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는 성별과 시대, 나이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즐기는 콘텐츠입니다. 미술 작품에도 무서운 이야기가 담긴 것들이 참 많아요. 담고 있는 내용 자체가 무섭거나,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무섭거나, 딱 봤을 때 '싸늘하다'라고 느껴지는 작품 등이 있죠.
이렇게 무서운 작품이 그려진 것 대해, 미술 평론가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포라는 감정에는 흡인력이 있어서, 인간은 안전한 장소에서 공포를 엿보고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지닌다'. 특히 더운 여름엔 더 무서운 이야기가 사랑받곤 하는데요. 그리고 오늘은 무서운 예술 작품 4점을 소개해 드리려 준비했어요.
case 1.
세 번 보면 죽는 그림?
Zdzisław Beksiński, Untitled (1985)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무서운 그림'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건,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그림들이에요. 벡신스키라는 이름은 국내에서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은 팬을 지닌 예술가입니다. 1970년대, 벡신스키 활동지였던 폴란드에서는 이미 유명인이었고, 1980년대부터는 유럽과 미국에도 이름을 알렸죠.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잘 알려진 건, 바로 위의 작품입니다. 작품을 보면, 황폐한 호수에 웬 화장대가 하나 놓여있는 모습이에요. 화장대 위에는 하얀 천이 있고, 그 천 위에 창백한 사람의 머리가 놓여 있습니다. 머리의 얼굴을 보면,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런데 일반 사람보다 훨씬 큰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 캐릭터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안광이 없어서 외계인 눈 같기도 해요. 굉장히 탁한 눈빛으로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이 머리가 바라보는 풍경은 머리 바로 뒤에 놓인 화장대 거울에 반사되어 드러나요. 마찬가지로 황폐한 폐허이지만, 멀리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요. 그러면서도, 사람 머리가 놓인 탓에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해요.
(좌) 작업 중인 벡신스키의 모습 (우) 벡신스키의 스케치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그렇다 보니, 한때 인터넷에서 ‘3번 보면 죽는 그림’이라거나, ‘우울증 환자가 그린 그림’, '자살한 사람이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제목이 붙어 떠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벡신스키는 밝고 쾌활한 성격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본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기도 했죠.
벡신스키는 항상 작품에 제목을 안 붙였어요. 여기엔 이유가 하나 있는데요. 벡신스키는 항상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말로 전달하면 된다'면서 ‘그림으로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그림을 그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벡신스키가 그림으로 전하고자 한 건 뭐였을까요? 사실 딱히 전하려던 건 없습니다. 작품엔 아무 메시지도, 의미도 없죠.벡신스키는 본인 그림에 어떠한 서사나 상징도 넣지 않고, 그림을 그린 나도 이걸 왜 그린 건지 모른다면서 에둘러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본인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직관적으로 작품이 주는 느낌을 받아들이기를 바랐죠.
벡신스키의 사진 작업들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하지만 미술계는 예술가들의 이런 발언을 참지 않고, 해석을 덧붙입니다. 벡신스키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이전 커리어에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았죠.
벡신스키는 이전에 사진작가로 활동했어요. 그의 사진은 거울을 활용하거나, 소품을 이용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죠.
(좌)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Man Ray (우) Man Ray, Larmes (1932) ⓒ Artsy
그의 사진 작업은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인 만 레이와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현실의 것을 가공해 새로운 느낌을 자아낸 사진들이죠. 그의 페인팅 작업도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요.
이들의 작품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미묘하게 결이 달라요. 초현실주의는 무의식, 꿈에 집중해서 그 세계를 표현한 예술 사조고, 벡신스키는 초현실주의의 하위 장르인 환시 미술로 분류됩니다. 환시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나 피사체를 눈앞에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린 그림을 의미해요. 그림 속 요소들은 벡신스키가 사진 작업에서 선보인 것처럼 인공적으로 만들거나 꾸며낸, 상상한 것들이죠.
(좌) 벡신스키의 헬리오타이프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우)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The Double Secret, 1927 ⓒ Getty Images
이렇게 그의 그림이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만들어 꾸며내면서 환시 미술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켰다고 불립니다. 말년에 벡신스키는 상당한 유명세를 얻게 되는데, 수상이나 전시를 모두 거부하면서 조용히 사는 삶을 선택해요. 유명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살기보다, 예술을 위한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죠.
