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그리고 뱅크시의 한국 전시회 <리얼 뱅크시>

전시 포스터 ⓒ Artunes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예술가이자, 아트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뱅크시의 전시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리얼 뱅크시>라는 제목으로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죠. 


뱅크시는 이제 한국 관객에게 매우 친숙한 예술가일 것 같습니다. 작년 9월에는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에서 뱅크시의 화제작 <풍선을 든 소녀>가 전시되기도 했는데요. 뱅크시가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 현장에서 낙찰과 동시에 갈아버렸던 그 작품입니다. 당시 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되었지만, 이후 3년 만에 300억 원에 다시 낙찰되며 화제가 되었죠. 



스티브 라자리즈와 '아트 오브 뱅크시' 전시 포스터 ⓒ Artsy



한국 관객에게 뱅크시는 가짜 전시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3년 전에 한국에서 열렸던 뱅크시 전시, <The Art of Banksy>는 뱅크시의 오랜 동업자 스티브 라자리즈가 기획하고 진행했는데요. 뱅크시의 동의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위조된 작품도 함께 전시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앙코르 전시까지 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이후, 뱅크시 전시가 열릴 때마다 전시의 진위 여부가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진위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대부분은 뱅크시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면 모두 '진짜'는 아닙니다. 뱅크시는 직접 책도 쓰고, 전시도 열고, 영화도 만듭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은 두 권이나 냈고, 뉴욕에서 지명수배자로 쫓기던 당시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전시를 열었죠. 또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도 만들었습니다. 이 콘텐츠들은 모두 '진짜' 뱅크시의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콘텐츠에는 확실히 뱅크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많은 편이에요. 예술가 본인이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정보도 훨씬 더 디테일하고요.



다큐멘터리 영화 <Banksy does Newyork>, 2014 도입부



그 외 콘텐츠들은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가짜'에 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참여했다고 하지 마’, ‘크레딧에 내 이름 넣지 마' 정도의 스탠스에요. 일례로 2014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Banksy does Newyork>에서는 도입부에 '뱅크시가 제작하거나 프로듀싱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언급하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콘텐츠를 신뢰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대신 뱅크시가 콘텐츠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정보가 산발되어 있습니다. 뱅크시의 이야기보다 그라피티의 역사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동료 아티스트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식이죠. 


그럼에도 문제가 되었던 전시도 있는데요. 앞서 언급한 <The Art of Banksy>라는 제목의 전시입니다. 3년 전에 한국에서 열렸죠. 이 전시는 뱅크시의 오랜 동업자, 스티브 라자리즈가 뱅크시와 결별 후에 단독으로 기획했던 전시였어요. 당사자 승인 없이 작품으로 수익 얻었기 때문에 엄연한 저작권 침해 사례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앙코르 전시까지 열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이외에도 해외 곳곳에서 진행되었고요. 뱅크시는 본인 웹사이트에 보이콧하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따로 법적 조치는 안 해서 전시 계속 진행 중이죠. 가장 최근에는 작년 10월에 조지아에서 전시 진행했고, 투어 형식으로 계속 진행 예정입니다. 




페스트 컨트롤 이미지 ⓒ Pest Control



이 모든 게, 뱅크시가 익명으로 활동하다 보니 생긴 일인데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뱅크시는 나름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게 Pest Control 이란 회사에요. 우리말로 하면 해충 방역입니다. 뱅크시 입장에서 저작권 위반하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느껴져서, 워딩이 강력합니다. 


이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뱅크시가 이전에 했던 말인 ‘저작권은 패배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문장을 언급해요. 그리고 ‘그 말이 곧 뱅크시라는 아티스트를 이용해 사기를 저지를 명분을 주는 건 아니’라는 걸 강조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상당히 강경한 스탠스를 가지고 뱅크시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곳인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뱅크시가 익명의 예술가다 보니, 그리고 거리예술가다 보니 저작권 관리의 빈틈이 있고, 꽤 큽니다.


Pest Control은 그런 빈틈을 파고들어 뱅크시 작품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한 곳들에 법적인 제제를 하기도하고, 과거 판매된 뱅크시 작품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주기도 합니다. 뱅크시 작품이 위조하기도 쉽고, 과거 판매하던 작품엔 서명조차 안 하고 팔던 것들도 많아서 꼭 필요한 시스템이었다고 볼 수 있죠. 


