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n Mueck, Mask II, 2001-02 © Thaddaeus Ropac

Ron Mueck, A Girl, 2006 © Foundation Cartier
커다란 남자 두상, 인간보다 큰 아기 조각, 어딘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조각들.
이건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작품들입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이고, 또 감탄을 자아낼 만큼 큰 사이즈를 자랑하는데요. 너무나 크고 섬세해서 작품 하나를 제작하는데 수개월에서 수 년이 걸릴 정도라고 해요.

Ron Mueck, Wild Man, 2010 © REUTERS/Mick Tsikas

Ron Mueck, In Bed, 2011 © REUTERS/Henry Romero
그렇다면 론 뮤익은 왜, 이렇게 크고 진짜 같은 사람 조각을 선보이는 걸까요?
오늘 소개할 예술가는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입니다.
하루아침에 스타 예술가가 된 비전공자

작업 중인 론 뮤익 © Foundation Cartier
론 뮤익은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모두 장난감 제조업을 했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을 직접 만들 수 있었죠.
그렇게 실전 제작 경험을 쌓은 뮤익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실력으로 동종업계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TV나 영화에 소품으로 쓰는 인형 제작 일을 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광고에 쓰일 마네킹 제조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죠.

파울라 레고 © Artsy

(좌) 론 뮤익이 제작한 피노키오 조각 (우) 파울라 레고의 페인팅 작품
그러던 중 1996년, 화가이자, 뮤익의 장모님인 파울라 레고(Paula Rego, 1935-2022)의 의뢰로 극 사실주의적인 피노키오 조각을 제작하게 됩니다.
뮤익은 이 조각을 들고 이리저리 만지는 자세를 취했는데요. 이를 본 파울라 레고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떠오르는 페인팅 작품을 완성해냈어요. 작품은 고전과 현대를 예술적으로 더했다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찰스 사치 © European CEO
하지만 레고가 만든 페인팅이 아닌, 뮤익이 만든 피노키오 조각에 집중한 이도 있었어요. 현대미술계 전설적인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B. 1943)였는데요.
사치는 광고 회사 사치 앤 사치의 수장이자, 자신이 소장한 작가의 작품은 모조리 띄워버리는 예술가 마케팅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Sensation 전시 포스터 © Royal Academy of Arts

Sensation 전시 전경 © Saatchi Gallery
그리고 1997년 <Sensation> 전을 기획해,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센세이션 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기로 하죠.
사치는 초대장에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보다 더 충격적인 작품을 안다면, 부디 제보해달라"라고 적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만 모았음을 암시하는 말이었죠.
또 전시장 입구에는 ‘일부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길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며, 아이를 데려올 관객은 판단력을 잘 발휘하길 바란다’는 경고 문구를 붙였어요. 가히 마케팅의 대가 다웠죠.

Damien Hisr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 Artsy

Marc Quinn, Self, 1991 © Marc Quinn

Tracey Emin,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이 전시에 선보인 작품으로는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 작품, 마크 퀸의 피로 만든 자화상, 트레이시 에민의 성관계 명단을 적은 텐트 작품 등이 있었는데요.
전시는 상반된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우선 관객 반응은 좋은 편이었어요. 3개월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전시였음에도 약 30만 명의 관객이 방문했고, 관객 80%가 30세 이하의 젊은 관객이었죠.

Sensation 전시 전경 © Royal Academy of Arts
하지만 전시가 진행된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 중 일부는 전시에 항의하며 사임하기도 했고, 일부 회원들은 잉크나 계란을 작품에 던지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던 이 전시에 론 뮤익도 참여했어요. 당시 뮤익이 선보인 작품은 <죽은 아버지>였어요.

Ron Mueck, Dead Dad, 1996-97 © Thaddaeus Ropac
정밀하게 묘사된 나체는 정말 죽은 사람을 보는 듯 생생한데요. 이건 실제 뮤익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의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실제 크기보다 조금 작게 만들었지만, 인간의 죽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 탓에 섬뜩하게 느껴지죠. 파격적인 작품들 사이, 결코 뒤처지지 않았던 뮤익의 작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뮤익은 예술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죠.
극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초현실주의적인 ‘크기’

Ron Mueck, Couple Under un Umbrella, 2013/15 © Thaddaeus Ropac
뮤익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극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초현실주의적인 크기죠. 뮤익의 작품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데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작업과정이 매우 고됩니다.
우선 점토를 활용해 작은 형태로 조각을 제작한 후, 그 크기를 키워 실리콘 거푸집을 씌워요. 그렇게 큰 사이즈로 형태를 제작한 후에 그 위에 피부의 색, 주름, 충혈된 눈, 핏줄 등을 정교하게 세필로 채색해 묘사합니다.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 2013 © Thaddaeus Ropac
이후에는 모공이나 점과 같은 더 섬세한 피부의 요철 표현 작업이 진행해요. 그리고 머리카락과 솜털을 직접 심어 완성하죠. 털들은 모두 한 올 한 올 컬을 주어 실제와 똑같이 구현합니다. 아주 정교하고 오래 걸릴만한 작업인데요.
이 때문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기까지 길다고 해요. 그렇다 보니, 예술가로 활동한 약 25년의 시간 동안 뮤익이 만든 작품은 마흔여덟 점에 불과합니다. 이는 뮤익 작품에 희소성과 가치를 더하는 요소죠.

