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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물방울은 증발하지만, 진정성은 영원하다

김창열 화백의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열다섯 살에 혼자 월남한 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한국 전쟁이 발발해요. 이 시기 김창열 화백은 ‘너무 많은 죽음과 끔찍한 잔인함을 봤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경찰전문학교에 입교해요. 징병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제주도의 한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기 시작하는데요. 그 도서관에서 알베르 카뮈같은 해외 작가들의 문학도 접하고, 라이프지 같은 잡지도 접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김창열 화백이 그린 작품은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요.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총알 자국이나 탱크의 흔적 같은 모습을 담아냈죠. 이 시기까지는 당시 서구권에서 유행하던 추상화 같은 느낌의 작업들을 주로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추상 작업들로 한국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게 돼요. 당시 미국에서는 자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문화 외교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 재단이 각국 다양한 작가들 지원해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덕분이었죠. 이 지원을 받아 김창열 화백도 뉴욕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김창열의 작품 제사

김창열, 제사, 196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런데 이 타지 생활이 김창열 화백에겐 쉽지 않았다고 해요. 이미 뉴욕에서도 추상회화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 추상표현주의 화가들 성과를 낸 뒤였죠. 저 멀리 아시아, 심지어 이름도 익숙지 않은 한국에서 온 화가가 구사하는 추상 회화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김화백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무명화가 생활을 이어가야 했죠. 여기에 더해, 한국과는 너무 다른 자본주의 사회 분위기에 큰 혼란을 느낍니다. 김화백에 따르면 뉴욕 시기가 “전쟁보다 견디기 힘든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고 해요. 

 

 

물방울의 시작

김창열의 작품 현상

김창열, 현상, 1971,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소장


결국 김창열 화백은 뉴욕 생활을 정리하기로 합니다.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 1969년, 당시 록펠러 재단은 김창열 화백에 대한 예우로 서울로 돌아가는 여정에 파리, 로마, 아테네를 경유하는 세계일주 항공권을 제공해요. 그렇게 1969년 12월에 파리에 도착하는데, 김화백은 이곳에서 평생 살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나가던 중,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말리던 과정에서 우연히 캔버스 뒷면에 맺힌 물방울 발견해요.


그리고 그 순간 물방울의 가능성을 체감합니다. 김화백은 물방울이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 중의 점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성취이자 조형적 결론이라고 여겼어요. 그리고 이때부터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 이후부터 50년간, 다채로운 물방울 그렸습니다. 캔버스를 꽉 채워서 그리기도 했고, 큰 캔버스에 하나의 물방울만 크게 그리기도 했습니다.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그리기도하면서 다양하게 변주하기도 했고요.


김창열 물방울 작품

김창열, 물방울 SH87006, 198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워낙 다양한 물방울을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렸다보니, 이제 그만 그려도 되지 않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요. 이에 김창열 화백은 아직도 그리지 못한 물방울이 많다 답변합니다. 그렇게 계속 구도자적 자세로 자신만의 예술을 이어갔죠.


김창열 화백은 2021년 1월 5일 9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물방울을 그렸다고 해요. 그렇게 김화백의 예술은 영원한 물방울이 되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

김창열 물방울 작품

©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는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대형 회화 작품부터, 조각 작품까지 선보입니다. 그리고 물방울 작품을 그리기 전, 서구의 추상화에서 영감받은 추상회화 작품들도 다양하게 선보여요. 전시는 올해 12월 2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정보 보러가기)



이정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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