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간송미술관 전경 ⓒ 고려대건축역사연구실
간송미술관이 지난 5월 1일, 1년 7개월 만에 재개관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개관한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이에요. 국내 1호 컬렉터라 할 수 있는 간송 전형필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죠.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유출되던 국보급 국가유산을 수집해온 인물입니다. 이렇게 수집할 수 있었던 건,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덕분이에요. 간송 전형필의 나이 스물네 살 때, 조부모님과 부모님, 삼촌 등 친척이 거의 동시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양가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게 되면서 ‘하늘이 내린 백만장자'라고 불렸습니다.
간송 전형필 ⓒ 간송미술문화재단
가족들이 비슷한 시기에 다 세상을 떠나고 엄청난 재산이 생기게 되니, 보통의 사람이라면 흔들리기 쉬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전형필은 대학에서 인생을 바꿀 스승을 만나게 돼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이었죠. 당시 오세창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조선은 꼭 독립될 것'라는 확신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자 전형필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동서고금에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그래서 일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문화 유적을 가져가려 하는 것이다." 이 말에 감명받은 전형필은 본인의 막대한 재산을 우리 국가유산을 사들이는데 쓰기로 결심해요.
일례로 1940년대, 일제가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이때 전형필은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을 사들입니다. 당시 판매자는 해례본을 ‘천 원'에 팔겠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전형필은 ‘귀한 물건은 제값을 치러야 한다'면서 당시 집 10채 값이었던 만 원에 구매했고, 천 원은 수고비로 더해주었습니다. 이 일화에서도 전형필이 우리 국가유산을 얼마나 아꼈는지 느껴지죠.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매한 만 천 원이란 금액은,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77억이 넘습니다.
ⓒ 간송미술문화재단
뿐만 아니라, 당시 기와집 400채 값을 들여서 고려청자와 조선 청화백자 20여 점을 구입하기도 했어요.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1200억 원 정도나 되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테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이미 일본으로 넘어간 작품 중 신윤복 화백의 작품을 찾아오거나, 광복 후에도 전국에 흩어진 국가유산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보존하는 일을 진행했어요.
그렇게 전형필이 모았던 미술품과 국가유산을 모아서 1938년, 보화각에 전시했습니다. 이후 1971년에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어요. 당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이었고, 후에 서울시 3대 사립미술관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여기 꼽힌 나머지 두 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 산하의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이에요. 이 쟁쟁한 3대 사립미술관에 꼽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소장품 덕분입니다. 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 국가유산 4점을 소장하고 있어요.
훈민정음 해례본
대표적인 국가유산으로는 앞서 언급한 훈민정음해례본 원본, 고려 시대 만들어진 청자들이 있어요.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아 매우 귀한 것들이죠. 국가유산뿐만 아니라 미술작품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신윤복 화백의 작품, 그리고 겸재 정선의 작품까지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은 사실 늘 열려있는 미술관은 아니에요. 미술관은 전시도 진행하지만 소장품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일도 하는데요. 간송미술관은 전시보다는 국가유산 보호와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어, 1년에 두 번만 오픈해왔습니다. 그동안에는 5월과 10월에 2주 정도만 개방했어요. 기간이 매우 짧고, 늘 무료로 개관을 해와서 전시 진행될 때마다 미술관 앞으로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었죠. 간송 전형필의 뜻을 기리면서 각종 매체에서 늘 전시 소식을 전해왔었는데요. 그런데 지난 2020년,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초기 간송미술관의 모습 ⓒ 간송미술문화재단
미술관은 운영하는데 굉장히 많은 돈이 들고, 티켓 판매 비용만으로 운영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간송미술관은 개관 이후 무료로만 운영해 왔어요. 자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미술관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 2013년부터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출범해서 대중 전시나 문화 사업을 병행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이 과정에서 전보다 더 운영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재정적 압박이 커지니, 제2 금융권 대출을 받아 가며 미술관이 운영되었다고 해요.
사실 사립미술관일지라도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유산을 가지고 있으면, 박물관으로 등록 후에 문화체육관광부에게서 관리보수 비용 등 각종 운영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은 2019년 10월에야 박물관 등록을 진행해서 매우 늦게 정부 지원을 받기 시작했어요.
