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뮤지엄] 오스틴 리: PASSING TIME

롯데타워의 롯데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오스틴 리 개인전, <PASSING TIME>이 진행 중이에요.한국에서는 이번이 첫 개인전 진행인데요. 그 동안에는 한국에서 진행된 ‘아트페어’에서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시장에서 핫한 작가인 덕분이죠. 재밌는 건, 개인 컬렉터보다도 미술관에서 컬렉팅 하려고 난리 난 작가라는 점이에요.

 

이 점이 의미 있는 건, 생각보다 미술관 예산이 얼마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 연간 예산이 40억 정도라고 해요. 그렇다 보니 미술관에서 작품 소장할 때의 기준은 까다롭습니다. 작가가 이미 사망해서 미술사적으로 검증이 끝났거나, 살아있는 작가의 경우엔 명성이 확실한 작품을 구매하곤 해요. 그런데 오스틴리는 올해 40살입니다. 아직 너무 젊은 작가죠. 그럼에도 미술관이 주목하는 이유는, 오스틴 리가 전례 없던 작업 방식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영상 작품은, 찰흙으로 빚어놓은 듯한 형상의 캐릭터가 걷거나, 울거나, 춤추는 장면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거나, 보편적으로 하는 행동을 하는 모습이죠. 흥미로운 건 이 영상을 만든 방식이에요. 

보통 영상 작품을 만들 경우엔, 디지털로 그리고 뼈대도 만들어서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오스틴 리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요. 몸에다가 센서를 부착하고 VR을 써서 본인이 직접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식이죠. 아바타 같은 영화에서, 배우들이 몸에 잔뜩 뭔갈 붙이고 연기하는 것처럼요. 오스틴 리도 직접 걷거나, 춤추거나, 훌쩍이며 작품을 만듭니다.


그의 페인팅 작업은 마치 디지털 작업처럼 느껴져요. 아이패드 드로잉이나, 일러스트 그림 같은 느낌도 있고요. 매우 깔끔하고 붓터치 하나 안 느껴질 정도로 군더더기 없습니다. 그런데 캡션을 보면 ‘아크릴 온 캔버스’라고 적혀있어요. 물감을 이용해 그린 그림인 거죠. 

이렇게나 매끈하게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오스틴 리가 물감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채색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려낸 페인팅 작업은 시각적으로는 디지털 작품 같으면서도,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도 있어요. 


오스틴 리 페인팅의 주요한 특징은 하나 더 있어요. 형광 용액을 이용해 밝은 부분을 표현한다는 것. 우리가 회화 작품을 볼 때, '명암'의 스펙트럼이 골고루 펼쳐져 있어야 그림을 풍성하게 느낀다고 해요. 어두운 부분이 너무 없으면 그림이 가벼워 보이고, 밝은 부분이 너무 없으면 답답해 보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블랙과 화이트 물감을 활용해서 명도를 조절하곤 하는데요. 오스틴 리는 밝은 부분에 전통적으로 써오던 화이트가 아닌, 형광 용액을 타서 밝음을 표현했어요. 

 

이게 획기적 시도인 이유는, 이 역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들기 때문이에요. 혹시 CMYK, RGB 들어보신 적 있나요? 각각 인쇄기술과 모니터 기술의 색상체계입니다. 인쇄를 할 때는 색이 혼합되는 거여서 섞을수록 어두워져요. 이를 가산혼합이라 부릅니다. 모니터에서는 빛이 혼합되는 거여서 섞을 수록 밝아져요. 이는 감산혼합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색이 혼합되는 것이기에, 섞을수록 어두워져요. 그래서 밝은 부분을 표현할 때는 물감을 최소한으로 쓰거나 화이트 물감을 쓰곤 하죠. 그런데 물감을 적게 쓰면 밝은 부분이 힘이 없고, 화이트를 쓰면 색이 탁해집니다. 그래서 그동안엔 빛과 어둠 대비를 명확하게 주는 방식으로 밝음을 표현했는데요. 오스틴 리는 밝은 부분에 형광용액을 타서, 마치 모니터 화면으로 밝은 부분을 보는 것처럼 쨍한 색감을 구현해요. 

 

그래서 오스틴의 작업을 보면, 밝은 부분 근처에 그리 어두운 컬러가 있지도 않은데도 매우 쨍한 색감을 자랑하는 걸 볼 수 있어요. 또 이 덕분에 핸드폰으로 감상해도 작품의 색감이 거의 그대로 구현됩니다. 모바일로 작품을 감상하고 심지어 구매하는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죠.

 

 

조각 작업은 영상과 페인팅에서 봤던 특징이 모두 녹아있습니다. 마찬가지로 VR 기기를 활용해서 동세나 포즈 등을 잡고, 채색은 아크릴 물감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죠. 재밌는 점은 크게 두 가지예요. 조각 작품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모니터를 부착하거나, 혹은 물이 나오는 분수대 같은 걸 설치하면서 작품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 든다는 점. 


또 하나는 아크릴 물감 분사뿐만 아니라, 청동 같은 전통적인 회화 재료도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트렌디하면서도 예술의 전통적인 유산들을 가져가는 걸 모두 볼 수 있는데요. 


이런 미술사적인 부분들 차치하고, 오스틴 리 작품은 가볍게 즐기면서 보는 게 좋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 작품처럼 난해하고 관념적이지 않거든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상업 예술 작품입니다. 영화로 치면 명절에 개봉하는 오락 영화 같은 느낌이죠.


다만 그의 시도가 대단히 트렌디하고 기발하고 새로워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주목받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동시대 가장 젊고 가장 잘하는 작가가 오스틴 리로 꼽히니, 가벼운 마음으로 가셔서 즐기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사진출처 © AustinLee.net



Austin Lee: Passing Time 전시 정보

전시 기간 | 9월 26일 - 12월 31일 (휴관일 없음)

전시 장소 | 롯데뮤지엄

티켓 가격 | 성인 기준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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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pleasant and pleasant should inexplicably overlap in 

a sort of beautiful, feverish madness, 

in the end impolding under an overwhelming number of interpretive possibilities.


작품을 감상할 때 아름답고 과열된 광기와 함께 

불쾌한 감정과 유쾌한 감정이 공존한다. 

그러한 감상은 엄청난 해석의 여지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 피터 피슬리 Peter Fischli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