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새로운 전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죠.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 말, 비엔나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작품 191점을 선보인다고 해요.
전시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또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19세기 비엔나의 다양한 예술을 아울러 전시하는데요.
2주 전에 얼리버드 티켓이 오픈 직후, 모든 티켓이 매진되며 홍보 없이 솔드아웃을 이뤄냈습니다. 아직 개막 전이지만, 전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의 상당한 전시 라인업
2022년 진행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2023년 진행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최근 국중박 전시의 저력이 상당합니다. 지난 2022년에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진행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600년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 총 96점이 전시되었어요. 작품 수는 많지 않았는데, 선보인 작품 예술가들이 화려했습니다. 루벤스, 벨라스케스, 틴토레토 등 서양미술사 책에서 보던 작품들이 가득 왔었죠.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전시로 세계 미술관·박물관 방문객 수 6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2023년에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진행했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명화 52점이 선보였는데, 지난 합스부르크 전시와 달리 페인팅 작품만 전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품 수는 적었지만, 참여 작가 리스트가 화려했어요. 라파엘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등이 있었고, 전시는 오픈런까지 이뤄지면서 흥행했어요.
그리고 올해 하반기, 또 한 번 대형 기획 전시로 <비엔나 1900년 전> 진행하는 것인데요. 지난 두 전시가 워낙 좋은 작품 가져왔고, 크게 흥행했다 보니, 벌써부터 많은 기대 모으는 중입니다.
<비엔나 1900년 전> 대표 작품
Egon Schiele,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소설 <인간 실격> 표지로 활용되며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익숙한 작품이 된 그림,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있습니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이번 전시 포스터이기도 하고, 미술을 잘 모르는 분들이더라도 작품 이미지 검색해서 보면 아! 하실만한 작품이죠.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게,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미술관입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면서, 190여 점의 작품을 제공한 곳이기도 한데요. 사실 레오폴드 미술관은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높은 명성을 가진 곳이에요.
레오폴드 미술관 설립자, 루돌프 레오폴드 ⓒ leopoldmuseum
의사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루돌프 레오폴드, 그리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레오폴드 부부가 평생 수집한 예술작품 5,200여 점을 기증하면서 이 미술관을 세웠죠. 그리고 그 소장품 컬렉션이 가진 명성이 상당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에곤 실레 컬렉션이에요.
루돌프 레오폴드 박사는 1950년대, 에곤 실레가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던 때에 실레의 작품을 대거 사들였고,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에곤 실레 컬렉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하게 작품을 수집한 이유는, 다름 아닌 ‘소명 의식’ 때문이었다고 해요. 오스트리아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고, 알리고, 대중에게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레오폴드 부부는 에곤 실레 컬렉션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오스트리아의 훌륭한 작품을 찾아내고, 연구하고, 보존하는데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자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작품들을 모아서 미술관을 개관한 건데요. 이 작품들의 오늘날 예술적 가치가 상당함. 정말 많이 공부하고 수집했구나가 느껴지는 컬렉션이죠.
레오폴드 미술관의 미술사적 컬렉션
레오폴드 미술관 전경 ⓒ leopoldmuseum
레오폴드에는 19세기 말 비엔나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품 다수 소장되어 있어요. 에곤 실레 작품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리하르트 게르스틀 같은 화가들의 작품, 또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요제프 호프만,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공예가였던 콜로만 모저 등이 소장되어 있죠.
컬렉션 면면을 보면, 굉장히 장르가 다양합니다. 컬렉팅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페인팅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포스터, 가구,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공예품 등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요. 레오폴드 부부가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수집한 건, 이들에게 보부상 기질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철저히 당시 미술사의 흐름에 기반한 큐레이션이었죠.
Gustav Klimt, Death and Life, 1910 ⓒ leopoldmuseum 소장
당시 오스트리아 미술계에는 혁명의 분위기가 가득했어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카데미에 저항해서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겠다!는 바람 불고 있었죠. 이들이 저항하려 한 아카데미는 우리가 잘 아는, 르네상스부터 이후 4-500년간 이어진 화풍들을 통칭합니다. 사조는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이들에게는 명확한 규칙이 있었어요.
아름다운 황금 비례, 매끈한 피부 표현, 정확한 원근법을 추구하면서 사진보다 아름답고, 진짜 같은 예술 작품들을 그려냈는데요. 이런 아카데미에 저항해서 만들어진 게,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였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빈 분리파였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대표작 Portrait Adele Bloch-Bauer, 1907
빈 분리파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어요. 클림트 그림을 떠올려 보면, 르네상스 그림들처럼 딱 떨어지게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형태도 독특하고, 색감도 튀죠. 금을 붙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빈 분리파에서는 미술계 보수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겠다는 목적 아래, 근사한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예술이 필요하고, 예술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해요.
