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윅은 어렸을 때부터 예술이 가득한 집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음악가였고, 어머니는 보석 디자이너였습니다. 할아버지도 음악 교사로 일했고, 할머니는 섬유 디자이너였어요. 덕분에 어린 헤더윅은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발전시키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그리고 뭔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죠.
그러던 중 열한 살 무렵, 본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것을 알게 되었, 미술대학에 입학해 디자인 공부를 시작합니다. 당시 헤더윅은 드로잉, 회화, 조각, 패션, 섬유, 3차원 디자인 등 다양한 시각예술 장르를 공부했는데요. 이중에서 건축은 없었습니다.
헤더윅은 건축이 차갑고 완고하고 진부해 보였다고 해요. 실제로 건축계는 근현대에 접어들며 차갑고 완고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어요.
첫째로, 대중적으로 화려한 건축물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연이은 전쟁 이후, 고전적이고 화려한 건축 양식이 권력주의적이라는 인식이 생긴 탓이었죠. 둘째로, 예술계 내부적인 트랜드 변화가 있었어요. 제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은 끔찍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과 재료를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모든 예술 장르는 이전과 달라졌어요.
조각과 회화는 추상화되거나,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되었고, 시는 더 난해해지고, 무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과거의 전통과 규칙에 저항해 새로운 방식을 좇았기 때문에 난해하고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죠.
건축 학도 학생들도 실제로 건물을 지어본 적은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헤더윅은 정자처럼 작은 건축물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파빌리온을 설계해요. 건축물의 기본 요소인 지붕과 벽이 이어지며 건물의 뼈대를 이루고, 벽은 창문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개방감을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형태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했죠.
헤더윅은 건물의 구조와 기능, 아름다움까지 모두 고려한 명백한 건축물을 선보였습니다. 그렇게 이례적인 졸업 작품을 선보이며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졸업장을 받은 헤더윅이 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것이었어요. 1994년, 24살 때의 일이었죠.
애벌레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기하학적 동시에 자연적인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죠. 이건 의도적인 것이었어요. 헤더윅은 자신이 디자인한 모든 것들에 자연적 요소가 담겨있길 바랐습니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진화해왔기 때문이죠. 이후로도 헤더윅은 자연의 형태를 따온 건축물을 선보입니다.
씨앗을 형상화한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이나 Seed Cathedral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벌집 형태를 따온 건축물 베슬(Vessel (2019, 뉴욕 허드슨 야드), 꽃을 형상화한 런던 올림픽 성화대 (Olympic Cauldron), 이외에도 곡선의 특징이 강조된 의자와 벤치, 성게를 보는 것 같은 조각 작품, 조개 껍데기를 형상화한 카페, 곡선을 강조한 버스, 나무 뿌리를 보는 것 같은 유리 공장까지 다양했죠.
그리고 이런 자연적 모티브를 극대화 하기 위해 건물에 장식적 요소들을 더하기 시작합니다. 아르누보 예술에서 볼법한 화려한 장식 패턴을 더했죠. 너무 과한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헤더윅은 이런 장식에 대한 사랑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이야기했어요.
실제로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기까지 알려진 모든 인간 사회는 ‘미화’, 즉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귀중한 자원을 투입해 왔습니다. 연이은 전쟁 후 예술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단순하고 차가운 형태를 잠시 선호했지만, 헤더윅은 우리 인간의 진짜 본성은 화려함을 추구한다고 보았어요.
그리고 본인의 건축물에 이런 장식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 예술가와 협업을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의 강의동, ‘더 하이브 The Hive’ 인데요. 적은 예산 탓에 주요 자재는 콘크리트를 써야 했습니다.
헤더윅은 예술가 사라 파넬리와 협업하기로 해요. 사라의 잉크 드로잉 700여 점을 콘크리트로 주조했고, 이 드로잉을 반복적으로 배치해 패턴처럼 만들었죠. 그렇게 완성된 건물은 거칠지만 따스하고, 독특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자아냈어요.
헤더윅은 ‘비슷한 크기의 주차장을 만드는 것보다 대단히 많은 돈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면서, 작은 디테일로 장식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이런 협업은 예술가들에게도 좋습니다. 미술관 안에 있었다면 소수의 관객만 만났을 작품이 건축물에 새겨지며 더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되기 때문이죠.
점점 커지고 높아지면서 거대해지고 있는 오늘날 건축물 사이, 헤더윅은 기계적이고 딱딱한 건축에 장식적이고 회화적인 터치를 가미했습니다. 그렇게 헤더윅의 건축엔 또 한번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인간미가 더해졌죠.
