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와 뚜껑 수백 개를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든 높이 4미터의 거대한 하이힐. 사람 키의 두 배가 훌쩍 넘어 관객은 이 구두 앞에서 목을 젖혀 올려다봐야 합니다.
작품의 이름은 〈신데렐라〉. 외관과 제목을 보면 동화 속 유리 구두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화려한 구두의 재료가 부엌 냄비라는 걸 아는 순간,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읽혀요. 집안일도 완벽하게, 그러면서 신데렐라처럼 아름답게 여성에게 씌워진 두 얼굴의 기대를 작가는 냄비 한 무더기로 풍자하죠.
동시에 전 세계 여성이 묵묵히 반복해 온 가사 노동에 조용하지만 강렬한 헌사를 바칩니다. 평범한 일상의 사물을 기념비의 크기로 바꾸는 예술가, 조아나의 작업은 통념을 뒤집습니다.
조아나는 1971년, 사진가인 아버지와 장식미술을 공부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덕분에 집엔 늘 예술이 공기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란 포르투갈의 리스본도 예술로 가득했어요. 벽을 덮은 아줄레주 타일, 자수, 도자기, 레이스. 모두 포르투갈 여자들이 대를 이어 손끝으로 빚어 온 것들이죠. 어린 조아나도 그 손끝을 물려받았습니다. 마크라메 팔찌를 엮고, 자수를 놓고, 뜨개를 떴어요. 훗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옆에는 〈로메오〉(2010)가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우아한 여인상 같아요. 레이스 드레스를 두른 고전 조각이죠. 그런데 한 걸음 다가서면 알게 됩니다. 레이스 아래 몸은 남성이고, 이름표엔 로메오라 적혀 있어요.
시멘트로 뜬 고전 조각상에 아크릴로 채색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바늘 레이스로 수놓은 작품인데요. 회화와 조각, 공예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남성 신체에 여성적 레이스를 입혀 이분법적인 성 인식을 교란합니다. 조각도 코바늘도 오랜 전통을 가진 매체인 덕에 그 뒤집기는 더 얄궂게 다가오죠.
한편, 매체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한 작업도 있어요. 〈빅토리아〉(2008)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서 이름을 따와 작품에 서사를 입혔습니다. 언뜻 검은 천 더미로 보이는 형태는 복잡한 직물과 뜨개질, 장식 요소를 엮어 만든 거예요. 지팡이에 기대 선 실루엣, 왕관, 길게 흐르는 드레스가 여왕의 위엄을 드러내죠. 온통 검은색인 건 애도의 분위기를 위해서예요. 검은 뜨개로 한 시대의 여왕을 감싸안듯 말이죠. 이렇게 조아나의 작품은 서사와 상징, 관객의 반응까지 끌어내며, 섬유 공예가 아니라 하나의 조각이 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조아나는 줄곧 무언가를 뒤집어 온 작가예요. 재료를 뒤집고, 궁전을 뒤집고, 위계를 뒤집었죠. 그런데 그 뒤집기의 끝에는 뜻밖의 단어가 놓여 있습니다. 바로, '엮기'예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공존을 잇고 엮다》입니다. 영어로는 Weaving Coexistence, 공존을 짜 나간다는 뜻이죠.
그는 소리치며 싸우지 않아요. 뜨개 한 코 한 코로, 레이스 한 줄 한 줄로 말을 겁니다. 격렬한 구호 대신, 손끝의 감각으로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 사람들은 이것을 부드러운 힘이라 부릅니다. 저항의 언어가 늘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는 것. 일상의 표면이 이미 하나의 무대였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조용히 일깨워요. 조아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신데렐라, 2007 © Unidade, Infinita Projectos © ADAGP, Paris
냄비와 뚜껑 수백 개를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든 높이 4미터의 거대한 하이힐. 사람 키의 두 배가 훌쩍 넘어 관객은 이 구두 앞에서 목을 젖혀 올려다봐야 합니다.
작품의 이름은 〈신데렐라〉. 외관과 제목을 보면 동화 속 유리 구두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화려한 구두의 재료가 부엌 냄비라는 걸 아는 순간,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읽혀요. 집안일도 완벽하게, 그러면서 신데렐라처럼 아름답게 여성에게 씌워진 두 얼굴의 기대를 작가는 냄비 한 무더기로 풍자하죠.
동시에 전 세계 여성이 묵묵히 반복해 온 가사 노동에 조용하지만 강렬한 헌사를 바칩니다. 평범한 일상의 사물을 기념비의 크기로 바꾸는 예술가, 조아나의 작업은 통념을 뒤집습니다.