(좌)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우) 금동삼존불감 ⓒ 간송미술문화재단
결국 2020년에 보물 불상 두 점을 경매에 부쳤습니다. 당시 두 점 모두 유찰되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30억 원 조금 안되는 금액에 두 점을 모두 매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죠. 그리고 이듬해인 2021년에 또 다른 국가유산 두 점을 경매에 또 내놓았습니다. 국가가 지정한 국가유산 중에서 최고 가치로 인정받는 ‘국보’였죠.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그리고 금동삼존불감이었습니다. 두 점 모두 문화적 가치도 뛰어나고, 보존 정도도 훌륭했어요. 그래서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32억~45억 원의 추정가가 매겨졌고, 금동삼존불감은 28억~40억 원의 추정가가 매겨졌어요. 문제는 이번에도 두 점 다 유찰되었다는 겁니다.
두 국보 모두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에는 불교 미술 작품을 컬렉팅하는 사람도 적은 데다가, 2-30억 원대의 국가유산을 구매하는 건, 과거 이건희 회장만큼의 큰손이 아니라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찰된 두 점 중에 금동삼존불감을 블록체인 커뮤니티 ‘헤리티지 다오’가 구매했어요. 그리고 지분 51%를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나머지 한 점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간송가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문화유산을 사들이는 큰일을 한 전형필. 하지만 이제는 운영이 어려워 그 문화유산이 경매에 부쳐지고, 유찰되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안타까운 시선이 이어지기도 했죠.
좌) 훈민정음 NFT 백서, 우) 혜원전신첩 NFT ⓒ 간송미술문화재단
경매를 통해 출품했던 국보와 보물은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품은 아니고, 간송미술관 관장 소장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 간송미술관 운영에 일부 쓰였을 것으로 추정돼요. 이외에도 간송미술관은 미술관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1년 8월에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을 NFT로 만들어 판매하는 기획을 선보였어요. 100개 한정이었고, 개당 1억 원의 금액에 판매했습니다.
당시 국보를 상업화한다면서 국가유산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난받기도 했는데요. 간송미술관에서는 이건 일종의 ‘후원’ 개념이라고 이야기했어요. 해례본 NFT를 구입하면 자동으로 간송후원회에 가입되고, 가장 높은 등급의 후원 혜택 등을 받게 됩니다.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 등 특별한 행사에 참석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당시 NFT 출시 두 달 만에, 100개 중 80개가량의 해례본 NFT가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혜원전신첩 NFT ⓒ 간송미술문화재단
첫 번째 NFT 판매를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한 후, 이후 2022년 6월에 또 한 번 NFT 판매를 진행합니다. 이때는 신윤복 화백의 국보 <혜원전신첩>을 NFT로 제작해 판매했는데요. 355개를 제작했고 1개당 0.08이더리움에 판매했어요. 당시 시세로 약 16만 원대였다고 하는데, 완판됐습니다. 해원전신첩 판매 직전에 테라 루나 사태가 터지면서 가상 자산 투자씬이 급랭한 상태에서 판매 진행됐는데, 3일 만에 모두 판매 완료되었죠.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신축 수장고 공사와 문화유산 보존 작업, 전시 운영비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 또 비난을 받았던 것이, 혜원전신첩은 랜덤 뽑기 형태로 구입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돈을 주고 사더라도 원하는 이미지를 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뽑기 형태로 판매하며 오락성과 상업성을 추구하는 건, 국가유산의 가치를 훼손하고 비난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간송미술관은 이런 비난 지점들을 개선하고, 시스템을 점점 고도화해서 국가유산 NFT 판매를 이어가려고 했는데요. NFT가 이제는 미술계에서도 가상화폐 쪽에서도 크게 소구 되지 않아서, 지속적인 수입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일련의 간송미술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우리 고유의 국가유산만으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볼 수 있었죠.
2024 전시 포스터 ⓒ 간송미술문화재단
그럼에도 1년 7개월 만에 간송미술관은 재오픈 기념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최근 수년 사이에,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수백억 원대의 지원을 받게 된 덕분인데요. 그렇게 수장고 신축 공사도 진행했고, 미술관 보수와 복원도 진행하고, 대구 간송미술관 분관도 지으면서 운영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1년 7개월간의 간송미술관 건물 공사 끝에 재개관을 하게 되었어요. 대대적인 리뉴얼이어서, 간송미술관에서는 새 출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이야기했죠. 이번 전시는 또 11년 만에 진행되는 정기 기획 전시회여서, 특별함이 더 큽니다.