헤더윅은 이처럼 건축에 인간성을 더하기 위해 자연과 가까운 형태를 활용하거나, 장식적인 요소를 더하는 등의 시도를 해왔는데요. 이런 시도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실제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항상 건축모형을 내려다보던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도로 위를 걷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지상에서 직접 관찰했어요. 이들이 길에서 건물을 어떻게 마주하고 감상하고 머무르는지를 보고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뉴욕 허드슨강에 설계한 리틀 아일랜드 Little Island(Pier 55)(2021)입니다. 원래 이곳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 선착장으로 쓰였는데요. 1930년대 들어서 더 큰 부두가 생기며 버려지게 됩니다. 이후 뉴욕 LGBTQ 커뮤니티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되었는데요.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피해를 입으며 안전상 폐쇄되어 버렸어요.
이후 2021년에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이곳을 새롭게 재창조 합니다. 전통적인 부두는 네모난 형태의 구조물이 둥둥 떠있는데, 리틀 아일랜드는 강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형태를 합니다. 132개의 튤립 형태의 구조물을 강 아래 박아 넣은 덕분인데요. 그간 자연적 요소를 건축적으로 활용해온 헤더윅의 개성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백열네 그루의 나무와 6만 6천송이의 꽃을 심어 공원을 조성했어요. 그옆에는 원형극장과 매점이 있어서 공연도 하고 시민들이 시간도 보낼 수 있게 설계해 두었죠. 이 풍경을 위에서 바라보면 공원 안쪽부터 바깥까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어요. 이것도 장식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 본성을 건드린 시도인데요.
물론 이런 시도는 비난받기도 합니다. 건축가들은 천장 높이, 환기, 단열 같은 형태보다 중요한 기능의 문제들이 있고, 직선적이고 차가운 건축은 매우 경제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실제로 헤더윅의 건축은 몇 차례 내구성 이슈를 겪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인간적 요소가 고려된 건축 디자인에 대해 5-10% 가량 높은 수수료를 청구하며 ‘휴먼 프리미엄’이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휴먼 프리미엄이라는 전례없는 개념에 건축가들은 황당해 했어요. 헤더윅이 정식 건축 교육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고요. 이외에도 크고 작은 이슈들이 이어지면서 헤더윅의 크리에이티브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더 인간적인 건축을 표방하며 자연적이고, 장식적이고,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건축 선보이고 있는 토마스 헤더윅.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함께 보면 좋을 건축가의 명언
건축은 예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립 존슨, 건축가
건축은 시각 예술이며, 건물은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 줄리아 모건, 건축가
건축의 예술적인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건축의 가치는 오로지 그 예술성에 있다고 믿는다 -폴 루돌프, 건축가
© Heatherwick Studio
뉴욕의 랜드마크가 된 베슬, 씨앗을 형상화한듯 아름다운 전시장과 꽃처럼 피어오르는 런던 올림픽 성화대, 버려진 부두를 자연과 예술이 숨쉬는 공간으로 바꾼 리틀 아일랜드까지. 모두 토머스 헤더윅이 만든 조형물들입니다.
헤더윅은 ‘더 인간적인 건축’을 강조하면서 때로는 자연적이고, 때로는 조형적이고, 때로는 외향인스러운 건축 언어를 선보였는데요. 더 인간적인 것을 좇아 발전한 그의 건축은 직선의 회색도시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아주 큰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다룰 예술가는 인간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한 토머스 헤더윅입니다.
건축가가 되기를 결심한 미대생
© Heatherwick Studio
헤더윅은 어렸을 때부터 예술이 가득한 집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음악가였고, 어머니는 보석 디자이너였습니다. 할아버지도 음악 교사로 일했고, 할머니는 섬유 디자이너였어요. 덕분에 어린 헤더윅은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발전시키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그리고 뭔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죠.
그러던 중 열한 살 무렵, 본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것을 알게 되었, 미술대학에 입학해 디자인 공부를 시작합니다. 당시 헤더윅은 드로잉, 회화, 조각, 패션, 섬유, 3차원 디자인 등 다양한 시각예술 장르를 공부했는데요. 이중에서 건축은 없었습니다.
헤더윅은 건축이 차갑고 완고하고 진부해 보였다고 해요. 실제로 건축계는 근현대에 접어들며 차갑고 완고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어요.
베르사유 궁전 전경 © Château de Versailles
첫째로, 대중적으로 화려한 건축물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연이은 전쟁 이후, 고전적이고 화려한 건축 양식이 권력주의적이라는 인식이 생긴 탓이었죠. 둘째로, 예술계 내부적인 트랜드 변화가 있었어요. 제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은 끔찍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과 재료를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모든 예술 장르는 이전과 달라졌어요.
조각과 회화는 추상화되거나,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되었고, 시는 더 난해해지고, 무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과거의 전통과 규칙에 저항해 새로운 방식을 좇았기 때문에 난해하고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죠.
