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미술관 이야기

© The San Diego Museum of Art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샌디에이고 중심지에 있는 미술관입니다. 한국 관객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내년인 2026년에 개관 100주년을 맞는 역사가 긴 미술관이에요. 매년 5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방문해서 관객도 많은 편이고요. 소장품은 3만 점 정도인데, 이 자체가 많은 수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이 40만 점 정도 소장하고 있거든요. 대신, 소장품의 퀄리티가 높고 시기가 매우 다채로워요. 기원전 5천 년부터 가장 최근작은 2012년도 작품까지 가지고 있죠. 이렇게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다양한 볼륨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건, 미술관이 개관한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5년, 파나마-캘리포니아 박람회가 열려요. 파나마 운하 개통을 기념하면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는 행사가 열렸던 건데요. 이 시기 미국에는 한참 미술품 컬렉팅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J.P 모건, 록펠러, 게티 가문처럼 많은 돈을 번 가문들에서 1890년대 이전 유럽 회화(올드 마스터)를 어마어마하게 수집했어요. 이 수집 대란이 얼마나 거셌는지, 후에는 유럽 몇몇 국가에서 자국 예술품을 미국으로 판매하는 걸 법적으로 막을 정도로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 작품을 구매한 부유층들이 소장하고 있는 일부 미술품을 사회 공헌 차원에서 미술관에 자주 기증했어요. 그리고 이 수혜를 받아 1926년 개관하게 된 것이 샌디에이고 미술관입니다.

© The San Diego Museum of Art
미국은 돈이 많고, 유럽엔 예술 작품이 많던 시기, 아직 법적으로 유럽 미술작품이 보호받기 전에 미국으로 팔려나간 상당한 명작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죠.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꽤 보수적인 미술관이어서,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대부분 한 번도 해외에 대여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보수적인 미술관은 대개 미술사를 살펴볼 수 있는 백과사전식 큐레이션을 하곤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도 미술사를 훑어볼 수 있는 학술적인 구성으로 한국을 찾아왔어요.
[1]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Workshop of Hieronymus Bosch, The Arrest of Christ, 1515 (이번 전시작)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서는 르네상스 시기 작품들부터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건 1515년경 그려진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리스도의 체포>에요.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네덜란드 예술가입니다. 르네상스 시기 활동했지만 예술 중심지인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 덕분에 오히려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리스도의 체포를 보면, 인물들이 캐리커처처럼 그려져 있어요. 머리가 매우 크고, 팔다리가 짧습니다. 그리스도가 체포되는 장면은 그간 미술 작품에서 정말 많이 그려져 왔는데, 늘 그 순간의 긴박함, 웅장함이 잘 드러나게 그려지곤 했었어요. 하지만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의도적으로 이들을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처럼 그렸습니다. 이건 철저히 의도된 것이었어요.

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1495-1505
보스가 그린 다른 작품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쾌락의 정원>을 보면, 사람들을 매우 사실적인 비율로 섬세하게 잘 그린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그린 것은, 중세 말기 교회와 사회가 부패한 시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어요. 이 시기에는 면죄부를 돈 주고 팔면서 종교가 점점 부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싹트고 있었고, 이후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는데요.
보스의 이 작품은 아직 종교개혁이 시작하기 전인 1515년, 사람들의 분노가 점점 고조되던 타이밍에 그려졌습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인 그리스도는 힘없고 아둔해 보이게 묘사했고, 그림 속 다른 인물들은 괴팍해 보이고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 정신없이 엉클어져 있죠.
보스는 이렇게 종교의 의미에 반하는 사람들의 욕망, 쾌락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을 선보이면서 당대 그려지던 종교화와는 다른 독특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요. 이 전시에서도 어렵게만 느껴지던 르네상스 그림의 위트를 볼 수 있는 보스의 그림에 주목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2] 바로크

Francisco de Zurbarán, Agnus Dei, 1635-1640 (이번 전시작)
전시의 두 번째 섹션에서는 바로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바로크는 17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예술 사조입니다. 카라바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가 있는 작품들이 대개 바로크 시대의 그림들인데요. 바로크 장르는 의도적으로 키워진 장르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가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후 구교는 신교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신도를 더 유치하기 위해 교회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종교화도 더 극적이고 웅장하게 그립니다.
이런 상황 속 빛과 어둠의 대비, 키아로스쿠로가 강조된 그림들은 구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어요. 그리고 이번 전시의 바로크 섹션에서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작품은 1640년경 제작된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작품은 새까만 배경에 하얀 양이 다리가 묶인 채, 힘없이 놓여 있는 모습을 그렸어요. 제물로 바쳐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위쪽에서 떨어지는 빛이 흰 양의 털에 닿으면서, 빛과 어둠의 대비가 강조된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을 보여줘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양의 폭신한 털, 촉촉한 분홍빛 코, 하얀 속눈썹까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했어요. 덕분에 이 그림을 그린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은 스페인의 카라바조라고 불리기도 했죠. 그리고 이 그림도 대부분 바로크 시대 그림이 그렇듯 종교화입니다. 네 발이 묶인 채 꼼짝도 못 하는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요. 실제로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양의 머리 쪽에 후광이 그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이 양이 평범한 재물이 아니라,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엄숙한 종교화임을 알 수 있죠. 작품 크기가 작은 데다가 언뜻 정물화나 풍속화처럼 보일 수 있는 소재임에도, 종교화 특유의 고요함이 담겨있어서 수르바란의 예술적 재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수작으로 손꼽힙니다.
[3]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Jean-Auguste-Dominique Ingres, Napoleon I on his Imperial Throne, 1806