2024 간송미술관 전시 전경 ⓒ 조선일보
이번 전시에서는 간송미술관의 초기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습니다. 47점의 작품과, 102점의 유물이 선보이는데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라고 해요. 전시는 1층과 2층에서 진행되는데, 1층에서는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화각이 세워졌던 게 1938년인데, 당시 조선 최초의 근대 건축가였던 박길룡 선생이 그린 설계도면 등이 전시되어 있고, 그 외에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직접 쓴 작품 구입 일기 대장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요.
여기에는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등 작가들의 서화 구입 내역을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죠. 당시 이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전형필 선생이 일본 오사카 미술관,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 등을 돌면서 진열장과 가구를 직접 스케치하기도 했었다고 하는데요. 이 스케치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이 미술관의 설립과 국가유산의 전시를 위해 노력했는지가 느껴지는 공간이죠.
2층으로 가면, 미술관 설립 전후 시기에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이곳에서는 조선 후기, 나비 그림의 대가로 꼽힌 남계우의 작품과 제자 고진승의 나비 족자 그림이 전시돼요. 그동안에는 기록만 전해지다가 처음 실물이 공개되는 것이죠. 또 한국 화단의 대가 심산 노수현 선생의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추협고촌>도 처음 실물이 전시됩니다. 강진희 화백의 <화차분별도>도 처음 선보여지고요. 강진희 화백은 국내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건너가 현지 풍경을 그렸던 인물이에요. 또 강진희 화백과 교분을 나눈 팽광예 화백의 작품 8점이 실린 <미사묵연 화초청운잡화합벽첩>도 최초 공개됩니다.
이번 재개관 특별전의 특별한 점은, 길게 진행된다는 것이에요. 그간 2주씩만 전시 진행하다가 이번에는 90일간 진행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6월 16일까지 열려요. 늘 그래왔듯 무료로 진행될 예정이죠. 대신 사전예약 필수입니다. 벌써 예약이 많이 찬 상태인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미술관 대부분 무료 관람입니다. 이번 달은 29일 수요일인데요. 이날은 예약 없이도 입장 가능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티켓 예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방문하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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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멧 갈라 인사이트
과거 간송미술관 전경 ⓒ 고려대건축역사연구실
간송미술관이 지난 5월 1일, 1년 7개월 만에 재개관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개관한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이에요. 국내 1호 컬렉터라 할 수 있는 간송 전형필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죠.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유출되던 국보급 국가유산을 수집해온 인물입니다. 이렇게 수집할 수 있었던 건,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덕분이에요. 간송 전형필의 나이 스물네 살 때, 조부모님과 부모님, 삼촌 등 친척이 거의 동시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양가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게 되면서 ‘하늘이 내린 백만장자'라고 불렸습니다.
간송 전형필 ⓒ 간송미술문화재단
가족들이 비슷한 시기에 다 세상을 떠나고 엄청난 재산이 생기게 되니, 보통의 사람이라면 흔들리기 쉬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전형필은 대학에서 인생을 바꿀 스승을 만나게 돼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이었죠. 당시 오세창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조선은 꼭 독립될 것'라는 확신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자 전형필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동서고금에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그래서 일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문화 유적을 가져가려 하는 것이다." 이 말에 감명받은 전형필은 본인의 막대한 재산을 우리 국가유산을 사들이는데 쓰기로 결심해요.
일례로 1940년대, 일제가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이때 전형필은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을 사들입니다. 당시 판매자는 해례본을 ‘천 원'에 팔겠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전형필은 ‘귀한 물건은 제값을 치러야 한다'면서 당시 집 10채 값이었던 만 원에 구매했고, 천 원은 수고비로 더해주었습니다. 이 일화에서도 전형필이 우리 국가유산을 얼마나 아꼈는지 느껴지죠.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매한 만 천 원이란 금액은,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77억이 넘습니다.
ⓒ 간송미술문화재단
뿐만 아니라, 당시 기와집 400채 값을 들여서 고려청자와 조선 청화백자 20여 점을 구입하기도 했어요.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1200억 원 정도나 되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테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이미 일본으로 넘어간 작품 중 신윤복 화백의 작품을 찾아오거나, 광복 후에도 전국에 흩어진 국가유산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보존하는 일을 진행했어요.
