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카우스의 작품 <THE KAWS ALBUM>이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480만 달러에 낙찰됩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213억 5196만 원의 높은 금액이었죠. 이 경매 전까지 미술시장에서 카우스는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예술가였습니다. 사실, 예술가라고 하기에도 약간 애매한 입지를 가진 존재였죠. 스트릿 아티스트, 디즈니 애니메이터, 아트토이 제작자라는 커리어를 거친 탓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카우스는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입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컬렉터, RM은 자신의 공간에 카우스 작품만 전시해둔 진열장을 두고 있고, 카우스와 디올 협업으로 제작된 인형은 수천만 원에 거래되고 있죠. 그의 작품 역시 고가에 꾸준히 거래 중입니다.
그렇다면 카우스는 어떻게 미술시장의 높은 벽을 넘어 미술계 블루칩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미술을 좋아하던 총명한 미대생, 카우스
ⓒ KAWS
카우스는 1974년에 뉴저지에서 태어났어요. 본명은 브라이언 도넬리.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스트릿 아티스트 키스 해링, X-맨 시리즈로 알려진 영화감독 브라이언 싱어 등을 배출한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에 다녔죠. 카우스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습니다. 순수예술은 아니지었지만, 시각예술, 대중예술의 영역에서 경력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카우스가 대학에 갓 입학한 1990년대 초반에는 한참 그래피티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뱅크시가 그래피티 씬을 이끌고 있었고, 미국 뉴욕에서는 카우스의 선배 키스 해링이 활동 중이었죠. 둘 다 오늘날 너무나 유명한 그래피티 작가들인데요.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그림이 그려져서는 안될 공공장소에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지하철, 주택, 길거리 등 다양했죠. 카우스 역시 이런 흐름을 따라 그래피티 아티스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당시 뱅크시나 키스 해링을 추종하면서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런 흐름 속, 그들의 작품을 모방한 작업은 아류작 평가를 받을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카우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만들기로 해요. 그렇게 고안한 게 서버타이징(Subvertising) 기법이었습니다.
KAWS, Untitled(Captain Morgan), 1995 ⓒ KAWS
서버타이징은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의 광고판에 있는 광고를 살려두면서, 그 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넣는 기법이에요. 기존 그래피티랑 다른 점은, 어떤 브랜드의 어떤 광고인지는 알 수 있게 남겨둔다는 것입니다. 기존 그래피티는 어떤 광고가 있건간에 다 그래피티로 덮어버리곤 했는데 이것과는 달랐어요. 일례로, 광고의 모델 얼굴 부분에 본인의 컴패니언 캐릭터를 그려넣는 식이었는데요. 그렇다보니 이게 불법적인 그래피티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일종의 콜라보 광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위트있는 시도는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모델의 얼굴을 일부 가린 시도가 대중문화와 소비주의에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죠. 보통 화장품이나 의류 광고의 경우에는 아름답고 유명한 모델을 씁니다. 그리고 이런 연예인 광고 비용은 어마어마해요. 아주 높은 게런티를 받고 광고에 출연하는데요. 카우스는 그 광고 속 인물들의 얼굴 위에 자신의 캐릭터를 그려넣으면서, 대중문화와 소비주의에서 가장 큰 자본을 가져가는 이들의 존재감을 지워버렸어요.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요.
카우스의 서버타이징 작품들 ⓒ KAWS
그간 소비주의를 비판하고 대중문화를 비판한 작품들은 그 요소들을 작품으로 끌고오며 스토리텔링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카우스는 자신이 직접 소비주의와 대중문화 안으로 들어가면서 색다른 방식을 보여줬어요. 거기에 유쾌하고 귀여운 자신의 캐릭터를 그려넣으며, 무겁지 않고 위트있게 비판의 메시지를 전하는듯 느껴지게 했습니다.