Ron Mueck, A Girl, 2006 © Foundation Cartier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초현실주의적인 크기입니다. 뮤익의 작품은 늘 크기가 엄청나게 크거나, 혹은 현저히 작아요. 사진으로 봤을 땐 실제 사람 같지만, 실물로 보면 압도감이나 당혹감을 느끼게 되죠.
뮤익은 실물 크기의 작품은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만들지 않을 거라며 “재미가 없을뿐더러, 실물 크기의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만나고 있지 않은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Ron Mueck, In Bed, 2011 © REUTERS/Henry Romero
인간이 구현했다고 믿기 어려운 섬세함, 실제 인간에게서 볼 수 없는 크기, 친숙함과 낯선 느낌을 모두 주는 뮤익의 작품은 섬뜩한 느낌까지도 자아낼 정도로 압도적인데요.
뮤익은 본인 작품을 통해 관객이 단순히 놀라는 대서 그치지 않고, 더 큰 감상을 이어가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인생과 감정을 다루는 론 뮤익의 작품들

Ron Mueck, Mask II, 2001-02 © Thaddaeus Ropac
그리고 다양한 작업을 통해 뮤익이 포착한 인간 삶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중 론 뮤익의 대표작이라 손꼽히는 Mask II는 43살이 된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실제 크기 대비 4배 크게 제작한 자화상인데요.
기존 조각들과 달리 마스크 형태로 제작해 뒷면은 비어있게 연출했습니다. 게다가 목 부분은 묘사하지 않아 묘한 느낌을 극대화하죠.

Ron Mueck, Mask II, 2001-02 © Thaddaeus Ropac
잠든 얼굴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수면 상태의 사람을 바라보며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불안한 존재인지 떠올리게 만들어요.
이는 뮤익의 또 다른 대표작, <여자아이>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의학 교과서 속 아기 이미지에서 영감받아 제작된 이 작품은 방금 태어난 갓난 아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줘요.

Ron Mueck, A Girl, 2006 © Foundation Cartier
양수에 퉁퉁 불은 피부와 젖어있는 머리카락, 눈부신 듯 찡그린 표정과 자연스레 생겨난 주름, 연약한 피부에 비치는 미세한 혈관과 군데군데 묻은 피, 아직 남아있는 탯줄까지. 영락없는 신생아의 모습을 하고 있죠.
하지만 크기는 실제 아기보다 훨씬 큽니다. 유약한 존재인 신생아를 거대하게 묘사하면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에 대한 위대함을 느끼게 하죠. 한편 론 뮤익은 탄생의 순간 같은 극적인 때가 아닌, 일상적인 모습을 묘사하면서도 삶의 성찰을 이끌어내요.

Ron Mueck, Two Women, 2010 © Thaddaeus Ropac
소년, 중년 여성과 남성, 노부부 등을 묘사한 작품들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모두 사색에 잠긴 듯 진지하지만
삶에 지치진 않은 초연함을 가지고 있어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각자만의 고민이 있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있죠.
지나치게 고통스럽진 않지만 또 매우 즐겁지도 않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내고 있는듯한 그 기분.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았을 감정을 담아낸 덕에 론 뮤익의 작품은 우리의 시선을 끌고 삶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듭니다.

Ron Mueck, Mass, 2016 © Foundation Cartier
동시에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도 선보이는데요. 2016년 선보인 작품, Mass가 대표적입니다. 작품은 100개의 인간 두개골 조각을 높게 쌓아 만들었어요.
실제 사람보다 훨씬 큰 규모의 두개골로 인간 존재의 집단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표현하려 했죠. 이 작품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며, 그간 작품을 통해 담아온 취약함, 두려움, 연민, 공포감, 불안감 등의 감정선을 모두 담아냅니다.

