열흘간 발효시킨 뒤, 거기에 옷감을 담가 염색해야 했죠. 이 때문에 염색공장에서는 늘 썩은 내가 진동했습니다. 또 퍼퓨라를 쓰고 남은 갑각류 쓰레기도 엄청나게 많았고요.
제작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움이 많은 안료였어요. 그렇다 보니 만드는 곳도 많지 않았고. 비싸게 팔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라색 옷은 상위 계층만 누릴 수 있는 색이 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고귀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였는데요. 보라색은 파란색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졌어요. 귀족이라고 해서 다 누릴 수 있는 색이 아니었죠. 기원전 3세기 로마 황제는, 황후에게 '티리안 퍼플 드레스를 사줄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기록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티리안 퍼플의 귀함을 상기시키고 있죠.
귀족의 색에서 정신병자의 색으로
Claude Monet, Nymphéas en fleur (1914–17). Courtesy Christie’s Images Ltd.
귀하게만 여겨질 것 같던 보라가 근현대에 접어들면서는 약간 이미지가 안 좋아집니다. 과소비하는 사람들이나, 늙은 세대가 선호하는 색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는데요. 일례로 오스카 와일드는 1891년 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언제나 사연이 복잡하므로 보랏빛 옷을 입은 여성을 절대 믿지 마라'는 내용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후 보라색은 호불호가 갈리는 색으로 자리 잡게 돼요.
비슷한 시기 활동한 인상주의자들은 보라색에 대한 강한 '호'를 보여줍니다. 일례로 클로드 모네는 “앞으로 모두가 보라색을 작품에 사용할 것이다. 진정한 대기의 색이다"라고 말했고, 에두아르 마네는 “3년 뒤에도 세계는 여전히 바이올렛일 것"이라 칭송했죠.
하지만 동시대 보수적이었던 화가들은 보라색에 대한 강경한 '불호'를 표현했어요. 그들은 인상주의자들의 보라색 사랑을 ‘바이롤레토마니아', 즉 '보라색 광'이라 부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병일 거라고 취급하기도 했죠.
자유와 예술의 색
영화 <서프러제트>(2015) 트레일러 ⓒ 20th Century Fox
그래도 현대에 접어들어서는 보라색이 다시 사랑받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귀족들의 색으로만 남기보다, 더 다양한 문화에서 사랑받았어요. 일례로 사회가 격변하던 195-60년대, 여성참정권 운동이었던 서프러제트(Suffragette) 움직임이 일었는데요. 여성인권의 최전선에 선 서프레제트는 자신들을 상징하는 색으로 보라색을 내세웁니다. 이후 이와 유사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다양한 집단에서 보라색은 사랑받기 시작해요.
더 시간이 지나 196-7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항문화 자체를 상징하는 색으로 발전했습니다. 지미 핸드릭스, 딥퍼플 등 히피 문화를 대표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보라색을 자신의 상징색으로 활용했죠. 이를 통해 보라색은 변화를 상징하는 색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어요. 이후에는 앤디 워홀 등 팝아트의 스타들이 보라를 활용하며 더 대중적인 선호를 이끌어냈어요. 그렇게 보라는 소수 귀족을 위한 색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색, 그리고 자유와 예술의 색이라는 인식을 넘어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색으로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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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이나 성별, 나이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살펴보면 일종의 경향성이 있습니다. 파랑 > 초록 > 빨강 > 노랑 순서죠. 색깔을 선호하는 경향은 색깔과 관련된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해요. 이를 학술적으로는 생태계 가치 이론(Ecological Valence Theory, EVT)라고 부릅니다.
생태계 가치 이론에 따르면, 파란색은 맑은 하늘, 깨끗한 물 같은 긍정적인 요소를 떠올리게 만들어요. 초록은 푸르른 자연을 떠올리게 하고요. 빨강은 과일, 노을 같은 아름다운 것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랑은 생물학적 폐기물, 노폐물 같은 불쾌한 것을 떠올리게 해 덜 선호된다고 해요.
반면, 미술 시장에서 컬렉터들이 많이 구매하는 작품은 이 경향을 따르지 않았어요.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색은 빨강 > 파랑 > 노랑 > 초록 순서입니다. 상대적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는 빨강이 가장 인기 있는 색깔이었죠.
파란색과 빨간색의 인기는 단연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들을 섞어 탄생한 색인 보라색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요. 오늘은 파랑과 빨강, 보라색의 역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파란색의 시작
이집션 블루를 활용해 만들어진 접시 받침대 (1400–1325 BC)
파란색은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색입니다. 선호하는 색깔에 대한 조사를 하면, 국가, 인종, 성별, 나이 상관없이 파란색이 늘 상위권을 차지하죠.