이 작업으로 카우스가 상당한 인기를 얻게 돼요. 카우스는 이 작업을 할 때부터 ‘KAWS’라는 가명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름엔 아무런 뜻도 없습니다. 그저, 대문자로 KAWS라고 썼을 때 모양이 예뻐보여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하죠. 별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이 역시 사랑받습니다. 그렇게 카우스는 위트있는 작업과 예쁜 이름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금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바로 예술가의 길을 걷진 않았습니다. 스트릿 아트는 사이드 프로젝트였을 뿐, 본업은 따로 있었죠.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디즈니 애니메이터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주로 배경 부분을 작업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카우스가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101마리 달마시안’이 있어요. 이외에도 크고 작은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면서 커리어를 이어나갑니다. 서버타이징 작품도 꾸준히 남기면서요.
디자이너가 예술가가 된 방법
그래피티 아티스트나 디즈니 애니메이터는 모두 예술을 업으로 하지만, 예술가만큼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진 존재는 아닙니다. 이후 카우스는 자신이 쌓은 인지도와 팬덤을 활용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작업을 하기 시작해요.
카우스의 1999년 피규어 작업들 ⓒ KAWS
그렇게 내놓은 것이 1999년부터 선보인 카우스의 피규어 작품들입니다. 이건, 서버타이징 작업에서 인물의 얼굴에 그려넣은 카우스의 대표 캐릭터 Companion을 피규어로 제작한 것이에요. 미키마우스에 영감받았구나 하는 요소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디자인. 약간 엉성하고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초기작이기에, 이런 어색한 느낌도 사랑받았습니다.
이 피규어의 높이는 20센티 정도로 작았고, 출시가는 100달러 정도로 낮은 금액대였는데요. 부족한 점이 있는 피규어였지만 기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빠르게 팔려나갔고, 오늘날 구하려면 3-4천 만원은 주어야 할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카우스의 2006년 피규어 작업들 ⓒ KAWS
이후 2006년에는 또다른 Companion 피규어를 제작해요. 전작보다 머리 사이즈는 작게하고, 팔다리는 두껍게 해서 좀더 안정적인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이 조금 독특해요. 캐릭터를 세로로 반으로 갈라서, 반쪽은 미키마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컴패니언 캐릭터의 모습을 하게 했고, 나머지 반쪽은 뇌와 뼈, 근육, 장기가 보이는 해부된 모습으로 연출합니다. 이번에도 카우스 특유의 위트와 미감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보여주는데요.
이 피규어 시리즈는 기존에 이미 팬덤을 형성한 캐릭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의 소장욕을 자극했어요. 당시 이 피규어는 500개만 제작되었는데, 즉시 매진되었죠. 오늘날에는 이 피규어가 1억 5300만 원 정도에 거래되면서 여전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피규어 작업들은 예술품의 영역은 아니에요. 아트 토이의 영역이죠. 카우스는 예술가로서의 포지션을 좀더 명확히 구축하기 위해 페인팅 작품들도 적극적으로 그려냅니다. 초기에는 자신의 컴패니언 캐릭터들을 일러스트처럼 그려내다가, 2003년에 접어들면서는 본인이 사랑받은 유쾌한 면모를 보여주는 패러디 작품을 선보였어요.
카우스의 Kimpsons 작업들 ⓒ KAWS
이 시기 선보인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건 ‘킴슨 Kimpsons’시리즈입니다. 심슨 가족을 패러디한 시리즈인데요. 누가봐도 심슨 캐릭터인 그림에 눈만 카우스 특유의 X자로 그려넣은 시리즈인데, 대중문화 아이콘을 변형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평가받으며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 이후, 스폰지밥이나 피노키오, 스머프, 아톰, 스타워즈 등 다양한 캐릭터의 패러디를 진행했어요. 이외에도 고전 명작을 패러디하면서 문화적 아이콘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작업을 선보였는데요. 모두 대중과 미술계의 사랑을 받았지만, 여전히 카우스의 패러디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건 심슨 가족을 패러디한 킴슨 시리즈로 불리고 있습니다.
