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시티] 뱅크시, 키스해링 개인전 Love in Paradise

© Paradise city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뱅크시와 키스해링 개인전, <Love in Paradise: Banksy and Keith Haring>이 진행 중입니다. 11월 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해요. 프리즈X키아프는 지난주 일요일 끝으로 종료되었지만, 축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트페어 기간 동안 함께 개막한 전시가 많기 때문이죠. 갤러리는 물론이고 미술관,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데, 오늘 소개할 뱅크시와 키스해링 전시는 ‘호텔’에서 진행되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의 키포인트, 6가지를 정리했어요.

 

 

뱅크시와 키스해링의 강력한 연결고리

키스해링과 뱅크시  © VOGUE / © Art Review

이번 전시처럼 두 명의 예술가를 다루는 2인전 할때는, 연결고리 확실한 작가들을 선정하곤 합니다. 뱅크시와 키스해링도 둘 다 거리예술, 그라피티 아트로 시작했다는 큰 공통분모가 있어요. 그리고 거리예술은 불법이기에, 둘 다 경찰에 쫓기던 예술가였고요. 


경찰에게는 쫓기는 신세였지만, 대중에게는 열렬한 지지를 받던 예술가들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가 유명해지는 방법은, 전시를 하고, 상을 받아서, 평단의 지지를 얻고, 언론에 소개되는 식인데요. 이 이후에는 대형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며 대중이 널리 아는 예술가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뱅크시와 키스해링은 정반대의 루트를 거쳤어요. 거리미술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대중에게 먼저 지지를 얻었고, 전시를 진행하고 평단의 지지를 얻으며 오늘날에는 대형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가 되었습니다. 거리예술에서 시작해 미술관으로 진출한 작가가 많지 않기에, 이례적인 역사를 쓴 두 인물이라고 볼 수 있죠.

 

 

경매회사 전시의 저력

© Sotheby's

뱅크시와 키스해링 작품 32점이 옵니다. 작품 수 자체는 적은 편이지만, 블록버스터급 작품이 들어왔어요.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뱅크시가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과 동시에 갈아버린 <풍선을 든 소녀> 작품입니다. 엄청난 화제작이었기에 이걸 어찌 들고왔나?! 하는 반응도 있는데.


이게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대 경매회사 ‘소더비’ 덕분이에요. 소더비가 한국 사무소 재오픈하며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기획한 거죠.. 소더비는 1990년에 한국 사무소를 냈다가 1996년에 철수했는데요. 이후 한국 미술시장 규모가 다시 커지고, 젊은 컬렉터가 많이 유입되면서 해외작가를 찾는 니즈가 많아, 올해 *사무소를 다시 오픈했습니다.


*경매회사 사무소가 하는 일: 경매회사의 사무소는 해외에서 열리는 경매를 홍보하고 고객을 관리해요. 한국 사무소에서는 아마 고객을 소더비 '홍콩'에서 열리는 경매로 유입시킬 것으로 보이고요.


크리스티의 <Flesh and Soul: Bacon & Ghenie> 전시 © Christie's

필립스의 <New Romantics> 출품작: Katherine Bernhardt, Papaya 2020 © Phillips

보통 경매회사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프리뷰 전시>에요. 경매에 출품될 작품의 컨디션을 고객이 미리 체크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죠. 하지만 때때로 기획 전시도 열곤 합니다. 일례로 1995년에 한국 사무소 개설한 또다른 3대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작년에 프리즈 진행하면서 프랜시스 베이컨 전시 진행했어요. 


또 2018년에 한국 사무소를 개설한 필립스는, 마찬가지로 작년 프리즈 기간 때 동시대 낭만주의 테마로 현대미술 작가들 전시 진행했고요. 크리스티와 필립스의 전시 모두 대형 경매회사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평을 받았고, 경매 회사가 아니라 사무소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대작이 전시될 수 있는 걸 보여줬어요. 앞으로도 세계 3대 경매회사라 불리는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사무소에서 진행하는 전시들은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이고요.