후에 벡신스키의 예술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대표적으로는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있어요. 델 토로는 벡신스키의 작품을 통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탄생에 영감을 얻었다 밝혔고, 영화 <에일리언>의 디자이너 HR 기거도 벡신스키의 그림에 영향받아서 캐릭터 만들었다 밝히기도 했죠.
case 2.
광기 어린 그림을 그린 광기 어린 예술가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1820-1823)
두 번째 그림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제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요. 제목만 들어도 오싹하지만, 작품 이미지를 보면 더욱 오싹합니다. 작품은 야수 같은 남성이 어린아이의 허리를 잡고, 머리와 팔을 먹는 모습을 그렸는데요. 아이의 머리와 오른쪽 팔은 이미 먹어서 없고, 왼쪽 팔을 막 먹고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새까맣게 칠해진 배경에 광기 어린 눈으로 아들을 먹는 사투르누스 표정이 강조되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이 작품은 신화 속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 로마 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라 불리는 ‘농경의 신' 이야기죠. 사투르누스는 어머니의 사주로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된 인물이에요. 그런데 왕이 된 후에, 어머니의 명령을 무시한 것 때문에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마찬가지로 자신을 몰아낼 거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후 사투르누스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먹어치웠어요.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스케치 (1797)
후에 유일하게 먹지 못했던 아들 제우스가 실제로 그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면서 그 저주가 실현되기도 했는데요. 고야는 신화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사실 신화 속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건 너무나 흔한 일이에요. 신화나 성경 속 이야기를 담은 '역사화'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하면서, 유희를 제공하는 콘텐츠였죠. 하지만 이 그림은 단순 재미를 추구하는 콘텐츠라고 하기엔 유독 잔인하고 어두워서, 기존 역사화와는 다른 느낌을 자아냅니다.
비센테 로페스 포르타냐, 프란시스코 고야의 초상 (1862) ⓒ 프라도 미술관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그림을 그린 고야는 인상주의의 시초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이 그림에서도 알 수 있지만, 투박한 붓질과 강렬한 빛의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 많이 선보였는데요.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그린 마네를 비롯해서 피카소 등 유명 예술가에게 영향을 줬다 알려져 있습니다.
또 고야는 상당한 천재화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는데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마흔세 살이 되어서야 스페인 궁정화가가 되었어요. 후에는 제1 궁정화가로 승진하면서 부와 명예까지 모두 안게 되는데요. 행복했던 시기는 매우 짧았고, 50세가 되던 해 콜레라를 앓으면서 청각을 잃게 됩니다.
Francisco Goya, Two Old Men Eating Soup (1819-1823)
그러면서 어두운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해요. 가톨릭 성직자를 악마나 괴물로 그리는 식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을 모아 판화집을 내기도 했는데, 판화집에 고야가 붙인 부제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였죠. 궁중화가로 억누르고 있던 이성을 놓고 자기 안의 어두움을 모두 꺼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데요.
이런 기조가 절정에 달한 게 <제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고야는 신경쇠약에 걸려서 귀가 멀었는데도, 머리를 울리는 듯한 소음을 듣기 시작했어요. 결국 청각장애인이 모여사는 ‘귀머거리의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Francisco Goya, del Duelo a garrotazos (1863-1866)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에도 귀머거리의 집에서 지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작품엔 비하인드가 하나 있어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귀머거리의 집 식당에 걸어놓고 그림을 감상하며 식사했다는 겁니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보다, 한 발짝 뒤에서 그림을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밥을 먹으면서든, 자고 일어나서든 그림을 보면서 사유하곤 하죠. 하지만 이런 끔찍한 그림을 보면서 식사했다는 건, 상당한 광기를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 한 비평가는 이렇게 평가해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가장 큰 공포는 죽음이었는데, 육체의 죽음이 아닌 정신의 죽음이라 할 수 있는 광기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림 속 사투르누스뿐만 아니라, 고야의 광기까지 작품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case 3.
공포영화 포스터 같은 왕실 초상
Thomas Kluge의 덴마크 왕실 초상 ⓒ Kongehuset
다음으로 볼 그림은 토마스 클루게가 그린 덴마크 왕실 초상화입니다. 2013년, 덴마크 글룩스부르크 가문의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가족 초상화인데요. 그런데 작품 공개 당시, 엄청난 논란이 되었어요.