Ron Mueck, Boy, 1999 © Thaddaeus Ropac
뮤익의 작품은 갓 태어난 아기부터 소년, 늙어가는 노부부와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애 주기에 따른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요. 제각기 삶을 살아내며 사색에 잠긴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매우 닮아있죠.
거창한 상상력이나 방대한 담론 없이 철학적 사색을 이끌어낸 뮤익의 작품은 현대미술이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를 보여주는 듯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작품,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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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 Mueck, Mask II, 2001-02 © Thaddaeus Ropac
Ron Mueck, A Girl, 2006 © Foundation Cartier
커다란 남자 두상, 인간보다 큰 아기 조각, 어딘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조각들.
이건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작품들입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이고, 또 감탄을 자아낼 만큼 큰 사이즈를 자랑하는데요. 너무나 크고 섬세해서 작품 하나를 제작하는데 수개월에서 수 년이 걸릴 정도라고 해요.
Ron Mueck, Wild Man, 2010 © REUTERS/Mick Tsikas
Ron Mueck, In Bed, 2011 © REUTERS/Henry Romero
그렇다면 론 뮤익은 왜, 이렇게 크고 진짜 같은 사람 조각을 선보이는 걸까요?
오늘 소개할 예술가는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입니다.
하루아침에 스타 예술가가 된 비전공자
작업 중인 론 뮤익 © Foundation Cartier
론 뮤익은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모두 장난감 제조업을 했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을 직접 만들 수 있었죠.
그렇게 실전 제작 경험을 쌓은 뮤익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실력으로 동종업계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TV나 영화에 소품으로 쓰는 인형 제작 일을 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광고에 쓰일 마네킹 제조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죠.
파울라 레고 © Artsy
(좌) 론 뮤익이 제작한 피노키오 조각 (우) 파울라 레고의 페인팅 작품
그러던 중 1996년, 화가이자, 뮤익의 장모님인 파울라 레고(Paula Rego, 1935-2022)의 의뢰로 극 사실주의적인 피노키오 조각을 제작하게 됩니다.
뮤익은 이 조각을 들고 이리저리 만지는 자세를 취했는데요. 이를 본 파울라 레고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떠오르는 페인팅 작품을 완성해냈어요. 작품은 고전과 현대를 예술적으로 더했다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찰스 사치 © European CEO
하지만 레고가 만든 페인팅이 아닌, 뮤익이 만든 피노키오 조각에 집중한 이도 있었어요. 현대미술계 전설적인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B. 1943)였는데요.
사치는 광고 회사 사치 앤 사치의 수장이자, 자신이 소장한 작가의 작품은 모조리 띄워버리는 예술가 마케팅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Sensation 전시 포스터 © Royal Academy of Arts
Sensation 전시 전경 © Saatchi Gallery
그리고 1997년 <Sensation> 전을 기획해,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센세이션 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기로 하죠.
사치는 초대장에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보다 더 충격적인 작품을 안다면, 부디 제보해달라"라고 적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만 모았음을 암시하는 말이었죠.
또 전시장 입구에는 ‘일부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길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며, 아이를 데려올 관객은 판단력을 잘 발휘하길 바란다’는 경고 문구를 붙였어요. 가히 마케팅의 대가 다웠죠.
Damien Hisr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 Artsy
Marc Quinn, Self, 1991 © Marc Quinn
Tracey Emin,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이 전시에 선보인 작품으로는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 작품, 마크 퀸의 피로 만든 자화상, 트레이시 에민의 성관계 명단을 적은 텐트 작품 등이 있었는데요.
전시는 상반된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우선 관객 반응은 좋은 편이었어요. 3개월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전시였음에도 약 30만 명의 관객이 방문했고, 관객 80%가 30세 이하의 젊은 관객이었죠.
Sensation 전시 전경 © Royal Academy of Arts
하지만 전시가 진행된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 중 일부는 전시에 항의하며 사임하기도 했고, 일부 회원들은 잉크나 계란을 작품에 던지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던 이 전시에 론 뮤익도 참여했어요. 당시 뮤익이 선보인 작품은 <죽은 아버지>였어요.
Ron Mueck, Dead Dad, 1996-97 © Thaddaeus Ropac
정밀하게 묘사된 나체는 정말 죽은 사람을 보는 듯 생생한데요. 이건 실제 뮤익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의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실제 크기보다 조금 작게 만들었지만, 인간의 죽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 탓에 섬뜩하게 느껴지죠. 파격적인 작품들 사이, 결코 뒤처지지 않았던 뮤익의 작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뮤익은 예술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죠.