베를린의 르 코르비지에 하우스 © Gunnar Klack
건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더니스트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믿으며 기능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이는 건물은 부정직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여겼어요. 건축에서는 르 코르비지에를 필두로 차분하고 간결한 건축 양식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헤더윅은 이 건물들을 ‘재앙’이자 ‘전염병’이라고 부르며, ‘상상 속 꿈의 도시를 그려보라는 말에 이런 장면을 그릴 아이들이 몇이나 되겠냐’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르 코르비지에를 ‘따분함의 신’이라고 이야기하며, 그가 쓴 안경까지 비난했죠.
발상의 전환: 가우디의 인간적인 건축물
© Heatherwick Studio
그러면 이렇게나 현대 건축에 분노를 가지고 있던 헤더윅은 어쩌다 건축계에 깊이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대학생 시절, 헤더윅은 우연히 학생 할인 중인 책, <가우디>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요.
“충격적이었다. 이런 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런 건물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조차 몰랐다.
건물은 이렇게 생길 수도 있는데, 왜 이런 모습이 더 없었던 걸까?
건물은 이렇게 생길 수도 있다면, 또 어떤 모습이 가능할까?”
- 헤더윅 자서전 <더 인간적인 건축> 12 페이지
이후 헤더윅은 같은 학교 건축 학도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콘크리트 배합해 본 적 있어?’, ‘벽돌 쌓아본 적 있어?’, ‘용접 해본 적 있어?’ 등의 질문이었는데요. 놀랍게도 같은 학교 친구들은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콘크리트를 배합하고 벽돌을 쌓는 것은 제작자의 일이었고, 건축가는 설계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가지 재료를 만지고 경험했던 헤더윅은 졸업 전시회에 건물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해요.
헤더윅이 만든 파빌리온 (1993) © Heatherwick Studio
건축 학도 학생들도 실제로 건물을 지어본 적은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헤더윅은 정자처럼 작은 건축물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파빌리온을 설계해요. 건축물의 기본 요소인 지붕과 벽이 이어지며 건물의 뼈대를 이루고, 벽은 창문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개방감을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형태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했죠.
헤더윅은 건물의 구조와 기능, 아름다움까지 모두 고려한 명백한 건축물을 선보였습니다. 그렇게 이례적인 졸업 작품을 선보이며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졸업장을 받은 헤더윅이 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것이었어요. 1994년, 24살 때의 일이었죠.
헤더윅의 예술관: 건축은 인간적이어야 한다
[1] 자연적인 요소
롤링 브릿지 모습과 설계도 (2002) © Heatherwick Studio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품 중 가장 처음 주목받은 건 롤링 브릿지 Rolling Bridge(2004)입니다. 평소에는 난간처럼 펼쳐져 있다가 다리를 말아올려 완전한 원 모양으로 변형되는 다리인데요. 튼튼해야 할 것 같은 다리가 동그랗게 변하는 모습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 Heatherwick Studio
애벌레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기하학적 동시에 자연적인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죠. 이건 의도적인 것이었어요. 헤더윅은 자신이 디자인한 모든 것들에 자연적 요소가 담겨있길 바랐습니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진화해왔기 때문이죠. 이후로도 헤더윅은 자연의 형태를 따온 건축물을 선보입니다.
씨앗을 형상화한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이나 Seed Cathedral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벌집 형태를 따온 건축물 베슬(Vessel (2019, 뉴욕 허드슨 야드), 꽃을 형상화한 런던 올림픽 성화대 (Olympic Cauldron), 이외에도 곡선의 특징이 강조된 의자와 벤치, 성게를 보는 것 같은 조각 작품, 조개 껍데기를 형상화한 카페, 곡선을 강조한 버스, 나무 뿌리를 보는 것 같은 유리 공장까지 다양했죠.
[2] 장식성
The Hive (2015) © Heatherwick Studio
그리고 이런 자연적 모티브를 극대화 하기 위해 건물에 장식적 요소들을 더하기 시작합니다. 아르누보 예술에서 볼법한 화려한 장식 패턴을 더했죠. 너무 과한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헤더윅은 이런 장식에 대한 사랑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이야기했어요.
실제로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기까지 알려진 모든 인간 사회는 ‘미화’, 즉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귀중한 자원을 투입해 왔습니다. 연이은 전쟁 후 예술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단순하고 차가운 형태를 잠시 선호했지만, 헤더윅은 우리 인간의 진짜 본성은 화려함을 추구한다고 보았어요.
그리고 본인의 건축물에 이런 장식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 예술가와 협업을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의 강의동, ‘더 하이브 The Hive’ 인데요. 적은 예산 탓에 주요 자재는 콘크리트를 써야 했습니다.