파란색은 강이나 바다, 푸른 하늘같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색이에요. 동시에, 자연에서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색입니다. 하늘이나 바다의 푸른색은 빛의 산란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고유한 색깔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연 속에 있는 요소들을 떠올려보면 더 어렵습니다. 색을 내는 안료의 원재료가 되는 광물, 풀, 열매 등을 떠올렸을 때 파란색은 거의 없는걸 알 수 있죠.
그리고 이런 상황 속, 고대 이집트가 최초의 파란색 안료를 내놓습니다. 기원전 약 2600년경 이집트인들이 개발한 최초의 파란색 안료, '이집션 블루'였죠. 이집션 블루는 약간 청록색을 띠는 파랑입니다. 오늘날 '파랑'했을 때 떠오르는 완벽한 파랑은 아니지만, 놀라운 점이 하나 있어요. 당시 이집트인들이 이 안료를 인공적으로 개발했다는 점이죠. 이집션 블루는 칼슘, 구리, 규산염을 섞어서 만든 구리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집션 블루의 미세분광위상 분포도 ⓒ Petra Dariz, Thomas Schmid
지금으로부터 약 4600년 전의 이집트인들이 어렵게 파란색을 만든 이유는, 당시 이집트 사람들에게 파란색이 신의 색깔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다, 강의 색인 파랑은 눈으론 볼 수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묘한 색이었어요. 그래서 신의 뜻이 담긴 색이라 여겼고, 신에게 닿으려는 이집트인들의 노력이 이집션 블루로 탄생하게 된 거죠.
이집션 블루는 유물이나 그림을 만들 때 사용됐습니다. 이들을 파란색으로 칠하면, 그 안에 신의 신성함과 영속성이 깃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이집션 블루를 개발하고 3천 년간 애정 하며 사용했었습니다. 후에는 파란빛을 내는 광물인 터키옥을 직접 활용해, 더 파란 염료를 만들기도 했고요.
서구권의 파란색 사랑
Titian, Baccjus and Ariadne (1520-1523) ⓒ National Gallery
유럽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파란색을 쓰기 시작했어요.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에서 재배하던 꽃인 '대청'을 이용해 염색해 옷감을 만들었죠. 이 제작 과정은 우리나라의 쪽 염색 같은 것과 비슷한 방식을 하고 있습니다. 식물의 잎에서 추출한 색을 활용했죠.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긴 하지만, 가격은 그리 높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초고가 파란색 안료가 새롭게 등장해요.
바다를 건너온 파란색이라는 의미의 '울트라 마린'이었습니다. 울트라 마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가격이었어요. 당시 울트라 마린 1온스(28g)의 가격은 일반 노동자의 3달 급여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비쌌어요.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비쌌죠.
(좌) Wilton Diptych (1395) ⓒ National Gallery / (우) Pietro Perugino, The Virgin and Child with an Angel ⓒ National Gallery
이렇게 비쌌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원재료인 '청금석'을 구하는 게 까다로웠어요. 청금석은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크샨 지역에서만 채굴되었는데요. 그 채굴 과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또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청금석을 분쇄하고, 그 가루를 여러 차례 물과 혼합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죠.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순수한 파란색 안료는 극히 적었기 때문에, 이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더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프가니스탄에서 바다 건너 유럽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에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하지만 울트라 마린은 비싼 값을 했습니다. 단순히 비싸기만 한건 아니고, 아름답기도 했기 때문이죠. 기존에 있던 터키옥을 이용해 만든 파랑이나, 대청을 이용해 만든 파랑과 비교해 봐도 훨씬 깊고 풍부한 느낌을 보여줬습니다. 덕분에 울트라 마린은 매우 고귀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칭송받기 시작해요.
Giovanni Battista Salvi da Sassoferrato, The Virgin in Prayer (1640-1650) ⓒ National Gallery
일례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인 첸니노 첸니니는 이렇게 말했어요. ‘걸출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완벽한, 모든 색을 능가하는 색. 입에 담거나 허투루 쓴다면 가치가 바랠 것.'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부로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할 색이라 강조하며, 울트라 마린의 푸른빛을 예찬했는데요. 첸니니의 말처럼 당시 울트라 마린은 종교화 등 비싼 그림에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울트라 마린은 특유의 성스러움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그림에 자주 활용되었어요. 종교화 속 마리아의 모습은 아들의 슬픔을 애도하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후 파란색은 슬픔, 우울함의 색으로 자리 잡게 됐어요. 이런 인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14세기 시인 제프리 초서는 시에서 '파란 눈물'과 '상처받은 마음'을 언급하면서 파란색을 슬픔과 연결 지었어요. 이 표현은 이후 문학을 넘어 예술 전반에서 파란색을 우울함과 관련짓는 데 영향 주기도 했습니다.