 

 

이번 전시의 대표작: 뱅크시 Girl without the Balloon

© Pest Control, ©Sotheby's

2018년, 미술계를 뜨겁게 만든 사건이 발생합니다.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 작품 <풍선을 든 소녀 Girl with the Balloon>이 출품되었고, 우리 돈 15억 원에 낙찰됐어요. 여기까지는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경매사가 낙찰봉을 내리치는 순간, 작품이 갈려나갔어요. 경매장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하고, 열광했죠.


'뱅크시 당했다 (Banksy-ed)' 그날 사건을 보도하며 가장 많이 쓰인 말이에요. 이 사건은 단순 테러가 아니라, 뱅크시가 직접 액자 내부에 숨겨둔 파쇄기를 작동시켜서 의도적으로 작품을 갈아버린 것이었거든요. 그간 뱅크시가 미술 시장 등 권력과 자본주의 비판했기에, 열광하는 반응이 쏟아지는 한편, 소더비와 짜고 친 고스톱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물론 정황상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혀졌고요.


가장 중요한 반응은 이런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응찰자의 반응이었습니다. 경매회사에서는 작품을 단순히 중개하고 판매하는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작품의 컨디션과 진품여부를 체크하고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여기서 경매회사의 권위가 나오는 거고요. 경매 전후로 작품 컨디션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에, 소더비는 구매의사를 다시 물었습니다.


응찰자는 조금 고민하다가 구매하겠다고 답변했어요. 다른 아티스트였으면 모르겠지만, 뱅크시니까 구매하겠다고 했죠. 이 작품은 약 15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미술 역사상, 경매 낙찰 전후로 가장 가치가 빠르게 높아진 작품이 되었어요. 미술작품은 작품 자체의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가진 스펙터클도 상품성에 영향주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큰 경매회사에서, 뱅크시가 본인 정체성이 담긴 퍼포먼스를 선보인 건, 너무나 큰 스펙터클이고 퍼포먼스였습니다. 이후 미술계 관계자들은 작품 가치를 한화 약 2조 원까지 책정했어요.

 

 

작품의 스펙터클은 계속된다

© Pest Control

사건 이튿날 뱅크시는 본인 인스타그램에 이 작품에 대한 코멘트 남겼어요. "수년 전부터 경매에 출품하려고 공들인 작품이고, 2년 전쯤 파쇄기 설치했다. 경매장에 친구가 가서, 낙찰 즉시 파쇄기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작품을 다 갈아버리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파쇄기가 녹이 슨 건지, 절반만 갈려 아쉽다."


본인이 직접 설계한 퍼포먼스라는 게 드러나며 작품의 화제성은 더 높아집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작품의 가치를 제시하는 이도 나타났어요. 오히려 액자 안에 반만 담긴 그림은 새로운 조형미를 제시했다는 거죠. 뱅크시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까지 작품은 미적 가치를 획득합니다. 작품의 화제성은 점점 뱅크시의 손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죠.


이후 뱅크시는 본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 제목을 <풍선을 든 소녀 Girl with the Balloon>가 아닌 <사랑은 쓰레기통에 Love is in the Bin>으로 바꾸겠다고 전합니다. 퍼포먼스 전후로 작품의 의도와 가치 등 많은 것이 바뀌었고, 이를 반영하기 위한 행보였는데요. 혹자는 작품에 대한 본인 영향력을 계속 가져가기 위함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어요.


© Sotheby's

이후 3년 만에 이 작품은 다시 소더비 경매에 나옵니다. 워낙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에 너무 빨리 다시 나온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지난 낙찰가의 18배에 낙찰되며 작품 파급력 증명해 냈어요.. 우리 돈 30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두 번째 낙찰 후 뱅크시는 작품 제목 또 바꾸기로 해요. <풍선 없는 소녀 Girl without the Balloon>였죠.


맨 처음 제목이 <풍선을 든 소녀 Girl with the Balloon>이었던 걸 생각하면 직관적으로 바꾼 셈인데요. 사실 작품 제목을 바꾸는 게 흔하지는 않습니다. 고미술품 중에는 연구 전과 후에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현대미술에 접어들면서는 작가가 알아서 제목을 붙이기에 바뀔 일이 흔치 않죠. 그럼에도 작가가 원하면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 바뀌는 게 화제성에도 좋고요.



