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24: 국립현대미술관과 SBS 문화 재단이 만든 국내 최고 미술상



‘올해의 작가상’은 매년 국립현대미술관과 SBS 문화 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한국 대표의 미술상입니다. 1995년부터 시작되어서 역사도 긴 편이고, 현시점 가장 주목도 높고 권위 있는 상으로 손꼽히는데요. 진행 방식이 조금 독특해요. 우선 1차 심사를 통해 네 명의 작가를 선정합니다. 이 작가들은 각각 5천만 원의 전시지원금을 받아서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준비해요. 


그렇게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진행하는데요. 전시 기간 중인 2월에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수상자는 심사위원과 일반 대중이 함께 진행하는 2차 심사를 통해 선정되는데, 그렇게 선정된 작가는 추가로 천만 원의 후원금을 받고, SBS를 통해 현대미술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방영됩니다. 올해의 작가상 웹사이트에서 역대 수상자 다큐멘터리를 무료로 감상할 수도 있죠.


이런 특전들을 넘어서 가장 큰 영예는, '올해의 작가상 수상 작가'라는 사실 그 자체일 거예요. 그래서 누가 수상하게 될지는 늘 미술계 큰 관심사입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수상자 권병준



권병준 작가 ⓒ Korea Artist Prize all rights reserved.

권병준, <오체투지 사다리봇>, 2022, 혼합매체, 가변크기. 작가 소장.



권병준 작가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습니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90년대 초반에는 싱어송라이터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죠. 이후에는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소리와 관련된 하드웨어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이것을 예술작품에도 활용하면서 예술가로도 활동 이어나가는 중이에요.


지난해 올해의 작가상에 참여하면서는 로봇과 사운드를 결합한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 로봇들은 독특한 소리를 내면서 전시장 안에 존재하는데, 로봇들이 아주 약해서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권병준 작가가 상주하면서 로봇들을 수리하곤 해야 했다고 해요. 그래서 많은 관객이 로봇이 수리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전시를 감상했는데요. 




권병준, <풍경 그리고 풍경>, 2012, 알루미늄 봉, 모터, 레이저 거리 센서, 250x250x270cm, 가변설치. 작가 소장. / 권병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로봇>, 2023, 혼합재료, 가변크기


작가는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약자는 여성도, 아이도, 노인도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로봇’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봇은 우리 사회에 일원으로서 성공적으로 녹아들었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차별을 겪으면서 인간 사회의 새로운 소수자가 되었고 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이죠. 


이 관점이 상당히 새로웠고, 논쟁적이었습니다. 반발의 여지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관점이기도 해요. 실제로 2021년 기준 대한민국 로봇 사용률이 전 세계 1위입니다. 노동자 1만 명 당 로봇 대수가 1천 대죠. 전 세계 평균이 141대로, 한국은 약 7배에 달하는 로봇 사용률 보여줍니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관점에서는 납득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지요.


그래서 권병준 작가의 관점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수상까지 해내며 새로운 관점의 신선함을 입증해냈어요.

 

 


올해의 작가상 2024, 윤지영 작가

윤지영 작가 ⓒ Korea Artist Prize all rights reserved.

윤지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전시장에 가면 작가들의 작품을 순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처음 보게 되는 작품은 윤지영 작가의 작품이에요.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나게 큰 그물이 동선을 가로막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관객은 그물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전시장 안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작품과 닿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매우 천천히 이동하게 됩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소시지를 엮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에요. 핑크빛의 두꺼운, 덩어리 감이 있는 것들이 그물로 엮여져 있죠. 이 작품 제목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입니다. 


제목을 접하고 작품을 다시 보면, 정말 내장을 꼬아 만든 것 같은 모습이에요. 작가는 작품의 외관과 제목을 통해, 마음의 문제가 몸의 고통으로 연결될 수 있고, 동시에, 몸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만큼 간절한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걸 보여줘요. 그리고 이렇게 마음과 몸 사이의 역동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불편함을 줘서,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이야기하죠.