Jean-Auguste-Dominique Ingres,The Calpincon Bather, 1808
로코코는 루이 15세가 재위하던 때, 프랑스 왕실 주도로 유행한 화사하고 장식적인 양식입니다. 직전에 유행하던 바로크 화풍이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어둡게 그려지는 경향이 강했는데, 그 사조에 의도적으로 저항해 생겨났고, 인기를 끌었어요.

Jean-Auguste-Dominique Ingres, Study for Phidias in the Apotheosis of Homerm 1827 (이번 전시작)
이번 섹션에서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작품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1827년 작, <호메로스의 신격화를 위한 피디아스 습작>입니다. 앵그르는 <그랑 오달리스크>, <샘>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에요. 여성 누드화를 많이 그렸었고, 이외에도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신화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고전주의의 마지막 거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르네상스 예술에서 볼 수 있는 고전적인 화풍을 아주 잘 구사하는 거장이에요.
이번 전시에서는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호메로스’라는 그리스 시인을 그린 그림의 습작을 전시합니다. 작품 크기는 작지만 고전 화풍의 섬세함은 모두 엿볼 수 있는 그림이죠. 고전적인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Claude Monet, Hayhacks at Chailly, 1865 (이번 전시작)
이 섹션에서는 클로드 모네,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 메리 카사트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단연 모네의 작품. 1865년 작 <샤이의 건초더미>에요. 이 그림은 모네가 전시하지도 않았고, 판매하지도 않았던 실험작입니다. 작가 활동 초기, 뭘 그리면 좋을지 고민하던 시기에 동료 화가인 르누아르와 함께 퐁텐블로 숲으로 가서 건초더미가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죠.
이후 1890년부터 건초더미 연작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모네가 인상주의자들 중에서는 최초로 연작을 시도했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시작이 건초더미 연작이었어요. <샤이의 건초더미>는 연작이 시작되기 25년 전에 그려지면서 그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이 건초더미 연작을 시작으로 이후에 루앙 대성당 연작도 만들고, 수련 연작까지 이어지면서 모네 예술의 시작점이 된 작품으로도 평가받아요.

Claude Monet, Meules, 1890-1891
기존에 우리가 알던 모네 작품과는 다르게 작품이 좀 어두운 편입니다. 크기도 모네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작은 편이고요. 그럼에도, 모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네의 새로운 면모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5] 20세기의 모더니즘

Joaquin Sorolla, María en La Granja, 1907 (이번 전시작)
이 섹션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술가인 라울 뒤피, 호야킨 소로야, 수잔 발라동, 마리 로랑생, 조르주 브라크, 모딜리아니 같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중 단연 하이라이트 작품은 호야킨 소로야의 1907년 작 <라 그랑하의 마리아>를 꼽을 수 있어요.
호야킨 소로야는 피카소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스페인 작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소로야의 그림을 보면 인상주의에 영향받은 빠른 붓터치, 경쾌한 빛 표현이 인상적인데요. 동시에 스냅사진을 보는 것처럼 인물을 빠르고 명확하게 포착해서 보는 재미까지도 놓치지 않은 화가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라 그랑하의 마리아>를 선보여요. 실제 사람보다 조금 더 큰 크기로 그린 인물화입니다.

