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르주아: 기억을 물성화하는 연금술사

© The Easton Foundation


기괴하게 굽이진 거대한 조각상. 언뜻 나무 같기도, 혹은 괴생명체 크리처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거미를 묘사한 작품 마망입니다. 프랑스어로는 엄마를 의미하죠. 


작품을 만든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바느질하는 엄마의 모습이 거미와 닮았다’며 그 기억을 재료로 이 작품을 남겼는데요. 높이 9미터의 거대한 크기와 징그럽게 느껴질 수 있는 형태를 한 이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모성애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현대 미술의 주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 다룰 작가는 ‘기억을 물성화하는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입니다.


첫 번째 재료, 아버지의 불륜

루이스 부르주아 사진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루이스 부르주아는 늦은 나이에 성공한 작가입니다. 70세가 되어서야 모마에서 전시를 열었고, 81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갔죠. 예술가로서 전성기가 70대부터 시작한 이례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데요.

70-80대에 만든 작품들은 모두 까마득한 어린 시절을 재료로 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가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집안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질렀어요. 가정 교사는 이들 가족 집에 머무르면서 식사도 여행도 함께 하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지만, 투병 중이던 어머니는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부르주아는 이런 상황에 큰 분노를 느낍니다. 아버지를 칼로 찌르는 상상을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했다고 해요. 하지만 이걸 실행에 옮길 수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들의 불륜은 부르주아가 성인이 되고 어머니인 조세핀이 세상을 떠나던 1932년까지 무려 10년간이나 길게 이어졌어요.


퍼포먼스형 조각, ‘페르소나즈’

페르소나즈 전시 전경

© The Easton Foundation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사람을 열렬히 혐오했던 기억은, 예술가가 되고 난 후에도 작품 창작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페르소나즈 시리즈예요. 80여 개의 나무 조각은 각각 가족 구성원을 상징합니다. 가장 큰 건 아버지, 중간 크기는 어머니, 작은 것들은 자녀들인데요. 


이 조각에는 퍼포먼스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1949년 전시에서 부르즈아는 매일 아침 작품의 위치를 바꿨어요. 아버지 조각은 구석으로 밀어내고, 어머니 조각 주변에 자녀 조각들을 모아두는 식으로요.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을 물성이 있는 작품으로 승화해 냈는데요.


1950년대 루이스 부르주아

1950년대 루이스 부르주아 © The Easton Foundation


이 시도는 그렇게 주목받진 못했습니다. 당시는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를 필두로 한 추상표현주의가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미술의 핵심은 평면성을 강조한 회화였죠. 부르즈아는 이런 시대 흐름을 거부합니다. “회화는 너무 평면적이다. 나는 만질 수 있고 부을 수 있고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미술계에서 여성 작가의 새로운 시도는 아직 주목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부르주아는 11년 동안 딱 한 번의 개인전을 열었을 뿐이었죠. 결국 부르주아는 결혼해서 3명의 아들을 낳은 뒤에 예술보다는 육아에 전념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미니스트가 사랑한 작품, ‘팜므 메종’

Louise Bourgeois, Femme Maison, 1947

Louise Bourgeois, Femme Maison, 1947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Y


그런 부르주아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60년대 후반 60대가 되었을 때였어요. 이 시기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주아의 작품은 시대가 원하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느낀 분노와 고통을 담아낸 초기작, <팜므 메종>은 여성의 누드 위에 집이 얹혀진 이미지로 가부장제 속 여성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표현했는데요. 이 작품이 페미니스트 예술 에세이의 표지로 활용되면서 루이스 브로즈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Y


이 시기엔 3명의 아들도 장성하고 남편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74년 선보인 작품 아버지의 파괴 이 작품은 붉은 조명 아래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천장과 바닥에서 돌출된 유기적인 형태들, 중앙의 테이블 위엔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놓여 있는 모습이죠.