윤지영, <오금쟁이 위로 다섯 치, 거기서 세치 반>



이처럼 윤지영 작가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다루는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작품이 <오금쟁이 위로 다섯 치, 거기서 세치 반>이라는 작품이에요. 하얀 다리 조각과 팔 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실제 작가의 몸을 본뜬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의 한 장면을 인용한 작품이에요. 영화에서 엄마를 맡은 김혜자 배우는, 끔찍한 기억을 지워주는 나만의 혈자리라면서 오금쟁이 위로 다섯 치, 거기서 세치 반 되는 허벅지 안쪽 지점에 침을 놓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혈자리가 정말 끔찍한 기억을 지워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건, 근거 없는 방법이라도 의지하고 싶은 고통, 수치심, 죄책감일 거예요. 고통을 참으며 침을 놓을 정도로 그 기억이 끔찍했음을 헤아려볼 수 있는 작품이지요. 



윤지영, <미, 노>, 2021



마찬가지로 마음속 큰 고통을 형상화한 작품인데요. 윤지영 작가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 고통을 형상화합니다. 그리고  ‘조각’ 작품으로 제시하는데. 이를 일종의 봉헌물이라고 봐요. 봉헌물은, 소원을 빌기 위해서, 혹은 소원이 이뤄졌음에 감사하기 위해서 신께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각은 얼마든 그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가소성이 있습니다. 작가는 조각을 통해 고통 섞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줘요. 소원을 이뤄주는 봉헌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며, 마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4, 권하윤 작가

권하윤 작가 ⓒ Korea Artist Prize all rights reserved.

권하윤, 옥산의 수호자들, 2024



두 번째 전시실로 가면 권하윤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권하윤 작가는 VR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기록될 수 없는 공간을 기록하는 작품을 선보여요. 일례로 DMZ 지역처럼, 촬영이 불가한 지역을 가상현실 기술로 기록해 VR로 경험하게 만드는 건데요.


이를 통해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하면서 공동의 기억을 생성합니다. 이 외에도 역사에서 사라진 이야기를 다루면서, 잊힌 이야기의 기억을 확장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재고하게 만들어요.



권하윤, 489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은 <489년>이에요. 489년은, 국방부 자료에서 DMZ 지역에 묻힌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 명시한 기간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여전히 많은 지뢰가 묻힌 DMZ 지역을 가상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해 냈어요. 


그런데 사실 DMZ 지역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작품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지만, 작가는 이 지점에서 출발했어요. “실제로 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DMZ에서 근무했던 전직 수색 대원 김 씨의 진술과 작가의 상상을 더해 가상의 풍경을 구축했죠. 그리고 VR 기기를 활용해 360도로 풍경을 둘러볼 수 있게 작업합니다.


가상현실 기술을, 접근이 제한된 지역을 접속하는 매체로 활용하면서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건데요. 기술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작년 수상자인 권병준 작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같은 맥락에서 조심스럽게 올해 수상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점쳐보고 싶습니다. 



권하윤, 증거 부족



또 하나 권하윤 작가의 흥미로운 작품을 소개하자면, <증거 부족>을 들고 싶어요.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상 작품인데요. 작품은 나이지리아 태생의 망명 신청자, ‘오스카’의 증언을 바탕으로 합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쌍둥이를 저주받은 존재로 생각하는 미신이 있다고 해요.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인 오스카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미신에 따라,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프랑스로 망명을 신청했어요.


그런데 망명 신청은 거절당합니다. 그가 겪은 일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죠. 나이지리아에 만연한 미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를 증명하기 어려웠습니다. 


권하윤 작가는 이처럼 입증하기 어려운 기억을 영상으로 구현하면서 오스카가 겪은 것들을 기록하고, 증명할 수 있게 했어요. 오스카가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면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프랑스로 힘겹게 찾아온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구현한 거죠. 이를 통해 마찬가지로 기억에 기반한 기록을, 기술을 통해 구현하면서, 기록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갑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4, 양정욱 작가

양정욱 작가 ⓒ Korea Artist Prize all rights reserved.