빨간색의 시작
Contunico © ZDF Studios GmbH, Mainz; Thumbnail © Markzeta/Dreamstime.com
빨간색은 인간이 처음으로 이름 붙인 색깔이자, 인간이 두 번째로 존재를 인식한 색이에요. 첫 번째로 인식한 색은 빛의 색인 흰색이었는데, 흰색은 하얀 특징 없는 색입니다. 그래서 빛의 색으로 불리다가, 최초로 고유한 이름이 붙은 색으로 빨강이 등장했죠.
빨간색이 맨 처음 활용된 건 선사시대 벽화에서였습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에 붉은색 벽화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건,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광물인 천연 산화철을 활용해 그린 것입니다. 빨강은 황토 같은 토양에서도 구하기 쉬운 안료다 보니, 일찍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어요.
고대 이집트도 당연히 활용했고, 고대 로마도 붉은색 매우 좋아했습니다. 특히 고대 로마인들은 빨간색 옷감을 아주 높게 쳤어요. 자신들의 건강미를 돋보여주는 색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곳에 활용했어요. 군복에 망토로 활용하거나, 빨간색 깃발을 무기에 달아 에너지를 표출하는 등 다양했죠. 오늘날의 레드 카펫도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관습에서 비롯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인들을 환영하면서 열정의 상징인 붉은색 깃발을 흔들었고, 후에 이것이 붉은색 카펫으로 바뀌게 되면서 중요한 자리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중 16세기 초반, 스페인이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하면서 '코치닐'이라는 재료를 발견합니다.
빨간색의 2막이 열리다
코치닐: 왼쪽이 암컷, 오른쪽이 수컷이다.
코치닐은 빨간색의 원재료이자, 우리나라에서는 연지벌레로 알려져 있는 벌레입니다. 딸기우유 같은 것의 식용색소로 오늘날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죠. 하지만 과거엔 그렇지 못했습니다. 200년 넘게 독점되던 안료였어요. 16세기 초반 스페인은 코치닐을 발견하며, 이를 이용해 염색하면 가장 완벽한 빨강이 구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색도 오랫동안 바래지 않았고요. 그래서 코치닐을 이용해 염색한 천이 굉장히 비싸게 거래되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 코치닐 생산을 독점하고 있던 스페인은, 누구도 코치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외국인이 코치닐 안료를 몰래 가지고 나갈 경우 사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코치닐이 무엇인지조차 공개하지 않았았죠. 코치닐 재료가 사실 벌레라는 게 밝혀진 건, 처음 안료를 생산하고 200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어요.
그래서 당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에서는 코치닐을 얻기 위해 스페인 배를 약탈하거나, 제조 비법을 알기 위해 스파이를 보내는 등 온갖 술수를 썼습니다. 국가 원수는 물론이고 염색 업자, 화학자, 해적, 스파이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나섰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렇게 코치닐은 200년간 스페인이 독점한, 가장 강렬한 빨강이 되었죠.
현대에도 이어지는 빨강의 저력
본인 작품 앞의 쿠사마 야요이 Photograph Courtesy of Jeremy Sutton-Hibbert / Alamy St/Alamy Stock Photo
붉은색은 인간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색입니다. 자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의 색이기도 하다 보니, 붉은색을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긴장감을 느끼거나 심박수가 높아진다고 하죠. 이를 이용해 우리 일상 곳곳에는 빨강이 활용됩니다. 신호등의 정지신호나, 투우사가 흔드는 천이 빨간색 등이 대표적이죠. 사실 투우에 이용되는 소는 대부분 색맹에 가까워서 빨간색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소가 반응하는 건 빨간 천이 아닌, 천의 움직임이죠. 천의 색깔은 관객을 흥분시키기 위한 거라고 해요.
빨강의 강렬함을 이용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2008년 로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남학생들에게 다양한 색의 옷을 입은 여성들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어떤 색의 옷을 입은 여성에 호감 느끼는지를 묻습니다. 이들은 남학생들에게 단순히 데이트할 거냐 물어보는 걸 넘어, 이런 질문도 던졌어요 '만약 당신 지갑에 100달러가 있다면, 이 사람과 데이트에서 얼마나 쓸 겁니까?'
실험에 참여한 남학생 대부분은 빨간색 옷을 입은 여성에게 높은 데이트 비용 쓰겠다고 대답합니다. 당시 맨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빨간 옷을 입은 것뿐만 아니라, 빨간 배경 앞에 선 여성 사진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변수를 시도했는데요. 이때도 마찬가지로 남학생들은 빨간색이 있는 여성에게 더 높은 데이트 비용을 쓰겠다 응답했죠.
아니쉬 카푸어의 2017년 전시 <Destierro> ⓒ Deezen
스포츠의 경우엔 더 극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55%나 더 많은 승리를 거뒀다고 해요. 빨강이 인간의 운동능력, 투쟁심 자극하는 색이라는 걸 보여준 결과였죠.