Joaquín Sorolla, 'Running along the Beach, Valencia', 1908
그림 속 여성은 소로야의 딸 마리아예요. 당시 마리아가 결핵 진단을 받으면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스페인 북부 시골로 이주합니다. 이곳에서 치료에 전념하는 동시에 자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했는데요. 이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당시 소로야는 스페인 왕실 그림을 의뢰받아 그리기도 했어요. 이 그림도, 왕실 별장에서 만든 작품이죠. 소로야 특유의 경쾌한 색감, 빠르지만, 정확한 붓질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감도 매우 두텁게 사용해서,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또 이 그림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1925년, 처음으로 소장한 작품입니다. 여러모로 의미가 큰 작품인 셈이지요.
▶ 전시 정보 살펴보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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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미술관 이야기
© The San Diego Museum of Art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샌디에이고 중심지에 있는 미술관입니다. 한국 관객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내년인 2026년에 개관 100주년을 맞는 역사가 긴 미술관이에요. 매년 5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방문해서 관객도 많은 편이고요. 소장품은 3만 점 정도인데, 이 자체가 많은 수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이 40만 점 정도 소장하고 있거든요. 대신, 소장품의 퀄리티가 높고 시기가 매우 다채로워요. 기원전 5천 년부터 가장 최근작은 2012년도 작품까지 가지고 있죠. 이렇게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다양한 볼륨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건, 미술관이 개관한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5년, 파나마-캘리포니아 박람회가 열려요. 파나마 운하 개통을 기념하면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는 행사가 열렸던 건데요. 이 시기 미국에는 한참 미술품 컬렉팅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J.P 모건, 록펠러, 게티 가문처럼 많은 돈을 번 가문들에서 1890년대 이전 유럽 회화(올드 마스터)를 어마어마하게 수집했어요. 이 수집 대란이 얼마나 거셌는지, 후에는 유럽 몇몇 국가에서 자국 예술품을 미국으로 판매하는 걸 법적으로 막을 정도로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 작품을 구매한 부유층들이 소장하고 있는 일부 미술품을 사회 공헌 차원에서 미술관에 자주 기증했어요. 그리고 이 수혜를 받아 1926년 개관하게 된 것이 샌디에이고 미술관입니다.
© The San Diego Museum of Art
미국은 돈이 많고, 유럽엔 예술 작품이 많던 시기, 아직 법적으로 유럽 미술작품이 보호받기 전에 미국으로 팔려나간 상당한 명작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죠.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꽤 보수적인 미술관이어서,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대부분 한 번도 해외에 대여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보수적인 미술관은 대개 미술사를 살펴볼 수 있는 백과사전식 큐레이션을 하곤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도 미술사를 훑어볼 수 있는 학술적인 구성으로 한국을 찾아왔어요.
[1]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Workshop of Hieronymus Bosch, The Arrest of Christ, 1515 (이번 전시작)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서는 르네상스 시기 작품들부터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건 1515년경 그려진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리스도의 체포>에요.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네덜란드 예술가입니다. 르네상스 시기 활동했지만 예술 중심지인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 덕분에 오히려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리스도의 체포를 보면, 인물들이 캐리커처처럼 그려져 있어요. 머리가 매우 크고, 팔다리가 짧습니다. 그리스도가 체포되는 장면은 그간 미술 작품에서 정말 많이 그려져 왔는데, 늘 그 순간의 긴박함, 웅장함이 잘 드러나게 그려지곤 했었어요. 하지만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의도적으로 이들을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처럼 그렸습니다. 이건 철저히 의도된 것이었어요.
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1495-1505
보스가 그린 다른 작품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쾌락의 정원>을 보면, 사람들을 매우 사실적인 비율로 섬세하게 잘 그린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그린 것은, 중세 말기 교회와 사회가 부패한 시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어요. 이 시기에는 면죄부를 돈 주고 팔면서 종교가 점점 부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싹트고 있었고, 이후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는데요.
보스의 이 작품은 아직 종교개혁이 시작하기 전인 1515년, 사람들의 분노가 점점 고조되던 타이밍에 그려졌습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인 그리스도는 힘없고 아둔해 보이게 묘사했고, 그림 속 다른 인물들은 괴팍해 보이고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 정신없이 엉클어져 있죠.
보스는 이렇게 종교의 의미에 반하는 사람들의 욕망, 쾌락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을 선보이면서 당대 그려지던 종교화와는 다른 독특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요. 이 전시에서도 어렵게만 느껴지던 르네상스 그림의 위트를 볼 수 있는 보스의 그림에 주목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2] 바로크
Francisco de Zurbarán, Agnus Dei, 1635-1640 (이번 전시작)
전시의 두 번째 섹션에서는 바로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바로크는 17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예술 사조입니다. 카라바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가 있는 작품들이 대개 바로크 시대의 그림들인데요. 바로크 장르는 의도적으로 키워진 장르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가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후 구교는 신교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신도를 더 유치하기 위해 교회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종교화도 더 극적이고 웅장하게 그립니다.