KAWS, THE KAWS ALBUM, 2004 ⓒ KAWS
그중에서도 미술계에게 충격을 안긴 건 비틀즈의 앨범을 패러디한 시리즈였어요. 가로세로 1미터가 조금 넘는 크기의 적당한 사이즈의 작품인데요. 이게 200억..? 이라기엔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 건, 소더비에서 매긴 추정가의 15배를 넘는 금액에 낙찰되었다는 거에요. 통상적으로 경매회사는 작가의 작품 최근 거래액을 기준으로 추정가를 매기곤 하는데, 시장 상황이 좋거나 작가 호재가 있을 경우에는 추정가를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우스도 이 작품 출품되었을 당시 전년대비 작품 가격이 1.5배 상승하고, 2배 상승하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어 좋은 지표 보여주곤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15배씩 넘기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 작품은 패러디의 패러디를 한 작업이에요. 원작은, 비틀즈가 1967년 내놓은 여덟번째 앨범의 커버인데요. 이 앨범 커버에는 비틀즈가 58명의 유명 인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듯 함께 서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마릴린 먼로, 칼 구스타프 융 등 장르를 뛰어넘는 인물들로 가득하죠. 이들은 모두 비틀즈가 존경하는 인물들이라고 해요. 당시 3000파운드의 비용을 들여 제작했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8천8백만 원 정도 될 거라고 합니다. 앨범아트에 쓰기에는 많은 금액이죠.
비틀즈의 앨범아트와 심슨의 패러디
방대한 금액과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담긴 덕분에 이 앨범 커버는 현대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앨범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이 앨범 디자인을 심슨이 패러디했습니다. 카우스도 패러디를 정말 많이 했지만, 심슨도 많은 대중매체를 패러디하면서 2차 창작물을 만들곤 했어요. 그간 심슨 패러디 시리즈를 선보이던 카우스에게는 이 패러디가 너무나 훌륭한 재료처럼 느껴졌다고 해요.
카우스는 심슨 가족의 눈을 본인의 시그니처인 X자로 그려넣으며 패러디의 패러디 작품을 선보입니다. 심슨의 발칙함에 카우스의 발칙함이 또 한번 더해진 셈인데요. 작품이 만들어지고 10년 뒤인 2015년에, 이 작품이 200억 넘는 금액에 낙찰됩니다. 그렇게 카우스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를 넘어, 미술계에서 성과를 낸 작가가 되었죠.
ⓒ Serpentine Gallery
이후 2022년에는 또다른 기록을 세워요. ‘역대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전시회의 작가’가 된 것이죠. 당시 카우스는 런던의 세르펜타인 갤러리에서 개인전 진행합니다. 그런데 갤러리 전시를 오픈하는 동시에, 비디오 게임인 포트나이트를 통해서도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고 해요.
이 포트나이트 게임 내에서 세르펜타인 갤러리로 진입하면, 카우스의 작품들을 3D로 감상할 수 있는데요. 당시 전시 주최측은 포트나이트의 월간 활성 사용자수가 8040만명에 이른다며, 카우스의 이번 전시가 역대 미술사에서 진행된 전시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전시일 것이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존 일반적인 전시와 다른 형태의 관람, 온라인 전시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하긴 해요. 그래도, 흥미로운 시도로 전시를 기획한 점은 미술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가장 상업적인 예술가, 카우스의 전략
KAWS, The Walk Home, 2012. Courtesy of Phillips.
카우스는 특유의 전략으로 빠르게 미술시장 블루칩 자리를 석권했습니다. 나이대를 가리지 않고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으며 미술시장뿐만 아니라 미술관까지 섭렵했죠.