총체 예술의 초기 사례인 Hôtel Tassel 의 계단
빈 분리파가 내세운 개념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인데요. 총체 예술은 모든 예술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논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페인팅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가구,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공예품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순수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죠.
이런 기조를 가지고 빈 분리파가 발전했기 때문에, 레오폴드 부부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도, 빈 분리파 영향 아래 탄생된 작품 수준의 소장품들을 선보여요. 와인 잔도 있고, 화병도 있고, 의자도 있고, 테이블도 있는데요. '미술작품이 아니네?' 하고 넘어가기 보다, '빈 분리파의 예술적 기조 아래 발전한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단연 전시의 하이라이트,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이야기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는 빋피에서 자주 다루었던 예술가입니다. 젊은 나이에 일찍이 성공한 작가이자, 이분법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해서, 풍경화엔 풍경만 그리고 인물화엔 인물만 그렸던 작가. 또 이 루틴을 지독히도 고수해서, 연애할 때에도 육체적 사랑을 하는 애인과 정신적 사랑을 하는 애인을 따로 뒀었던 작가로 언급했었죠.
오늘은 클림트와 실레,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를 다뤄보려 해요. 이들의 관계성은 제법 특별했습니다. 28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동료 예술가로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죠. 이들이 처음 만난 건, 1907년입니다. 당시 에곤 실레는 17살의 학생이었고, 클림트는 45살의 성공한 예술가였어요. 실레는 유명 예술가인 클림트에게 쭈뼛쭈뼛 다가가서 ‘실례가 안된다면 그림 교환할 수 있겠냐'라고 물어봐요. 당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작품을 교환하는 문화가 있었고, 실레는 호기롭게도 비엔나 최고의 예술가에게 작품 교환 요청을 한 거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한 점 한 점 맞트레이드하지 않아도 괜찮다. 선생님의 작품을 한 점 주시면 제 작품 여러 점을 드리겠다. 페인팅이 아니라 습작이나 드로잉이어도 괜찮다". 클림트는 어린 소년의 용기에 기쁘게 응합니다. 그리곤 기특한 마음으로 에곤 실레의 그림을 봤는데, 보자마자 그 재능을 알아봤다고 해요. 그리고 본인 작품을 실레와 맞트레이드하고, 추가로 실레가 보여준 작품을 구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에도 모델을 소개해 주거나, 후원자와 연결해 주는 등 멘토로서 역할을 했죠.
Egon Schiele, Portrait of Wally, 1912 ⓒ leopoldmuseum 소장
그렇게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예술가로서 커리어를 밟아나가게 되는데요.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치트키였습니다. 본인이 속한 세계인 비엔나 미술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도와주는 상황이니까요. 물론 실레의 실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네트워크가 중요한 미술계에서 에곤 실레는 많은 수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1918년 진행된 빈 분리파 전시회에서는 에곤 실레의 작품이 전시장 ‘입구’에 걸렸다고 해요. 여러 예술가가 함께하는 단체전 전시 초입에 작품이 걸리는 건, 패션쇼 첫 번째 의상만큼의 파급력을 가집니다. 덕분에 실레는 빈 미술계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려나갈 수 있었는데요. 그 영광의 순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레오폴드 뮤지엄의 에곤 실레 전시 전경 ⓒ leopoldmuseum
에곤 실레는 28살의 나이에 독감으로 사망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활동기가 11년 정도 밖에 안돼요. 그런데도 활동하는 동안 상당한 스캔들과 파급을 만들어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품이 성적으로 너무나 노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빈 분리파는 ‘시대에는 시대에 걸맞은 예술이 필요하고, 예술에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조 아래, 성적인 주제를 더 성적으로 다루는 시도도 있었어요. 클림트도 그랬고, 실레는 더욱 그런 행보를 보였죠. 그런데 그것이 정도를 넘어서면서 1912년, 에곤 실레의 나이 22살 때에는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됩니다. 당시 미성년자 모델을 썼다는 이유에서 체포되었는데, 실레의 그림이 과감한 누드화가 많았던 탓에 문제가 됐어요. 결국 실레는 짧은 기간 감옥에 구금되었고, 작품 100점 압수당합니다. 이에 더해 그림 한 점은 불태워지기도 했어요.