작품을 보면 칠흑 같은 검은색 배경에 왕실의 주요 인물들을 담아낸 모습입니다. 그림엔 열네 명의 인물이 있어요.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 왕세자 프레데리크와 그의 아내 메리 왕세자빈,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포함해. 3대에 걸친 왕실 구성원을 모두 그려낸 겁니다.
그런데, 초상화라기보다 공포영화 포스터 같은 모습이에요. 작품이 무섭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새까만 배경 때문도 있겠지만, 그림 가운데 서서 관객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는 아이 때문이 큽니다. 이 아이는 왕위 계승 서열 2위 크리스찬 왕자에요.
(좌) 크리스찬 왕자 확대본 (2013) (우) 크리스찬 왕자의 18살 생일을 맞아 공개된 사진 (2023) PHOTO: FRANNE VOIGT
왕자의 얼굴은 빛을 아래에서 위로받아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습니다. 이렇게 빛을 아래에서 위로 치는 건 미술 작품에서 보기 힘든 연출인데요. 이건 크리스찬 왕자가 향후 짊어지게 될 무게 표현한 거라고 해요. 또 크리스찬 왕자 양옆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측면에서 빛을 받고 있습니다. 관객 기준 오른쪽에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인데요. 이 빛 역시 미술 작품에서 보기 드문 연출입니다. 일상에서도 이 정도의 빛을 받을 일은 사실 없죠. 이들 역시 향후 왕실 구성원으로서 져야 할 책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림 뒤편의 성인들은 무난하게 작품에서 많이 활용하는 빛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그리 세지도 않아요. 인물의 얼굴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빛으로 묘사한 모습입니다.
토마스 클루게의 왕실 초상화 공개 당시의 모습 PHOTO: Niels Ahlmann Olesen/Ritzau Scanpix/archive
이렇게 그림 속 인물들의 빛을 다 다르게 연출하는 건, 초현실주의 사조에서 활용하던 기법이에요.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각 인물의 빛을 다르게 설정하는데, 이걸 일반적인 가족 초상화에 적용한 건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심지어 전통을 고수하는 왕실 초상화라는 점에서 상당한 파격적이죠.
그래서 이 작품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요소를 잘 결합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어요. 또 왕실의 세대별 인물들에 빛을 다르게 설정하면서, 왕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표현한 것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좌) 토머스 클루게 (우) 초상화 제작 촬영한 사진 ⓒ Kristeligt Dagblad
초상화를 그린 건 토마스 클루게는 전통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덴마크 화가입니다. 검은 배경에 인물만 그려내거나 정물만 그려내면서, 심플한 화풍으로 알려진 작가에요. 기존 클루게 작품을 보다가 초상화를 보면 그 화풍을 고스란히 단체 초상화에 적용했구나 싶기도 한데요.
이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찍었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에서는 왕실 구성원들이 대부분 웃고 있고, 공포스럽게 묘사됐던 크리스찬 왕자도 아주 귀여운 모습이에요. 본인의 화풍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수정을 많이 진행하고 연출도 한 부분이 분명 있는 건데요. 대중의 호불호는 갈리긴 했으나, 그림을 의뢰한 마그레테 여왕은 이 초상화를 공식 초상으로 승인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은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현재 작품은 덴마크의 프레덴스보르 궁전에서 상설 전시 중이에요.
case 4.
예술을 다룬 공포영화
영화 '스탕달 신드롬' 포스터와 예고편의 한 장면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작품은 1996년 개봉한 영화 <스탕달 신드롬>입니다. 스탕달 신드롬은,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에게서 유래된 일종의 정신병 증상인데요. 매력적인 예술 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심장이 마구 뛰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심하면 환상이나 정신 분열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증후군입니다.
영화는 스탕달 신드롬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요. 작품 속 주인공인 안나는 형사입니다. 연쇄살인마를 쫓던 중 우연히 우피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스탕달 증후군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데, 이때 한 남자가 안나를 도와줘요. 안나가 쫓던 그 연쇄살인마였습니다.
살인마는 안나가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처한 걸 보고, 표적으로 삼습니다. 이제는 살인마가 안나를 쫓는 상황이 된 거죠. 영화는 스탕달 신드롬의 증상 중 하나인 정신분열을 겪으면서 중첩되는 고통 속, 안나가 살인마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쓰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이 영화 속에서는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같은 르네상스 대가들의 예술 작품들도 가득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 공포영화 3대 거장이라 불리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작품이기도 해서, 예술과 공포가 접목된 콘텐츠 관심 갖게 된 분들께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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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는 성별과 시대, 나이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즐기는 콘텐츠입니다. 미술 작품에도 무서운 이야기가 담긴 것들이 참 많아요. 담고 있는 내용 자체가 무섭거나,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무섭거나, 딱 봤을 때 '싸늘하다'라고 느껴지는 작품 등이 있죠.