그런 카우스의 강점으로 손꼽히는 것, 첫째로는 우선 인스타그래머블한 작품들을 들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카우스를 검색하면 카우스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183만개나 뜹니다. 미술시장에서 카우스보다 높은 상업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제프 쿤스는 46만개, 박제 상어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는 31만개에요. 다른 예술가 대비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카우스 특유의 팝하고 밝은 느낌’, ‘거리예술가 출신으로 다져온 대중성 ‘등이 온라인에서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OriginalFake 공간 전경 ⓒ OriginalFake
또 카우스는 자신의 타겟을 예리하게 저격하는 치밀한 콜라보를 진행합니다. 2006년에는 패션 브랜드를 직접 런칭해요. OriginalFake라는 카우스 특유의 위트가 담긴 이름의 브랜드였는데요. 브랜드 설립 이후 카우스는 노스페이스, 수프림 등 스트릿 기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합니다. 오리지널 페이크는 이후 2013년 폐업했지만, 흥미로운 콜라보를 보여주며 카우스의 팬덤 구축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 DIOR
이후 카우스는 매우 영리하게도 럭셔리 브랜드와도 협업을 진행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디올이에요. 2019년 S/S 컬렉션 패션쇼에서 카우스의 캐릭터에 디올 수트를 입힌 인형을 패션쇼 참석자들에게 이벤트성으로 증정했는데요. 이 인형은 2차 시장에서 2천만원-5천만원에 거래되며, 컬렉터들 사이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넘사벽 금액대 작가가 된 후, 카우스는 다시 대중과 가까워지는 시도를 선보입니다. 2016년부터는 꾸준히 유니클로와 협업하며 대중과 한발자국 가까워지는 상품을 내놓기도 했죠. 그런데 작년인 2023년에 다시 초 하이앤드 시장으로 넘어갔어요. 스위스 시계 제조사인 오데마 피게와 협업해 250개 한정판 시계를 만들기도 했죠. 가격은 3억 2천 5백만 원으로 고가였지만, 이 역시 빠르게 판매됩니다.
ⓒ Uniqlo
오늘날 카우스는 앤디 워홀, 피카소 같은 거장의 예술작품을 수집하며 또 다른 영감을 찾아 새로운 인풋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쌓은 인풋을 작품으로 탄생시키며, 더 새로운 예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새로운 영감을 받아들이고 브랜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으며 팬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리예술가로 시작해 미술 시장 곳곳을 섭렵한 카우스의 전략. 여러분은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KAWS, THE KAWS ALBUM, 2004 ⓒ KAWS
2019년, 카우스의 작품 <THE KAWS ALBUM>이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480만 달러에 낙찰됩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213억 5196만 원의 높은 금액이었죠. 이 경매 전까지 미술시장에서 카우스는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예술가였습니다. 사실, 예술가라고 하기에도 약간 애매한 입지를 가진 존재였죠. 스트릿 아티스트, 디즈니 애니메이터, 아트토이 제작자라는 커리어를 거친 탓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카우스는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입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컬렉터, RM은 자신의 공간에 카우스 작품만 전시해둔 진열장을 두고 있고, 카우스와 디올 협업으로 제작된 인형은 수천만 원에 거래되고 있죠. 그의 작품 역시 고가에 꾸준히 거래 중입니다.
그렇다면 카우스는 어떻게 미술시장의 높은 벽을 넘어 미술계 블루칩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미술을 좋아하던 총명한 미대생, 카우스

ⓒ KAWS
카우스는 1974년에 뉴저지에서 태어났어요. 본명은 브라이언 도넬리.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스트릿 아티스트 키스 해링, X-맨 시리즈로 알려진 영화감독 브라이언 싱어 등을 배출한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에 다녔죠. 카우스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습니다. 순수예술은 아니지었지만, 시각예술, 대중예술의 영역에서 경력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카우스가 대학에 갓 입학한 1990년대 초반에는 한참 그래피티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뱅크시가 그래피티 씬을 이끌고 있었고, 미국 뉴욕에서는 카우스의 선배 키스 해링이 활동 중이었죠. 둘 다 오늘날 너무나 유명한 그래피티 작가들인데요.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그림이 그려져서는 안될 공공장소에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지하철, 주택, 길거리 등 다양했죠. 카우스 역시 이런 흐름을 따라 그래피티 아티스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당시 뱅크시나 키스 해링을 추종하면서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런 흐름 속, 그들의 작품을 모방한 작업은 아류작 평가를 받을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카우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만들기로 해요. 그렇게 고안한 게 서버타이징(Subvertising) 기법이었습니다.