페스트 컨트롤 이미지 ⓒ Pest Control


인증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고, 짧으면 3주, 길면 수개월이 걸린다고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Pest Control을 통해 진품 인증을 받은 작품들 29점을 선보입니다. 이외에도 동료 그라피티 작가들의 작품과 영상 작품들 100여 점을 포함해서 130점가량의 작품을 전시하죠.


이번 전시에서도 뱅크시의 스텐실 작품들이 선보입니다. <풍선을 든 소녀> 같은, 뱅크시 했을 때 떠오르는 스텐실 작업들이 전시되죠. 스텐실은 뱅크시가 그라피티 시작할 당시, 불법인 그라피티를 어떻게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시도했던 기법입니다. 


당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동료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에겐 비난받았지만, 확실히 효율적이어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본인 작품의 양적인 공급을 대폭 늘릴 수 있었어요. 덕분에 빠르게 그라피티 씬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기법이자, 뱅크시 대표 기법입니다. 스텐실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더 자세하게 만나볼 수 있어요.



디즈멀랜드 전경 ⓒ Banksy



스텐실 기법 작품들 보고 나서는 디즈멀랜드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포토존 형태로 구성해두었는데요. 디즈멀랜드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디즈멀랜드는 뱅크시가 2015년에 만든 놀이공원이에요. 영국에 있는 슈퍼 메어 해변에서 5주 동안 팝업 형태로 잠시 운영한 곳인데요. 슈퍼 메어 해변은 뱅크시가 어렸을 때 가족과 휴가를 보내던 추억의 장소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쇠퇴한 휴양지가 되었죠.


추억의 장소가 망해가는 모습을 보고, 뱅크시는 음울한이라는 뜻의 dismal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놀이공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가족 테마파크’라고 설명합니다. 보통 놀이공원에 가면, 캐스트들이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지만, 디즈멀랜드의 직원들은 늘 기분 나쁜 표정을 하고 있고, 화내듯이 안내해요.

 

그리고 보통의 놀이공원엔 천원 정도 내면 탈 수 있는 미니 놀이 기구나 게임 같은 것들 있는데요. 이것들도 구현해뒀는데, 돈 내고 들어와서 또 돈 내야 하면 부모님들 잘 안 사줍니다. 그래서 뱅크시는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 대상의 대부 업체를 내부에서 운영해요. 이율은 5,000%였습니다.



이민자들이 가득 찬 원격 조종 보트, 뱅크시 (2015) ⓒ Banksy



또 이곳엔 뱅크시가 만든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는데요. 그중 하이라이트 작품은 <이민자들이 가득 찬 원격 조종 보트>입니다. 작품은 1파운드, 한화 약 1700원 정도를 내면 보트를 조종해 강을 건너는 게임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당연히 단순한 게임은 아닙니다. 이 보트 안에는 이민자들이 가득 타 있어요.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한 척의 경비정이 그들을 쫓고 있는 모습입니다.


디즈멀랜드 전경 ⓒ Banksy


관객은 돈을 어떤 배를 몰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민자가 타고 있는 구명정, 혹은 그들을 쫓는 경비정 둘 중 하나를 고르게 되는데요. 구명정 안의 이민자는 보트 위에 고정 장치 없이 올려두었습니다. 그래서 경비정과 부딪힐 때마다 강으로 떨어져요. 뱅크시는 의도적으로 이렇게 연출했다고. 탈출 과정에서 낙오되는 이민자들을 보여주면서 난민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 건데요.


뱅크시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재앙이 될 가능성이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 작품을 통해 관객은 그저 소비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게 된다'. 뱅크시가 선보인 작품들은 늘 유쾌하면서도,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함합니다. 그리고 놀이공원이라는 형식을 활용해서 또 한 번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죠. 그리고 이 기획은, 상당히 흥행했습니다.