이렇게 무서운 작품이 그려진 것 대해, 미술 평론가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포라는 감정에는 흡인력이 있어서, 인간은 안전한 장소에서 공포를 엿보고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지닌다'. 특히 더운 여름엔 더 무서운 이야기가 사랑받곤 하는데요. 그리고 오늘은 무서운 예술 작품 4점을 소개해 드리려 준비했어요.
case 1.
세 번 보면 죽는 그림?
Zdzisław Beksiński, Untitled (1985)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무서운 그림'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건,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그림들이에요. 벡신스키라는 이름은 국내에서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은 팬을 지닌 예술가입니다. 1970년대, 벡신스키 활동지였던 폴란드에서는 이미 유명인이었고, 1980년대부터는 유럽과 미국에도 이름을 알렸죠.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잘 알려진 건, 바로 위의 작품입니다. 작품을 보면, 황폐한 호수에 웬 화장대가 하나 놓여있는 모습이에요. 화장대 위에는 하얀 천이 있고, 그 천 위에 창백한 사람의 머리가 놓여 있습니다. 머리의 얼굴을 보면,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런데 일반 사람보다 훨씬 큰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 캐릭터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안광이 없어서 외계인 눈 같기도 해요. 굉장히 탁한 눈빛으로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이 머리가 바라보는 풍경은 머리 바로 뒤에 놓인 화장대 거울에 반사되어 드러나요. 마찬가지로 황폐한 폐허이지만, 멀리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요. 그러면서도, 사람 머리가 놓인 탓에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해요.
(좌) 작업 중인 벡신스키의 모습 (우) 벡신스키의 스케치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그렇다 보니, 한때 인터넷에서 ‘3번 보면 죽는 그림’이라거나, ‘우울증 환자가 그린 그림’, '자살한 사람이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제목이 붙어 떠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벡신스키는 밝고 쾌활한 성격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본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기도 했죠.
벡신스키는 항상 작품에 제목을 안 붙였어요. 여기엔 이유가 하나 있는데요. 벡신스키는 항상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말로 전달하면 된다'면서 ‘그림으로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그림을 그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벡신스키가 그림으로 전하고자 한 건 뭐였을까요? 사실 딱히 전하려던 건 없습니다. 작품엔 아무 메시지도, 의미도 없죠.벡신스키는 본인 그림에 어떠한 서사나 상징도 넣지 않고, 그림을 그린 나도 이걸 왜 그린 건지 모른다면서 에둘러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본인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직관적으로 작품이 주는 느낌을 받아들이기를 바랐죠.
벡신스키의 사진 작업들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하지만 미술계는 예술가들의 이런 발언을 참지 않고, 해석을 덧붙입니다. 벡신스키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이전 커리어에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았죠.
벡신스키는 이전에 사진작가로 활동했어요. 그의 사진은 거울을 활용하거나, 소품을 이용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죠.
(좌)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Man Ray (우) Man Ray, Larmes (1932) ⓒ Artsy
그의 사진 작업은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인 만 레이와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현실의 것을 가공해 새로운 느낌을 자아낸 사진들이죠. 그의 페인팅 작업도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요.
이들의 작품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미묘하게 결이 달라요. 초현실주의는 무의식, 꿈에 집중해서 그 세계를 표현한 예술 사조고, 벡신스키는 초현실주의의 하위 장르인 환시 미술로 분류됩니다. 환시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나 피사체를 눈앞에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린 그림을 의미해요. 그림 속 요소들은 벡신스키가 사진 작업에서 선보인 것처럼 인공적으로 만들거나 꾸며낸, 상상한 것들이죠.
(좌) 벡신스키의 헬리오타이프 ⓒ Zdzisław Beksiński Art Promotion Archive (우)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The Double Secret, 1927 ⓒ Getty Images
이렇게 그의 그림이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만들어 꾸며내면서 환시 미술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켰다고 불립니다. 말년에 벡신스키는 상당한 유명세를 얻게 되는데, 수상이나 전시를 모두 거부하면서 조용히 사는 삶을 선택해요. 유명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살기보다, 예술을 위한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죠.