서버타이징은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의 광고판에 있는 광고를 살려두면서, 그 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넣는 기법이에요. 기존 그래피티랑 다른 점은, 어떤 브랜드의 어떤 광고인지는 알 수 있게 남겨둔다는 것입니다. 기존 그래피티는 어떤 광고가 있건간에 다 그래피티로 덮어버리곤 했는데 이것과는 달랐어요. 일례로, 광고의 모델 얼굴 부분에 본인의 컴패니언 캐릭터를 그려넣는 식이었는데요. 그렇다보니 이게 불법적인 그래피티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일종의 콜라보 광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위트있는 시도는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모델의 얼굴을 일부 가린 시도가 대중문화와 소비주의에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죠. 보통 화장품이나 의류 광고의 경우에는 아름답고 유명한 모델을 씁니다. 그리고 이런 연예인 광고 비용은 어마어마해요. 아주 높은 게런티를 받고 광고에 출연하는데요. 카우스는 그 광고 속 인물들의 얼굴 위에 자신의 캐릭터를 그려넣으면서, 대중문화와 소비주의에서 가장 큰 자본을 가져가는 이들의 존재감을 지워버렸어요.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요.
카우스의 서버타이징 작품들 ⓒ KAWS
그간 소비주의를 비판하고 대중문화를 비판한 작품들은 그 요소들을 작품으로 끌고오며 스토리텔링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카우스는 자신이 직접 소비주의와 대중문화 안으로 들어가면서 색다른 방식을 보여줬어요. 거기에 유쾌하고 귀여운 자신의 캐릭터를 그려넣으며, 무겁지 않고 위트있게 비판의 메시지를 전하는듯 느껴지게 했습니다.
이 작업으로 카우스가 상당한 인기를 얻게 돼요. 카우스는 이 작업을 할 때부터 ‘KAWS’라는 가명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름엔 아무런 뜻도 없습니다. 그저, 대문자로 KAWS라고 썼을 때 모양이 예뻐보여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하죠. 별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이 역시 사랑받습니다. 그렇게 카우스는 위트있는 작업과 예쁜 이름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금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바로 예술가의 길을 걷진 않았습니다. 스트릿 아트는 사이드 프로젝트였을 뿐, 본업은 따로 있었죠.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디즈니 애니메이터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주로 배경 부분을 작업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카우스가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101마리 달마시안’이 있어요. 이외에도 크고 작은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면서 커리어를 이어나갑니다. 서버타이징 작품도 꾸준히 남기면서요.
디자이너가 예술가가 된 방법
그래피티 아티스트나 디즈니 애니메이터는 모두 예술을 업으로 하지만, 예술가만큼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진 존재는 아닙니다. 이후 카우스는 자신이 쌓은 인지도와 팬덤을 활용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작업을 하기 시작해요.
카우스의 1999년 피규어 작업들 ⓒ KAWS
그렇게 내놓은 것이 1999년부터 선보인 카우스의 피규어 작품들입니다. 이건, 서버타이징 작업에서 인물의 얼굴에 그려넣은 카우스의 대표 캐릭터 Companion을 피규어로 제작한 것이에요. 미키마우스에 영감받았구나 하는 요소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디자인. 약간 엉성하고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초기작이기에, 이런 어색한 느낌도 사랑받았습니다.
이 피규어의 높이는 20센티 정도로 작았고, 출시가는 100달러 정도로 낮은 금액대였는데요. 부족한 점이 있는 피규어였지만 기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빠르게 팔려나갔고, 오늘날 구하려면 3-4천 만원은 주어야 할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카우스의 2006년 피규어 작업들 ⓒ KAWS
이후 2006년에는 또다른 Companion 피규어를 제작해요. 전작보다 머리 사이즈는 작게하고, 팔다리는 두껍게 해서 좀더 안정적인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이 조금 독특해요. 캐릭터를 세로로 반으로 갈라서, 반쪽은 미키마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컴패니언 캐릭터의 모습을 하게 했고, 나머지 반쪽은 뇌와 뼈, 근육, 장기가 보이는 해부된 모습으로 연출합니다. 이번에도 카우스 특유의 위트와 미감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보여주는데요.