이 작품은 현시점 현대미술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보여요. 

-뱅크시 예술세계 총망라 한 작품: 뱅크시가 오랜 시간 동안 미술시장 상업성 비판해 왔고,, 상업성의 끝인 경매회사에서 작품 갈아버리면서 본인 작업의 하이라이트 지점 만들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치열한 토론: 15억, 300억 원이라는 큰돈에 낙찰되면서, 결국 상업성에 귀속되는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도 있어요. 예술가보다 시장이 더 위에 있다는 걸 뱅크시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보수적인 미술계의 인정과 존경: 미술계엔 뱅크시를 혐오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뱅크시를 인정했어요. 예술가를 길들이려는 거대한 시장의 손을 물어뜯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죠. 미술시장이 형성된 후에 이렇게 시장과 예술가의 대립이 치열한 사례가 없었기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면 좋을 뱅크시의 작품

© Pest Control

이번 전시에서는 뱅크시가 한참 다작하던 시기인 2000년~2009년 작품이 19점 들어왔어요. 뱅크시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분류 가능합니다. 권력에 저항하고, 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사회의 수호자’적 작품이 있고, 미술관에 도둑전시를 하거나, 작품을 갈아버리는 등 ‘통쾌하고 기발한 작품’이 있어요. 


앞서 설명한 <풍선 없는 소녀가> 후자입니다. 통쾌하고 기발한 작품 유형이죠. 들어온 나머지 작품들은 사회 수호자적 역할을 한 메시지 위주의 작품이에요. 적은 수의 작품이지만, 뱅크시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이 전시 의미가 큰 이유는 하나 더 있어요. 그간 한국에서 뱅크시 전시 종종 열리곤 했지만, 다 가짜 전시였습니다. 뱅크시의 오랜 동업자가 결별 후 무단으로 진행한 전시였는데요. 이번 전시는 뱅크시 본인이 인정한 전시고, 국내 전시 중에서는 최초로 진행되는 공인된 전시입니다. 

 

 

키스 해링의 작품세계, 빠르게 살펴보기

Untitled, 1985 ©The Keith Haring Foundation

2인 전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키스해링의 작품 13점도 들어왔어요. 대표적인 건 1985년 작 <무제 Untitled>.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하트가 굉장히 크게 그려진 작품인데요. 키스해링의 작품 대다수는 ‘무제’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도 대부분 무제고요. 이건 관객이 작품을 볼 때 제목에 갇히기보다,, 폭넓게 해석할 수 있길 바란 작가의 의도를 담은 거예요..


한편으로는 관객의 다양한 해석을 바라지만, 키스 해링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또 명확하기도 합니다. 평화, 사랑 등 긍정적인 주제를 상기시키는 거죠. 이건 그라피티 아티스트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이에요. 대부분 그래피티 아트가 도시 공간에 불법으로 그려지는 것이고, 자기 과시 목적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그래서 힙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요.


하지만 키스 해링은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강렬한 원색을 활용하고, 픽토그램 같은 귀엽고 간결한 그림체를 활용하면서 인기를 끌었어요. 뱅크시가 사회 권력에 저항하면서 블랙/레드 정도의 단순한 컬러를 사용하는 것과는 매우 비교되죠. 상반된 두 그래피티 아티스트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으로 보여요. 

 


Love in Paradise: Banksy & Keith Haring 전시 정보

전시 기간 | 9월 5일 - 11월 5일 (휴관일 없음)

전시 장소 |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인천 중구 영종해안남로321번길 186 파라다이스시티)

티켓 가격 | 무료 (예약 필수, 네이버 예약 링크: 격주 금요일 오전 10시 티켓 오픈)

참여 작가 | 뱅크시, 키스 해링 (3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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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pleasant and pleasant should inexplicably overlap in 

a sort of beautiful, feverish madness, 

in the end impolding under an overwhelming number of interpretive possibilities.


작품을 감상할 때 아름답고 과열된 광기와 함께 

불쾌한 감정과 유쾌한 감정이 공존한다. 

그러한 감상은 엄청난 해석의 여지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 피터 피슬리 Peter Fischli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