5주 동안 15만 명이 방문했고, 입장료 수익만 한화 약 7억 2천만 원가량 됐다고 해요. 별도 비용을 내고 이용해야 하는 개별 놀이시설이 많았다 보니, 전체 수익은 더 컸을 걸로 추정돼요. 이번 전시에서는 14미터에 달하는 벽에 드로잉으로 디즈멀랜드를 재현해두었고, 디즈멀랜드의 입장 공간, 당시 선보인 회전목마도 모형으로 구현해 두어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GDP ⓒ Banksy



또 전시장엔 뱅크시가 2019년 직접 만든 굿즈 숍인 GDP를 구현해두었어요. 관객은 실제로 이 제품들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뱅크시는 그간 미술시장의 상업성을 혐오해왔던 인물이에요. '본인 작품도 안 팔렸으면 좋겠다'거나, '부자들의 장식품으로 내 작품이 전락하는 게 싫다'라고 말해왔었죠. 그리고 '내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스탠스를 쭉 취해왔는데요. 굿즈 숍을 직접 차린 건 모순되는 행보였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2019년 당시에 뱅크시 그림을 이용해서 엽서 사업을 하던 회사와 소송하면서, 상표권을 주장하려면 무언가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법적 대응을 위해서 반강제로 열었던 굿즈 숍이 GDP에요. 당시에 뱅크시 작품이 프린트된 옷이나 에코백 같은 흔한 굿즈류를 판매했는데, 판매 방식이 독특했습니다.


GDP ⓒ Banksy


스토어에 가서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점원이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면 짧은 문장으로 답변하면 돼요. 답변이 괜찮으면 물건을 살 수 있고, 별로면 살 수 없습니다. 판단은 점원이 했는데, 물건은 바로 들고 가는 게 아니라 배송되는 시스템이라 받기 전까지 본인 답변이 괜찮았는지 알 수 없었죠.


어쩔 수 없이 만든 굿즈 숍이었지만, 뱅크시의 매력을 또 한 번 보여주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었고, 이후 온라인으로 굿즈 숍 확장해 운영해왔습니다. 이 기획과 관련해, 같이 보실만한 콘텐츠 하나 추천드리고 싶어요. 뱅크시가 직접 제작한 페이크 다큐,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입니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포스터 ⓒ Medium


많은 미술관에서 퇴장할 때 기프트숍, 굿즈 숍을 거치게 해뒀어요. 뱅크시는 이게 예술 시장이 상업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고 보고, 다큐의 제목으로 선정했는데요. 다큐에서는 이런 상업적인 미술계를 풍자하는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뱅크시가 가상의 예술가인 ‘미스터 브레인 워시’를 스타 예술가로 키워내는 스토리이죠. 이 과정에서 뱅크시가 느끼는 허무감, 미술시장에 느낀 실망감을 보여주면서 그 이면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 작품입니다.


게임체인저, 뱅크시 (2020) ⓒ Fox 59



또 전시에선 <게임 체인저> 작품도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 작품은 2020년에 뱅크시가 선보인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 영국의 사우샘프턴 병원에 기부한 그림인데요. 어린 남자아이가 간호사 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아이 옆으로는 바구니가 있는데, 그 안에 전통적인 히어로인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담겨있어요.


이를 통해 '이 시대의 히어로는 의료진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 작품이었는데요. 병원에서 1년간 전시하면서 의료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뱅크시는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며, 작품을 경매에 부칠 걸 제안했고, 한화 약 264억 원에 낙찰되면서 엄청난 금액을 영국 의료 자선단체에 기부했어요. 뱅크시의 선한 영향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이 작품도 눈여겨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외에도 스페셜 그라피티존에서는 데미안 허스트, 카우스, 오베이 등 동시대 활동한 문제적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요. 또 뱅크시가 돈을 벌기 위해 제작했던 앨범 커버 작업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뱅크시의 예술세계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보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

촌스럽지 않은 저항정신, 뱅크시 작품 특징 5가지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 한국 전시회 비하인드

뱅크시 예술이 저작권으로 공격당한 이유

Bid Piece's Pick

매주 금요일, 까다롭게 선별한 빋피 Pick 전시회를 확인해보세요 :)


The unpleasant and pleasant should inexplicably overlap in 

a sort of beautiful, feverish madness, 

in the end impolding under an overwhelming number of interpretive possibilities.


작품을 감상할 때 아름답고 과열된 광기와 함께 

불쾌한 감정과 유쾌한 감정이 공존한다. 

그러한 감상은 엄청난 해석의 여지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 피터 피슬리 Peter Fischli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