사라 파넬리와 협업해 만든 벽면 © John Paul See Travel Films
헤더윅은 예술가 사라 파넬리와 협업하기로 해요. 사라의 잉크 드로잉 700여 점을 콘크리트로 주조했고, 이 드로잉을 반복적으로 배치해 패턴처럼 만들었죠. 그렇게 완성된 건물은 거칠지만 따스하고, 독특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자아냈어요.
헤더윅은 ‘비슷한 크기의 주차장을 만드는 것보다 대단히 많은 돈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면서, 작은 디테일로 장식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이런 협업은 예술가들에게도 좋습니다. 미술관 안에 있었다면 소수의 관객만 만났을 작품이 건축물에 새겨지며 더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되기 때문이죠.
점점 커지고 높아지면서 거대해지고 있는 오늘날 건축물 사이, 헤더윅은 기계적이고 딱딱한 건축에 장식적이고 회화적인 터치를 가미했습니다. 그렇게 헤더윅의 건축엔 또 한번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인간미가 더해졌죠.
[3] 사회성
리틀 아일랜드 (2021) © Heatherwick Studio
헤더윅은 이처럼 건축에 인간성을 더하기 위해 자연과 가까운 형태를 활용하거나, 장식적인 요소를 더하는 등의 시도를 해왔는데요. 이런 시도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실제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항상 건축모형을 내려다보던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도로 위를 걷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지상에서 직접 관찰했어요. 이들이 길에서 건물을 어떻게 마주하고 감상하고 머무르는지를 보고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뉴욕 허드슨강에 설계한 리틀 아일랜드 Little Island(Pier 55)(2021)입니다. 원래 이곳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 선착장으로 쓰였는데요. 1930년대 들어서 더 큰 부두가 생기며 버려지게 됩니다. 이후 뉴욕 LGBTQ 커뮤니티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되었는데요.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피해를 입으며 안전상 폐쇄되어 버렸어요.
© Heatherwick Studio
이후 2021년에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이곳을 새롭게 재창조 합니다. 전통적인 부두는 네모난 형태의 구조물이 둥둥 떠있는데, 리틀 아일랜드는 강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형태를 합니다. 132개의 튤립 형태의 구조물을 강 아래 박아 넣은 덕분인데요. 그간 자연적 요소를 건축적으로 활용해온 헤더윅의 개성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백열네 그루의 나무와 6만 6천송이의 꽃을 심어 공원을 조성했어요. 그옆에는 원형극장과 매점이 있어서 공연도 하고 시민들이 시간도 보낼 수 있게 설계해 두었죠. 이 풍경을 위에서 바라보면 공원 안쪽부터 바깥까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어요. 이것도 장식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 본성을 건드린 시도인데요.
© Heatherwick Studio
헤더윅이 가장 강조한 것은 ‘실제 사람들에게 이 건축이 흥미를 주는가’입니다. 이건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개장 이후 연간 150만 명 이상이 방문하며, 빠르게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죠. 헤더윅은 인간적 건축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대중은 틀릴 수가 없다. 대중이 사랑하는 건물이 허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건물을 허물고 어떤 건물을 보호할 것인가가 결국 대중에게 달려있다.
그러니까 건물 디자이너는 대중을 뮤즈로 삼아 대중에게 매료되고 영감을 얻어야 한다.
건축가의 최우선 관객은 대중이다. 다른 건축가가 아니라.”
- 헤더윅 자서전 <더 인간적인 건축> 380 페이지
헤더윅에 대한 상반된 시선
Spun Chair © Heatherwick Studio
물론 이런 시도는 비난받기도 합니다. 건축가들은 천장 높이, 환기, 단열 같은 형태보다 중요한 기능의 문제들이 있고, 직선적이고 차가운 건축은 매우 경제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실제로 헤더윅의 건축은 몇 차례 내구성 이슈를 겪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인간적 요소가 고려된 건축 디자인에 대해 5-10% 가량 높은 수수료를 청구하며 ‘휴먼 프리미엄’이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휴먼 프리미엄이라는 전례없는 개념에 건축가들은 황당해 했어요. 헤더윅이 정식 건축 교육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고요. 이외에도 크고 작은 이슈들이 이어지면서 헤더윅의 크리에이티브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더 인간적인 건축을 표방하며 자연적이고, 장식적이고,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건축 선보이고 있는 토마스 헤더윅.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함께 보면 좋을 건축가의 명언
건축은 예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립 존슨, 건축가
건축은 시각 예술이며, 건물은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 줄리아 모건, 건축가
건축의 예술적인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건축의 가치는 오로지 그 예술성에 있다고 믿는다 -폴 루돌프, 건축가
건축은 가장 위대한 예술이다 - 리처드 마이어, 건축가
건축은 예술의 어머니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