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페어링 하기 좋은 미술관들

1. 석파정 서울미술관

ⓒ Seoul Museum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 서울미술관입니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있던 곳이에요. 석파정이라는 이름도 흥선대원군의 호인 ‘석파’에서 따온 것이죠. 석파정의 경치는 과거부터 유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어요.


석파정은 사실 고종 즉위 전까지 안동 김씨 세도가에서 별서(오늘날의 별장 같은 개념)를 두고 사용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종 즉위 이후, 안동 김씨 세도를 꺾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게 돼요.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석파정 주변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이곳을 안동 김씨로부터 빼앗아 차지하려고 했죠. 하지만 안동 김씨 세도가가 그냥 내줄리 없었기에 묘수를 고안합니다.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이곳에 행차하게 한 다음, 하루 자고 가게 한 것이었는데요. 당시 조선의 관례 상 임금이 하루라도 머문 장소는 신하가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김 씨 세도가는 석파정을 흥선대원군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죠. 


석파정 ⓒ Lawinc82

흥선대원군 별서 ⓒ Lawinc82



이후 흥선대원군은 석파정 정원 곳곳에 정자와 사랑채, 안채, 별채 등을 배치해두었습니다. 모두 산 안에 개별 건물로 위치해 있는데요. 경사가 그리 가파르지도 않아서 천천히 산책하면서 둘러보기 좋아요. 그리고 각 공간에서 보이는 절경이 모두 다른 것도 특징입니다. 산의 계곡이 보이는 공간도 있고, 거대한 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걸을 수 있는 공간도 있죠.


이처럼 석파정은 원래도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이 특징을 살려 조성한 공간들 덕분에, 1974년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산 곳곳에서는 거대한 바위 절벽 같은 자연 풍경뿐만 아니라, 정자, 벽화, 조각 작품도 있고, 특히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볼 수 있는 풍경이 절경입니다. 

 

 

석파정에 세워진 서울미술관 비하인드

ⓒ Seoul Museum



석파정 공간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이긴 하나, 소유자가 있는 땅이었어요. 그런데 이 소유자가 2004년 12월에 땅을 경매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유찰돼요. 부지 대부분이 문화재보호구역이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보니, 개발이 제한되어 낙찰이 쉽지 않았던 건데요. 


그러던 중 4년 뒤인 2006년에 유니온약품그룹 안병광 회장이 63억 1,000만 원에 이 땅을 낙찰받습니다. 석파정은 개발이 제한되어 있기에 석파정 입구 공간을 개발해서 미술관을 설립했고, 이름을 석파정 서울 미술관으로 지은 후에 2012년에 개관했죠. 


물론 쉽지는 않았다고 해요. 문화재 구역이라 허가받는 기간만 5년이나 들었죠. 그럼에도 매우 크고 아름다운 미술관을 설계해냈고, 미술관에서 석파정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동선도 매우 짧아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 Seoul Museum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보통 미술관을 세울 때, 기업 산하 ‘재단’ 이름으로 세우곤 하는데요. 서울미술관은 재단이 아닌 기업 회장 개인이 설립한 공간이라는 점이에요. 안병광 회장은 설립 당시 개관 전부터 최근까지 전시 기획에도 참여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꾸준히 전시를 통해 선보여온 인물인데요. 흔히 미술계 ‘큰손'이라 불리는 VVIP들이 자신의 작품을 잘 선보이려 하지 않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매 전시마다 선보이는 작품들의 사이즈가 모두 대단히 큰 편이고, 국내 거장이 많아 볼 만한 전시들이에요. 통합 입장권을 구입하면 석파정뿐만 아니라 서울미술관 전관 입장 가능합니다. 한 번쯤 보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현재 전시

ⓒ Seoul Museum



2024년 9월 현재는 두 개의 전시가 진행 중이에요. 서울미술관 소장품 전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와 동시대 현대미술작가 8인 전인 <햇빛은 찬란>입니다. 오늘은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간단히 소개 드릴게요. 


이 전시는 서울미술관 소장품 전인데요. 서울미술관 소장품전은 ‘언제나’ 라인업이 화려한 편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우선 조선시대 화가로는 청각장애인 화가이자 바보 산수로 알려진 운보 김기창, 그리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화가였던 추사 김정희, 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조선시대 화가, 그리고 시인이었던 신사임당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 그리고 과거 한국부터 프랑스, 뉴욕까지 사로잡았던 전면 점화의 김환기 화백, 또 모노하의 대가인 이우환 화백, 그리고 이국적인 풍경과 화려한 색채로 자신만의 예술을 선보인 천경자 화백 등 한국 예술가 15명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이중섭, 편지화, 1954 ⓒ Seoul Museum



또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 작가의 미공개 작품이 최초 공개된다고 해요. 1954년 제작된 편지화입니다. 편지화는, 실제 편지지에 그림을 그리고, 간단한 안부 글을 적은 작품을 일컫는 말인데요. 이번에 공개된 편지화는 이중섭 화백이 자신의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림에서 이중섭 화백은 두꺼운 초록색 점퍼를 입고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림 아래쪽에는 일본에 있는 아내 마사코와 큰아들 태현, 작은아들 태성이 웃으며 팔 벌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간단한 글도 적혀 있는데요. 이중섭 화백은 자신을 그린 부분 옆에 ‘아빠는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마사코, 태현 군, 태성 군, 기뻐해 주세요'라 적었어요. 그리고 그림 아래쪽, 팔 벌린 채 웃고 있는 아내 마사코와 아들 태현, 태성 옆에는 아빠 힘내세요!라는 글귀를 적어두어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응원을 보내주고 있는 걸 잘 안다는 듯한 메시지를 전했죠.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 화백의 미공개 편지화를 비롯해서 국내 예술가들의 대작을 살펴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보고 오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또 전시 보고 석파정도 꼭 감상하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전시는 11월 3일까지 진행됨, 매주 월, 화요일 휴관입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웹사이트)

 

 

2.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 Yanggu-gun



두 번째로 소개할 곳은 강원 양구에 위치한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에요. 미술관 소개에 앞서, 박수근 화백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 먼저 드리려 합니다. 