뒤집을 재료를 고르다
조아나는 1971년, 사진가인 아버지와 장식미술을 공부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덕분에 집엔 늘 예술이 공기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란 포르투갈의 리스본도 예술로 가득했어요. 벽을 덮은 아줄레주 타일, 자수, 도자기, 레이스. 모두 포르투갈 여자들이 대를 이어 손끝으로 빚어 온 것들이죠. 어린 조아나도 그 손끝을 물려받았습니다. 마크라메 팔찌를 엮고, 자수를 놓고, 뜨개를 떴어요. 훗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아나의 작품으로 전시한 팔라치나 포르투니 © Photos Sébastien Veronese
그런데 이 재주에는 그림자가 있었어요. 바느질과 뜨개, 레이스는 오랫동안 여성의 가사 노동으로 묶여 예술이라는 무대의 바깥에 놓여 있었거든요.
하지만 조아나는 남들이 시시하다 여긴 그 손일에서 오히려 가능성을 봅니다. 뜨개 한 코가 벽돌 한 장처럼 쌓이면 어떨까, 부엌에 갇혀 있던 손끝이, 미술관 한복판을 차지하면 어떨까. 그렇게 여성의 가사 노동은 조아나의 손끝에서 예술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해요.
우아함을 뒤집다
© Joana Vasconcelos.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조안나는 포르투갈 내 작은 비엔날레부터 각종 전시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그렇게 7년 정도 묵묵히 예술세계를 이어가던 중, 2000년, 전환점이 생겨요. 포르투갈 예술가들의 등용문, EDP 신인미술가상을 받고 포르투갈 현대미술의 심장인 세할베스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죠. 그렇게 조아나의 예술세계를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여다보기 시작하는데요.
© Joana Vasconcelos.
이 시기 조아나는 아주 큰 규모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어요. 2001년부터 꼬박 4년간 매달린 〈신부〉였죠. 샹들리에는 부와 격식의 상징입니다. 저택에서 가장 값비싼 천장을 차지하죠. 그런데 조아나는 그 자리에 여성들이 가장 숨겨 온 물건을 매답니다.
멀리서 보면 눈부신 크리스털 덩어리, 하지만 관객이 홀린 듯 다가서는 순간, 정체가 드러나요. 크리스털 자리를 채운 건 수천 개의 탐폰이었습니다. 여성의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물건이었죠.
© Joana Vasconcelos.
우아함의 재료만 슬쩍 바꿔, 관객을 먼저 유혹하고, 그다음 멈칫하게 만드는 것. 조아나의 트릭이었어요. 작품은 2005년,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걸립니다. 그런데 이 해는 특별했어요. 여성이 처음으로 이 비엔날레의 본전시를 지휘한 해였거든요.
조아나의 〈신부〉는 그 전시의 첫 방에 놓입니다. 미술계의 성차별을 고발해 온 작가 집단, 게릴라 걸스 곁이었죠. 여성의 몸으로 엮은 조각이, 여성이 연 무대의 문 앞에 선 거예요.
© Joana Vasconcelos.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조아나는 여러 국제 미술 매체에 이름을 올렸고 한동안 탐폰 작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죠. 한 번 시작한 바느질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조아나의 작품도 여성의 일상과 현대미술을 엮으며 계속 이어져요.
2012년, 조아나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진출합니다. 궁전은 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지어진 곳입니다. 금박과 거울로 뒤덮인,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보수적인 공간이죠. 그 안으로 조아나의 뜨개와 냄비, 다리미가 들어섰어요.
가장 보수적인 공간과 가장 일상적인 재료. 이 어긋남이 만든 낯섦에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그해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약 160만 명, 당시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흥행이었어요. 그렇게 조아나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전시한 최초의 여성이자 최연소 작가가 되었죠.
구하우스 전시작 소개
일상의 요소로 우아함의 틀을 깨는 조아나의 작업은 지금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구하우스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는 덕분인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스테인리스 냄비 수백 개를 쌓아 올린 조각, 〈신데렐라〉(2007)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하이힐은 여성성과 욕망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조아나는 그 상징을, 부엌에서 밥 짓던 냄비로 빚어냈어요. 우아한 구두와 가사 노동의 도구를 한 몸에 포갠 겁니다.
그 옆에는 〈로메오〉(2010)가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우아한 여인상 같아요. 레이스 드레스를 두른 고전 조각이죠. 그런데 한 걸음 다가서면 알게 됩니다. 레이스 아래 몸은 남성이고, 이름표엔 로메오라 적혀 있어요.