에곤 실레의 누드화들
실레의 그림은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 기조가 압도적이던 때에도 검열을 당할 만큼 파격을 좇았습니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얼마 안 가 바뀌게 돼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몰락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좀 더 직설적이고 진솔한 표현을 찾기 시작했고, 그런 흐름 속 실레의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딱 부합했어요. 강렬한 인체 묘사, 이를 통해 드러나는 내면의 불안감 같은 요소가 대중에게 녹아들게 되었죠. 그렇게 오늘날에는 실레 특유의 독특한 필체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들
Gustav Klimt, Girl in the Foliage, 1898 ⓒ leopoldmuseum 소장
이번 전시의 첫 번째 화제작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1898)입니다. 이번 전시를 여는 작품이자, 전시 포스터로 활용된 작품이기도 해요. 작품은 풍성한 볼륨이 들어간 흰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을 그려냈습니다. 수풀 바로 앞에 서서 관객을 바라보는 단순한 구도를 하고 있는데요.
그림은 우리가 클림트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느낌이 아닌, 아카데미 화풍의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클림트의 초기작이기 때문에, 클림트의 개성보다는 당시 미술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규칙을 따른 모습이죠.
그럼에도 수풀을 그려낸 색감이나, 인물의 볼에 있는 발그레한 볼 터치 같은 부분에서 클림트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작품 스타일이 어떻게 형성되어가는지 헤아려볼 수 있는 작품이라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Egon Schiele,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
다음으로 또 주목할 만한 작품은, 앞서 언급한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이에요. 전시의 후반부에 만나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은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에요. 얼굴부터 가슴까지의 상반신을 담았고, 그림 오른쪽에는 꽈리 열매가 놓여 있습니다. 이 꽈리 열매는 투명한 외피에 붉은 열매가 담겨있는데,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담은 상징물로 이해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얼굴을 매우 다양한 색을 통해 묘사했는데, 이렇게 얼룩덜룩한 얼굴은 실레가 가진 불안감, 강렬한 감정을 투영하는 요소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실레의 내면에 담긴 불안을 은유적, 직접적으로 강조한 그림으로 이해해 볼 수 있죠.
물론, 이런 의미적인 것을 배제하더라도, 시각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총 191점의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인데요. 티켓 예매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의 새로운 전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죠.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 말, 비엔나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작품 191점을 선보인다고 해요.
전시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또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19세기 비엔나의 다양한 예술을 아울러 전시하는데요.
2주 전에 얼리버드 티켓이 오픈 직후, 모든 티켓이 매진되며 홍보 없이 솔드아웃을 이뤄냈습니다. 아직 개막 전이지만, 전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의 상당한 전시 라인업
2022년 진행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2023년 진행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최근 국중박 전시의 저력이 상당합니다. 지난 2022년에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진행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600년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 총 96점이 전시되었어요. 작품 수는 많지 않았는데, 선보인 작품 예술가들이 화려했습니다. 루벤스, 벨라스케스, 틴토레토 등 서양미술사 책에서 보던 작품들이 가득 왔었죠.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전시로 세계 미술관·박물관 방문객 수 6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2023년에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진행했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명화 52점이 선보였는데, 지난 합스부르크 전시와 달리 페인팅 작품만 전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품 수는 적었지만, 참여 작가 리스트가 화려했어요. 라파엘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등이 있었고, 전시는 오픈런까지 이뤄지면서 흥행했어요.
그리고 올해 하반기, 또 한 번 대형 기획 전시로 <비엔나 1900년 전> 진행하는 것인데요. 지난 두 전시가 워낙 좋은 작품 가져왔고, 크게 흥행했다 보니, 벌써부터 많은 기대 모으는 중입니다.
<비엔나 1900년 전> 대표 작품
Egon Schiele,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소설 <인간 실격> 표지로 활용되며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익숙한 작품이 된 그림,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있습니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이번 전시 포스터이기도 하고, 미술을 잘 모르는 분들이더라도 작품 이미지 검색해서 보면 아! 하실만한 작품이죠.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게,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미술관입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면서, 190여 점의 작품을 제공한 곳이기도 한데요. 사실 레오폴드 미술관은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높은 명성을 가진 곳이에요.
레오폴드 미술관 설립자, 루돌프 레오폴드 ⓒ leopoldmuseum
의사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루돌프 레오폴드, 그리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레오폴드 부부가 평생 수집한 예술작품 5,200여 점을 기증하면서 이 미술관을 세웠죠. 그리고 그 소장품 컬렉션이 가진 명성이 상당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에곤 실레 컬렉션이에요.