흔히 빨강이 가진 특별함은 우리의 피의 색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가 빨갛기 때문에 빨강이 특별해진 게 아니라, 빨강이 특별했기 때문에 인체의 여러 체액 중 피가 유독 주목받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만큼 빨강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색으로 여겨집니다.
보라색의 시작
조개로 염색된 다양한 보라색들 Photograph: U.Name.Me / Derivative work: TeKaBe
보라색은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빨강과 파랑에 비하면 막내 색깔이기도 해요. 발견이 상대적으로 늦은 탓이었습니다. 최초의 보라색은 기원전 15세기였어요. 당시 '퍼퓨라' 라고 불리는 바다 우렁이가 있었는데, 한 강아지가 퍼퓨라를 물고 놀다가 입 주변이 보랏빛으로 착색되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보라색을 퍼퓨라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그리고 퍼퓨라를 이용해 보라색 옷감을 만드는 시도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색이 오늘날 '티리안 퍼플'이라 불리는 보라색이에요. 우리가 보라색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쨍한 보라색인데요. 이 티리안 퍼플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웠다고 해요. 당시 직물 1제곱미터를 티리안 퍼플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퍼퓨라 2만 개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1온스(28그램)의 안료를 구하려면 퍼퓨라 25만 개가 필요했죠.
ⓒ Business Insider
양도 많이 필요하지만 제작 과정도 까다로웠습니다. 티리안 퍼플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아요. 퍼퓨라의 샘에서 추출한 액체를 오줌통에 더하고, 열흘간 발효시킨 뒤, 거기에 옷감을 담가 염색해야 했죠. 이 때문에 염색공장에서는 늘 썩은 내가 진동했습니다. 또 퍼퓨라를 쓰고 남은 갑각류 쓰레기도 엄청나게 많았고요.
제작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움이 많은 안료였어요. 그렇다 보니 만드는 곳도 많지 않았고. 비싸게 팔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라색 옷은 상위 계층만 누릴 수 있는 색이 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고귀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였는데요. 보라색은 파란색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졌어요. 귀족이라고 해서 다 누릴 수 있는 색이 아니었죠. 기원전 3세기 로마 황제는, 황후에게 '티리안 퍼플 드레스를 사줄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기록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티리안 퍼플의 귀함을 상기시키고 있죠.
귀족의 색에서 정신병자의 색으로
Claude Monet, Nymphéas en fleur (1914–17). Courtesy Christie’s Images Ltd.
귀하게만 여겨질 것 같던 보라가 근현대에 접어들면서는 약간 이미지가 안 좋아집니다. 과소비하는 사람들이나, 늙은 세대가 선호하는 색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는데요. 일례로 오스카 와일드는 1891년 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언제나 사연이 복잡하므로 보랏빛 옷을 입은 여성을 절대 믿지 마라'는 내용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후 보라색은 호불호가 갈리는 색으로 자리 잡게 돼요.
비슷한 시기 활동한 인상주의자들은 보라색에 대한 강한 '호'를 보여줍니다. 일례로 클로드 모네는 “앞으로 모두가 보라색을 작품에 사용할 것이다. 진정한 대기의 색이다"라고 말했고, 에두아르 마네는 “3년 뒤에도 세계는 여전히 바이올렛일 것"이라 칭송했죠.
하지만 동시대 보수적이었던 화가들은 보라색에 대한 강경한 '불호'를 표현했어요. 그들은 인상주의자들의 보라색 사랑을 ‘바이롤레토마니아', 즉 '보라색 광'이라 부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병일 거라고 취급하기도 했죠.
자유와 예술의 색
영화 <서프러제트>(2015) 트레일러 ⓒ 20th Century Fox
그래도 현대에 접어들어서는 보라색이 다시 사랑받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귀족들의 색으로만 남기보다, 더 다양한 문화에서 사랑받았어요. 일례로 사회가 격변하던 195-60년대, 여성참정권 운동이었던 서프러제트(Suffragette) 움직임이 일었는데요. 여성인권의 최전선에 선 서프레제트는 자신들을 상징하는 색으로 보라색을 내세웁니다. 이후 이와 유사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다양한 집단에서 보라색은 사랑받기 시작해요.
더 시간이 지나 196-7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항문화 자체를 상징하는 색으로 발전했습니다. 지미 핸드릭스, 딥퍼플 등 히피 문화를 대표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보라색을 자신의 상징색으로 활용했죠. 이를 통해 보라색은 변화를 상징하는 색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어요. 이후에는 앤디 워홀 등 팝아트의 스타들이 보라를 활용하며 더 대중적인 선호를 이끌어냈어요. 그렇게 보라는 소수 귀족을 위한 색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색, 그리고 자유와 예술의 색이라는 인식을 넘어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색으로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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