이 피규어 시리즈는 기존에 이미 팬덤을 형성한 캐릭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의 소장욕을 자극했어요. 당시 이 피규어는 500개만 제작되었는데, 즉시 매진되었죠. 오늘날에는 이 피규어가 1억 5300만 원 정도에 거래되면서 여전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피규어 작업들은 예술품의 영역은 아니에요. 아트 토이의 영역이죠. 카우스는 예술가로서의 포지션을 좀더 명확히 구축하기 위해 페인팅 작품들도 적극적으로 그려냅니다. 초기에는 자신의 컴패니언 캐릭터들을 일러스트처럼 그려내다가, 2003년에 접어들면서는 본인이 사랑받은 유쾌한 면모를 보여주는 패러디 작품을 선보였어요.
카우스의 Kimpsons 작업들 ⓒ KAWS
이 시기 선보인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건 ‘킴슨 Kimpsons’시리즈입니다. 심슨 가족을 패러디한 시리즈인데요. 누가봐도 심슨 캐릭터인 그림에 눈만 카우스 특유의 X자로 그려넣은 시리즈인데, 대중문화 아이콘을 변형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평가받으며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 이후, 스폰지밥이나 피노키오, 스머프, 아톰, 스타워즈 등 다양한 캐릭터의 패러디를 진행했어요. 이외에도 고전 명작을 패러디하면서 문화적 아이콘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작업을 선보였는데요. 모두 대중과 미술계의 사랑을 받았지만, 여전히 카우스의 패러디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건 심슨 가족을 패러디한 킴슨 시리즈로 불리고 있습니다.
KAWS, THE KAWS ALBUM, 2004 ⓒ KAWS
그중에서도 미술계에게 충격을 안긴 건 비틀즈의 앨범을 패러디한 시리즈였어요. 가로세로 1미터가 조금 넘는 크기의 적당한 사이즈의 작품인데요. 이게 200억..? 이라기엔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 건, 소더비에서 매긴 추정가의 15배를 넘는 금액에 낙찰되었다는 거에요. 통상적으로 경매회사는 작가의 작품 최근 거래액을 기준으로 추정가를 매기곤 하는데, 시장 상황이 좋거나 작가 호재가 있을 경우에는 추정가를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우스도 이 작품 출품되었을 당시 전년대비 작품 가격이 1.5배 상승하고, 2배 상승하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어 좋은 지표 보여주곤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15배씩 넘기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 작품은 패러디의 패러디를 한 작업이에요. 원작은, 비틀즈가 1967년 내놓은 여덟번째 앨범의 커버인데요. 이 앨범 커버에는 비틀즈가 58명의 유명 인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듯 함께 서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마릴린 먼로, 칼 구스타프 융 등 장르를 뛰어넘는 인물들로 가득하죠. 이들은 모두 비틀즈가 존경하는 인물들이라고 해요. 당시 3000파운드의 비용을 들여 제작했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8천8백만 원 정도 될 거라고 합니다. 앨범아트에 쓰기에는 많은 금액이죠.
비틀즈의 앨범아트와 심슨의 패러디
방대한 금액과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담긴 덕분에 이 앨범 커버는 현대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앨범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이 앨범 디자인을 심슨이 패러디했습니다. 카우스도 패러디를 정말 많이 했지만, 심슨도 많은 대중매체를 패러디하면서 2차 창작물을 만들곤 했어요. 그간 심슨 패러디 시리즈를 선보이던 카우스에게는 이 패러디가 너무나 훌륭한 재료처럼 느껴졌다고 해요.