루돌프 레오폴드 박사는 1950년대, 에곤 실레가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던 때에 실레의 작품을 대거 사들였고,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에곤 실레 컬렉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하게 작품을 수집한 이유는, 다름 아닌 ‘소명 의식’ 때문이었다고 해요. 오스트리아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고, 알리고, 대중에게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레오폴드 부부는 에곤 실레 컬렉션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오스트리아의 훌륭한 작품을 찾아내고, 연구하고, 보존하는데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자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작품들을 모아서 미술관을 개관한 건데요. 이 작품들의 오늘날 예술적 가치가 상당함. 정말 많이 공부하고 수집했구나가 느껴지는 컬렉션이죠.
레오폴드 미술관의 미술사적 컬렉션
레오폴드 미술관 전경 ⓒ leopoldmuseum
레오폴드에는 19세기 말 비엔나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품 다수 소장되어 있어요. 에곤 실레 작품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리하르트 게르스틀 같은 화가들의 작품, 또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요제프 호프만,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공예가였던 콜로만 모저 등이 소장되어 있죠.
컬렉션 면면을 보면, 굉장히 장르가 다양합니다. 컬렉팅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페인팅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포스터, 가구,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공예품 등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요. 레오폴드 부부가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수집한 건, 이들에게 보부상 기질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철저히 당시 미술사의 흐름에 기반한 큐레이션이었죠.
Gustav Klimt, Death and Life, 1910 ⓒ leopoldmuseum 소장
당시 오스트리아 미술계에는 혁명의 분위기가 가득했어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카데미에 저항해서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겠다!는 바람 불고 있었죠. 이들이 저항하려 한 아카데미는 우리가 잘 아는, 르네상스부터 이후 4-500년간 이어진 화풍들을 통칭합니다. 사조는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이들에게는 명확한 규칙이 있었어요.
아름다운 황금 비례, 매끈한 피부 표현, 정확한 원근법을 추구하면서 사진보다 아름답고, 진짜 같은 예술 작품들을 그려냈는데요. 이런 아카데미에 저항해서 만들어진 게,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였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빈 분리파였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대표작 Portrait Adele Bloch-Bauer, 1907
빈 분리파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어요. 클림트 그림을 떠올려 보면, 르네상스 그림들처럼 딱 떨어지게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형태도 독특하고, 색감도 튀죠. 금을 붙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빈 분리파에서는 미술계 보수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겠다는 목적 아래, 근사한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예술이 필요하고, 예술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해요.
총체 예술의 초기 사례인 Hôtel Tassel 의 계단
빈 분리파가 내세운 개념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인데요. 총체 예술은 모든 예술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논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페인팅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가구,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공예품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순수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죠.
이런 기조를 가지고 빈 분리파가 발전했기 때문에, 레오폴드 부부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도, 빈 분리파 영향 아래 탄생된 작품 수준의 소장품들을 선보여요. 와인 잔도 있고, 화병도 있고, 의자도 있고, 테이블도 있는데요. '미술작품이 아니네?' 하고 넘어가기 보다, '빈 분리파의 예술적 기조 아래 발전한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단연 전시의 하이라이트,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이야기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는 빋피에서 자주 다루었던 예술가입니다. 젊은 나이에 일찍이 성공한 작가이자, 이분법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해서, 풍경화엔 풍경만 그리고 인물화엔 인물만 그렸던 작가. 또 이 루틴을 지독히도 고수해서, 연애할 때에도 육체적 사랑을 하는 애인과 정신적 사랑을 하는 애인을 따로 뒀었던 작가로 언급했었죠.
오늘은 클림트와 실레,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를 다뤄보려 해요. 이들의 관계성은 제법 특별했습니다. 28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동료 예술가로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죠. 이들이 처음 만난 건, 1907년입니다. 당시 에곤 실레는 17살의 학생이었고, 클림트는 45살의 성공한 예술가였어요. 실레는 유명 예술가인 클림트에게 쭈뼛쭈뼛 다가가서 ‘실례가 안된다면 그림 교환할 수 있겠냐'라고 물어봐요. 당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작품을 교환하는 문화가 있었고, 실레는 호기롭게도 비엔나 최고의 예술가에게 작품 교환 요청을 한 거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한 점 한 점 맞트레이드하지 않아도 괜찮다. 선생님의 작품을 한 점 주시면 제 작품 여러 점을 드리겠다. 페인팅이 아니라 습작이나 드로잉이어도 괜찮다". 클림트는 어린 소년의 용기에 기쁘게 응합니다. 그리곤 기특한 마음으로 에곤 실레의 그림을 봤는데, 보자마자 그 재능을 알아봤다고 해요. 그리고 본인 작품을 실레와 맞트레이드하고, 추가로 실레가 보여준 작품을 구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에도 모델을 소개해 주거나, 후원자와 연결해 주는 등 멘토로서 역할을 했죠.