극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초현실주의적인 ‘크기’
Ron Mueck, Couple Under un Umbrella, 2013/15 © Thaddaeus Ropac
뮤익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극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초현실주의적인 크기죠. 뮤익의 작품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데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작업과정이 매우 고됩니다.
우선 점토를 활용해 작은 형태로 조각을 제작한 후, 그 크기를 키워 실리콘 거푸집을 씌워요. 그렇게 큰 사이즈로 형태를 제작한 후에 그 위에 피부의 색, 주름, 충혈된 눈, 핏줄 등을 정교하게 세필로 채색해 묘사합니다.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 2013 © Thaddaeus Ropac
이후에는 모공이나 점과 같은 더 섬세한 피부의 요철 표현 작업이 진행해요. 그리고 머리카락과 솜털을 직접 심어 완성하죠. 털들은 모두 한 올 한 올 컬을 주어 실제와 똑같이 구현합니다. 아주 정교하고 오래 걸릴만한 작업인데요.
이 때문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기까지 길다고 해요. 그렇다 보니, 예술가로 활동한 약 25년의 시간 동안 뮤익이 만든 작품은 마흔여덟 점에 불과합니다. 이는 뮤익 작품에 희소성과 가치를 더하는 요소죠.
Ron Mueck, A Girl, 2006 © Foundation Cartier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초현실주의적인 크기입니다. 뮤익의 작품은 늘 크기가 엄청나게 크거나, 혹은 현저히 작아요. 사진으로 봤을 땐 실제 사람 같지만, 실물로 보면 압도감이나 당혹감을 느끼게 되죠.
뮤익은 실물 크기의 작품은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만들지 않을 거라며 “재미가 없을뿐더러, 실물 크기의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만나고 있지 않은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Ron Mueck, In Bed, 2011 © REUTERS/Henry Romero
인간이 구현했다고 믿기 어려운 섬세함, 실제 인간에게서 볼 수 없는 크기, 친숙함과 낯선 느낌을 모두 주는 뮤익의 작품은 섬뜩한 느낌까지도 자아낼 정도로 압도적인데요.
뮤익은 본인 작품을 통해 관객이 단순히 놀라는 대서 그치지 않고, 더 큰 감상을 이어가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인생과 감정을 다루는 론 뮤익의 작품들
Ron Mueck, Mask II, 2001-02 © Thaddaeus Ropac
그리고 다양한 작업을 통해 뮤익이 포착한 인간 삶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중 론 뮤익의 대표작이라 손꼽히는 Mask II는 43살이 된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실제 크기 대비 4배 크게 제작한 자화상인데요.
기존 조각들과 달리 마스크 형태로 제작해 뒷면은 비어있게 연출했습니다. 게다가 목 부분은 묘사하지 않아 묘한 느낌을 극대화하죠.
Ron Mueck, Mask II, 2001-02 © Thaddaeus Ropac
잠든 얼굴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수면 상태의 사람을 바라보며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불안한 존재인지 떠올리게 만들어요.
이는 뮤익의 또 다른 대표작, <여자아이>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의학 교과서 속 아기 이미지에서 영감받아 제작된 이 작품은 방금 태어난 갓난 아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줘요.
Ron Mueck, A Girl, 2006 © Foundation Cartier
양수에 퉁퉁 불은 피부와 젖어있는 머리카락, 눈부신 듯 찡그린 표정과 자연스레 생겨난 주름, 연약한 피부에 비치는 미세한 혈관과 군데군데 묻은 피, 아직 남아있는 탯줄까지. 영락없는 신생아의 모습을 하고 있죠.
하지만 크기는 실제 아기보다 훨씬 큽니다. 유약한 존재인 신생아를 거대하게 묘사하면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에 대한 위대함을 느끼게 하죠. 한편 론 뮤익은 탄생의 순간 같은 극적인 때가 아닌, 일상적인 모습을 묘사하면서도 삶의 성찰을 이끌어내요.
Ron Mueck, Two Women, 2010 © Thaddaeus Ropac
소년, 중년 여성과 남성, 노부부 등을 묘사한 작품들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모두 사색에 잠긴 듯 진지하지만
삶에 지치진 않은 초연함을 가지고 있어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각자만의 고민이 있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있죠.
지나치게 고통스럽진 않지만 또 매우 즐겁지도 않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내고 있는듯한 그 기분.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았을 감정을 담아낸 덕에 론 뮤익의 작품은 우리의 시선을 끌고 삶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듭니다.
Ron Mueck, Mass, 2016 © Foundation Cartier
동시에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도 선보이는데요. 2016년 선보인 작품, Mass가 대표적입니다. 작품은 100개의 인간 두개골 조각을 높게 쌓아 만들었어요.
실제 사람보다 훨씬 큰 규모의 두개골로 인간 존재의 집단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표현하려 했죠. 이 작품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며, 그간 작품을 통해 담아온 취약함, 두려움, 연민, 공포감, 불안감 등의 감정선을 모두 담아냅니다.
Ron Mueck, Boy, 1999 © Thaddaeus Ropac
뮤익의 작품은 갓 태어난 아기부터 소년, 늙어가는 노부부와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애 주기에 따른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요. 제각기 삶을 살아내며 사색에 잠긴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매우 닮아있죠.
거창한 상상력이나 방대한 담론 없이 철학적 사색을 이끌어낸 뮤익의 작품은 현대미술이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를 보여주는 듯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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