카우스는 심슨 가족의 눈을 본인의 시그니처인 X자로 그려넣으며 패러디의 패러디 작품을 선보입니다. 심슨의 발칙함에 카우스의 발칙함이 또 한번 더해진 셈인데요. 작품이 만들어지고 10년 뒤인 2015년에, 이 작품이 200억 넘는 금액에 낙찰됩니다. 그렇게 카우스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를 넘어, 미술계에서 성과를 낸 작가가 되었죠.
ⓒ Serpentine Gallery
이후 2022년에는 또다른 기록을 세워요. ‘역대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전시회의 작가’가 된 것이죠. 당시 카우스는 런던의 세르펜타인 갤러리에서 개인전 진행합니다. 그런데 갤러리 전시를 오픈하는 동시에, 비디오 게임인 포트나이트를 통해서도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고 해요.
이 포트나이트 게임 내에서 세르펜타인 갤러리로 진입하면, 카우스의 작품들을 3D로 감상할 수 있는데요. 당시 전시 주최측은 포트나이트의 월간 활성 사용자수가 8040만명에 이른다며, 카우스의 이번 전시가 역대 미술사에서 진행된 전시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전시일 것이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존 일반적인 전시와 다른 형태의 관람, 온라인 전시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하긴 해요. 그래도, 흥미로운 시도로 전시를 기획한 점은 미술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가장 상업적인 예술가, 카우스의 전략
KAWS, The Walk Home, 2012. Courtesy of Phillips.
카우스는 특유의 전략으로 빠르게 미술시장 블루칩 자리를 석권했습니다. 나이대를 가리지 않고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으며 미술시장뿐만 아니라 미술관까지 섭렵했죠.
그런 카우스의 강점으로 손꼽히는 것, 첫째로는 우선 인스타그래머블한 작품들을 들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카우스를 검색하면 카우스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183만개나 뜹니다. 미술시장에서 카우스보다 높은 상업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제프 쿤스는 46만개, 박제 상어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는 31만개에요. 다른 예술가 대비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카우스 특유의 팝하고 밝은 느낌’, ‘거리예술가 출신으로 다져온 대중성 ‘등이 온라인에서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OriginalFake 공간 전경 ⓒ OriginalFake
또 카우스는 자신의 타겟을 예리하게 저격하는 치밀한 콜라보를 진행합니다. 2006년에는 패션 브랜드를 직접 런칭해요. OriginalFake라는 카우스 특유의 위트가 담긴 이름의 브랜드였는데요. 브랜드 설립 이후 카우스는 노스페이스, 수프림 등 스트릿 기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합니다. 오리지널 페이크는 이후 2013년 폐업했지만, 흥미로운 콜라보를 보여주며 카우스의 팬덤 구축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 DIOR
이후 카우스는 매우 영리하게도 럭셔리 브랜드와도 협업을 진행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디올이에요. 2019년 S/S 컬렉션 패션쇼에서 카우스의 캐릭터에 디올 수트를 입힌 인형을 패션쇼 참석자들에게 이벤트성으로 증정했는데요. 이 인형은 2차 시장에서 2천만원-5천만원에 거래되며, 컬렉터들 사이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넘사벽 금액대 작가가 된 후, 카우스는 다시 대중과 가까워지는 시도를 선보입니다. 2016년부터는 꾸준히 유니클로와 협업하며 대중과 한발자국 가까워지는 상품을 내놓기도 했죠. 그런데 작년인 2023년에 다시 초 하이앤드 시장으로 넘어갔어요. 스위스 시계 제조사인 오데마 피게와 협업해 250개 한정판 시계를 만들기도 했죠. 가격은 3억 2천 5백만 원으로 고가였지만, 이 역시 빠르게 판매됩니다.
ⓒ Uniqlo
오늘날 카우스는 앤디 워홀, 피카소 같은 거장의 예술작품을 수집하며 또 다른 영감을 찾아 새로운 인풋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쌓은 인풋을 작품으로 탄생시키며, 더 새로운 예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새로운 영감을 받아들이고 브랜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으며 팬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리예술가로 시작해 미술 시장 곳곳을 섭렵한 카우스의 전략. 여러분은 어떻게 바라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