박수근은 살아있을 때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에요. 국내에서 자신의 개인전조차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을 정도였죠. 평생 가난했고, 여기에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힘든 상황이 더해졌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자신만의 예술을 이어간 화가입니다.


박수근 화백이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열두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을 책을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요. 그림에 매료되어 밀레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밀레뿐만 아니라 고흐나 피카소 같은 서양화가들의 화집을 수집해 공부했다고 해요. 당시 한국에서 서양화가들의 화집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박수근 화백의 집안이 유복했던 덕에 화집의 작품들을 오려서 스크랩하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하던 광산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해요. 당시 박수근은 보통학교, 오늘날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중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합니다. 결국 동생을 먹여살리기 위해 어린 나이의 박수근은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그러면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의 꿈을 이어나가요. 


그리고 당시 조선 사회에서 화가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합니다. 그리고 삼수 끝에 조선미전에 입상하게 돼요. 이때가 18살입니다. 이후 11년간 조선미전에 매해 작품을 출품했고, 그중  아홉 차례 입상하면서 점차 예술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어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 Yanggu-gun



첫째로는 박수근이 당시 사회가 원하는 조건 미달하는 화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일본으로 유학 가서 미술 공부를 하는 게 화가의 기본 스펙이라 여겨졌어요. 하지만 박수근 화백은 유학은커녕 미술대학을 나오지도 않았을뿐더러,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조차도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화단에 파벌주의가 있었다 보니, 냉대를 겪기도 했어요.

 

둘째로는 낯선 화풍 때문입니다. 당시엔 서구권 미술작품이 조금씩 한국에 들어오던 상황이었어요. 작품이 직접적으로 들어온 건 아니고, 책이나 잡지 등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유행하던 건 추상표현주의였어요. 그렇게 당시엔 ‘추상미술’이 한국 화단을 풍미하기도 했는데요. 박수근은 당시 유행하던 추상미술을 따라 하지 않았어요. 



박수근, 가족, 1956



박수근 화백은 대부분 형태가 명확한 인물화를 그렸습니다. 배경을 거의 그리지 않고, 간략한 선으로 형태를 단순화한 모습으로 그렸죠. 덜어냄의 미학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한국 회화의 특징들이 엿보이는데요. 오늘날 이런 화풍이 ‘한국적이다'라고 느껴지지만, 당시로서는 유행하는 화풍에 뒤처졌다 평가받았어요. 


결국 박수근은 이후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면서 돈벌이를 하게 됩니다. 당시 미군들은 박수근 화백 특유의 간략한 선과 독특한 질감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을 종종 구매했다고 해요. 그렇게 미군들 사이 입소문이 돌면서 박수근 화백이 51세가 되던 해에는 미군 PX에서 개인전을 열어줄 준비까지 하는데, 전시를 준비하던 중 박수근 화백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살아생전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한 비운의 화가로 남게 되었어요.  

 

 

이제는 상설전이 진행되는 박수근 미술관

ⓒ Yanggu-gun



지난 2002년, 박수근 선생이 태어난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마을에 박수근미술관이 세워집니다. 개관 당시에는 전시관 하나뿐인 건물로 오픈했는데, 꾸준히 확장하면서 현재는 5개의 전시관을 가진 공간으로 매우 커졌어요. 그리고 지난 2021년에는 삼성전자 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했던 박수근 화백의 작품 18점이 기증되어 볼거리도 더욱 풍성해졌는데요.


이곳에서는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선별해 상설전시를 진행합니다. 또 박수근 화백과 같은 시기 활동한 한국 근현대 화가 작품들(당시 유행했던 추상작품 등)도 기획전으로 선보이고 있죠. 



ⓒ Yanggu-gun



전시뿐만 아니라 공간도 백미입니다. 박수근미술관의 특징은 작가의 작품 특징을 미술관 건물에도 적용했다는 점이에요. 박수근 화백 작품 특징이 오돌토돌한 질감입니다. 물감을 여러 겹 겹친 덕에 나타나는 질감인데요. 박수근 미술관은 이를 살려 작품뿐만 아니라, 공간 곳곳에서도 박수근 화백 특유의 화풍을 느낄 수 있게 설계해두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사이 공간을 크게 두고 정원을 배치해서, 자연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박수근 화백 작품세계와 함께 자연을 감상하실 분들에게 특별히 추천드립니다. 미술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이에요. (박수근미술관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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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pleasant and pleasant should inexplicably overlap in 

a sort of beautiful, feverish madness, 

in the end impolding under an overwhelming number of interpretive possibilities.


작품을 감상할 때 아름답고 과열된 광기와 함께 

불쾌한 감정과 유쾌한 감정이 공존한다. 

그러한 감상은 엄청난 해석의 여지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 피터 피슬리 Peter Fischli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