양정욱, 기억하려는 사람의 그림



이제 전시실에서 한 층 아래로 내려감. 그러면 양정욱 작가의 작품 만나게 됩니다. 양정욱 작가는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라 불려요. 그의 작품에는 모두 이야기가 동화처럼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면서 그 이야기를 함께 감상할 수 있게 책자가 제공되는데요. 이야기가 매우 따뜻해요. 작품 하나를 설명하자면, <기억하려는 사람의 그림>입니다. 


작품은 콘크리트 벽에 마치 상형문자를 적은 듯한 모양들이 그려져 있어요. 언뜻 고대 동굴벽화 같기도 하고, 이집트 상형문자 같기도 한 형태들인데요. 이는 양정욱 작가가 공사장 인부들을 보고 만든 그림이라고 해요. 공사장 인부들은 메모할 곳이 마땅치 않은 탓에, 급한 대로 콘크리트 벽에 못으로 글씨나 전화번호 같은 숫자를 적곤 하는데요. 양정욱은 이런 흔적을 우연히 보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메모장으로 바꾼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야기와 함께 작품으로 제시했죠.





또 하나 흥미로운 양정욱 작가의 작품은 거대한 설치작품들입니다. 소개해 드리고 싶은 작품은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인데요. 제목부터 서정적입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아요. 아들은 어느 날 바짓단에서 우연히 콩 한 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려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렸을 때는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텃밭을 일구었고, 늙어서는 시골에서 작게 텃밭을 일궈 아들에게 작물을 보내주었다고 해요. 하지만 아들은 늘 작물을 받기만 했을 뿐, 아버지의 밭이 어떤 모양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전해준 작물을 통해 그를 기억하고 그로부터 위안을 얻게 되기도 하는데요. 


양정욱 작가는 텃밭에서 열심히 작물을 가꾸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이 이야기를 떠올렸고 작품으로 제작합니다. 작품은 거대한 설치 작품인데,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반복적으로 움직여요. 이를 통해 인간의 노동력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며 이야기 시각화합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4, 제인 진 카이젠 작가

제인 진 카이젠 작가 ⓒ Korea Artist Prize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 작가는 제인 진 카이젠입니다. 제인 진 카이젠은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되어 자란 작가에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본인이 태어난 제주를 작품의 주제로 선보입니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정치적인 사건들이나, 제주도의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들을 다루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일곱 개의 영상 작업을 선보이면서 이를 다뤄요.


일곱 개의 영상 작품은 <이어도>라 통칭됩니다. 이어도는 이승도 저승도 아닌 경계의 공간이자, 마음과 정신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하늘과 바다를 연결하는 곳을 의미하는데요. 작가는 제주를 담은 영상 작품 일곱 개를 <이어도>로 연결 지으면서, 제주가 가진 다양한 면모를 몰입감 있게 보여줘요. 



제인 진 카이젠, 할망, 2023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영상 작품은 <할망>이에요. 할망은 할머니를 지칭하는 제주도의 방언입니다. 그리고 제주의 무속 여신을 칭하는 말이기도 해요. 작품에서는 바람의 신이라 불리는 ‘영등할망’을 모시는 신당 근처에서 8명의 70-80대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데요. 


이 해안가는 해녀들이 물질하러 출발하는 장소라고 해요. 작가는 자신의 할머니도 생전에 이 지역에서 평생 해녀로 일해와서 이곳과 밀접한데요. 이곳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위해 사용하는 면직물인 소창을 매만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주 해녀들의 일상을 포착합니다. 


이 소창은 영적 세계를 인간과 연결해 주는 매개체면서, 생사의 순환을 상징하는 요소라고 해요. 이를 통해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가 신화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입니다. 이외에도 흥미롭게 제주를 풀어낸 영상 작업들을 함께 선보이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 전경



어떤 수상자가 또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갈지 기대를 가지고 전시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전시는 내년 3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어져요.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

► '올해의 작가상' 웹사이트에서 정보 확인하기

► 국립현대미술관 웹사이트에서 전시 정보 알아보기

►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다큐멘터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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