시멘트로 뜬 고전 조각상에 아크릴로 채색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바늘 레이스로 수놓은 작품인데요. 회화와 조각, 공예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남성 신체에 여성적 레이스를 입혀 이분법적인 성 인식을 교란합니다. 조각도 코바늘도 오랜 전통을 가진 매체인 덕에 그 뒤집기는 더 얄궂게 다가오죠.
구하우스 전시 전경 © 촬영 이정우 에디터
한편, 매체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한 작업도 있어요. 〈빅토리아〉(2008)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서 이름을 따와 작품에 서사를 입혔습니다. 언뜻 검은 천 더미로 보이는 형태는 복잡한 직물과 뜨개질, 장식 요소를 엮어 만든 거예요. 지팡이에 기대 선 실루엣, 왕관, 길게 흐르는 드레스가 여왕의 위엄을 드러내죠. 온통 검은색인 건 애도의 분위기를 위해서예요. 검은 뜨개로 한 시대의 여왕을 감싸안듯 말이죠. 이렇게 조아나의 작품은 서사와 상징, 관객의 반응까지 끌어내며, 섬유 공예가 아니라 하나의 조각이 됩니다.
위계를 뒤집다
구겐하임 빌바오 전경 © guggenheim bilbao
조아나의 통념 뒤집기는 미술관 밖으로도 뻗어 나갑니다. 2018년, 그는 구겐하임 빌바오에서 개인전 〈나는 당신의 거울〉을 열어요. 포르투갈 작가로는 처음이었고, 이 미술관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약 65만 명이 전시를 찾았죠.
2023년에는 디올과 손잡습니다. 파리 패션쇼 무대에, 길이 24미터의 거대한 섬유 설치 〈발키리 미스 디올〉을 세웠죠. 모델들은 그 촉수 같은 작품 사이를 걸으며 옷을 선보였어요.
디올 패션쇼 전경 © Joana Vasconcelos. / © Dior
2026년에는 로마에서 발렌티노와의 협업 전시가 이어집니다. 미술관부터, 런웨이, 패션 하우스까지, 조아나는 공예라는 낮은 이름표를 달았던 기술을 가장 높은 무대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어요.
물론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너무 화려해서 장식처럼 보인다, 명품과 손잡는 건 지나치게 상업적이다 같은 지적이죠. 그런데 이 비판이야말로 조아나가 겨눈 과녁이기도 합니다. 공예는 예술보다 낮고, 화려한 건 진지하지 않다는, 바로 그 생각을 뒤집는 중이니까요
뒤집기에서 엮기로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전시 포스터 © 구하우스
여기까지 보면 조아나는 줄곧 무언가를 뒤집어 온 작가예요. 재료를 뒤집고, 궁전을 뒤집고, 위계를 뒤집었죠. 그런데 그 뒤집기의 끝에는 뜻밖의 단어가 놓여 있습니다. 바로, '엮기'예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공존을 잇고 엮다》입니다. 영어로는 Weaving Coexistence, 공존을 짜 나간다는 뜻이죠.
그는 소리치며 싸우지 않아요. 뜨개 한 코 한 코로, 레이스 한 줄 한 줄로 말을 겁니다. 격렬한 구호 대신, 손끝의 감각으로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 사람들은 이것을 부드러운 힘이라 부릅니다. 저항의 언어가 늘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는 것. 일상의 표면이 이미 하나의 무대였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조용히 일깨워요. 조아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Piano Dentelle, 2008-2011 © Joana Vasconcelos.
이번에 조아나의 개인전이 열리는 구하우스 미술관이 오래 지켜 온 콘셉트도 이와 닮았어요. 구하우스는 이름 그대로 집 같은 미술관을 표방하는 곳입니다. 실제 집처럼 꾸며진 공간 곳곳엔 고개를 돌릴 때마다 미술작품을 마주할 수 있죠.
구하우스 전시 전경 © 촬영 이정우 에디터
이 컨셉을 추구한 건, ‘예술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구정순 관장의 철학에서 비롯된 거에요. 예술은 특정 계층의 것이 아닌, 함께 나누는 언어라는 생각으로 평생 수집해온 500여 점의 현대미술 작품을 관객과 나누고 있죠.
그리고 올해 7월 1일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구하우스는 더 많은 이들에게 예술을 나누려 한 조아나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구하우스 전시 전경 © 촬영 이정우 에디터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공존을 잇고 엮다》 2026년 7월 1일부터 2027년 1월 31일까지, 경기도 양평 구하우스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어요.
부엌의 냄비가 거대한 하이힐로, 가장 사적인 물건이 궁전의 샹들리에로. 가장 낮은 손일이, 가장 거대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조아나 바스콘셀로스의 예술세계, 여러분은 어떻게 접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