후에 벡신스키의 예술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대표적으로는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있어요. 델 토로는 벡신스키의 작품을 통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탄생에 영감을 얻었다 밝혔고, 영화 <에일리언>의 디자이너 HR 기거도 벡신스키의 그림에 영향받아서 캐릭터 만들었다 밝히기도 했죠.
case 2.
광기 어린 그림을 그린 광기 어린 예술가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1820-1823)
두 번째 그림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제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요. 제목만 들어도 오싹하지만, 작품 이미지를 보면 더욱 오싹합니다. 작품은 야수 같은 남성이 어린아이의 허리를 잡고, 머리와 팔을 먹는 모습을 그렸는데요. 아이의 머리와 오른쪽 팔은 이미 먹어서 없고, 왼쪽 팔을 막 먹고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새까맣게 칠해진 배경에 광기 어린 눈으로 아들을 먹는 사투르누스 표정이 강조되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이 작품은 신화 속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 로마 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라 불리는 ‘농경의 신' 이야기죠. 사투르누스는 어머니의 사주로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된 인물이에요. 그런데 왕이 된 후에, 어머니의 명령을 무시한 것 때문에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마찬가지로 자신을 몰아낼 거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후 사투르누스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먹어치웠어요.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스케치 (1797)
후에 유일하게 먹지 못했던 아들 제우스가 실제로 그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면서 그 저주가 실현되기도 했는데요. 고야는 신화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사실 신화 속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건 너무나 흔한 일이에요. 신화나 성경 속 이야기를 담은 '역사화'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하면서, 유희를 제공하는 콘텐츠였죠. 하지만 이 그림은 단순 재미를 추구하는 콘텐츠라고 하기엔 유독 잔인하고 어두워서, 기존 역사화와는 다른 느낌을 자아냅니다.
비센테 로페스 포르타냐, 프란시스코 고야의 초상 (1862) ⓒ 프라도 미술관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그림을 그린 고야는 인상주의의 시초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이 그림에서도 알 수 있지만, 투박한 붓질과 강렬한 빛의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 많이 선보였는데요.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그린 마네를 비롯해서 피카소 등 유명 예술가에게 영향을 줬다 알려져 있습니다.
또 고야는 상당한 천재화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는데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마흔세 살이 되어서야 스페인 궁정화가가 되었어요. 후에는 제1 궁정화가로 승진하면서 부와 명예까지 모두 안게 되는데요. 행복했던 시기는 매우 짧았고, 50세가 되던 해 콜레라를 앓으면서 청각을 잃게 됩니다.
Francisco Goya, Two Old Men Eating Soup (1819-1823)
그러면서 어두운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해요. 가톨릭 성직자를 악마나 괴물로 그리는 식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을 모아 판화집을 내기도 했는데, 판화집에 고야가 붙인 부제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였죠. 궁중화가로 억누르고 있던 이성을 놓고 자기 안의 어두움을 모두 꺼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데요.
이런 기조가 절정에 달한 게 <제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고야는 신경쇠약에 걸려서 귀가 멀었는데도, 머리를 울리는 듯한 소음을 듣기 시작했어요. 결국 청각장애인이 모여사는 ‘귀머거리의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Francisco Goya, del Duelo a garrotazos (1863-1866)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에도 귀머거리의 집에서 지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작품엔 비하인드가 하나 있어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귀머거리의 집 식당에 걸어놓고 그림을 감상하며 식사했다는 겁니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보다, 한 발짝 뒤에서 그림을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밥을 먹으면서든, 자고 일어나서든 그림을 보면서 사유하곤 하죠. 하지만 이런 끔찍한 그림을 보면서 식사했다는 건, 상당한 광기를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 한 비평가는 이렇게 평가해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가장 큰 공포는 죽음이었는데, 육체의 죽음이 아닌 정신의 죽음이라 할 수 있는 광기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림 속 사투르누스뿐만 아니라, 고야의 광기까지 작품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case 3.
공포영화 포스터 같은 왕실 초상
Thomas Kluge의 덴마크 왕실 초상 ⓒ Kongehuset
다음으로 볼 그림은 토마스 클루게가 그린 덴마크 왕실 초상화입니다. 2013년, 덴마크 글룩스부르크 가문의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가족 초상화인데요. 그런데 작품 공개 당시, 엄청난 논란이 되었어요.