Egon Schiele, Portrait of Wally, 1912 ⓒ leopoldmuseum 소장
그렇게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예술가로서 커리어를 밟아나가게 되는데요.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치트키였습니다. 본인이 속한 세계인 비엔나 미술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도와주는 상황이니까요. 물론 실레의 실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네트워크가 중요한 미술계에서 에곤 실레는 많은 수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1918년 진행된 빈 분리파 전시회에서는 에곤 실레의 작품이 전시장 ‘입구’에 걸렸다고 해요. 여러 예술가가 함께하는 단체전 전시 초입에 작품이 걸리는 건, 패션쇼 첫 번째 의상만큼의 파급력을 가집니다. 덕분에 실레는 빈 미술계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려나갈 수 있었는데요. 그 영광의 순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레오폴드 뮤지엄의 에곤 실레 전시 전경 ⓒ leopoldmuseum
에곤 실레는 28살의 나이에 독감으로 사망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활동기가 11년 정도 밖에 안돼요. 그런데도 활동하는 동안 상당한 스캔들과 파급을 만들어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품이 성적으로 너무나 노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빈 분리파는 ‘시대에는 시대에 걸맞은 예술이 필요하고, 예술에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조 아래, 성적인 주제를 더 성적으로 다루는 시도도 있었어요. 클림트도 그랬고, 실레는 더욱 그런 행보를 보였죠. 그런데 그것이 정도를 넘어서면서 1912년, 에곤 실레의 나이 22살 때에는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됩니다. 당시 미성년자 모델을 썼다는 이유에서 체포되었는데, 실레의 그림이 과감한 누드화가 많았던 탓에 문제가 됐어요. 결국 실레는 짧은 기간 감옥에 구금되었고, 작품 100점 압수당합니다. 이에 더해 그림 한 점은 불태워지기도 했어요.
에곤 실레의 누드화들
실레의 그림은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 기조가 압도적이던 때에도 검열을 당할 만큼 파격을 좇았습니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얼마 안 가 바뀌게 돼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몰락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좀 더 직설적이고 진솔한 표현을 찾기 시작했고, 그런 흐름 속 실레의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딱 부합했어요. 강렬한 인체 묘사, 이를 통해 드러나는 내면의 불안감 같은 요소가 대중에게 녹아들게 되었죠. 그렇게 오늘날에는 실레 특유의 독특한 필체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들
Gustav Klimt, Girl in the Foliage, 1898 ⓒ leopoldmuseum 소장
이번 전시의 첫 번째 화제작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1898)입니다. 이번 전시를 여는 작품이자, 전시 포스터로 활용된 작품이기도 해요. 작품은 풍성한 볼륨이 들어간 흰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을 그려냈습니다. 수풀 바로 앞에 서서 관객을 바라보는 단순한 구도를 하고 있는데요.
그림은 우리가 클림트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느낌이 아닌, 아카데미 화풍의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클림트의 초기작이기 때문에, 클림트의 개성보다는 당시 미술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규칙을 따른 모습이죠.
그럼에도 수풀을 그려낸 색감이나, 인물의 볼에 있는 발그레한 볼 터치 같은 부분에서 클림트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작품 스타일이 어떻게 형성되어가는지 헤아려볼 수 있는 작품이라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Egon Schiele,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
다음으로 또 주목할 만한 작품은, 앞서 언급한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이에요. 전시의 후반부에 만나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은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에요. 얼굴부터 가슴까지의 상반신을 담았고, 그림 오른쪽에는 꽈리 열매가 놓여 있습니다. 이 꽈리 열매는 투명한 외피에 붉은 열매가 담겨있는데,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담은 상징물로 이해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얼굴을 매우 다양한 색을 통해 묘사했는데, 이렇게 얼룩덜룩한 얼굴은 실레가 가진 불안감, 강렬한 감정을 투영하는 요소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실레의 내면에 담긴 불안을 은유적, 직접적으로 강조한 그림으로 이해해 볼 수 있죠.
물론, 이런 의미적인 것을 배제하더라도, 시각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총 191점의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인데요. 티켓 예매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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