그렇게 전형필이 모았던 미술품과 국가유산을 모아서 1938년, 보화각에 전시했습니다. 이후 1971년에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어요. 당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이었고, 후에 서울시 3대 사립미술관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여기 꼽힌 나머지 두 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 산하의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이에요. 이 쟁쟁한 3대 사립미술관에 꼽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소장품 덕분입니다. 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 국가유산 4점을 소장하고 있어요.
훈민정음 해례본
대표적인 국가유산으로는 앞서 언급한 훈민정음해례본 원본, 고려 시대 만들어진 청자들이 있어요.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아 매우 귀한 것들이죠. 국가유산뿐만 아니라 미술작품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신윤복 화백의 작품, 그리고 겸재 정선의 작품까지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은 사실 늘 열려있는 미술관은 아니에요. 미술관은 전시도 진행하지만 소장품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일도 하는데요. 간송미술관은 전시보다는 국가유산 보호와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어, 1년에 두 번만 오픈해왔습니다. 그동안에는 5월과 10월에 2주 정도만 개방했어요. 기간이 매우 짧고, 늘 무료로 개관을 해와서 전시 진행될 때마다 미술관 앞으로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었죠. 간송 전형필의 뜻을 기리면서 각종 매체에서 늘 전시 소식을 전해왔었는데요. 그런데 지난 2020년,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초기 간송미술관의 모습 ⓒ 간송미술문화재단
미술관은 운영하는데 굉장히 많은 돈이 들고, 티켓 판매 비용만으로 운영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간송미술관은 개관 이후 무료로만 운영해 왔어요. 자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미술관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 2013년부터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출범해서 대중 전시나 문화 사업을 병행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이 과정에서 전보다 더 운영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재정적 압박이 커지니, 제2 금융권 대출을 받아 가며 미술관이 운영되었다고 해요.
사실 사립미술관일지라도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유산을 가지고 있으면, 박물관으로 등록 후에 문화체육관광부에게서 관리보수 비용 등 각종 운영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은 2019년 10월에야 박물관 등록을 진행해서 매우 늦게 정부 지원을 받기 시작했어요.
(좌)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우) 금동삼존불감 ⓒ 간송미술문화재단
결국 2020년에 보물 불상 두 점을 경매에 부쳤습니다. 당시 두 점 모두 유찰되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30억 원 조금 안되는 금액에 두 점을 모두 매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죠. 그리고 이듬해인 2021년에 또 다른 국가유산 두 점을 경매에 또 내놓았습니다. 국가가 지정한 국가유산 중에서 최고 가치로 인정받는 ‘국보’였죠.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그리고 금동삼존불감이었습니다. 두 점 모두 문화적 가치도 뛰어나고, 보존 정도도 훌륭했어요. 그래서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32억~45억 원의 추정가가 매겨졌고, 금동삼존불감은 28억~40억 원의 추정가가 매겨졌어요. 문제는 이번에도 두 점 다 유찰되었다는 겁니다.
두 국보 모두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에는 불교 미술 작품을 컬렉팅하는 사람도 적은 데다가, 2-30억 원대의 국가유산을 구매하는 건, 과거 이건희 회장만큼의 큰손이 아니라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찰된 두 점 중에 금동삼존불감을 블록체인 커뮤니티 ‘헤리티지 다오’가 구매했어요. 그리고 지분 51%를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나머지 한 점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간송가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문화유산을 사들이는 큰일을 한 전형필. 하지만 이제는 운영이 어려워 그 문화유산이 경매에 부쳐지고, 유찰되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안타까운 시선이 이어지기도 했죠.
좌) 훈민정음 NFT 백서, 우) 혜원전신첩 NFT ⓒ 간송미술문화재단
경매를 통해 출품했던 국보와 보물은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품은 아니고, 간송미술관 관장 소장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 간송미술관 운영에 일부 쓰였을 것으로 추정돼요. 이외에도 간송미술관은 미술관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1년 8월에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을 NFT로 만들어 판매하는 기획을 선보였어요. 100개 한정이었고, 개당 1억 원의 금액에 판매했습니다.