이런 상황 속 빛과 어둠의 대비, 키아로스쿠로가 강조된 그림들은 구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어요. 그리고 이번 전시의 바로크 섹션에서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작품은 1640년경 제작된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작품은 새까만 배경에 하얀 양이 다리가 묶인 채, 힘없이 놓여 있는 모습을 그렸어요. 제물로 바쳐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위쪽에서 떨어지는 빛이 흰 양의 털에 닿으면서, 빛과 어둠의 대비가 강조된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을 보여줘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양의 폭신한 털, 촉촉한 분홍빛 코, 하얀 속눈썹까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했어요. 덕분에 이 그림을 그린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은 스페인의 카라바조라고 불리기도 했죠. 그리고 이 그림도 대부분 바로크 시대 그림이 그렇듯 종교화입니다. 네 발이 묶인 채 꼼짝도 못 하는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요. 실제로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양의 머리 쪽에 후광이 그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이 양이 평범한 재물이 아니라,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엄숙한 종교화임을 알 수 있죠. 작품 크기가 작은 데다가 언뜻 정물화나 풍속화처럼 보일 수 있는 소재임에도, 종교화 특유의 고요함이 담겨있어서 수르바란의 예술적 재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수작으로 손꼽힙니다.
[3]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Jean-Auguste-Dominique Ingres, Napoleon I on his Imperial Throne, 1806
Jean-Auguste-Dominique Ingres,The Calpincon Bather, 1808
로코코는 루이 15세가 재위하던 때, 프랑스 왕실 주도로 유행한 화사하고 장식적인 양식입니다. 직전에 유행하던 바로크 화풍이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어둡게 그려지는 경향이 강했는데, 그 사조에 의도적으로 저항해 생겨났고, 인기를 끌었어요.
Jean-Auguste-Dominique Ingres, Study for Phidias in the Apotheosis of Homerm 1827 (이번 전시작)
이번 섹션에서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작품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1827년 작, <호메로스의 신격화를 위한 피디아스 습작>입니다. 앵그르는 <그랑 오달리스크>, <샘>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에요. 여성 누드화를 많이 그렸었고, 이외에도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신화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고전주의의 마지막 거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르네상스 예술에서 볼 수 있는 고전적인 화풍을 아주 잘 구사하는 거장이에요.
이번 전시에서는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호메로스’라는 그리스 시인을 그린 그림의 습작을 전시합니다. 작품 크기는 작지만 고전 화풍의 섬세함은 모두 엿볼 수 있는 그림이죠. 고전적인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Claude Monet, Hayhacks at Chailly, 1865 (이번 전시작)
이 섹션에서는 클로드 모네,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 메리 카사트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단연 모네의 작품. 1865년 작 <샤이의 건초더미>에요. 이 그림은 모네가 전시하지도 않았고, 판매하지도 않았던 실험작입니다. 작가 활동 초기, 뭘 그리면 좋을지 고민하던 시기에 동료 화가인 르누아르와 함께 퐁텐블로 숲으로 가서 건초더미가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죠.
이후 1890년부터 건초더미 연작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모네가 인상주의자들 중에서는 최초로 연작을 시도했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시작이 건초더미 연작이었어요. <샤이의 건초더미>는 연작이 시작되기 25년 전에 그려지면서 그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이 건초더미 연작을 시작으로 이후에 루앙 대성당 연작도 만들고, 수련 연작까지 이어지면서 모네 예술의 시작점이 된 작품으로도 평가받아요.
Claude Monet, Meules, 1890-1891
기존에 우리가 알던 모네 작품과는 다르게 작품이 좀 어두운 편입니다. 크기도 모네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작은 편이고요. 그럼에도, 모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네의 새로운 면모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5] 20세기의 모더니즘
Joaquin Sorolla, María en La Granja, 1907 (이번 전시작)
이 섹션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술가인 라울 뒤피, 호야킨 소로야, 수잔 발라동, 마리 로랑생, 조르주 브라크, 모딜리아니 같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중 단연 하이라이트 작품은 호야킨 소로야의 1907년 작 <라 그랑하의 마리아>를 꼽을 수 있어요.
호야킨 소로야는 피카소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스페인 작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소로야의 그림을 보면 인상주의에 영향받은 빠른 붓터치, 경쾌한 빛 표현이 인상적인데요. 동시에 스냅사진을 보는 것처럼 인물을 빠르고 명확하게 포착해서 보는 재미까지도 놓치지 않은 화가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라 그랑하의 마리아>를 선보여요. 실제 사람보다 조금 더 큰 크기로 그린 인물화입니다.
Joaquín Sorolla, 'Running along the Beach, Valencia', 1908
그림 속 여성은 소로야의 딸 마리아예요. 당시 마리아가 결핵 진단을 받으면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스페인 북부 시골로 이주합니다. 이곳에서 치료에 전념하는 동시에 자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했는데요. 이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당시 소로야는 스페인 왕실 그림을 의뢰받아 그리기도 했어요. 이 그림도, 왕실 별장에서 만든 작품이죠. 소로야 특유의 경쾌한 색감, 빠르지만, 정확한 붓질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감도 매우 두텁게 사용해서,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또 이 그림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1925년, 처음으로 소장한 작품입니다. 여러모로 의미가 큰 작품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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