이건 어린 시절 부르주아가 상상만 했었던 복수의 환상을 그대로 구현해 둔 거예요. 가족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원시적인 의식을 표현하면서 관객에게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전달했죠. 이 작품으로 부르주아는 본인의 트라우마를 과격한 방식으로 승화하는 독특한 작가로서 또 한 번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남근을 든 할머니의 등장, ‘마망’

MoMA 전시 포스터 © Museum of Modern Art / 당시 도록 표지 사진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MoMA 전시 포스터 © Museum of Modern Art / 당시 도록 표지 사진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이후 10년 만인 1982년 부르주아는 여성 작가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 개인전을 열게 되어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전시회 도록 표지였습니다. 거대한 남근 모양의 라텍스 조각을 품에 안고 웃고 있는 부르즈아를 볼 수 있는데요. 안고 있는 조각의 제목은 다름 아닌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아이러니하게도 남근의 모습을 하고 있었죠. 평론가들은 ‘두려움의 대상을 품에 안으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부르주아의 예술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평가했어요. 


이후 부르주아는 본격적으로 걸작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주된 원동력이었다면, 1999년에는 긍정적인 기억을 활용하기도 해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만든 마망입니다.

루이스 부르주아 <마망>

© Sotheby’s


마망은 프랑스어로 엄마를 의미하는데 작품은 거대한 거미 모양을 하고 있어요. 거미와 엄마의 연결고리는 가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의 집은 타피스트리 복원과 수전 일을 했어요. 어머니 조세피는 언제나 실과 바늘로 천을 고치고 있었죠. 그 모습이 마치 거미 같았다고 부르주아는 회상합니다.

거미와 엄마의 또 다른 닮은 점은 강인함이었어요. 거미는 누군가 집을 망가뜨려도 화내지 않고 묵묵히 다시 집을 짓습니다. 이 모습은 불륜으로 망가진 집을 다시 고치려고 노력했던 어머니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었죠. 거대한 청동거미 아래로 들어가면 위협적으로 보이는 외형과 달리 관객을 품어주는 듯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 역시 모성애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억의 물질적 증거들

부르주아의 페브릭 작업 전시 전경부르주아의 페브릭 작업 전시 전경

부르주아의 페브릭 작업 전시 전경 © MoMA


포근한 느낌을 받으면서 작품을 바라보면 실이나 천 같은 디테일로 작품들이 꾸며져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이는 천을 활용한 부르주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부르주아는 천을 주요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해요. 특히 2천년부터는 90년간 보관해 온 가족의 천들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입던 옷, 가족이 함께 쓰던 침대, 시트, 어머니의 손수건, 낡은 수건들. 이 천들엔 가족의 냄새와 손길,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죠.


부르주아는 이 천들을 ‘기억의 물질적 증거’라고 불렀습니다. 낡은 천조각들을 바느질로 이어붙이고 때로는 자르고 다시 꿰매면서 마치 상처를 치유하듯이 작업했죠. 그렇게 천 조각이 담고 있던 기억은 부르주아의 손을 거쳐서 작품이 되고 전시장 안에서 공간을 형성하면서 물성을 가진 존재로 승화되죠.


루이스 부르주아 사진

© The Easton Foundation


부르주아의 예술은 기억을 물질적 증거로 변환하는 연금술과도 같습니다. SNS에 하루에도 수십 개의 사진을 올리고, 클라우드에 수만 장의 이미지를 저장하는 오늘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진정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죠.

부르주아는 보여줍니다. 진짜 기억은 냄새와 촉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처도 사랑도 모두 물질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이런 예술과는 당대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와도, 기계적이고 차가운 미니멀리즘과도, 관념적이고 공업적인 개념 미술과도 거리가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유기적이며 감성적이죠. 부르주아의 예술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술이 왜 필요한가를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부르주아의 예술을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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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에디터

Artists

변기가 예술이 되고, 죽은 상어가 수백억 원에 팔리는 현대미술. 이제 미술은 관객 설득을 뒤로한 채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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