작품을 보면 칠흑 같은 검은색 배경에 왕실의 주요 인물들을 담아낸 모습입니다. 그림엔 열네 명의 인물이 있어요.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 왕세자 프레데리크와 그의 아내 메리 왕세자빈,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포함해. 3대에 걸친 왕실 구성원을 모두 그려낸 겁니다.
그런데, 초상화라기보다 공포영화 포스터 같은 모습이에요. 작품이 무섭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새까만 배경 때문도 있겠지만, 그림 가운데 서서 관객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는 아이 때문이 큽니다. 이 아이는 왕위 계승 서열 2위 크리스찬 왕자에요.
(좌) 크리스찬 왕자 확대본 (2013) (우) 크리스찬 왕자의 18살 생일을 맞아 공개된 사진 (2023) PHOTO: FRANNE VOIGT
왕자의 얼굴은 빛을 아래에서 위로받아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습니다. 이렇게 빛을 아래에서 위로 치는 건 미술 작품에서 보기 힘든 연출인데요. 이건 크리스찬 왕자가 향후 짊어지게 될 무게 표현한 거라고 해요. 또 크리스찬 왕자 양옆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측면에서 빛을 받고 있습니다. 관객 기준 오른쪽에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인데요. 이 빛 역시 미술 작품에서 보기 드문 연출입니다. 일상에서도 이 정도의 빛을 받을 일은 사실 없죠. 이들 역시 향후 왕실 구성원으로서 져야 할 책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림 뒤편의 성인들은 무난하게 작품에서 많이 활용하는 빛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그리 세지도 않아요. 인물의 얼굴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빛으로 묘사한 모습입니다.
토마스 클루게의 왕실 초상화 공개 당시의 모습 PHOTO: Niels Ahlmann Olesen/Ritzau Scanpix/archive
이렇게 그림 속 인물들의 빛을 다 다르게 연출하는 건, 초현실주의 사조에서 활용하던 기법이에요.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각 인물의 빛을 다르게 설정하는데, 이걸 일반적인 가족 초상화에 적용한 건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심지어 전통을 고수하는 왕실 초상화라는 점에서 상당한 파격적이죠.
그래서 이 작품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요소를 잘 결합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어요. 또 왕실의 세대별 인물들에 빛을 다르게 설정하면서, 왕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표현한 것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좌) 토머스 클루게 (우) 초상화 제작 촬영한 사진 ⓒ Kristeligt Dagblad
초상화를 그린 건 토마스 클루게는 전통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덴마크 화가입니다. 검은 배경에 인물만 그려내거나 정물만 그려내면서, 심플한 화풍으로 알려진 작가에요. 기존 클루게 작품을 보다가 초상화를 보면 그 화풍을 고스란히 단체 초상화에 적용했구나 싶기도 한데요.
이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찍었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에서는 왕실 구성원들이 대부분 웃고 있고, 공포스럽게 묘사됐던 크리스찬 왕자도 아주 귀여운 모습이에요. 본인의 화풍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수정을 많이 진행하고 연출도 한 부분이 분명 있는 건데요. 대중의 호불호는 갈리긴 했으나, 그림을 의뢰한 마그레테 여왕은 이 초상화를 공식 초상으로 승인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은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현재 작품은 덴마크의 프레덴스보르 궁전에서 상설 전시 중이에요.
case 4.
예술을 다룬 공포영화
영화 '스탕달 신드롬' 포스터와 예고편의 한 장면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작품은 1996년 개봉한 영화 <스탕달 신드롬>입니다. 스탕달 신드롬은,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에게서 유래된 일종의 정신병 증상인데요. 매력적인 예술 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심장이 마구 뛰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심하면 환상이나 정신 분열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증후군입니다.
영화는 스탕달 신드롬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요. 작품 속 주인공인 안나는 형사입니다. 연쇄살인마를 쫓던 중 우연히 우피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스탕달 증후군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데, 이때 한 남자가 안나를 도와줘요. 안나가 쫓던 그 연쇄살인마였습니다.
살인마는 안나가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처한 걸 보고, 표적으로 삼습니다. 이제는 살인마가 안나를 쫓는 상황이 된 거죠. 영화는 스탕달 신드롬의 증상 중 하나인 정신분열을 겪으면서 중첩되는 고통 속, 안나가 살인마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쓰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이 영화 속에서는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같은 르네상스 대가들의 예술 작품들도 가득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 공포영화 3대 거장이라 불리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작품이기도 해서, 예술과 공포가 접목된 콘텐츠 관심 갖게 된 분들께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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