당시 국보를 상업화한다면서 국가유산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난받기도 했는데요. 간송미술관에서는 이건 일종의 ‘후원’ 개념이라고 이야기했어요. 해례본 NFT를 구입하면 자동으로 간송후원회에 가입되고, 가장 높은 등급의 후원 혜택 등을 받게 됩니다.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 등 특별한 행사에 참석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당시 NFT 출시 두 달 만에, 100개 중 80개가량의 해례본 NFT가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혜원전신첩 NFT ⓒ 간송미술문화재단
첫 번째 NFT 판매를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한 후, 이후 2022년 6월에 또 한 번 NFT 판매를 진행합니다. 이때는 신윤복 화백의 국보 <혜원전신첩>을 NFT로 제작해 판매했는데요. 355개를 제작했고 1개당 0.08이더리움에 판매했어요. 당시 시세로 약 16만 원대였다고 하는데, 완판됐습니다. 해원전신첩 판매 직전에 테라 루나 사태가 터지면서 가상 자산 투자씬이 급랭한 상태에서 판매 진행됐는데, 3일 만에 모두 판매 완료되었죠.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신축 수장고 공사와 문화유산 보존 작업, 전시 운영비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 또 비난을 받았던 것이, 혜원전신첩은 랜덤 뽑기 형태로 구입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돈을 주고 사더라도 원하는 이미지를 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뽑기 형태로 판매하며 오락성과 상업성을 추구하는 건, 국가유산의 가치를 훼손하고 비난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간송미술관은 이런 비난 지점들을 개선하고, 시스템을 점점 고도화해서 국가유산 NFT 판매를 이어가려고 했는데요. NFT가 이제는 미술계에서도 가상화폐 쪽에서도 크게 소구 되지 않아서, 지속적인 수입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일련의 간송미술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우리 고유의 국가유산만으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볼 수 있었죠.
2024 전시 포스터 ⓒ 간송미술문화재단
그럼에도 1년 7개월 만에 간송미술관은 재오픈 기념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최근 수년 사이에,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수백억 원대의 지원을 받게 된 덕분인데요. 그렇게 수장고 신축 공사도 진행했고, 미술관 보수와 복원도 진행하고, 대구 간송미술관 분관도 지으면서 운영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1년 7개월간의 간송미술관 건물 공사 끝에 재개관을 하게 되었어요. 대대적인 리뉴얼이어서, 간송미술관에서는 새 출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이야기했죠. 이번 전시는 또 11년 만에 진행되는 정기 기획 전시회여서, 특별함이 더 큽니다.
2024 간송미술관 전시 전경 ⓒ 조선일보
이번 전시에서는 간송미술관의 초기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습니다. 47점의 작품과, 102점의 유물이 선보이는데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라고 해요. 전시는 1층과 2층에서 진행되는데, 1층에서는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화각이 세워졌던 게 1938년인데, 당시 조선 최초의 근대 건축가였던 박길룡 선생이 그린 설계도면 등이 전시되어 있고, 그 외에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직접 쓴 작품 구입 일기 대장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요.
여기에는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등 작가들의 서화 구입 내역을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죠. 당시 이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전형필 선생이 일본 오사카 미술관,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 등을 돌면서 진열장과 가구를 직접 스케치하기도 했었다고 하는데요. 이 스케치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이 미술관의 설립과 국가유산의 전시를 위해 노력했는지가 느껴지는 공간이죠.
2층으로 가면, 미술관 설립 전후 시기에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이곳에서는 조선 후기, 나비 그림의 대가로 꼽힌 남계우의 작품과 제자 고진승의 나비 족자 그림이 전시돼요. 그동안에는 기록만 전해지다가 처음 실물이 공개되는 것이죠. 또 한국 화단의 대가 심산 노수현 선생의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추협고촌>도 처음 실물이 전시됩니다. 강진희 화백의 <화차분별도>도 처음 선보여지고요. 강진희 화백은 국내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건너가 현지 풍경을 그렸던 인물이에요. 또 강진희 화백과 교분을 나눈 팽광예 화백의 작품 8점이 실린 <미사묵연 화초청운잡화합벽첩>도 최초 공개됩니다.
이번 재개관 특별전의 특별한 점은, 길게 진행된다는 것이에요. 그간 2주씩만 전시 진행하다가 이번에는 90일간 진행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6월 16일까지 열려요. 늘 그래왔듯 무료로 진행될 예정이죠. 대신 사전예약 필수입니다. 벌써 예약이 많이 찬 상태인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미술관 대부분 무료 관람입니다. 이번 달은 29일 수요일인데요. 이날은 예약 없이도 입장 가능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티켓 예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방문하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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